지금 충만을 받으라
로이 헷숀 지음 | CLC
로이 헷숀 지음
CLC / 2011년 4월 / 100쪽 / 5,000원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지금 충만을 받으라'라는 이 세 단어(be filled now)에는 이 책에서 언급하게 될 은혜의 핵심 내용들이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장 18절)는 권면이 여전히 주어져 있지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함으로 안타깝게도 그 충만함이 가져올 열매와 기쁨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말씀은 내일 우리 모습이 좀 나아진 다음 그때에 충만하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습 이대로, 처해진 바로 이곳, 즉 우리의 실패와 처해진 현재의 결핍 그 한 가운데서 '지금' 충만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후에도 계속 지금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신실함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 우리의 패배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패배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죄를 짓거나 실족하여 메마른 상태에서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본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침체기와 무기력은 오직 믿음으로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 체험에 대한 연민으로 지금 하나님과의 정직한 만남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상 흔히들 동경하는 그런 절정의 체험이 갑자기 임해서 회복된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런 체험들을 사모하며 간구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지쳐서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은혜의 축복을 선포하셨고 내가 믿음으로 그 은혜의 진리를 받아들이자, 약속하신 것들을 친히 이루셨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아버지와의 화평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죄를 자복하면 예수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이 새롭게 회복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진상을 확연히 보여주십니다. 고요한 가운데 냉철하게 진리의 밝은 빛을 조명하셔서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행사들을 언제나 드러내십니다. 아무리 포장하고 합리화시키려 해도, 그분은 우리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망상의 세계를 산산이 부숴버리시고 참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가 진리를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의 정직한 반응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악에 대해 선을 행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우리의 악을 그분께 완전히 드러내고 성령께서 지적하시는 것들에 "예, 그렇습니다."라고 단순히 시인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실재하는 어떤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온전히 고백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신속히 우리를 만나주시는지 우리는 놀라게 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실행하십니다.
위로하시는 성령우리는 특별히 위로자로서의 성령께 가장 깊이 감동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냉랭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을 때 우리 행위의 노력으로 그분께 돌아가려고 애쓰게 됩니다. 우리가 범죄함으로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선한 일을 함으로써 그분께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다짐하며,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더 많이 찾고, 경건의 시간을 더 오랫동안 드리기도 합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런 것들을 달성하지 못할 때에는 자기 책망과 패배감이 더해 결국 더 무거운 짐만 지게 됩니다.
우리가 만약 이 길로 계속 가게 된다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장 24절)라고 부르짖는 바울 사도와 같은 절망의 자리에 도달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 사도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깨우쳐 우리의 노력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눈을 돌리게 하시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모든 노력이 우리를 위하여 다 성취되었고, 멀어졌던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다시 연결되었으며 화평이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순간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지려고 애쓰거나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그것이 우리에게 없다고 그저 고백하십시오. 이때는 우리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지 말고 오직 한 방향에 집중하십시오. 예수님을 볼 수 없다고 그분께 고백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상태가 암울하고 자유롭지 못하며 평강이 없다고 아뢰십시오. 이전에는 체험했던 예수님의 시각과 보혈, 그의 승리를 지금은 누리지 못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왜 여러분이 지금 갖지 못한지를 보여주시도록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어두운 것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습니다, 주님'이라고 인정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발 아래 나아간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절망 중에 회개의 길을 찾은 자들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견고한 위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진실로 믿으면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영혼 속에서 능력으로 행하시는 성령님의 첫 번째 역사이며, 그분의 내주하심이 주시는 첫 반향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어'(로마서 5장 5절) 이에 반응하여 우리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일으키십니다.
