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위하여 예언을 사모하라
래리 랜돌프 지음 | 예수전도단
하나님을 위하여 예언을 사모하라
래리 랜돌프 지음
예수전도단 / 2009년 2월 / 239쪽 / 9,000원
1부 예언에 관한 성경적 근거 세우기
영적 유산 아버지는 그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조그만 시골 교회 목사였다. 그분의 정확한 느낌은 손금을 보며 미래를 점치는 능력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에게 비밀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가 속해 있던 교파에서는 이런 현상을 '예언의 영'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런 은사를 '지식의 영'이라고 했다(고전 12:8). 아버지는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적 소통에 열려 있었다. 아버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필요할 때면 그 은사를 발휘하셨다. 일상적인 일을 인도하시는 내적 음성에 늘 귀를 기울이셨다.
어린아이가 예언적 환경에서 성장한다는 건 두렵기도 하고 부담스런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릴 적 생활했던 알칸사의 푸른 하늘빛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자연적인 은사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부터 경건한 사람들을 쭉 보아 왔기 때문인 듯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은사를 활용하는 건 우리 가족의 일상적인 생활 방식이었다. 우리 집 조그만 거실에 둘러앉아 기적적인 사건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많다. 나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1900년 초에 예언사역을 했던 큰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굽은 사람들이 치유되었던 사건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때론 아버지가 끼어들어 꿈에서 받은 경고 덕에 목숨을 건진 일을 이야기해 주시기도 했다. 돌아가실 뻔했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기도로 나았다는 이야기나 치유, 꿈, 환상, 예언적 징조 등에 관한 간증을 듣다 보면 하나님을 향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영적인 깨달음으로 가득했던 그때,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완전히 압도되었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무 말도 못한 채, 평범한 사람들의 믿음에 응답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떠올리며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후 소년은 경건한 믿음의 조상들이 물려준 위대한 영적 유산을 받으며 자랐다.
뉴욕에서 일어난 일1977년, 뉴욕의 라가디아 공항에 도착한 나는 지난 몇십 년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나의 부르심이 예언사역임을 확신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의 백성을 유익하게 하는 방법으로 부르심을 성취하고자 했다. 공항 터미널 안에 북적거리는 낯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착잡했다. 믿기는 어려웠지만, 꿈에서 받은 말씀에 순종하려고 무작정 고향을 떠나 1,600km나 떨어진 곳으로 날아왔다. 혹시 내가 정신이 나간 건 아닌가? 주님 뜻을 제대로 따르고 있기는 한 건가? 하지만 세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첫째, 그달 초에 꿈속에서 뉴욕을 다녀오라는 예언적인 말씀을 받았다. 그런데 하얀색 최신 자동차를 본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정보도 없었다. 둘째, 비록 돈 한 푼 없고 겁에 질리고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서 멀리 떠나오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적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어 무조건 순종하기로 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만 의지하여 그곳 낯선 땅에 서 있었다. 택시를 부르려고 공중전화를 집어 든 순간, 마음속에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물론 위대한 믿음이고 멋진 순종이야. 그런데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
뉴욕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완전히 혼자였고, 머물 곳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왕복 비행기 표를 끊느라 이미 가진 돈 100달러를 거의 다 써 버린 상태였다. 하나님이 남은 돈을 세 배로 불려 주신다 하더라도, 사흘 동안 치러야 할 호텔비와 식비를 내기에는 턱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걱정은 되었지만 어깨를 활짝 펴고서 믿음의 발걸음을 한껏 내디뎠다. 그리고 담대하게 택시 타는 곳으로 가서 운전사에게 롱아일랜드의 스토니브룩으로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아무 호텔이나 잡고서, 남은 돈을 첫날 숙박비로 냈다. 몇 푼 안 남은 돈을 들고, 터덜터덜 호텔 찻집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상황을 곰곰이 따져 보았다. 그러자 문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더니 확신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하필 하나님은 내게 이런 일을 요구하신 걸까? 이제 숙박비도 없고 공항 갈 차비도 없는데 하나님은 관심도 없으신가?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나님을 놓쳐 버린 건 아닐까? 나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데,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시는 걸 느꼈다. 왠지 모르게 카페 뒤쪽 탁자에 앉아 있는 남성에게 시선이 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간절히 원하는 게 있는 것처럼 식사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저 사람 왜 저러지? 나한테 뭐 바라는 게 있나? 근데 왜 저 사람이 참 안됐다는 마음이 드는 걸까?' 그런데 그 순간, 고향을 떠난 후 처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는 지금 자살 직전이니 그의 옆자리로 가서 앉으라는 말씀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 돈도 없이 뉴욕까지 왔는데 여기서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잖아요! 