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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귀용의 순전한 사랑

잔느 귀용 지음 | 두란노
순전한 사랑

잔느 귀용 지음

두란노 / 2006년 9월 / 264쪽 / 9,000원



프롤로그_ 하나님은 채우기 위해 비우신다




하나님은 세우기 위해 무너뜨리신다. 우리 안에 거룩한 성전을 세우기 위해 먼저 인간의 기술과 힘으로 만들어 놓은 헛된 모든 것을 완전히 허무신다. 그리고 그 참혹한 폐허 위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우고 계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신비로운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는다면 어린아이 같은 심정을 가진 이에게만 보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카운슬러라도 되는 양 거룩한 지혜에 이미 도달한 것처럼 가장하는 이들, 그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공로로 포장하며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에게는 숨기시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말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의 어떤 뛰어난 천재가 하나님의 높이와 깊이, 길이와 넓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파괴와 죽음은 지혜의 명성과 위력을 알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참된 지혜를 깨닫는 순간은 모든 것을 잃은 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오직 그분 안에서 존재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 지혜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보다 그 진리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고는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외칠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1부 산을 옮긴 진실한 믿음



나는 1648년 4월 18일에 태어났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대단히 경건한 분이었는데 그것은 신앙인이 많았던 집안의 전통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사고로 심하게 놀라서 임신 8개월에 중절수술을 해야만 했다. 당시 이렇게 태어난 미숙아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 통례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주 약했고,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했다. 나는 희망과 절망의 곡선을 오르내리며 오랜 시간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나는 이런 와중에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나의 병세는 2살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우르술라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어머니는 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온통 남동생에게만 관심을 두었다. 만약 그때 하나님께서 나의 보호자가 돼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냉혹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활발한 성격 때문에 어린 시절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수녀원에서도 규칙을 자주 어겼고,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 마음이 늘 무거웠다. 그러나 그곳에는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마음을 주고 그들을 따랐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녀들을 불공평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녀들 사이에 질투와 미움을 만들고 다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관계는 죽을 때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부모의 잘못된 행동의 영향을 받은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가 하던 것처럼 자기 형제를 노예같이 대하며 절대적인 폭군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가 부모님에게 화를 끼치는 반면, 멸시와 미움을 받고 자란 자녀가 오히려 부모에게 힘이 되고 위로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는 늘 사랑스런 마음과 따뜻한 말로 나를 대해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보고 싶어지면 사람을 보내 나를 수녀원에서 데려가곤 했다. 어느 날 집에 영국 여왕이 왔었다. 내가 8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여왕은 나의 생기발랄한 태도와 재치 있는 답변에 매우 즐거워했다. 그때 만약 아버지가 나를 궁으로 데려가도 되겠느냐는 여왕의 제안에 단호히 거절하지 않았다면 연약한 나는 분명 궁중의 유혹과 유희문화에 결코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10살이 되자 아버지는 친한 친구인 성 도미니크 수녀회의 수녀님에게 보냈다. 나는 거기서 수두를 앓아 3주 동안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병을 앓는 동안 나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연두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그곳 수녀들이 내 곁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야 했다. 그때 방에서 발견한 것이 성경이었다. 그것은 주님의 섭리였다. 그날 이후 나는 성경을 읽고 암기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아침부터 밤까지 성경을 읽었다.



아버지는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어머니는 이전과는 달리 나를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남동생을 더 좋아하는 것은 여전했다. 심지어 내가 아플 때에도,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동생이 달라고 하면 내게서 빼앗아 동생에게 주었다. 남동생은 나를 자주 괴롭혔다. 마차 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고 나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나는 심하게 다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생의 나쁜 짓에 대해서는 늘 관대했다. 그럴듯한 변명에 속아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나를 자포자기 상태로 내몰았고, 오히려 심술궂은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나는 속으로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화도 잘 내는 편이었다. 수녀원에서 조금 나아졌다 생각했지만 결국 이런 나쁜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변함없이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 기도도 열심히 드렸으며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아했고, 하나님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 이러한 나의 일관성 없는 행동은 그 후 몇 해 동안 더욱 심해졌다. 이성은 점차 성장했지만, 나의 비이성적인 행위는 여전했다. 그로 인해 내 안의 죄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는 다시 우루슬라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몇 해 후 아버지가 심하게 앓아 누워 집에 돌아온 나는 아버지 곁에서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보살폈다. 나는 하인들도 하지 않으려 하고 아버지 역시 기대하지 않은 궂은일까지 직접 했다. 이것은 수녀원에 있는 동안 했던 끊임없는 기도와 찬양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하인들에게 맡겨 놓고 내버려뒀던 어머니는 이제 내가 집에 있기만을 바랐다. 어머니는 더는 아버지 병수발로 고통당하지 않으려 했다. 사실 어머니는 매우 덕 있는 여인이었다. 그 당시 자비심 많은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집에 남아도는 것은 물론 반드시 필요한 것까지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지 않았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어머니의 유덕함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나님은 내가 그 덕스러움을 물려받아 행하는 것을 기뻐하셨다.