지금 충만을 받으라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에 관해 호기심을 가지며, 그것을 열심히 사모합니다. 그러나 능력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고 애타게 기도하기보다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 예수께 제 시선을 집중할 때, 주님은 그분께 속한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 보여주시며, 성령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부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강건케 되었을 때 제게 필요한 하늘의 능력으로 부어 주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함을 매순간 보이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고 또 그가 나타내시는 것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담대히 행하게 되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심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 충만의 체험이 엄청나다 하더라도 지극히 작은 죄 하나라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피에 씻고자 하는 그런 준비된 자세로서만이 성령 충만은 지속됩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죄 씻음과 계속적인 충만함이 없다면 우리의 첫 체험은 과거의 슬픈 기억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의 공허와 냉랭함을 지적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주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그리고 그 빛이 죄라고 보여주시는 모든 것에 "예, 그렇습니다"라고 즉각 시인하기만 하면,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깨끗케 해 주실 것이며, 죄가 앗아가 버린 것들을 은혜가 다시 회복시켜 주며, 성령 충만의 체험은 바로 지금 이 시간 새롭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레위기에 나타나는 문둥병의 정결의식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희생제물인 양의 피를 오른쪽 귀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그 다음엔 그 세 곳에 오늘날 성령을 상징하는 거룩한 기름을 바르게 됩니다. 먼저는 피며, 그 다음은 기름입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회개가 있는 곳에, 즉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덮은 곳에 충만히 임하십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보배로우신 피의 효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먼저 나아지기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곧 성령 충만을 구하기 위해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로마서 9장 32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가 죄를 죄라고 시인하며 그것을 가지고 십자가에 나오는 시간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임해 계십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누가복음 24장 49절)고 하신 말씀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은 성령의 부어주심의 역사적 시점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성령께서 와 계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충만케 될 수 있으며 바로 지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는 영원한 현재형이며, 이 은혜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필요한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언젠가 저는 제 인격과 삶에 크게 실망하여 그 패배감으로 깊은 침체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둥대며 제 메모장을 뒤적거리다가 언젠가 끄적여 놓은 두 단어를 거기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충만을 받으라(be filled).' 순간, 제게는 그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말씀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충만을 받으라."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저는 지금 죄에 엄청 억눌려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의 피가 모든 죄로부터 너를 씻겼어. 그러니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바로 지금(be filled now)."
그날의 그 말씀은 계속 제게 반향되어 왔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명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치 못했습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곧바로 꼭대기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온전히 정결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었을 때, 저는 그저 주님의 명령과 약속에 "예" 하며 죄 씻음과 충만을 받아들였습니다. 풍성한 축복의 날이 이어졌고, 그 후 더 넘치는 축복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대면은 죄의 회개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포함됩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믿음이란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주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이 먼저 우리에게 임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우리 스스로의 노력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 예로 제가 이 책을 쓰면서 겪었던 경험을 말해 보겠습니다. 앞부분을 쓰는 동안 제 마음이 침침하고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애써 기도하며 제게 없다고 생각되는 것을 갈급하게 구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막다른 지경에서 저는 하나님께 그저 제 꼴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매일 아침 함께하던 묵상집 『매일의 빛(Daily Light)』 그날 분의 첫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장 20절).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더 읽어 내려가다가 또 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27절).
제가 이미 가지고 있고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저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핍절한 가운데 처한 제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냉랭한 나의 느낌이나 감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감사합니다, 주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안전한 일이었는지요. 그러자 성령님으로부터 새 생명과 담대한 마음, 제게 필요한 도움이 얼마나 신속히 왔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스펄전 목사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한때 자신의 문제와 감당해야 할 일들로 인해 얼마나 염려하며 힘들어 했는지 말입니다. 마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그는 다리를 허공으로 차면서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대서양을 마음껏 헤엄치던 물고기가 문득 헤엄치기에 충분한 물이 있을까 염려하는 꼴과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순간, 심령에 기쁨과 자유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부족을 채우기에 주님의 은혜만이 충분함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회개에 주력할 때에도 믿음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선포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친히 이루십니다. 이때 우리는 마침내 말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이사야 38장 15절). 제게 여러 가지 체험들이 수도 없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바로 그분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바로 지금!
성령 충만의 결과성령의 충만을 받은 첫 번째 결과는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는 말씀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에베소서 5장 19절). 이렇게 찬양하는 것은 아주 이성적인 행동입니다. 결코 감정적으로 들떠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쉽게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것을 무슨 영감을 받는다든지, 환희의 극치나 새로운 담대함과 자유로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 때로 다른 방언으로 찬양하는 그런 것들과 연관지어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나타나게 될 주된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된 선물이 아님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주된 선물은 그리스도의 것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그것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이나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은 단지 그것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두 번째 나오는 결과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에베소서 5장 20절). 이 말씀은 곧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며, 또 그 모두가 어디서 시작되었던지 간에 우리에게 일어날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분의 허용적 의지에 의해 일어남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태도는 우리가 교만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권리와 자기중심적 모습들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면 전혀 불가능하며, 결국은 자기 연민과 불평만 남게 됩니다.
세 번째 결과는 본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인,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장 21절). 우리의 삶의 모든 관계 속에서 서로 복종하며 섬기는 것은 성령 충만의 결과 중 하나입니다. 곧은 목을 숙이는 자세야말로 우리 심령에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더 복종하며 섬기려고 노력함으로써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맙시다. 오히려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종하지 않았음을 회개하며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치 않았음을 고백함으로써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가 자백한 죄에 덮힌 그의 아들의 피를 보시고 그 피가 깨끗케 한 곳에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 속에 남들에게 복종하며 사랑하고자 하는 온유한 마음을 창조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 축복과 도전의 말씀을 이제 온전히 실천해 봅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