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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박종렬 지음 | JOYOUS
생명

박종렬 지음

JOYOUS / 2010년 5월 / 185쪽 / 9,000원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도 빛, 물, 흙, 바람(공기, 생기)을 특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에 대한 영적 원리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저는 이 원리들이 우리 삶에서 구체적인 능력으로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빛이신 주님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먼저 '빛'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이사야서 60장은 빛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사 60:19-20).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받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정복당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완전히 멸망한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회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럼, 이 빛은 어떤 빛일까요?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 빛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3). 여기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무無'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은 언제 우리 가운데 임합니까? 삶의 깊은 흑암, 혼돈, 공허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빛이 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점 타락의 끝으로 치닫자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백성을 고난 가운데 집어넣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 고난은 너무 힘들고, 어렵고,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셔야만 하는 하나님은 더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빛을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그 빛이 되어주셨습니다. 삶에 곤고한 문제가 있고 자신의 실수와 죄로 말미암아 혼돈과 흑암 가운데 있다면 빛이신 하나님을 모셔들이기를 바랍니다.

빛이 창조되기 전에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이 말은 '어둠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뭔가 준비하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보이는 것도 없고, 나아가야 할 미래의 목표도 명확하지 않아 당황스러우십니까? 그저 과거의 실패와 두려웠던 기억만 생생하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입니다. 죄악덩어리, 허물덩어리, 사망으로 치닫는 이 백성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전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장 1절).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너희들에게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빛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목표나 좌표, 방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빛 이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혼돈 상태의 땅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빛이 생긴 것입니다. 그럼, 이 빛은 무엇일까요? 빛이 무엇이기에 이 어두운 세상, 혼돈의 세상에 와야 했고, 이 세상을 바꿨을까요?

첫째로, 빛은 힘, 능력, 권세, 권위입니다. 이 힘이 임하고 이 권세가 임하니까 온 우주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태양이나 별이나 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넷째 날에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빛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빛이 임하는 곳마다 모든 어둠이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빛이 임하는 곳마다 거짓의 영, 사단의 영, 음란의 영이 다 소리를 지르며 달아납니다.

둘째, 이 빛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보시기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관점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들의 관점이 아닙니다.

셋째, 이 빛으로 어둠과 밝음을 구별하셨습니다. 구별이 무엇입니까? 거룩입니다. 거룩은 겉으로,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은"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그것이 너희들에게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실존이고 실체이기는 하나 그것보다 더 위대한 거룩한 내 빛이 네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넷째, 빛에는 밝음과 온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빛이 있는 곳에는 뭔가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립니다. 이 생명은 배려하고 뭔가를 감싸 안는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빛이 강렬하지만 은혜를 받고 나면 그 빛이 왠지 굉장히 부드럽게 느껴진다"는 간증을 듣곤 합니다. 빛이 비취면 괴로운 문제들이 녹아내리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희한하게도 밝음이 느껴집니다. 나뭇잎 하나도 살아 숨쉬고, 만물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처럼 빛은 하나님의 명령, 그분의 위엄, 능력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거룩한 생명이요, 거룩한 영광입니다. 이 빛이 임하므로 거룩이 나타나고, 거룩이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의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 빛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비추십니다. 이 공동체, 이 백성,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전능함으로 빛을 만드시고 절대의 개념을 완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삶을 비추고 조명하십니다. 출애굽기 10장에 보면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에 흑암 재앙이 나옵니다. 이 재앙이 임하자 온 땅이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 공포, 절망, 죽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어떤 흑암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침범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비춰주었던 그 빛을 따라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끈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이 백성들을 이끄셨습니다. 이 빛은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엘로힘의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고 선포하십시오. 당신을 공격하려고 하는 감정, 이성적 판단, 경험 앞에서 이 빛을 선포하십시오.

