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의 장소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 토기장이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토기장이 / 2009년 5월 / 366쪽 / 13,000원
1부 도움의 장소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이 구절은 예레미야서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렘 3:23). 이 구절들 속에는 영적인 진리의 핵심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놓으신 위대한 것들로부터 도움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도움이 온다는 것이 시인이 말하려는 핵심이다.
우리는 산처럼 높은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께 두었던 그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교육'을 최고의 위치에 두고 모든 문명국마다 잘 교육하고 주변 환경을 더 좋게 만들면 더 선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먼저 내면 세계가 제대로 되어야 교육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로 유능한 지도자였던 모세를 보자. 그는 애굽의 모든 교육을 다 받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40년 동안 광야로 보내어 양을 치게 하셨다. 그는 먼저 '자랑스러운 자신'을 제거해야 했고 스스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훈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5).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을 위대한 선생으로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산상수훈의 내용을 높은 이상으로 삼지만 십자가는 믿지 않는다. 산상수훈의 고결한 이상을 인류 앞에 내세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상을 이루도록 노력하게 할 뿐, 이 과정에서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을 선생으로만 말씀하지 않고 구세주라고 말씀한다. 모방이나 노력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주님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될 때 우리도 예수님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진리를 통해 젊었을 때 좇던 이상을 잃은 자들, 더 이상 기대할 소망이 없는 자들, 인생길에서 낙심하고 지친 자들에게 용기와 교훈을 주고 싶다. 당신은 30년 또는 그 이상의 삶을 '가능성'이라는 끝없는 꿈에 부풀어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은 고상한 산봉우리로부터 당신의 영혼을 끊임없이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몸은 지치고 산봉우리는 뜨거운 열기 가운데 희미해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갈 길은 아득히 먼데 더 이상 기운도 없다. 그런 당신에게 시편 121편이 담고 있는 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마치 생수의 강에서 흘러넘치는 수정처럼 맑은 물 한 잔을 주고 싶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제는 주께서 당신을 산봉우리로 데리고 올라가시고 당신을 새롭게 지으실 것이다. 아니 당신을 가장 높은 산봉우리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세우실 것이다. 나아가 그분의 품 안에 당신을 안으시고 안전케 하실 것이다.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리라."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가다가 쓰러지는 일이 없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이 찬송을 부르며 주께 나아가라. 어떠한 영혼이든,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든, 이 찬송의 자세를 지니지 않으면 그는 은혜에서 떨어져 위험에 처한다.
"내 모습 이대로 아무 핑계 없이 주께로 나아갑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주께서 나를 오라 하시니, 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내가 나아갑니다."
2부 진정한 쉼
성경적 쉼은 무엇인가?"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성경이 말하는 쉼이란 활동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많은 활동을 해도 전혀 피곤치 않은 그러한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쉼', '기쁨', '평강'은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개념과 다르다. 우리의 상식을 초월해 하나님께서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유머'를 놓치게 된다.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운 사건은 '인자'이신 하나님께서 겪으신 사건이다. 배에서 주무시는 '인자'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한 분이시다. 그분은 이미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광풍이 일어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공포와 불안에 빠졌다. 난리 가운데 그들은 공포에 떨며 예수님을 깨운다. 주님은 잠들어 계신다. 배의 조정키가 주님의 손에 있지 않다. 제자들은 죽을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이 위기 가운데서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굳은 확신을 소유하기를 기대하신다. 사실상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나 상황으로 하나님께 염려를 끼쳐드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단 한 가지를 기대하신다. 그 기대는 바로 위기 가운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면서, 주님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 조금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37:14). 우리는 믿음을 갖고 꾸준하게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있는 법을 배우고 있는가, 아니면 쓸모없는 기도로 하나님께 염려를 끼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어느 지점까지는 하나님을 잘 신뢰하다가 갑자기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내 힘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라고 하며 주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때는 하나님의 최선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주의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기를 기대하신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마치 대장이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싸우는 용사들을 찾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끝까지 주님을 믿는 자들을 찾으신다.
별들은 야단법석을 떨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일을 수행한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소동함이 없이 주의 사역을 이루신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조용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야 한다. 정신없이 급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만 일으킨다. 그러나 일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주님과 한마음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상하고 멍들고 어그러진 심령들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은 눈앞의 풍랑 앞에서 공포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과 한마음이 되어 완벽한 평강을 누리는 자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주의 일을 하신다.
