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

밥 소르기 지음 | 스텝스톤
밥 소르기 지음

스텝스톤 / 2009년 2월 / 308쪽 / 12,000원

1부 위험한 초대를 받아들이라



결정의 비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가? 그렇다면 은밀한 곳으로 달려가라! 당신이 무엇을 결정했든지 하나님은 그 결정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리고 당신이 그 결정을 어떻게 내렸는지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갈림길 앞에 선 당신은 옳은 길을 선택했으나 마음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졌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분과 친밀함을 누리는 가운데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실 때마다 은밀한 곳으로 가셨다. 그분의 모습은 우리에게 본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가룟 유다를 선택하실 때도 기도하셨다. 사실 유다를 택하실 때는 특별히 더 기도하셨다. 장차 유다가 자신을 처참한 파멸과 고통으로 몰고 갈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기에, 그분은 홀로 밤이 새도록 온 힘을 다해 기도하셨다. '아바' 아버지는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며, 당신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함께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시32:8-9).

내가 생각하기에 이 말씀의 핵심은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구절이다. 말이나 노새에게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주인 곁에 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너와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너를 인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억지로 관심을 내게 돌려, 너를 제자리에 세우고 입에 재갈을 물려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싶지 않다. 그저 네가 가까이 오기를 바랄 뿐이란다.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오렴. 친밀함과 교제의 장소에서 너를 인도하고 싶구나." 이 시편 말씀을 다시 읽어 보자. 말과 노새를 가리켜 무지하다고 말하는 부분에 주목하라. 말과 노새는 무지하다. 그래서 쉽사리 주인 곁으로 오지 않는다. 주인에게 가까이 가면, 상상할 수도 없는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계속 주인에게서 벗어나 자기 길로 가려 한다. 그런 점 때문에 노새는 무익할 뿐 아니라 쓸모도 없다. 꼭 노새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통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쭙잖은 독립심으로 생명과 양육의 근원을 멀리한다. 머리의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하나님 바로 옆이 온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지각의 증거라고 분명히 기록한다(시 14:2). 하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전심으로 구하는 일이야말로 이 땅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친밀함을 구할 때, 우리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비밀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친밀함 가운데 당신을 그분의 눈으로 인도하시며, 그분의 마음으로 당신 마음의 길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종종 환경과 상황을 따져 보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는 대신, 위를 올려다보고 방향을 결정하기를 바라신다. 또한 우리가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광대함과 영광을 누리길 바라신다. 그분은 눈빛 하나로도 우리의 인생길을 훤히 인도하신다. 눈빛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지! 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그분의 입술을 바라보라. 가야 할 길을 일러 주실 때까지 그분의 눈을 바라보라. 외부 데이터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사회의 온도계'이다. 이들은 운명을 결정하는 자연적 요소들을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와 반대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것을 근거로 삼는 사람은 '사회의 온도 조절기'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의제들을 이 땅에서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거침없이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가며,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통찰력보다는 친밀함이 먼저다. 목적보다는 열정이 우선한다. 은밀한 곳에 먼저 들어가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분은 단순히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택했는지에만 신경 쓰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느끼고 누리고 싶어 하신다. 혹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자마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면서도, 정작 말씀하신 그분을 흙먼지 속에 버려두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우리가 그분 뜻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 가까이에 다가가 그분을 더 알아 가길 가장 바라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걷고 싶어 하신다.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행동이다. 이일은 또한 당신의 가장 높은 목적을 찾게 해줄 열쇠다. 그러니 지금은 이 책을 내려놓으라. 아직은 다음 장을 읽을 때가 아니다. 잠시 멈추고, 당신의 친구 되신 그분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라.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기라!



2부 행동으로 옮기라



방사선 요법의 비밀


우리는 모두 죄와 이기려고 씨름한다. 성경은 이 씨름을 "죄와 싸우되"(히 12:4)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더 힘들게 싸우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세상적인 삶의 방식' 때문에 죄가 깊게 뿌리박혔기 때문이다. 싸움의 강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죄악 된 삶의 방식을 떨쳐 버리고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습관적인 죄를 이기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회개하고 옛 습관을 타파하고, 하나님께 동의하는 기도를 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자기부인을 하는 등 믿음의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는 습관적인 죄를 이기는 비밀 중에서도 간과하기 쉬운 사항을 집중 조명하려 한다. 나는 이 비밀을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의 방사선에 나를 노출하기'라고 부른다. 죄는 암과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그 암을 치유하려고 쬐어주는 방사선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에 잠기고 그 사랑에 젖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더 많은 능력이 생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곁으로 가까이 갈 때만 변할 수 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장소가 곧 변화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면 언제나 영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분 가까이에 가면 언제나 영적으로 진보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승리의 근원이다. 그러나 정죄의 목소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에서 우리를 멀리 떼어 놓으려 한다. 반면 죄를 깨닫게 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구하게 한다.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는지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지를 보면, 그 목소리가 과연 죄를 깨닫게 하는 소리인지 정죄하는 소리인지 분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인간은 죽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율법서를 보면, 거룩 자체이신 하나님 가까이 갈 때마다 자신들의 파렴치한 반역과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백성의 절망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옛 언약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선을 넘으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광야에서 목숨을 잃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민 17:12-13)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님도 이 문제를 잘 알고 계셨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 33:3)

신명기 5장 25-27절을 보라. 하나님 가까이 가면 목숨을 잃으리란 사실을 잘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 달라고 모세에게 부탁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듣고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신 5:2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백성의 말에 동의하셨고,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셨다. 이스라엘 백성 또한 살아남고자 하나님과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거리 때문에 그들은 죄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 더 거리를 두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절망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했다. 유일한 해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었다. 죄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변화시킬 영광 앞에 순종하며 설 수 있게 되었다. 이 영광에 순복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상으로 바뀐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우리에게 연약함과 죄가 있음에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특권인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 영광스런 변화와 환희의 친밀함이 기다리는 놀라운 장소를 무시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임재 가운데로 들이시려고, 문자 그대로 자신을 죽이셨다.



