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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충만하게 채우는 여백 만들기

랜디 프레이지 지음 | CUP
인생을 충만하게 채우는 여백 만들기

랜디 프레이지 지음

CUP / 2009년 10월 / 280쪽 / 11,000원



제1부 문제 _ 삶을 몰아낸 삶



군중 속의 고독 _ 관리할 세계가 너무 많다


나는 분주한 신도시의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이자 집에서는 남편이요 네 자녀의 아버지다. '미쳐버릴' 기회가 사방에 널려 있다. 설교 준비, 교역자 관리, 교인들의 기대, 꼭 필요한 자기 계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네 자녀들에게 개인적인 관심 갖기, 아내와 단둘이 있을 시간, 운동, 부모님과 연락, 숙제 거들기, 아이들 운동 시합 참석 등 할 일이 끝이 없다. 그런데 극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다보니 감각조차 잃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정상적인 일과가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애초에 관계나 공동체를 추구하게 된 동기는 당장 미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관계란 속도를 높이거나 일하는 시간을 늘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미 삼천 년 전에 솔로몬 왕이 시도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던 일이었다. 뭔가 새로운 것, 더 깊이 있는 것이 필요했다. 긴박감도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자청한 매일 매일의 압박감 속에서 내 건강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늘 하나님이 내게 소명을 주셨고 나를 통해 이루실 일이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살아왔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있음이 분명하다. 내 딜레마의 해답은 앞서간 현인들의 지혜를 수용하되, 그 뿌리는 하나님 말씀에 있다. 그 덕에 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 의미 없이 종종걸음 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관계의 필요 _ 공동체로 지음 받은 우리

우리는 어떻게 지음 받았나? 건강하고 보람찬 삶의 요건은 무엇인가? 창세기 1~2장에 있는 인생 설계도 원안에 답이 있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최고의 걸작품 곧 우리를 내놓으신다! 인간이 포함된 완성품을 보시며 하나님은 1장에 최종 소감을 밝히신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다 창세기 2:18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연거푸 여섯 번이나 좋다고 쓰셨고 마지막에는 작품 전체가 심히 좋다고까지 하신 하나님 입에서 좋지 않다는 말씀이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사실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무슨 뜻인가? 아담이 인간의 고독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아셨다면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셨을까? 나는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고 믿는다. 만일 그날 아담과 하와를 동시에 지으셨다면 우리는 교제와 대화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당연시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혼자 살도록 지어진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시려고 하와를 나중에 지으셨을 것이다. 다시 말해 창조 질서의 유일한 변화는 공동체다. 하나님은 인간은 공동체가 있어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관계의 필요성을 지닌 존재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계의 필요를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관계에서 단절된 이들의 삶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스트레스 연구소의 연구 보고서를 직접 옮겨 보면 이렇다. "고금의 지혜, 생활 관찰, 신중한 임상 사례연구와 실험, 결혼과 이혼 및 죽음에 관한 유행학적 데이터, 정교한 심리생리학적 검사와 실험실 검사, 이 모두는 든든한 대인적 지원이 스트레스 퇴치에 강력한 효과 있음을 확증해 준다." 예를 들어, 심장수술을 받은 23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실시되었다. 그중 21명은 6개월 내에 사망했는데 통계적으로 중요한 사망률 요인은 두 가지였다. 즉 '사회적 그룹 내지 공동체 그룹에 대한 참여 부족'과 '종교의 힘과 위로의 부재'다. 의료계는 공동체와 심장질환과의 높은 상관관계를 숙고한 끝에, 건전한 공동체가 스트레스에 대한 심장의 과민 반응을 줄여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라면 건강은 더 좋아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관계의 필요를 지닌 존재로 지으셨다는 과학적 증거다.

