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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읽어라

척 피어스 지음 | 토기장이
척 피어스 지음

토기장이 / 2010년 9월 / 320쪽 / 12,000원



때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라


어릴 때 나는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을 좋아했다. 나는 방과후면 집에 돌아와 숙제를 끝내놓고는 기대에 부풀어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서 도로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면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느리게 달려오는 아버지의 트럭 소리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트럭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왜 늦으시지, 왜 제 시간에 오지 않으시지' 하며 걱정이 커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가 제 시간에 오시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시간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시간은 하나의 실체가 되었고, 그 실체는 실망과 연결되었다. 그렇게 믿음직하던 아버지는 시간과 책임감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리셨다. 어쩌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그 시간은 기쁨이 아닌 싸움과 비난, 불신, 혼란으로 가득 찼다. 이윽고 나는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었고, 기쁨과 기대감을 잃어버렸다.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지녔던 아버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을 얻었던 아버지가 타락의 적에게 포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서른아홉이라는 때 이른 나이에 몹시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연이은 마음의 상처를 경험했던 나는 누군가를 받아들이거나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짐승처럼 움츠러들었다.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영혼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나의 외할머니는 매우 경건하면서도 씩씩한 개척자 스타일의 여성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몹시 방황하던 시절 내게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너를 네 아버지가 갔던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젊었고,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며, 남들보다 뛰어났지만 내가 가장 증오하는 일들을 향해 급속히 달려가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원수가 내 아버지를 파멸로 몰고 갈 때 썼던 것과 똑같은 양상이었다. 어느 날 참다못한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너의 소명을 성취하지 못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래서 주님께 너를 손봐달라고 간구할 참이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들은 지 몇 날이 되지 않아 나는 맥없이 쓰러졌고, 양측폐렴과 심장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 그분은 상황들을 다시 만들고 시간을 도로 찾아오기 위해 그분의 음성으로 어둠을 가르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의 음성은 병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던 나의 삶에도 들어왔다. 깊은 산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듯이 그분의 말씀이 내 안에 울려 퍼졌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케 하리라!" 그 음성은 내 존재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며 나의 생명줄이 되었다. 그분의 말씀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창조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유전자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상실의 능력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내 몸 안에서 허약함과 질병을 만들어내던 바로 그 힘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오셨고, 그로 인해 '지금'이라는 순간이 내게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이후로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나의 모든 관념을 다시 만드셔야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무너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자신의 가족들을 애정으로 돌보는 능력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신 후에 내게 그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 일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어느 날 휴스턴 시로 출근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차 안에 가득 찼다. 그때 나는 "주님, 이 사랑이 제게 넘칩니다! 제가 과연 이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내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가 네 아버지를 향해 가졌던 사랑이고, 또 네 아버지가 너를 향해 가졌던 사랑이다. 그는 내가 부어주려고 했던 것을 결코 충만하게 경험하지 못했지만, 너는 '지금' 네 인생에서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를 향해 가지고 계셨던, 그러나 그 시간의 틀에서는 거절당했던 사랑을 내게 일으키셨고,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시간의 틀에서 그 사랑의 힘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 경험으로 내 안에 기도할 수 있는 새로운 믿음이 생겨났다. 나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주님이 그분의 때에 오셔서 내가 소망하는 것을 펼치시는 것을 기대하는 가운데 성숙해갔다."우리가 부르짖을 때, 시간 안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으로 내려와 행동하신다." 나는 이 말씀을 사랑한다! 우리의 시간 속에 들어오신 하나님은 그분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전혀 인식하거나 알지 못했을 일들을 드러내 보여주기 시작하신다. 그분은 세대를 걸쳐 돌고 도는 시간의 주기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 계시하실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나는 한 집회에 갔다. 그 당시 주변에서는 예언에 대한 논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집회에서 한 유명한 선지자가 강단에 섰다. 강단에서 그는 나를 향한 말씀들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너는 때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의 백성들이 나의 온전한 때에 행하도록 돕게 될 것이다."그 순간 무언가가 내 마음 깊은 곳에 불꽃을 일으켰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에 대해 많은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때'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에 대해, 그리고 그분의 때에 행하는 것에 대해 이제 곧 나를 가르치실 참이었다. 그분은 내 인생에 이런 능력을 사용하실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시세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에 장차 나를 사용하시고자 했다.

시간_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힘: 우리의 인간성 때문에 시간은 원래 그래야 하는 것보다 더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당신은 일직선상의 시간을 초월해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간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당신이 현재의 차원에 방문하고 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의 동역자 더치와 내가 미국의 50개 주를 순방할 때 이 나라에 전했던 주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질서에서 벗어난 많은 일들을 되돌리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였다.

더치는 이어서 때에 대해 가르쳤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라는 이사야서 46장 10절 말씀이다. 다른 번역본을 보면 "나의 뜻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반드시 이룬다"는 표현이 나온다. 더치는 이 구절을 욥기 22장 28절과 연결지었다.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하나님께서 과거에 당신에게 어떤 일을 보여주실 수 있는데, 당신은 그 일에 대한 결정과 선언을 다른 시간대에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시기에 당신의 길에 빛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하늘에서 이 땅에 가져오는 데 필요한 연결 고리로 우리를 선택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의 음성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며 예언의 계시를 얻고 이 땅에 그 계시를 포고하기를 원하신다. 이로 인해 기적들이 일어나고 그분의 축복이 퍼져나갈 것이다. 일단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당신은 중보에 나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언할 수도 있다. 예언은 그분의 생각과 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당신이 말할 때 그분은 이 땅에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미래를 위한 믿음을 키우라!

