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문희곤 지음 | 예수전도단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문희곤 지음
예수전도단 / 2009년 1월 / 249쪽 / 10,000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예수전도단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말씀을 전하는 강사들이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란 게 정말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사람들은 대체 그분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그 음성이 자기 혼자만의 착각과 오해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무엇보다도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나 있는 건지….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나도 이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움트고 있었다. 하나님을 늘 멀게만 느꼈는데, '이런 식으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도전받고 부러워하게 되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는 없지만 예수전도단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있었던 것, 나는 그것을 갖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친밀감'이었다.
대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신학'이 아니라 '신앙'으로만 받아들여야만 이 표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추는 자들로 부름 받았으며,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영광의 빛을 발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이때 일어나는 '영적 깨달음의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하나님과 내가 맺은 실제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다. 지극히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도를 즉각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체험의 과정이다.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 존재는 결코 없다. 우리 믿음의 최종 근거와 선택 기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되어야 한다. 예수전도단도 말씀에 모든 근거를 둔다.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성경 말씀과 맞지 않거나 상반되면, 잘못 들었거나 원수의 속임이라 인정하고 모두 다 잊어버린다. 성경을 대신하거나 그보다 우선할 수 있는 초자연적 체험이나 신비 현상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전도단이 가르치고 추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다.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교제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방법과 수단으로 인도하고 지시하는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수다쟁이다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5). 예수님은 '종'이었던 우리의 신분을 '친구'로 바꿔 주셨다. 종은 주인의 명령만 전달받을 뿐, 주인의 원하는 바와 전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수다 떨고 싶어 하시며 그분의 뜻과 생각, 마음, 계획을 전부 나누기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이었던 우리의 신분을 친구로 상향조정하셨다. 종과 달리 친구는 듣고 질문하고 대화할 수 있다. 서로 의견을 충분히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갈등하고 싸울 수도 있는 '열린' 관계다. 또한 상대방의 생각과 추구하려는 바를 잘 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를 모두 전하시려고 우리를 친구삼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들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들어야 한다. 들을 뿐만 아니라 친구로서 대화하고, 마음속 깊은 비밀까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우리에게 얼마나 설명해 주고 싶어 하시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멀리 떨어진 친구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듯, 주님은 우리와 만나 수다 떨기 원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이 말씀에는 특별한 신학적 해석이나 신령한 계시가 필요하지 않다. 예수님이 우리 목자시라는 것, 목자는 양을 부르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만 받아들이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과 화목해진 사람은 누구나 즉시 그분의 양이 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양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을 알아가고 교제하는 것은 몇몇 특별한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그리고 지위고하, 남녀노소, 빈부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찾아가 그 음성 들려주기를 원하신다. 어떠한 혼란과 갈등이 찾아와도 '하나님은 내 목자시고 나는 그분의 양이며,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진리를 절대로 의심하지 마라. 이 진리에 늘 믿음으로 '아멘'을 외칠 수 있다면,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이유
삶의 목적을 알게 하려고한 해에 천여 명의 사람들이 예수전도단의 DTS(예수제자훈련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DTS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면서, 이 시간을 통해 부르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간증한다. 이처럼 예수전도단에는 하나님을 더 깊이 있게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사역자들이 많다. 그중 한분을 소개하겠다. 바로 고(故) 장효성 간사님이다. 그분은 소위 성공한 분이셨다. 그러던 중 이분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예수전도단의 BEDTS(직장인 예수제자훈련학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운 후부터였다. 어느 날, 그분이 묵상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네 사무실의 소파를 모두 없애고 회의용 탁자로 바꾸면 어떻겠니?" 그분은 즉시 그 말씀에 순종했다. 그랬더니 부하 직원들에게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어 던진 상사'라는 칭찬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아침마다 묵상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체적으로 듣게 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양육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월급 한 푼 없는 예수전도단의 전임간사로 아내와 함께 위탁했다.