제2부 해답 _ 관계와 시간의 구조조정



히브리 일일 플래너 _ 시간의 구조조정


당신에게 새로운 것일 수 있는 옛 개념 하나를 권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히브리 일일 플래너'라고 부른다. 이는 창세기 1~2장의 창조 신학에 뿌리를 둔 개념이다. 하나님은 창조 엿새째에 우리를 지으시되 닷새 동안 지으신 것들과 리듬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지으셨다. 이것이 히브리 일일 플래너의 기본 전제다. 첫째 날에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지으셨다(창 1:3~5). 넷째 날 하나님은 일자와 사시와 연한을 주관할 물상들로 밤과 낮을 채우셨다(창 1:14~19). 창조의 마지막 여섯째 날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다(창 1:26~27). 이제 점을 서로 이어 보자. 밤과 낮으로 된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 삶과 어떻게든 상관이 있을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히브리인들에게는 하루 일과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다림줄이 있었다. 오전 6시 새벽녘과 오후 6시 해질녘이었다. 묘하게도 히브리인의 하루는 '전날' 오후 6시에 시작되었다. 이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하루를 지칭하신 방식과 일치한다. 밤과 낮이 주관해야 하는 하루에는 본래 세 가지 주요 활동이 있다. 생산, 관계, 수면이다. 히브리인들의 일은 농업이었으므로 생산은 일조 시간인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이루어졌다. 오후 6시면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관계에 들이는 시간이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같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은 없었다. 갈 곳이 없으므로 급할 것도 전혀 없다. 이동성이 없다. 밤 9시에서 10시 사이면 다들 누워 숙면을 취한다. 히브리 가족들은 누구나 엿새 동안 매일 이런 테두리 안에서 움직였다. 일곱째 날이 되는 금요일 오후 6시면 그들은 하나님을 본받아 일을 쉬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다. 다시금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설계된 중요한 필요를 보여 주신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를 쉬며 재충전할 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이 설계를 무시하고 몸과 영혼을 혹사시키면 조금씩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삶의 원리가 어찌나 중요했던지 하나님이 친히 본보기로 일곱째 날에 쉬셨다. 그러므로 중심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똑같은 시계에 맞추어 살아야 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처음 설계 모델인 아담에게서 난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 실존 부분에서 거대한 전환의 시발점에 살고 있다.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지난 1만 년의 농경 생활은 히브리 일일 플래너와 조화를 이루어 순리대로 흘렀다. 텔레비전이 없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런 삶에 훨씬 능했다.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그들은 전파를 타고 나오는 한 시간의 야담이나 프로야구 시합을 즐기기도 했다. 가족들마다 각 방을 쓰는 해괴한 개념이 아직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다들 한 방에 모였다. 저녁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한답시고 집을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에게 필요한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은 일조 시간의 논밭일로 충분했다. 잘 시간이 오면 다들 푹 잤다.

물론 유례없는 첨단 제품에 둘러싸여 글로벌 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감동적인 면도 많이 있다. 신제품의 홍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 놀라운 창의력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여실히 보여 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가 공동체와 삶의 균형에 대한 우리의 필요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감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선긋기가 필요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24시간 7일의 할로겐램프 사회에서 밤과 낮의 구별은 무의미해졌다. 이런 생활 방식은 여러 부수적인 면에서 멋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기본적인 면에서 우리를 죽이고 있다. 우리는 실상에 눈 떠 심각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다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우리가 건강한 삶의 영원한 원리인 히브리 일일 플래너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그 기능에 다시 순응하는 쪽으로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에 필요한 자리를 내 주시려고 창조 시부터 세우신 계획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라고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애초에 하나님이 주시려고 한 삶다운 삶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제3부 장애물 _ 균형 잃은 삶의 악습과 신화의 극복



균형 잃은 삶 _ 선 긋기의 필요성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몇 년 전에 나는 골프를 시작했다. 어느 날 팀워크 형성 차원에서 골프 한 라운드를 돌았다. 예상대로 내용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맞아든 스윙이 한 번 있었다. 그 뒤로 나는 골프에 빠져, 순전히 우연으로 쳤던 그 스윙을 일상적인 일로 만들고자 지난 몇 년간 애썼다. 한 번의 성공적인 스윙을 통해 나는 골프공을 제대로 치려면 두 가지 중요한 것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즉 제 때에 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프를 치려면 자세도 완벽하고, 그립도 바르고, 백스윙하는 동작도 정확하고, 휘둘러 끝맺음까지 가는 동작도 좋아야 한다(제 일).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는 템포나 리듬 또한 완벽해야 한다(제 때). 삶도 그렇다. 우리는 제 일을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제 때에 제 템포로(하나님의 계획에 리듬을 맞추어) 할 줄 알아야 한다. 골프 스윙 중에서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는 클럽을 너무 빨리 내리는 것이다. 스윙을 세게 할수록 공이 멀리 나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클럽을 내리는 스윙은 느려야 하며 전체 몸과 템포가 맞아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속도를 높이면 더 행복하게 더 오래 살 것이라 착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템포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더 적어지지 않는다. 삶의 여백을 만들려면 하나님이 지으신 템포에 맞추어 세 영역(생산, 관계, 수면)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일의 불균형: 성경에 따르면 일이란 선하고 옳은 것이다. 사실 성경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살후 3:10).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일에 분명한 선을 그어 주셨다. 성경은 우리에게 연속 엿새만 일하고 하루는 쉬며 재충전하라고 말씀한다. 성경은 또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좋지 않다고 말씀한다. 당신은 "나는 필요한 관계 시간을 직장에서 전부 얻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방안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정력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신체장애와 정서장애를 앓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런 고생을 하는 배후 원인은 의미 있는 인격적 관계(직업상의 관계가 아니라)와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이란 직업적인 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은 활동이요 움직임이며 따라서 마당일, 운동, 아이들 스포츠, 교회 모임 등이 다 일에 들어간다. 우리는 새벽녘부터 해질녘까지 일해야 한다. 그 시간만큼은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땅거미가 지면 하루 일을 마쳐야 한다.