다윗은 광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양 몇 마리를 키우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그렇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두려움과 걱정거리로 가득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속지 마십시오.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우리 삶 가운데 강력한 무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생명의 빛이신 주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지으셨고, 그 빛은 말씀의 능력을 입었습니다. 이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빛이 생길 때 땅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빛이 임하자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 생명, 이 빛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빛이 없는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과 화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과 인격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성화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하늘의 각양 좋은 것들이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마음껏 운행하시도록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온갖 논리와 이론으로 가로막고 힘을 주고 있으면 인격적이신 성령님은 억지로 운행하시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이 빛이 운행하시도록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세리였던 삭개오는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자 삶의 자세도 바뀌었고, 구원도 받았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하나님의 말씀은 실체가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시자 빛이 있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이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광의 빛,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는 이 빛은 다른 누군가를 살립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 예수가 빛이 아니냐? 내 아들 예수의 빛에는 생명이 있지 아니하냐? 너희가 이 이름을 선포하라. 이 이름을 부르라. 예수, 이 생명의 능력이 너와 함께한다. 예수가 너를 거느리고 간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능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믿음, 소망, 사랑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 기업, 민족, 나라,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믿음의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이 빛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생명의 물이신 주님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을 통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십니다. 명절 끝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치셨습니다. 이 외침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계시해주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의 명절은 '초막절' 또는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이때는 올리브나 포도 등의 과일들을 수확해서 창고에 넣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특히 초막절 끝날에는 수확한 포도와 올리브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제단에 물을 뿌리며 대속죄일을 선포합니다. 한 해 농사와 삶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다 용서하셨다"라고 선포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초막절에는 '우리 죄가 용서받았다'는 영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알맞은 비를 주셔서 이렇게 많은 포도와 올리브를 추수할 수 있게 하셨다'는 감사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에게 "너희가 물로 죄사함을 받고 은혜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지만, 참 생수는 나다. 내게 와서 먹고 마셔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흥겨운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놀라운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이라는 말은'아무나 오라'는 뜻과 '오고 싶은 사람만 오라'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지만 아무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이 얼마나 큰 복음입니까? 예수님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주십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먹음으로 존귀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메마른 사람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바짝 말라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보며 나눌 수 있겠습니까? 다 생각이고 이론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다가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경쟁하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 앞에 내 삶을 마음껏 드리지 못할까? 왜 나는 이런 영적인 부담감,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 아픔만 가지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이러한 목마름의 결과는 다툼과 분쟁, 시비와 비판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 인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목마름의 문제입니다.

내가 목마르면 모두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결국 관계의 문제도 목마름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말, 행동, 인격을 따라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자신의 목마름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나아가 자신의 가족, 이 땅, 이 민족, 이 세상의 목마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치자 반석이 쪼개지고 샘이 터졌습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시면, 겉으로는 죽음이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일지라도 그곳에서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요, 섭리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지 않았다면 곳간에 가득 쌓인 포도, 올리브, 보리, 밀 등을 어떻게 수확할 수 있었겠느냐? 너희들이 예배 의식을 통해서 그 은혜를 고백한 것을 내가 다 안다. 애썼다. 수고했다. 그러나 너의 목마름은 어떻게 할 것이냐?"바로 이 목마름이 명절 끝날을 맞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목마름은 오늘 우리에게 있는 갈급함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생수이신 그리스도를 마셔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마시고, 십자가의 눈물을 마셔야 합니다. 성경은 이 생수가 성령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의 메마른 가슴이 적셔지고, 모든 용서 못할 것들이 사라지며, 주님의 거룩함을 덧입은 자로 회복될 것입니다.

흘러넘치는 생명수이신 주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

에스겔서 4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성전으로 데려가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전은 동쪽을 향해 있는데, 문지방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발목, 무릎, 허리, 어깨까지 차오르다가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됩니다. 이 물은 흐르고 흘러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면서 강을 만듭니다. 이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자 모든 생물이 죽어 있던 바다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나무에는 열매가 맺히고, 죽은 땅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이 물이 어디에서 출발했습니까? 성전입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생명의 물이 흐릅니다. 생수는 이미 예배드리는 우리 안의 성전에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심령 안에 이미 생수의 근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할 때마다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고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 생명이 사람을 바꾸고, 메마른 땅을 적시고, 얼었던 마음을 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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