우리는 이 땅에서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놀라운 피조물들이다. 빛이 어둠에 대해 크게 유리한 점이 있다. 성령님께서 빛을 증거하고 우리를 둘러싼 어둠의 능력을 깨뜨리는 일에 대한 계시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시간 속으로 들어와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믿음이 당신의 환경과 상황에 들어오고 두려움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믿음과 시간, 그리고 그것들이 역사하는 법을 말할 때 나는 히브리서 11장 23절을 가장 즐겨 사용한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부모는 믿음의 석 달을 보냈다. 이것은 당신의 미래를 앗아가려고 하는 재앙 가운데서 보내는 믿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갓 태어난 모든 아들을 강에 내다버리라는 왕의 포고는 다름 아닌 히브리인 어머니들의 태에 내려진 죽음의 저주였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의 아들을 갈대상자에 넣어 물에 떠내려 보냄으로써 이 죽음의 저주를 메웠다.

믿음의 석 달이 지닌 가치가 온 나라와 국민들을 구할 수 있다! 어느 한 시간의 틀에서 이루어진 믿음의 행동이 또 다른 시간의 틀에서 어마어마하게 드러날 수 있다. 모세 어머니의 믿음은, 80년 후 하나님께서 그녀의 아들을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준비시키고, 그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내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그 보상을 받았다.

인생에서 믿음을 앗아가는 가장 큰 도둑 가운데 하나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언의 은사는 믿음과 소망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예레미야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이다(렘 32:7-9). 예레미야는 극적인 변화가 예루살렘에 찾아올 것을 예언하다가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하나님은 감옥에 갇혀 있는 그에게 찾아가 밭을 사라고 말씀하신다. 이곳은 예레미야가 앞으로 70년에 걸쳐 멸망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밭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보여주시려 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날들에 남은 자들에 대한 계획은 항상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17절은 말한다.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포로생활 한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 예언하신다. 언약의 백성들이 그분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기대를 잃어버린다면 상처 입은 우리의 감정들에는 두려움이 가득 들어찰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제거하기 위해 언제나 소망과 싸움을 벌인다.

당신이 깨어서 지키며 귀를 기울인다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당신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처럼 어렵고 두려운 시기에라도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설령 그분이 별난 일을 요구하시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각이나 이해력을 훨씬 넘어선 계획과 목적들을 가지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희망과 미래를 가져다주는 선한 계획이지 악한 계획이 아니다. 온 땅에 구속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이 오늘날의 바로들을 끌어내린다는 점에서 다가오는 날들은 모세의 날들에 비견될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이 방문하신다!

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는 방식을 좋아한다. 예수님은 제자들만 건너편으로 보내시거나 아니면 배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가시곤 했다. 바람과 파도와 폭풍으로 인해 예수님의 일행이 목적지로 가는 중간에 발이 묶이는 모습을 성경의 몇몇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가라고 한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그들을 만나러 가신다. 삶의 과정 가운데 있는 맹렬한 폭풍은 우리 믿음에 하나의 핵심 요소이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음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다음 장소에 도착하기엔 그들의 믿음이 너무 작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그곳에' 이를 때까지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이제 자유로 가는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비하히롯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기 전 지점이었다. 모든 중간 지점은 나아가기 전에 다음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곳이지 그저 중간 지점에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지시를 듣고 전진할 때 당신은 진보하고 있으며 현재 처해 있는 과정을 완수하는 데 더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키라고 주어진 경계와 한계선을 확보하기까지 전쟁에 들어오고 나가고 관여한다. 사무엘상 17장 4절에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진영에서 '나와' 이스라엘에 싸움을 건다. 하루 종일 적의 군대를 조롱하며 도발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는 실제로 40일 내내 이런 일을 했다. 그때 어린 목동 다윗은 전쟁터에 왔다가 적의 목소리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한 후 하나의 새로운 과정을 시작했다.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패배의 과정을 중단시키고, 그날 안에 승리로 귀결되는 초단기 과정을 시작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렇게 지어진 우리 각자를 위한 삶의 주기를 가지고 계신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지금 이 시간』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삶의 주기는 잉태에서 시작하여 다음과 같이 움직이며 전개된다.

1. 잉태: 하나님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우리를 지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그분의 목적을 시작하신다.2. 탄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3. 책임의 나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4. 거듭남: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소생하게 된다.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

5. 소망 받기: 우리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찾고 받는다.

6. 믿음의 성숙: 우리의 믿음이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무기로 성숙된다.

7. 증거하심: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명을 열어 보이시는 그분의 능력과 지혜를 증거하신다.

8. 현시: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과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내면적인 성취를 드러내 보이신다.9. 완성: 죽음에 직면하여 영원에 들어가면서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이 완성된다.

원수는 우리의 소명이 완전히 성취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이 단계들 중 어디에서라도 삶의 주기를 방해하려고 하고, 주님이 가지고 계신 '카이로스'의 시간 또는 적절한 때를 놓치기를 원한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이라는 때를 놓친다고 해도, 이것은 모든 일들이 다시는 질서 정연하게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이루길 원하시는 일이 연기되고 광야의 시기가 연장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날은 오리니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시간이 모두 정렬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한 가장 균형 잡힌 성경의 설명 가운데 하나는 엘리야에게서 엘리사로 겉옷이 옮겨간 이야기다.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는 주님으로부터 그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주라는 지시를 받는다. 모든 성도들은 이런 일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향한 그분의 의도를 드러내 보이신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다른 누군가를 통해 예언적으로 보여주신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즉시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 중 많은 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을 두 배로 요구했다. 엘리야를 끝까지 따른다면 그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잇따른 관계들마다 엘리사를 이 길에서 돌이키게 하려는 일들뿐이었다. 엘리야까지도 돌아가서 다른 길로 가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따랐기에 병거가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갈 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음에 주목하라.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과 그의 영을 두 배로 받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따라가는 데 지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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