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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회 이야기

김도진 지음 | 토기장이
가나안 교회 이야기

김도진 지음

토기장이 / 2009년 9월 / 280쪽 / 11,000원



1부 허랑 인생, 제대로 뒤집어지다


사기 당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하루아침에 빚 독촉에 몰리기 시작하니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빠, 배고파!" "여보, 또 빚쟁이가 몰려와서 온 집안을 헤집고 갔어요." 정신 나간 모습으로 복수의 주먹을 움켜쥐고 헤매던 어느 날, 집이 있는 골목어귀로 들어서는데, 골목 여기저기에 세간이며 짐짝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우리 집 세간들이 왜' 내가 현실을 직시한 순간, 내 눈에 넋을 잃은 듯 지치고 지친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보!" 아내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요?" 아내가 작은 소리로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성도 중 한 사람이 우리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보증금 없이 월세 25,000원에 판잣집을 얻도록 해주었다. 어느 날 아내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필녀 집사님이 다른 성도분들과 같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이 집사님은 나를 보더니 대뜸 "아저씨, 그러고만 있지 말고 우리하고 어디 좀 가십시다." 그러는 것이다. "거기가 어딘데요?" "삼각산 기도원이에요." "그래요? 갑시다." 나는 흔쾌히 말하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도원에 가자는 제안이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막상 기도원에 도착해보니 '빚쟁이들을 피해서 숨을 수 있는 곳 중에 기도원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든 말든 나는 맨 뒤쪽에 돌아앉아서 '사기 치고 도망간 놈들을 어떻게 잡을까' 하는 생각에 온통 휩싸여 있었다.

습관적으로 기도원에 다니던 중, 아내로부터 "오늘이 기도원 집회의 마지막 날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내일부터는 어디에 가서 시간을 보내지?" 아내는 내게 속삭이듯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 이 부흥성회에서 말씀을 잘 들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 귀에 말씀은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고 이전에 그러했듯이 맨 뒤에서 돌아앉은 채 '내일은 어떻게 보낼까'를 궁리했다. 그때 강사 목사님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렸다. "저 뒤에 돌아앉아 있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그 소리에 내가 얼떨결에 돌아보았고, 강사 목사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 목사님은 나를 향해 "교만하고 강퍅한 심정을 풀고 두 손을 드시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위엄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주여!' 삼창하고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라고 외쳤다. 그 말에 따라 사람들과 함께 나도 "주여!" 하고 세 번을 외쳤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예배당 앞에서 무지개 색깔의 강한 빛이 나에게 들어왔고, 나는 그 뜨겁고 강한 불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듯 했는데 내 앞에 환상이 나타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환상 중에 예수님은 나를 쳐다보시고는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한마디가 예수님이 나에게 처음 들려주신 음성이었다. 너무나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러면서 위엄 있는 예수님의 음성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때 나는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했다. 42년간 온갖 범죄만 저지르고 살아왔던 나의 인생이 필름처럼 내 눈앞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잘못을 시인하며 그 자리에서 뒹굴며 그동안 울어보지 못한 엄청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절망의 끄트머리에 서 있을 때 예수님의 한마디는 나를 완전히 새사람으로 만들었다.

