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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기도

잰 존슨 지음 | CUP
경청기도

잰 존슨 지음

CUP / 2008년 10월 / 296쪽 / 12,000원




제1부 경청기도의 뿌리는 성경이다



기도가 통하지 않을 때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애쓰던 옛날 같았으면 나는 노숙자 자원봉사를 오래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 그들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을 것이고, 그 요구가 '통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탈진했을 것이다. 상냥하게 꾹 참음으로 나는 불량한 말투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친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의 고약한 행동을 내 실패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리하여 진즉 봉사를 그만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법을 배우자 그런 사람들을 일 중심적으로 대하던 내 태도가 변했다. 하나님을 경청하는 생활방식을 취하면서 나는 내면에 새로운 안식을 느꼈고, 내가 여기 온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는 인식이 싹텄다. 결과는 천지차이였다. 나는 당장 '열매'가 없어도 끝까지 충성하는 헌신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마침내 기도 응답의 '비결'을 찾았다는 말은 아니다. 천만의 말이다. 사실 그것은 이제 문제가 못된다. 이제 나의 관심사는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따르는 훈련이다. 내 영적 삶의 관건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 점점 커지는 반면 나와 내 인위적인 노력은 점점 작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단순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의 생각과 마음을 느낀다.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내 역할을 느끼며 하나님의 심정으로 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신다. 느리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우리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다. 하나님께 열린 자세와 그로 인한 마음의 변화는 여태 요원해 보였던 거룩함, 긍휼, 용기를 다져다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내 안에 형성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보게 된다.

경청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사람 안에 일하셔서 우리의 궁극적 동인인 마음의 태도를 변화시키실 시간과 재량을 드리는 훈련 중 하나다. 변화된 마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낼 수밖에 없다. 속사람을 무시한 채 외적 행동에 치중하면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경건한 열망과 종교 기관에 뿌리를 두고도 하나님께 심령이 마비된 사람을 낳는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독실한 자 중에 독실한 자, 종교적 보수주의자, 성경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자기의의 껍질을 깨뜨리고자 그들을 질책하셨다.

그렇다면 영성 계발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오늘날 교계 일부 진영은 심령을 다시 빚는 과정을 거의 모르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는 올바른 교리를 수호하거나 하나님을 문제 해결사로 이용하는 데 더 관심을 쏟아왔다. 우리는 제자도의 전체 그림(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자라가는 것)을 잃은 것 같다. 대신 성경 지식이나 감동적 설교를 자꾸 듣다보면 어떻게든 변화가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것도 안 되면 자기 개발 서적을 찾거나 세미나에서 즉답을 구한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퍼즐 조각으로 쓰실 수 있다. 그러나 삶을 여기저기 조금씩 손보는 것과 영성 계발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다르다.

영성 계발은 성경에 나와 있고 예수께서 행하신 일정한 용인된 훈련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영성 훈련은 각각 행위의 훈련과 절제 훈련으로 나뉘어, 행위 훈련에는 공부, 예배, 기도, 축제, 섬김, 교제나 공동체, 고백, 복종이 포함되고, 절제 훈련에는 고독, 침묵, 금식, 청빈, 순결, 은둔, 희생이 포함된다. 그러나 사실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이 들려올 때 기꺼이 반응하도록 연습하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영적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이 훈련들은 성령 하나님과 교류하는 길이다. 그리하여 성령은 당신의 심령에서, 즉 사고와 의도와 생각을 훌쩍 넘어 인격의 심연에서 일하신다.

이 책에서 우리는 영성 훈련의 한 부분인 경청기도의 훈련을 듣는 기도, 말없는 묵상, 하나님을 바라는 것, 하나님의 임재 연습 등 여러 형태로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고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목자의(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또 그 음성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들을 훈련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분의 음성을 알기에 따를(순종할) 줄도 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고요히 앉아 하나님을 듣도록 자신을 훈련하기보다 목사나 강사의 말을 듣기를 더 좋아한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려 하셨지만 그들은 모세한테만 듣겠다고 완강히 버텼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그분의 종들의 말을 듣기를 더 좋아하여,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적은지 드러낸다. 우리는 개인 간증은 즐겨 듣지만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원치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왜 그렇게 두려워할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리라. 즉 우리는 그분이 명하시는 대로 행하거나 아니면 순종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의 종이 말하는 경우라면 순종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처럼 느껴진다."

성경의 으뜸가는 기도서인 시편은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예술을 강조한다. 이는 경청기도의 일부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잠잠함은 경청기도의 외적 침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 연약한 모습으로 조용히 있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 손에 내려놓고 내가 누구이며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걱정하지 않는 구체적 표현이다. 전능자의 그늘은 산만하고 메마르고 죄책감에 찌들고 확신 없는 영혼이 잠잠히 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말없이 잠잠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가장 깊은 자아에 말씀하실 수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인 다윗은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시 4:4)라고 가르친다.