제가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원하신다면, 저 사람이 저에게 오게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일어나 커피 값을 계산하러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오른쪽 어깨를 톡톡 쳤다. 처음에는 성급한 손님 하나가 나더러 빨리 계산하라고 재촉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례합니다만, 사역자이신가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나를 부르는지 궁금해서 뒤돌아보는 순간 아연실색했다. 그 남자가 간곡히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대체 내가 사역자인 줄 어떻게 안 거지?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요? 이 사람을 도우라고 저를 뉴욕으로 보내신 건가요?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그 남자를 따라 자리로 돌아왔고,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였다. 리처드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미사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신 줄은 믿었지만,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잘 몰랐다. 일 년 전만 해도 좋은 차,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살았고, 합자회사를 운영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는 듯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리처드가 약 8개월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아내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혼을 준비해 왔다. 리처드는 집을 나와야 했고 아이들과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사업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소망을 잃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리처드는 이혼하면서 겪은 아픔을 이야기하고 나서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했다. 우리가 만나기 이틀 전에 일 때문에 고향 위스콘신을 떠나 뉴욕으로 왔다. 마음속으로는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했다. 일단 여행을 끝내면 자동차 사물함에 숨겨 둔 총으로 자살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뉴욕으로 오는 길에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 있었다. 어쩌다가 라디오를 틀었는데 기독교 방송에서 R. W. 샴바흐 목사의 구원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리처드는 기도를 했다. "주님이 정말 여기 계신다면, 나를 생각해 주시는 분이라면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특별한 요청을 했다. 머뭇거리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나님, 제가 뉴욕에 있는 동안 저와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를 보내 주신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리처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계속 말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찾은 겁니다. 이분은 사역자구나, 나를 도와줄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맞죠?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시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믿음으로 입술을 열었다. 하나님이 적절한 말씀을 주시리라 믿었다. "제가 왜 여기 있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도움을 주려고 온갖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우리를 여기서 만나게 하기 위해서라면 하늘과 땅이라도 움직일 분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별 볼 일 없는 시골 목사를 영문도 모른 채 알칸사스에서 이곳까지 오게 하셔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제발, 목숨을 끊지 마세요!' 하고 말하게 하실 만큼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라는 걸 믿으시겠습니까?"
계속 눈물을 흘리던 리처드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제 방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단숨에 대답했다. "물론이죠!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성령으로 채우길 원하십니다." 리처드는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했다. 그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절망에서 빠져나와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 만남은 하나님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준비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났다. 리처드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간절한 부르짖음에 황급히 응답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도움을 얻은 것이다.
갈급한 리처드의 영혼을 만나 주신 하나님은 나의 상황도 바꿔 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공급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 리처드에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랐고, 이제 새롭게 거듭난 리처드는 나의 필요를 채워 주고 싶어했다. 그는 내 숙박비와 식비를 모두 지불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또 다른 축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처드가 나를 공항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의 차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하얀 최신 자동차였다. 이 차 안에서 간절히 부르짖었던 그의 기도가 초자연적으로 내 삶에 개입해 나를 이 먼 곳까지 오게 했던 것이다.