주의 임재 안에 들어갈 때, 우리는 강력한 외부 세력에 노출된다. 그분의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빛나는 영광을 만질 때, 우리 안의 모든 것이 변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와 같다(시 84:11). 태양은 열기와 빛, 에너지, 자외선, 즉 방사선을 뿜어낸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태양 속으로 들어가면, 그분이 내뿜으시는 영광의 방사선이 우리의 죄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여 포기하다시피 했던, 암세포 같은 죄 말이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를 늘 괴롭히던 만성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요법이다.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강렬한 햇빛에 화상을 입는 사람들은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자신이 과도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방사선의 영향은 언제나 나중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시간을 보내도, 처음에는 '달라지는 게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진리를 믿고 시간을 쏟아 부으며 주님의 임재 안에서 자신을 내어드리면, 주님과 함께한 이 시간의 효과가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나는 이 진리를 직접 체험했다. 그러니 당신도 이 말을 듣고 믿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 당신 안에도 분명히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임재 안에 오랜 시간 머물 때, 영혼의 분자 구성이 달라진다. 즉,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의 방식이 달라진다. 이전과는 다른 곳에 열정과 관심을 쏟게 된다. 하나님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속사람을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당신 영혼의 발목을 잡았으나, 이제는 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보낸 많은 시간,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 마시며 보낸 시간이 바로 은밀한 곳의 비밀이다.



하나님께 매료됨의 비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분은 당신을 어떻게 보실까? 이 질문의 답은 은밀한 곳에서의 성패를 가른다. 이 점을 잘 아는 사탄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왜곡한다. 그분을 엄하고 냉정하고 너무 요구하고 당신이 하는 일마다 불만을 품고 당신에게 실망하고, 당신의 느려터진 영적 성장 속도를 답답해하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생각은 모두 틀렸다. 이 왜곡된 인식은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한다.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다 지쳐, 경배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는 일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지만, 당신이 말씀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한다면, 정말 큰 힘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웃고 계시며, 당신과 함께하고 친밀해지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마음에 품으면, 당신은 정말 하나님께 매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변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하나님의 관점에서부터 시작하자.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을, 영생의 보좌 앞에 서 계신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5:6)고 표현한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로 오늘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신다. 갈보리의 참혹함과 그리스도 보혈의 강력한 속죄의 역사는 하나님의 눈동자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들의 십자가에 대한 하나님의 끝없는 열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위대한 사랑의 표현을 믿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끝없는 열정과 기쁨이 흘러넘친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당신도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이제 당신은 자동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한 가족이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매료되셨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그분의 임재 안으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얼굴을 들고 기대에 찬 눈으로 기쁨의 미소를 짓고 열망의 목소리를 내며, 불타는 마음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설령 당신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동행을 여전히 기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약함을 잘 아신다. 그래도 변함없이 당신을 자녀로 맞으신다. 당신이 실패하여 넘어져도 여전히 기뻐해 주신다. 오히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여 주님의 품을 향하는 모습을 사랑스러워하신다. 얼마나 큰 위로인지! 주님은 성숙의 정도와 상관없이 우리 존재 자체를 기뻐하신다. 다음 말씀을 읽으라. 사랑하는 주님은 우리를 이런 마음으로 보신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시 45:11).



신랑 되신 주님은 그분과 연합하려고 모든 것을 버린 신부인 우리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신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아찔할 만큼 아름답다!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그분의 것으로 삼고 품에 안기 바라신다. 은밀한 곳은 당신을 아름답게 보며 사랑하는 왕이 머무는 침실이다. 은밀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곧 왕의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당신은 그곳에 왕이 있기를 고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왕도 당신이 그곳에 있기를 고대한다! 이 사실을 '매력의 비밀'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주님이 우리에게 매료되셨다는 비밀 말이다. 이 사실을 알면, 주님의 침실을 계속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스런 임재에 들어갈 때,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한다(고후 3:18)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어 갈 때,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 신부가 자신을 "거룩한 옷"(시 110:3)으로 치장할 때, 상사병에 걸린 신랑의 사랑은 더욱 강렬해진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이 친밀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은밀한 곳에서 속사람은 더 아름답게 변한다(벧전 3:4).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는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아 8:6)라고 부르짖는다. 즉 신부는 사랑하는 자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내 생명을 당신의 생명과 묶어 주세요. 당신의 가장 큰 사랑이 내게 고정되게 해주세요. 저를 당신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주세요. 당신이 무엇을 느끼든 함께하고 싶습니다. 모든 열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사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