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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 없는 삶

조이스 마이어 지음 | 토기장이
다툼 없는 삶

조이스 마이어 지음

토기장이 / 2008년 12월 / 292쪽 / 11,000원




1부 다툼의 징후 파악하기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인생과 관계들에 혼돈을 일으켰고 함께 잘 지내기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늘 무엇인가와 혹은 누군가와 갈등을 빚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듭나고, 성령 세례를 받았으며, 전임사역을 소명으로 삼았지만 나는 여전히 깊은 상처를 입고 화를 잔뜩 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걸핏하면 폭력이 오가고 분노에 찬 가정에서 성장한 나의 유년시절은 온통 두려움과 당혹감과 수치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줄곧 나를 성적으로, 물리적으로, 언어로, 감정적으로 학대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하는 일을 겉으로라도 좋아하기를 강요했고, 다른 식구들과 나를 지배하기 위해 분노와 협박을 일삼았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가출했고, 얼마 되지 않아 내게 난생 처음으로 관심을 보여준 청년과 결혼했다. 그러나 첫 남편은 협잡꾼, 도둑에다 허구한 날 놀고먹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겨우 10달러와 소다 한 상자만 남긴 채 나를 버리고 가버렸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격렬한 분노도 인정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증오를 불태웠다.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골을 냈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다른 누구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데이브와 결혼한 후, 나는 내 인생에 개입된 사람들과 환경을 통제하는 일들을 계속했다.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깊이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애썼다. 물론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다. 나의 모든 관계들은 매끄럽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그토록 노력해도 왜 사역이 성장하지 않고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주님은 내 인생에서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말씀과 평강에 관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들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 삶에 그 평강이 깃들기를 원했고, 성령님은 내 문제들의 원인이 다툼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이후로 나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서는 법을 배워나갔다. 지금 나는 '다툼'을 내가 직면해서 다루지 않으면 파멸을 불러올 위험한 적으로 여기고 있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툼으로 인한 폐해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지닌 문제들의 근본 원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들이나 사탄에게 잘못을 돌리고, 갈등과 다툼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로 인해 다툼을 막지 못하고 은연중에 갈등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늘 의아해하면서 말이다.

다툼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다툼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툼'strife의 사전적 정의는 '싸움, 격렬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갈등, 지독한 의견충돌, 다른 사람과의 분쟁'이다. 다툼을 설명하는 다른 말들에는 '불화, 경쟁, 논쟁' 등이 있다. 소소한 일로 말다툼하는 것, 심한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 화를 꾹꾹 누르며 속을 끓이는 것 모두 나는 '다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다툼과 분쟁(실제로 이 둘은 같은 것이다)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다른 많은 문제들의 근원을 다툼으로 보고 있다. 야고보 사도는 "시기(질투)와 다툼(경쟁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불안, 불화, 반항)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6)고 썼다. 또 히브리서 12장 14-15절에서 우리는 다음 말씀을 읽는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절대)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넘치는 호의와 영적인 축복)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서로 돌아보고) 또 쓴뿌리(원한, 비통 또는 증오)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교만(또는 방어적인 태도), 비통함, 증오심, 판단과 비판, 속임수와 거짓말, 분노, 반항, 불안, 두려움과 부정적인 태도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우리는 다툼에 문을 열고 파괴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다툼은 매우 옮기 쉬운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다툼에 물들고 오염되고 만다. 그래서 이후로 데이브와 나는 다툼이 우리 집안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우리 부부는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안들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거나 같은 관점을 갖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사이에 교만이나 원한, 비통함, 시기심, 분노가 들어오지 않게 주의하면서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 차분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왔다. 우리의 관계에 다툼의 징후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면 즉시 그것들에 맞서고 우리 사이에 평안을 회복시켰다.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니까



수년간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왔기에,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기 위해 내가 항상 옳아야 했다. 그래서 툭하면 논쟁을 벌이고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극단으로 치달았다. 누군가는 항상 내게 이의를 제기했고, 나는 그때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삶이 늘 피곤했고 내 마음은 항상 긴장되었다. 왜 나는 늘 내 말이 맞아야 했을까? 돌아보면 그것은 나의 교만과 관련된 일이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멋지고 똑똑하고 우러러 보이는 것을 몹시 원한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라고 말하는 오바댜 3절의 말씀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교만은 우리를 기만하고, 실제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때에도 맞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교만은 우리를 승리로 이끌 수 없다. 기꺼이 스스로 낮아지지 않는 한, 평안에 대한 소망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만이 우리를 패망으로 이끈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지금 나는 평안한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지만 그전에 나의 교만을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 배움의 고통을 견뎌내야 했고 논쟁을 그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잘못된 말은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기름을 퍼부을수록 불은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다. 타오르는 불길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연료를 제거하는 것이다. 의견충돌과 논쟁을 멈추거나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욕하고 감정을 상하게 했을 때 우리는 교만에 상처를 입고 그에 따른 반응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그 모욕을 무시하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게 더 지혜로운 일이다. 자기가 맞고 다른 모든 사람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3-24절에서 그러한 대화에 관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어리석고 무식한(잘 모르는, 교훈이 되지 않는, 우둔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교만으로 인해 너무도 자주 우리는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교만한 마음은 조용히 있기를 거부한다. 교만은 자신이 말할 권리, 결정할 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내 방식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언제나 선수였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이 영역에서 나의 죄를 깨닫게 해주신 덕분에, 나는 현재 한창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 되면 입을 다무는 법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가 옳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교만을 내세우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은 데이브와 나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하신다. "내 생각이 맞지만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 간단한 겸손의 행동을 한 덕분에 지난 수년간 우리 부부가 얼마나 많은 논쟁들을 피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꼭 말을 해야 하는 경우 나는 감정보다는 지혜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기 위해 어떤 단어들을 쓸 것인지 주의 깊게 고른다. 목소리 톤과 몸짓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어디에?



