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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김자영 지음 | JOYOUS
향기

김자영 지음

JOYOUS / 2010년 9월 / 185쪽 / 12,000원



19세기의 욥, 스패포드 변호사의 고백 - "내 평생에 가는 길"




호레시오 G. 스패포드는 183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한 대학의 법학과 교수이면서 신학교의 이사 직분을 맡고 있었다. 또한 세계적인 부흥사인 드와이트 무디 목사와도 절친한 친구 사이로서 무디 교회의 회계 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스패포드 변호사는 사회의 엘리트로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실한 믿음을 가진 크리스천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안팎으로 칭송을 받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네 명의 딸들이 있었다. 웃음소리가 가실 날 없던 그의 집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다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 전역을 휩쓴 대형화재는 그의 집과 재산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아내의 건강마저 급격히 나빠지고 말았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아내의 건강회복과 가족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환경을 잠시 바꿔보라는 권고를 했고 그는 오랜 고심 끝에 가족을 위한 유럽 여행을 준비했다. 그러나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던 스패포드 변호사는 아내와 네 딸들을 먼저 유럽행 여객선에 태워 보내고 일이 끝나는 대로 곧 뒤따라가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배웅하고 돌아와 서둘러 업무를 정리하며 곧 함께할 여행을 기대하고 있던 그에게 며칠 후 긴급한 전갈이 왔다. 그의 가족이 탄 여객선이 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의 철갑선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200명이 넘게 목숨을 잃은 이 비극적인 소식과 함께 도착한 전보에는 몇 마디 말이 긴박히 쓰여 있었다.

'혼자 살아남았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형 참사 속에서 익사직전에 홀로 구조된 아내의 메시지였다.

비통한 소식을 듣고 스패포드 변호사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오는 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침착하게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하며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배에 올랐다.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굳게 입술을 다문 그를 태우고 항구를 출발한 배는 유유히 영국을 향했고 바다 한가운데 이르렀다. 이때 선장이 바다의 한 곳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저곳이, 사고지점입니다." 순간 스패포드 변호사는 이 모든 상황들이 꿈만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무섭게 삼켜버린 곳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바다는 평온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실로 내려가 울음을 터뜨렸다. "저에게… 제 아이들에게… 저희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겁니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의 영혼을 덮쳐왔다. 며칠 전까지 품에 안겨 웃던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인정해야만 했다. 그제야 참아왔던 눈물이 통곡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왔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화염 속에서 집과 재산이 없어져 버렸을 때에도 한마디 원망을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지 물으며 그는 밤새 눈물로 몸부림쳤다. 네 자녀를 삼켜버린 폭풍은 그 밤, 그의 가슴속에 들어와 영혼을 뒤흔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새 울부짖어 기도하던 그의 영혼에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깃드는 고요가 찾아오고 있었다. 고통으로 지치고 상한 그의 몸과 마음에 부드러운 손길이 지나며 위로와 평강을 부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은 자리에는 원망과 괴로움이 씻기듯 사라지고 깊은 평강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 한편의 시와 같은 믿음의 선포가 고요해진 그의 가슴속에서 울려 펴졌다. 그가 입술로 그 시를 풀어내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힘과 확신이 그의 영혼을 일으켰다. 스패포드 변호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고백을 찬송의 시로 쓰기 시작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것은 고난 속에서 어떠한 폭풍도 이겨내는 평안의 선포였다. 그 후 스패포드는 영국에 도착해 아내를 만났고 함께 시카고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오랜 믿음의 벗인 작곡가 블리스(Philip Paul Bliss)에게 이 찬송시를 건네며 작곡을 부탁했다. 이 시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씌어졌는지 알기 때문에 블리스는 이 시가 주는 평안의 힘에 놀라 전율했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하늘 가락과 같은 곡조를 붙여 한 곡의 찬송곡을 완성했다. 찬송가 속의 욥기라고 불려지는 '내 평생에 가는 길'은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는 그 후 아내와 두 딸을 낳았고, 1881년에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미국인 거류지를 만들어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자 양육과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많은 이들은 그런 그를 이상히 여기며 미친 사람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선포함으로 고난을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동성애의 혼란에서 벗어난 찬양 인도자의 고백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데니스 저니건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성장했다. 이십 대가 될 때까지도 교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크리스천 문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청년으로 성장한 그에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동성애 문제였다. 그에게 밀려온 성 정체성의 혼란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근본적인 정체성까지 뒤흔들고 있었지만 동성애에 대해 기독교가 얼마나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던 터라 누구에게도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내면의 갈등이 심할수록 그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듯 크게 웃으며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자신이 점점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로 손가락질 당하고 판단받을까 두려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두려움은 의심과 불안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의 모든 관계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마침내 데니스는 교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동성애 문제를 개인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여기며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소수로서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성경 말씀에 근거해 동성애에 대해 엄격히 금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교회가 고리타분하고 폐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이 더 상처가 되었고 데니스가 느끼는 외로움과 혼란은 그를 밑바닥까지 몰고 갔다.