경청기도의 뿌리는 성경이다. 경청기도를 즐기려면 성경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음성을 민감히 알아듣고 그분과 꾸준히 대화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도 직접 알았다. 두려워 목숨을 건지려고 달아난 그는 하나님께 자기 목숨을 취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멸을 구하는 엘리야를 꾸짖으시기는커녕 오히려 숙면을 취하고 천사의 손에서 음식을 받아먹도록 조치해 주신다. 하나님의 애틋한 자비를 잘 알았기에 엘리야는 자신이 부득이 거하게 된 광야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 음성듣기를 사모했던 것이다.

제2부 하나님을 경청하는 기도의 비결



경청기도는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예수님 발아래 앉은 마리아는 경청기도의 산 그림이다. 그녀는 "꼭 필요한 것 한 가지에 전심을 바쳤다." 하나님 앞에 잠잠해지는 법을 배우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연습하면 풍성해지고 충만해진다. 경청기도란 짜릿한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임재를 누리는 데 주안점이 있다. 경청기도 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너그러운 성품, 즉 우리를 절대 포기하시지 않는 사랑, 억울한 상황을 뒤집으시는 능력, 능력을 자비로 조절하시는 온유하심을 묵상할 수 있다. 하나님의 후하심을 오래 묵상할 경우, 우리도 그 성품을 지니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그분을 흠모할수록 우리도 욕심을 버리고 후해지고 싶고, 기회가 닥치면 움켜쥐기보다 베풀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란 바로 그런 의미다. 나는 내가 하나님 임재 안에 있음과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을 안다. 그분이 나를 말할 수 없이 귀히 여기심을 나는 안다. 이보다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이런 기도로 하나님을 맛보아 알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하나님께 그런 갈급함이 있으면 그분과의 대화생활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워진다. 대화를 통해 기도는 문제 해결만의 차원을 넘어선다. 웬디 라이트는 이렇게 역설한다. "고장난 데를 고치고 상한 데를 치유하는 것도 물론 영적 삶의 일부다. 그러나 그 이상이 있다. 영적 구도자들은 인생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깊이를 재야 할 신비로 대한다." 이러한 시각은 문제가 있어야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일축한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과 동일하게 평상시에도 항상 하나님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달라스 윌라드는 "영적인 사람들은 자기 삶을 하나님과의 대화적 관계에서 길어 올린다. 그들에게는 '그 너머의 삶'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 너머의 삶은 이 땅의 삶 전체에 침투한다. 우리를 산만한 것으로부터 끌어내고, 내 성격 결함이 얼마나 실없고 부질없는 것인지 깨우치며,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한 이타적 섬김으로 우리를 이끈다. 세상은 점점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 간다. 그 너머의 삶은 하나님과의 풍성한 대화로 충만하며, 그분과 연합된 삶에서 양분을 얻는다. 예수님 말씀이 이제 분명해진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토마스 머튼은 "우리는 '방법'이나 '시스템'을 찾을 게 아니라 '태도'와 '시각' 즉 믿음, 개방성, 주목, 경외, 기대감, 간구, 신뢰, 기쁨을 가꾸어야 한다"고 했다. 당신이 그런 태도를 가꾸면 하나님은 당신의 영과 성품 속에 일하시며, 그리하여 당신만의 경청기도 방법론이 창안된다. 장-니콜라스 그루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놓고 무엇이든 그분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 마음에 넣어달라고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침 그날 아침 아들 때문에 속상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루의 말대로 해보기로 하고 그의 말을 빌려 기도했다. "무엇이든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제 마음에 넣어주소서." 다시 빚으시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열자, 그분은 내 좌절을 은혜와 애정으로 바꿔 주셨다. 아침에만 해도 불가능해 보이던 일(속상한 마음을 떨치기)이 이제 쉬워졌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주목하면 하나님이 내용을 정하셔서 우리 마음의 변화와 방향이 필요한 부분들을 만지신다.

하나님께 몰입하여 듣는 마음



경청의 길의 두 가지 주요 도구는 침묵과 고독의 영성 훈련이다. 침묵과 고독은 둘 다 숨어서 일한다. 겨울철에 벌어지는 일과 흡사하다. 엄동설한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보인다. 동물들은 동면한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만물이 부동의 휴면에 들어간다. 그러나 요긴한 겨울잠 동안 생명은 새로워진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숨어있으나 생명에 필수다.