놀라운 경력과 학식, 인생 연륜을 가진 분이지만 늘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묻고 듣고 순종하신 분이셨다. 그러던 중 해외의 직장인 훈련프로그램을 일으키기 위해 사역하게 되었는데 우즈베키스탄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장례식에서 이분의 아들이 나눈 고백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버님은 참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늘 가까이하셨으며, 현장 일에 너무 바빠서 가족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BEDTS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친밀해진 뒤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며 항상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제 아버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예수전도단 안팎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서 인생 자체가 바뀐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렘 42:1-4). 하나님은 구하는 자들이 '갈 길'과 '할 일'을 깨닫도록 도우신다. 무엇으로? 자신의 음성으로 알려주신다. 갈 길, 즉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한 후, 인생의 방향을 몰라서 무작정 하나님께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하나님은 내게 에베소서 4장 12절 말씀을 주셨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말씀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가야 할 길과는 달리 해야 할 일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삶의 방향뿐만 아니라 지금 해야 할 구체적인 일들까지 말씀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 이렇게 들어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출발하라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친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그분과 말이 통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말이 통하려면 그분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체험하고, 그분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성품을 아는 것은 오직 친밀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인격적인 분이시며 얼마나 우리를 존중하시는지 체험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유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교제하기 원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내 모든 말과 표현을 이해하고 모든 감정을 함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 가야 한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고 회복해야 한다면, 일단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권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내적 요소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믿음'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요 4:24).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음성을 들으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찾는 자들을 만나주시고 상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사실은 이천 년, 수천 년이 지나도 모든 성도에게 항상 적용되는 절대 진리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함께하시며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에도 응답하시며, 우리 입술의 모든 말을 아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 그리고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격려하신다. 이것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첫 번째 필수 조건이다.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죄'다. 죄를 범한 영혼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먼저 정결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죄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동시에 완전히 사함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로 오염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로드십'(Lordship)이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면,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로드십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주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는 것이 제게 복입니다. 종이 당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에 백지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 적어 주옵소서. 제 생각은 모두 내려놓겠습니다. 주님의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제 뜻은 주님의 뜻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를 통해 주님의 뜻을 행하소서." 우리에게는 정말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주님의 음성을 정말 듣고 싶다면, 일단 한 번 들어보고 순종할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전에 먼저 무엇이든 순종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다.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춰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과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자신의 생각과 경험,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실제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다시 떠올라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일단 자신의 의지로 생각과 편견, 경험을 내려놓았다면, 진정으로 내려놓았음을 믿어라. 이것은 믿음의 결단이자 선포다. 그런데도 생각이나 의견이 자꾸 생각난다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 편견과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전혀 다른 깨달음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다. 제3의 대안을 알려주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그렇다. 머릿속의 성경 지식들이 편견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이거 그 말씀이네! 지난 번 목사님 설교 때 들었던 내용이야.' 전에 한 번 설교를 들었거나 배운 말씀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한다. 자꾸 그러다보면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까지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 것을 모두 내려놓아라!
하나님의 뜻, 이렇게 분별하라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점검하라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서구 사람의 의식구조 안에는 '기독교적 신관'이 깔려 있다. 하지만 동남 아시아권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에는 '샤머니즘'이 깔려 있다. 두 개의 신관은 매우 다르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독교적 신관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사귐, 교제) 맺는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하지만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을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인 '그분이 오셨어요!' 같은 개념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접신'이나 '빙의', '신내림'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모든 샤머니즘은 철저하게 '신비주의'로 흘러간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이러한 샤머니즘적 사고가 밑에 깔린 사람은 '하나님(혹은 신)의 음성을 듣는다'는 의미를 완전히 다른 쪽으로 해석하고 만다.
기독교적 신관에서 하나님의 음성은, 사랑의 관계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쌍방 커뮤니케이션'이다. 하지만 샤머니즘의 관점은 이를 정반대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대화(對話)가 아니다. 전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명령, 즉 천명(天命)이다. 샤머니즘의 신은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심지어 앙갚음한다. 그래서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부담스러워하고 두려워한다. 사람의 이성과 인간성을 일방적으로 빼앗고 점령하는 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참고 용서해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물을 바치고 정성을 보여서, 신을 달래려고 노력한다. 샤머니즘과 관련된 의식들의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도 많으며 복잡한 것은 다 그 때문이다. 이렇게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신의 임재, 혹은 신과의 대화를 두려워하고 어렵게 생각한다.
기독교적 신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은,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다. 당신이 기독교적 신관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인가?"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사람은 성경책을 꼭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내 생각인가, 하나님의 음성인가'라는 초보적인 질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 마음속에 지닌 하나님의 이미지가 어떤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라. 당신의 의식에 남아 있는 샤머니즘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비주의와 하나님의 음성을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