2부 나의 영원한 보스, 예수의 일꾼되다

하나님께 42년간의 나의 잘못을 용서받은 것이 너무도 감사해서, 나는 내 주변의 굶주린 사람들과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담배를 끊고 차비를 아껴 이웃을 돕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저 감사뿐이었다. 나는 부흥회라는 부흥회는 다 쫓아다녔고 밤마다 삼각산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삼각산에서 기도하는데,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이 내 앞에 나타났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나는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계속 이 구절을 외우면서 내려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시리라는 기대감에 몹시 마음이 들떴다. 나는 44세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과거 내 인생을 돌이켜볼 때 가장 낮고 천한 거지, 깡패의 인생길에서 완전히 달라져서 신학생이 된 것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나는 6년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하나님을 믿자마자 내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은 엄청났고, 그로 인해 나의 영적 교만은 극에 달했다. 교회의 장로님, 권사님뿐 아니라 목사님 알기도 우습게 여길 정도였다. 목사님이 심방해도 안 낫던 성도가 내가 살짝 찾아가 안수하면 즉시 낫는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이 나의 영적 교만을 만지기 시작하셨다. 외국에 단기간 선교하러 나갈 준비를 할 때였다. 갑자기 잇몸이 부어올라서 밥을 못 먹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직분자들을 정죄하면서 영적 교만을 가졌던 것을 깊이 회개하였다. 그랬더니 외국에 나갈 당일에 내 잇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의 교만을 꺾는 데 하나님이 많이 참아주시고 또 나를 훈련시키셨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이미 준비된 사람을 세우시는 게 아니라 일단 세우시고 그분의 뜻에 맞게 빚어 가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매를 드시기 전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신학대학원 졸업을 1년가량 앞둔 1986년 11월 어느 초겨울, 나는 주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따라 마음속에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느 곳에 기도할지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에 "빨리 청량리로 가라"는 응답이 강하게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드디어 1986년 11월 29일, 나를 평소에 아껴주시던 홍찬환 목사님과 노회 목사님을 모시고 개척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주일,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으로 강대상에 서게 되었다. 성도는 아내와 아이들 둘, 그리고 이웃의 여자 집사님이었다. 새벽예배는 나 혼자 드리기 시작했다. 정각 4시면 일어나 예배 준비를 하고 5시에 예배를 시작했다. 성도는 한 사람도 없었지만 나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다 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시다."

3부 588 한가운데 세운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가나안 교회?


사람들은 '가나안 교회'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588 근처에 있어요"하면 "아, 그렇군요" 한다. 보통 교회에서는 새벽예배가 있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주일예배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 별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우리 교회는 매일 새벽과 저녁 같은 시간에 한 시간씩 예배를 드리고 있다. 365일 예배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목사뿐 아니라 성도들도 절대 거르지 못하는 것이 예배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의 성경적 의미를 알 리 없는 사람들, 우리 교회를 처음 오는 사람들은 내게 묻곤 한다. "목사님,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서 '가나안'인가요? 이왕이면 가난교회말고 부자교회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 어떠랴. 우리가 가난한 마음을 품는다면, 정말 물질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산다면, 천국이 우리의 것인데….

세상의 인정은 필요 없다

교회의 성도들이 어느 순간 노숙자들이 들어오니까 하나둘씩 나가버렸다. 결과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 뜻이 있는 사람들, 꼭 있어야 할 사람들이 남은 것이었다. 우리 교회에는 제직회도 없고 장로들도 없다. 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깡패나 전과자, 노숙자만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곳이 교회가 맞소?" "어디 신성한 하나님의 집에 더러운 인간들을 끌어들인단 말이요?" 그들은 모두 온몸에 구정물을 뒤집어쓴 얼굴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교회를 나갔다. 나는 굳이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하나님이 불러주신 낮은 자들을 '더러운 인간들'로 생각하는 장로들이라면, 오히려 그들이 나가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사회복지법인을 인가받기 전에 우리는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정부 측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려고 해도 뭔가 줄이 필요했다. "그냥 우리끼리 똘똘 뭉치자." 내가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끼리 하나님만 붙들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해 보여주셨다.

588 일대가 변하고 있다

가나안 교회가 생기고 이 근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항상 사람이 죽어나갔던 곳이었고, 경찰 순찰차가 왔다 갔다 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순찰이 전부 없어졌다. 지역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성령의 역사가 지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포주한테 맞아죽는 상황에서, 윤락녀들은 대놓고 교회에 다니거나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윤락녀가 시들시들 아프게 되고 그러다가 윤락가를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포주들이 모의해서 나를 죽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포주들은 나에게 해코지할 장소로 당구장을 정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우리 교회 집사님이 알게 되어 나에게 "목사님, 무조건 피하십시오"라고 알려주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자리를 사수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말씀을 따라 나는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밤새도록 기도했고, 그 과정에서 악령이 조용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나는 더 큰 변화를 기대한다. 그렇기에 서울역 노숙자와 재범자들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우리의 사역은 계속될 것이다.