관계의 불균형: 우리는 관계 시간에도 심각한 불균형을 겪고 있다. 관계의 필요를 위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질적인 시간이 단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관계의 필요가 장기간 채워지지 않으면 삶의 모든 영역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관계 할당량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업무 책임과 직장 출퇴근이 관계 시간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관계에 집중하고 주력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대는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다. 그런데 요즘은 가족들의 스케줄이 다 달라서 끼니쯤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해질녘에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는 일의 장기적 가치를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면서 고칼로리 가공 패스트푸드를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 넣는 것으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신을 알고 깊이 염려해 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하루를 털어놓아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이런 단순한 실존을 강박적인 이동의 실존(제대로 하려면 가욋돈이 많이 든다)으로 바꿀 때 우리의 가정과 몸에는 새로운 해악과 새로운 질병이 태동한다. 간단히 말해 관계 시간이 균형을 잃으면 삶이 돌아가지 않는다.

수면 불균형: 솔로몬은 "노동자는 … 잠을 달게 자거니와"(전 5:12)라고 했다. 다시 말해 하루 동안 열심히 정직하게 제대로 일하면 수면 과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노동이 일가친지들과의 질적인 관계 시간을 빼앗아 가면, 점차 수면에 엄청난 영향을 입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설계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낮 시간을 늘려 자극적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자초할 때마다 아드레날린 독소가 분비되고 멜라토닌 효능이 중화되어 결국 수면의 질에 문제의 소지가 생긴다. 수면부족은 스트레스에 찌든 삶의 결과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다른 부부들을 망쳐 놓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즉 수면부족은 결국 건강 문제를 일으켜 우리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수면부족은 내면에 불균형을 초래하여 우리를 불행하고 짜증스런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에 관계도 망쳐 놓을 수 있다. 그렇잖아도 메마른 관계에 스트레스와 짜증까지 더하면, 관계를 일신시켜 본궤도로 되돌릴 여망은 저만치 달아난다.

놀이, 잃어버린 기술 _ 자녀들이 잃는 7가지 보물

우리는 자녀들에게 최소한 7가지 부분에서 죄악을 짓고 있다. 저녁과 밤 시간에 아이들을 집 밖으로 끌고 나가 온갖 활동(어른들이 주도하고 철저히 틀에 짜여 있고 연령별로 구분된 활동)에 실어 나르는 일은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창의력을 잃는다. 대부분의 활동을 어른들이 짜 주다 보니 아이들의 놀이의 기술 내지 창의력을 잃었다. 무리들과 틀에 짜인 저녁 활동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유시간이 생기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리더십을 잃는다.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아동발달 부교수인 질 스타인버그는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접하는 많은 활동들은 철두철미 틀에 짜여 있되 틀을 짠 주체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나 게임의 법칙이다. 통상적으로 아이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게임을 자기들이 주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을 틀에 박힌 놀이방이나 틀에 박힌 학교 환경에 두어왔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관리할 기회가 사실상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자율은 중요한 경험이다. 활동을 지휘하면서 우리는 규칙을 협상하는 법을 배운다. 직접 판정하는 법을 배우며 상황을 통제하고 리더십을 구사하는 법을 배운다.'

멘토링을 잃는다. 요즘 아이들은 대개 제 또래 아이들과 놀기 때문에 자기 부모와 비슷한 나이의 어른들밖에 모른다. 이것 역시 큰 불행이며 자칫 해로울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관계와 효과적인 멘토링의 기회가 더러 '중간 연령'에서 오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선택해 온 라이프스타일이 오히려 자녀들에게서 풍성한 세대 간 멘토링의 관계를 누리고 가꿀 기회를 앗아간다. 갈등 해결 능력을 잃는다. 리더십 개발의 저하와 같은 맥락에서, 어른들이 활동을 주도하고 틀을 짜고 판정할 때 아이들이 갈등 해결 능력을 기를 기회는 줄어든다. 건강을 잃는다. 〈건강한 어린이〉지의 한 편집자는 이렇게 썼다. "요즘은 많은 아이들이 놀이방, 유치원, 놀이 짝, 방과 후 활동에 급히 오가느라 스케줄 과잉 상태다. 물론 다양한 활동에서 얻는 유익도 있겠지만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무리한 일정으로 탈진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신약성경 중 13권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통찰력 있는 영감의 말을 부모들에게 들려준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 6:12). 우리가 아이들에게 시키는 다양한 활동은 부도덕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정녕 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에게 시키는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오히려 아이들의 정서와 신체 건강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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