거룩케 된 성도는 자신과 자신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로부터 자유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해 선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모방을 경계하라. 사람들은 영적 실체를 모방하려고 한다. '주님 안에서의 안식'은 종교적인 '감상'이나 '게으름'으로 모방될 수 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아버지와의 하나됨이 바로 우리가 성화를 통해 이르게 될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이라고 말한다. 그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무한한 기쁨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나기를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자.
버려진 소망 가운데 충성하기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충성되게 섬기는 것은 성도의 삶에서 최고의 시험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충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충성의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세대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멍에 외에 다른 멍에에 대해 분개하고 있는가? 실망은 자기중심에서 발생한다. 실망은 '허상에서 깨어난 자기중심'이다. 자신이 원하는 허상이 사라짐으로써 고통을 당하는 것이 실망이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사 42:4). 주님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신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와 고통과 죄가 왕성한 현실을 보면 하나님은 전혀 힘이 없어 보인다. 이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언제나 시험을 이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연단된 믿음만이 하나님 앞에서 그 믿음의 부요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는 고백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공평하시며 거룩하시고 참되시다." 그러나 자신이 믿는다고 말했던 바와 뚜렷하게 상충되는 현실을 맞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상식과 충돌된다. 이때 당신은 결국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겠는가?
지식이나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지금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이러한 사람들은 정신병자가 되든지 아니면 직면한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같은 이단은 실제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이나 죄나 고통은 허상이라고, 그러한 문제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활짝 열어 이러한 고통들을 보라고 하신다. 사탄과 고통과 죄는 실제로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방과 책임을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실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라.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진 생명에 진실되게 서라. 그렇게 하면 지적으로는 답변을 얻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될 것이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믿음을 보고 그들이 생각할 수도 없었던 해답이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내가 곧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원리적으로 볼 때 고통이란 죄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인 해답이 실제 죄의 현실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자기가 믿는 신조나 교리에 충성하거나 예수님보다 자신의 체험을 의지함으로써 죄를 해결해보려 하지만, 이러한 것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경은 죄에 대한 문제는 지적인 원리가 아니라 전인격적인 결정에 의해 해결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즉,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죄에 대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와 사탄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반대되는 일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여전히 하나님께 진실한 주의 자녀가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도덕적 또는 영적 공황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산상수훈의 단 한 가지 메시지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멀리하고 대신 주님을 위한 '일'에 자신을 헌신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성도들은 사탄에 의해 패배하기보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의무 때문에 너무나 바빠서 패배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패배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끼리 친교하는 것에 너무 바빠 주님과의 교제를 가질 시간이 없다. 결국 자기들끼리 은둔처를 만들고 그곳에 거한다. 어느새 그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회 속에서 흠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어간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그리스도께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육신의 삶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 만일 사람에게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단 1초라도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같이 빛 가운데 행하지 않는다면 그 즉시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분별력을 잃게 되면서 '애착'에 사로잡히게 된다. 당신의 모든 감정적 애착을 지금 시험해보라. 그 애착이 끝까지 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만일 그 끝이 잘못된 것이라면 지금 당장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오려는 애착의 목덜미를 붙잡으라. 당신의 생명을 걸고 그 애착이 당신의 관심조차 얻지 못하도록 하라.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절대 타협하지 말라. 만일 타협하면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불충성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계속 충성하고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라.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3-28).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은 영원하다.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영생은 바로 예수님께서 사셨던 생명이며 이 영생은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고통과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이다. 다른 영혼이 거듭나기를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에게 영생이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사실 이 기도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것을 구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기도 응답을 기다리게 하신다. 성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따라서 어떤 특별한 영역에서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주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 안다면 절대로 당황하거나 혼돈 가운데 빠질 수 없다. 믿음이나 고난은 논리적이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영역은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생명의 영역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할 때 동료 그리스도인들 중에 방해하는 자들이 있다. "너무 어리석게 굴지 마. 인간의 속성을 너무 자제하려고 하지 마. 너라고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 이러한 음성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음성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주의 백성들을 섬겨야 한다. 이러한 주님을 향한 충성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십자가에 못 박겠노라고 단호하게 결단하라. 만일 우리가 어두움과 우울함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성도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것은, 믿음 없이 행하던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3부 영적 성장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