예배를 지겨워하는 사람들

우리 교회에서는 억지로라도 교육을 시킨다. 우리 교회에 들어와서 1년만 참고 교육을 받으면 삶이 바뀌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한다. 놀라울 만큼 말이 바뀌고 행동이 달라진다. 나는 교도소로 집회를 가면 내 마음과 열정을 다해 복음을 전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제가 바로 나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인천에 연고지가 있는 한 청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빨리 교회로 오라고 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 교도소에서 들은 목사님의 설교가 늘 저를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는 숙식만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른 채 인생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씀으로 교육해서 그들을 변화시켜 새사람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기 싫다며 그냥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청량리 역전에 나가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 소리를 한다고 들었다. "가나안 교회는 목사님도 좋고 다 좋은데, 그놈의 예배드리기 싫어서 못 들어가겠어."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토록 지겨워하던 예배를 사모하면서 말이다.

윤락녀를 떠나보내는 교회

가나안 교회는 흔히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듯이 윤락녀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윤락녀들을 떠나보내는 교회이다. 몸을 팔아서 생활하는 그녀들이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녀들이 가나안 교회에까지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지만 교회의 찬양 소리를 들으면서, 또 지나다니다가 교회 간판을 보고 마음속에 찔림을 받아 돌이켜 나가는 경우를 나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그녀들은 한 주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데, 건강검진소가 바로 가나안 교회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들어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윤락녀들, 분명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그곳을 떠나고 만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초점은 가나안 교회에 있었다. 가나안 교회 교인들은 거의 대부분 부랑자들이다. 교인들은 새벽마다 예배를 마치고 588 거리를 청소한다. 그녀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가나안 교회에서 새벽마다 거리를 쓸어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작은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다른 사창가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 588에서는 벌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윤락녀들이 자주 없어지거나 손을 씻고 나간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여기에 가나안 교회가 존재해야 할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이렇게 기도한다. "새롭게 되어 이곳을 떠나는 그녀들이 점점 많아지게 하소서."

4부 낮은 자들을 위한 쉼터



교회에서 시작한 노숙인 사역


588은 청량리역과 시장이 함께 접하고 있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나는 처음에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걸인 또는 출소자들에게 돈을 주어서 보냈는데 돈을 주고 나니까 그들은 그 돈으로 술을 사먹는다. 천원을 주면 소주를 사먹고 이천 원을 주면 맥주를 사먹는다. 그러던 중에 성경을 읽다가 '아! 이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생각하며 마음속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임하는 것을 느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7) 나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더 이상 이렇게 가만히 돈이나 주고 앉아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들을 교회에 수용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교회 2층 교육관에 보일러를 놓고 이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의 집'(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은 후 '재활원', '가나안 쉼터'로 명명하고, 현재 그 부속 기관으로 '사랑의 집'과 '샬롬의 집'을 두고 있다)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처럼 '사랑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노숙인 사역이 1996년 초였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위기일발 '사랑의 집'

하루는 다리가 없는 장애인 거지가 교회에 찾아왔다. 나는 그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우리 여전도회 회의실을 치워서 혼자 생활하게 하고 간병인을 두 사람씩 붙여서 대소변을 받아내도록 했다. 그런데 하루는 큰 사고가 터졌다. 술에 만취되었던 다른 행려자가 밥상을 그 사람에게 던져버린 것이다. 그의 코뼈가 부러지고 큰 상처가 났다. 내가 심방을 다녀오니 한 사람은 병원에 실려 가고 한 사람은 경찰서에 끌려가 있었다.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하면서 이럴 때가 제일 가슴이 아프다. 우리 '사랑의 집'에는 이런 일이 거의 매일같이 일어났다. 우리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폭력거지이다. 그들은 대부분 여러 개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 '사랑의 집'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당시에는 항상 비상 상황에서 목회를 하였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랑의 집' 형제들도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눈에서 불이 나던 사람들, 살기가 등등하던 사람들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조금씩 서로 도와줄 줄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안다.

한 번 붙들면 놓지 않는 평생관리 대상

우리는 노숙자 쉼터를 자활센터로 만들고자 한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일도 하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개인 통장까지 가지고 있다. 쉼터에서는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주는 일을 할 뿐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변할 때까지 믿어준다. 한 번 붙잡은 사람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물론 10년 퍼주고 믿어줬는데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술 마시고 와서 깽판 치는 사람도 있다. 깽판 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변화받은 사람이 100명이 넘은 현재, 예전에는 내가 자리를 비우면 꼭 사고가 났는데, 지금은 나의 부재에도 흔들림이 없다. 이제부터 "세계를 다니면서 나를 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싶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염려, 걱정이 없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전하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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