그런데도 그가 교회를 떠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찬양해 온 '하나님'이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하나님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했던 신앙의 태도를 벗어 버리고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아이처럼 단순하고 솔직한 기도를 쏟아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감추기 급급했던 아픔과 문제를 정직하게 일기장에 써 나가며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다. 망가지고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온 그에게 하나님은 잠잠히 말씀하셨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그 어떤 대답보다 하나님은 데니스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오랫동안 방황하고 괴로워했던 그의 마음을 만지셨다. 창조주의 손길은 데니스의 내면에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삶에서 무너지고 어그러졌던 창조 질서를 회복시켜주셨다. 그리고 그동안 죄책감으로 눌려 있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자유롭게 해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데니스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미리 아시고 어둠과 절망에서 구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비되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홀로 내버려진 것같이 외로웠던 시간, 거듭해 왔던 혼란과 방황의 시간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듯했지만 복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무지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죄 된 본성을 절절히 느끼면서 데니스는 자신의 삶과 영혼이 온전히 회복되어 감을 체험했다. 마침내 1981년, 이 십자가의 진리는 동성애와의 치열한 싸움과 혼란 속에서 데니스를 구해 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전부가 되었다.

이 시련을 극복한 후 찬양 인도자로 활동하면서 교회 안에 예전의 자신처럼 특별한 문제를 감춘 채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날 동성애를 극복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폭력과 이혼, 동성애와 중독, 자살 등 황폐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간증하고 찬양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1989년, 그가 쓴 "약할 때 강함 되시네"는 이러한 그의 마음을 담은 간증의 노래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 나의 보배가 되신 주 / 주 나의 모든 것 / 주 안에 있는 보물을 / 나는 포기할 수 없네 / 주 나의 모든 것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 주님의 이름 찬양해 / 주 나의 모든 것 / 쓰러진 나를 세우고 / 나의 빈 잔을 채우네 / 주 나의 모든 것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이 찬양은 곧 어두운 죄와 혼란을 감춘 채 방황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큰 힘을 주었고, 이 찬양이 불리는 곳곳마다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일으키며 수많은 간증을 낳고 있다.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은 미국에서 찬양 인도자로 활발히 활동하며 아내와 함께 9명의 자녀를 둔 행복한 아버지로 살고 있다.