하나님은 서로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일치를 구하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데이브와 내가 주중에 내내 싸웠을 경우,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해 아무리 함께 손잡고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치를 구하는 기도는 오직 '마음을 같이하고 화합하는' 사람들이 드릴 때 효력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의 삶에, 가정에, 사역에 다툼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라. 흠 없이 살고 무슨 일을 하든 탁월하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화평을 위해 일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화평한 마음에 심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또한 성경은 씨앗이 뿌려진 후에 사탄이 말씀을 훔쳐가기 위해 즉시 온다는 사실도 가르쳐준다. 다툼은 영적 능력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또한 가로막는다. 많은 사람들이 번영과 성공에 관한 책을 읽는다.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배우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왜 번영이 어떤 사람들은 피해 다니는지 성경이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확실히 번영은 우리 가족을 피해 다녔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온갖 올바른 지식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헌금하고 고백하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여전히 다툼 속에서 살았고 그것이 우리가 받을 축복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툼은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소멸시킨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일들 가운데 하나가 '하나됨'인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며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많은 이들이 빈번하게 '왜 하나님의 약속들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궁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단순히 '요구'하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약속들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와 '자녀 관계'에 들어갈 때 비로소 상속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롬 8:14-15)이다.

목사님이 저처럼 행동하면 안 되죠



오래 전에 데이브와 나는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생긴 지 몇 달 안 되는 은사주의 교회에 출석했다. 회중은 빠르게 성장해 출석 교인의 수가 이미 400명 이상에 이르렀다. 성령의 은사가 분명히 나타났고, 하나님의 기름부으심과 새로운 계시가 사람들에게 흘러들었다. 모든 게 순리대로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 그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툼이 들어온 것이다! 사탄은 탁월한 전략가이다. 그는 신자들이 서로에게 화를 내게 만들려고 무진 애를 쓴다. 성령님께서 오직 평온한 환경에서만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이 교회 안에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래서 그는 계획을 세우고 오랜 시간 동안의 물밑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선호하는 두 가지 전략을 살펴보자면, 첫째, 사람들을 자신 없게 만들어 별 것 아닌 일을 중대한 공격으로 전환시킨다. 목사님이 생각에 골몰하여 인사하는 성도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때, 과민반응을 일으켜 교회 전체에 교만한 목사님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등의 일이 그 예이다. 둘째, 사역이 커지기 전에 그 싹을 잘라버린다.

2부 어그러진 관계 치유하기



당신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아브람은 다툼에 휩쓸리지 않고 롯과 화함을 유지하기 위해 땅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순종의 씨앗은 자라나 아브람은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강력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첫째, 자신만의 유익을 추구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배제시킬 때 우리는 비참하게 실패하고 더 많은 문제와 다툼을 만들어내기 쉽다. 둘째,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복을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이다. 그분의 신실하심이 드러날 것이다.

오랜 세월 나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챙기려고 애쓰며 본색을 숨겼다. 세상에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챙기려는 노력이 단지 나의 관계들과 삶에 문제를 더할 뿐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야고보서는 다툼이 어떻게 이기적인 자기 돌봄을 통해 들어오는지 보여준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1-2).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발휘할 때 그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더 많은 약속들이 드러난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용할 때 자라나고 개발된다. 우리의 삶에는 초자연적인 결과들이 필요하다. 그 결과들을 얻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신뢰할 때 다툼이 초래된다. 반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 자신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평화가 찾아든다.

스스로와 친구가 되라



약점들이 좀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지 말라. 그분의 강함은 우리의 약함 속에서 온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없애려고 애쓰며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대신에 당신 자신을 예수님께 드려라. 당신에게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분의 한없는 능력에서 힘을 끌어오라. 거기에 당신의 행동을 더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디로 돌아서는지만 알면 된다. 수년 동안 나는 나의 결점들과 싸우며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님은 내가 계속해서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 기댈 때 내 삶은 승리의 연속이 될 것임을 보여주셨다.

당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나 의견 때문에 스스로와 불화한 적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관련해 바울이 뭐라고 말했는지 보라. "(개인적으로 나에 대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고전 4:3). 일부 사람들이 바울의 신실함에 대해 판단하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쓰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주님)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 14:4). 과거에 나는 수없이 이 구절들을 들여다보며 나를 자기판단과 비판으로부터 건져주시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젖어들었다.

나 자신과 불화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왜냐하면 그렇지 않는 한, 문제없는 관계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이 나라의 원리는 하나의 진행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가 희락을 원한다면 평강해야 하고,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의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의란 단지 의의 고백이 아니라 의의 기능적 실체를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진리를 말하면 말할수록 그 의의 실체는 우리 안에서 더욱 강하게 자라난다 그러니 스스로 해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다툼 없는 관계로 인도하는 그 은혜로운 평강 안으로 들어오라. 참된 평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의는 영혼 안에서 진리로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가 그의 거짓말로 우리로부터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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