침묵과 고독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적인 작업 중 하나는 우리를 문화의 요구에서 떼어놓는 것이다. 긴급한 메시지와 울리는 전화벨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성공 집착의 진상을 볼 것이다. 격리된 고요한 시간에 우리는 내면의 침묵을 얻으며 그것은 우리를 세상에서 자유케 한다. 우리는 세상살이에 바빠 하나님의 성령을 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움직임을 의식하려면 내적 고독과 침묵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언성을 높이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집중하기 위해 말과 분석과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버린다.

또 한 가지 버려야 할 것은, 내면의 '착한 아이' 이미지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연약한 참 자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아직 변화되지 않은 부분들을 벽장 속에 감춰두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와 하나님께 드린다. 시편 기자 다윗은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철두철미 연약해질 때 우리는 자기애에 대해 죽을 수밖에 없고 "떼어진 떡, 부어진 포도주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들린다.

처음에는 집중을 배우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집중이란 생각과 관심을 내 존재의 중심(영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을 수 있는 내 마음속)에 모은다는 뜻이다. 하나님께로의 집중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은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의 파장에 맞추어 그분이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하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집중의 목표는 두 가지다. 집중하면 평온하고 고요해져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잘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집중하면 하나님께 깨어 있을 수 있다. 이때 호흡기도가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흥하고(숨을 들이쉬며) 저는 쇠하게 하소서(숨을 내쉬며)"도 그 중 하나다. 성경 문구나 장면도 집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귀용 부인은 그것을 두고 '주를 보는 것'이라 했다. 토마스 켈리는 나직이 간단한 말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오직 주님 것, 오직 주님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등의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라. 잡념이 들거든 돌아와 다시 시작하라. 그러다 보면 언어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영혼의 태도(그분 앞에 겸손히 고개 속이는 태도, 마지막 틈에까지 빛이 비쳐들어 어둠을 다 몰아내도록 그분 앞에 내 전 존재를 높이 들어올리는 태도)에 자리를 내주는 시점이 온다. 얼마 후 이런 태도가 흐트러지고 모호해지게 되면 그때는 다시 언어 표현으로 돌아가 그 알맹이를 되찾으면 된다. 찬송은 기도를 향으로 바꾼다. 노래하면 심호흡이 이루어지며 자신도 모르게 굳어있던 몸 부위의 긴장이 풀려 기도를 향기롭게 만든다."

귀용 부인은 잡념에 대해 지혜로운 조언을 들려준다. "잡념이 생겼다 해서 고민하지 말라. 늘 자신의 결점 때문에 불안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라. 그런 고민은 영혼을 휘저어 지엽적인 것들로 산만하게 할 뿐이다. 이는 교만이라는 숨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자기가 산만함을 초월한 자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잡념과 직접 싸우지 말라는 귀용 부인의 조언이 통하는 이유가 있다. 잡념이란 싸워서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종이와 펜을 곁에 두었다가 잡념을 '할 일' 목록처럼 종이에 적어 일단 제쳐 두는 것이 좋다.

질문으로 하나님을 삶에 모셔들이라



하나님께 물을 때 우리는 침묵 중에 깨어있을 수 있다. 우리는 경청기도 중에 질문하고 기다린다. 바로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답은 엉뚱한 순간에(그날 늦게, 일주일 후에, 1년 후에) 찾아와 우리를 놀라게 할 때가 더 많다. 질문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사울과 다윗 같은 이들의 삶이 그 증거다. 사울은 7일간 전투를 연기하며 사무엘을 기다렸다. 그러나 사무엘은 오지 않았고 병사들은 계속 흩어지려 했다. 그래서 사울은 상식적 조치를 취했다. 자기가 직접 번제를 드린 것이다. 사무엘은 이 일과 기타 범죄들로 인해 하나님이 사울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울은 뭐가 문제인지 의아했을 것이다. 솔직히 행위, 성취 지향적이면서 힘을 갖춘 자라면 이 본문이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반면 다윗은 묻는 마음, 반추하는 마음이 있었다. 블레셋이 골짜기를 침범하자 다윗 왕은 블레셋을 공격해야 되는지 하나님께 물었다. 위급한 상황의 군인에게 이는 미련한 결정이었다. 그야 물론 진격 아닌가! 그러나 다윗은 매 전투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의 뜻이 늘 똑같지 않고 늘 뻔하지 않으며 대개 우리 생각보다 뛰어남을 그는 알았다.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를 앞서 가시는 것이다. 주께 물을 때 우리는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일 처리에 치중하는 사울 같은 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삶의 일상사들에 관해 하나님께 묻는 것은 괴롭고 고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 마음을 좇는 자에게는 질문이 정상적 반응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꿈꾸는 자가 되어 묻는다. "지금 저를 앞서 가시며 하시려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마음을 열고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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