리처드를 마지막으로 본 건 1977년 가을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를 떠올리며 그때 경험한 교훈을 되새긴다. 예언의 유익을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영적인 사역을 완수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능력이 꼭 필요하다. 리처드의 삶에 일어난 그 사건은 복음 전도가 예언사역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또 음성에 순종할 힘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예언의 말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더욱 큰 영적 성숙의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적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리처드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감사한 점은 경건한 가족에게서 받은 영적 유산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성경구절을 암송하라고 격려하시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곧 예언의 은사를 훈련하는 살아 있는 교재요, 학습서라는 점을 배웠다. 교회 안에서 예언의 목적과 기능을 이해하고, 성경적 통찰을 얻고자 꾸준히 영적 은사를 키워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깨달음 덕분이었다.
2부 교회 안에서의 예언의 목적과 위치예언의 기름부음을 받는 일과 예언하는 목적을 세우는 일은 서로 다르다. 강이 흐르려면 물길을 잡아주는 강둑이 있어야 하듯이 예언의 엄청난 힘을 흘려보내려면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성숙한 예언자에게는 예언의 초점과 목적이 동일하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 14:3).
예언의 기본적인 목적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바울은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고 가르친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절에서는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권한다. 또 에베소서 4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고" 자라난다고 가르친다. 이 말씀들을 볼 때 믿는 자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지체들을 격려하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먼저 덕을 세운다는 성경적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스어 '오이카도메'(oikadome)는 '덕을 끼치다'(edification)로 번역되었는데, 때로는 '세우다'(building)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덕을 끼치는 것과 세우는 것은 서로 바꿀 수 있는 단어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서 유대인들이 성전을 세우는 일을 언급할 때도 '오이카도메'가 사용되었다. 또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oikadome)"(벧전 2:5) 성도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서, 예언적 기능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덕을 세우는 사역의 활성화를 위해 자기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나는 사역 초기에, 덕을 세우고 격려하는 예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예언사역을 하기 전에 묵상을 하는데, 하나님이 평소처럼 내게 말씀하셨다. 그 세밀한 음성은 내 존재를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격려의 사역이란다. 소망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내 사랑을 확증해 주어야 한다. 기사와 이적과 치유와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격려라는 위대한 사명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들이지." 그리고 계속 말씀하셨다. "격려는 예수의 사역을 강력하게 밀어 준 힘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최우선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저주하기보다는 축복하고, 무너진 곳을 세우고, 언제나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네 은사를 사용하도록 하여라."
수년 전에 들은 말씀이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이 새겨 있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이유 없이 책망하고픈 유혹을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야고보서의 말씀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 또한 사 40:2와 롬 2:4을 참조하라.
심화된 예언권면과 위로는 교회를 격려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예언의 초보자라도 시도할 수 있는 예언의 영역이다. 하지만 예언의 은사를 좀 더 개발한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심화된 단계도 있다. 바로 죄의 자각과 회개로 이끄는 예언, 지시의 예언, 미래 예고, 은사의 전수이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전 14:24-25). 이처럼 죄를 자각하게 하는 예언은 그리스도인들의 손 안에서 더 강력한 수단이 된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목할 점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임 장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경에 나오는 예와는 반대로 적용하는 편이 적절할 듯하다. 불신자들이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우리가 먼저 그들을 찾아갈 수 있다. 예언으로 그들의 숨겨진 죄를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지시의 예언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예언을 받아들이면 엄청난 유익이 있다. 성경에는 예언을 받아들인 사람이 죽을 뻔하다가 목숨을 구하고, 무기력했던 사람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고, 민족이 속박에서 벗어나고, 나라를 정복하거나 큰 전쟁에서 승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도 했다. 어떤 성경인물은 누구와 결혼하고 무슨 말을 하며 어디로 갈 것인지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도 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심판에 관한 예언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빌립은 가사라는 광야로 내려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성경에 나타난 지시적 예언의 예를 보면서, 이러한 일들은 성경인물에게나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문제에서 하나님의 지시적 예언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