"예수님은 내가 그분을 알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싸움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내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내 삶의 근원이시며, 내 자유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네, 그분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 데니스 저니건

가난한 주부의 향기로운 고백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1974년, 로리는 결혼 후 대학생인 남편을 따라 미국 오리건 주 외곽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남편의 학교 근처로 가기 위해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가정을 꾸린 로리 부부에게는 갓난아이도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타지에서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로리는 자동차 뒤에 붙은 이동식 주택에서 종일 갓난아이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아이가 잠이라도 들면 멀리 있는 가족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공중전화 앞으로 달려갔지만 전화 요금 걱정에 슬그머니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장거리 전화를 한 번 하는 것도 주저할 만큼 경제적으로 빠듯한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이 위치한 지역에는 교회도, 친구도 없어 로리를 지치고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드리던 예배가 한없이 그리워지자 그녀는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잠이 들면 성경책을 펼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혹여나 아이가 깰까 낮은 목소리로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기도드리는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수시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무력감은 여전히 매 순간 로리가 싸워야 할 현실이었다. 좁은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햇살에 눈을 뜬 아침, 로리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아기를 바라보며 습관처럼 손을 뻗어 성경책을 집었다. 그런데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허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둘러보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초라한 살림살이와 아이를 키우느라 꼼짝할 수 없는 자신뿐인데, 이렇게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없이 초라해지고 가난해진 마음으로 로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한 염려와 두려움, 외로움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한참 동안 엎드려 기도하던 로리의 마음에 간절한 소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 목소리라도 기뻐 들으신다면… 그래서 주님이 즐겨 들으시는 노래를 가르쳐 주신다면… 제가 그 노래를 불러 드리겠어요."

바로 그때 로리의 입술에서 아이의 말문이 터지듯, 처음 듣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경배해요 내 영혼 기뻐/ 오 나의 왕/ 나의 목소리 주님 귀에 곱게 곱게 울리길"

간결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어우러진 이 찬양은 곧 비좁고 낡은 집을 가득 채웠고 로리의 마음 안에는 기쁨이 샘솟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눈부신 빛을 마주한 듯한 로리의 마음은 어느새 세상 누구보다 부요해졌고 그녀가 부르는 찬양은 창밖으로 향기롭게 흘러 나가고 있었다. 로리는 알았다. 이 곡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드린 이 예배를 세상의 어떤 예배보다 기쁘게 받아 주셨음을…….

로리는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이 곡을 들려주었고 남편의 격려와 추천을 통해 지역 교회에 이 찬양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이 찬양은 급속도로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회복을 일으켰고 음반으로 발매되어 지금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인 로리 클라인은 그 후 10년 동안 찬양 작곡가로 활동했고 지금도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 곡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주님이 행하신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구원과 육신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였죠. 사람들은 제게 고마움을 표하지만 이 곡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제게는 이 곡에 대한 저작권이나 어떠한 소유권도 없습니다. 이 곡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거든요.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입을 열었고, 하나님께서 채우셨어요. 그리고 이 곡을 통해 제 삶을 인도하셨죠." - 로리 클라인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남자의 회심곡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조셉 스크리븐은 1819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평온한 성장 과정을 거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그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교제해 온 아름다운 연인이 있었고, 두 사람은 약혼한 후 곧 있을 결혼을 준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듯 조셉의 삶은 때에 맞는 은혜와 축복 속에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둔 전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약혼녀가 호수에서 사고로 익사한 것이다. 이 충격은 어린 시절부터 모범적이고 바르게 살아왔던 조셉을 바꾸어 놓았다.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그는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며 어린아이처럼 반항하기 시작했다. 나날이 난폭해지며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거는 조셉의 곁에서 친구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가족들도 더 이상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방황할수록 누구보다 괴로운 건 조셉 자신이었다.

그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문득 평안하게 흘러왔던 과거에 자신이 고백하고 지켜 온 신앙을 떠올렸다.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 믿음의 고백들을 약혼녀의 죽음 앞에서 거침없이 내버리고, 야수처럼 돌변해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저주의 말을 쏟아 내는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고난으로 삶이 흔들리자 하나님을 향한 믿음까지 요동쳤던 자신이 한없이 약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이 슬픔을 이겨 내고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밤을 새워 고민하던 조셉은 이전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낯선 땅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극단적이고 고집스러운 결정 같았지만 누구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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