아버지가 일어나시고 나는 약 4개월 동안 학질에 걸려 무척 고생했다. 그때 며칠간 시골에 내려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서 친척 한 분을 만났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교양이 넘치는 젊은 신사였다. 그는 나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너무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했다. 나는 그와 함께 시간을 갖고 싶어 내 기도를 중단했다. 이것은 내가 사탄에게 틈을 허락한 계기가 되었다. 나의 영은 기도로 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 냉랭해졌다. 과거의 나쁜 습관이 되살아났고 지독한 교만까지 생겼다. 나 자신에 대한 애착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사그라들게 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했던 것을 사람들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두셨다. 주님께서 내가 끔찍한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그냥 보고 계셨던 것은 내가 기도 안에서 다시 그분께 가까이 갈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욕망이 강해졌고 연약한 성품이 드러났다. 하나님 은혜의 불꽃은 내 안에서 점점 꺼져갔고, 기도 없는 무덤덤한 상태에 빠졌다. 물론 겉으로는 경건하게 행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교회 생활에 있어 예전보다 더욱 위장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허영심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아름답게 치장했을 뿐, 내 영혼을 덮고 있는 내면의 더러운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를 높이 평가한 반면, 다른 여성들의 결점을 들추어냈다. 끊임없이 변명을 했고, 나 자신을 완벽하게 보이려 애썼다.



나는 과장된 내용, 특히 로맨틱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을 새워 읽을 정도였다. 욕망을 채워 줄 무엇이 있을까 하는 갈증에 그런 종류의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커졌다. 혼자서는 이런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고, 나를 건져 줄 수 있는 자비로운 능력의 손길이 필요했다. 분별 있는 친구가 있어서 유일한 안식인 기도를 다시 할 수 있게 해주었더라면 좋았으련만, 내 생활을 비난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곳에서 나를 건져 줄만큼 친절한 사람은 없었다. 빠져 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고, 이런 헛된 시도를 할 때마다 나는 더 큰 무력감을 느끼며 괴로워할 뿐이었다.



이런 슬픈 경험은 나로 하여금 죄인들에 대해 커다란 연민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비참한 상태에서도 매일 소리내어 드리는 기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 즈음, 아버지와의 대화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내게 가장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비록 결점이 많긴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했고 동정심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얼마나 이상하게 보았을까? 너무도 상반된 것이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여겼을 것이다.

파리로 이사했을 때, 그곳에서 내 허영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곳 생활은 그 어떤 것도 내게 유익하지 않았다. 나는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나 자신을 드러냈고 자존심을 세워 나갔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면서도 나는 아무도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 눈에 띄게 유리한 조건을 내세운 청혼이 들어왔지만 하나님은 그런 결혼을 성사시키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결혼을 허락한다고 약속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이 내건 조건이 좋기도 했지만, 내가 해외로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내키지 않는 결혼을 허락한 것이다.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말이다. 나는 결혼 약속을 한 후부터 줄곧 이 결혼이 하나님 뜻인지를 알고 싶었고, 적어도 이 일만큼은 그분 뜻이기를 바랐다.



결혼식을 마치고 남편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이 바로 나의 초상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생활 태도를 모두 바꿔야만 했다. 오랫동안 과부로 지내 온 시어머니는 경제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다. 남편이나 시어머니는 내가 정중함이라 생각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여겼다. 누구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하녀들도 내 결점만 들추어냈다. 시어머니는 나에 대한 남편의 감정도 자신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나에게 허락하셨다. 만약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교만한 상태에 머물면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병을 앓으면서 남편은 조금씩 변했다. 이제 남편은 누가 나를 비난하기라도 하면 심하게 화를 냈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자신도 약점이 많은 죄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남편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이다. 사실 남편은 합리적인 성품을 지녔고, 나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우리 결혼 생활에 시어머니와 하녀들이 없었다면 남편과 나는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 나는 남자의 기질과 감정을 곁에서 잘 추스르면서 평온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양식 있는 여자의 태도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인내하며 기도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돌발적인 내 본성은 아무데서나 튀어나오곤 했다. 결국 내가 했던 결심은 무너지기 일쑤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럴 때마다 나의 이기적인 자기애가 더 심해지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시댁 식구들은 내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 커다란 관심을 쏟으며 돌봐주었고, 시집살이는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내가 출산을 거듭하면서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병 때문에 나만큼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기절도 자주 했고 심하게 앓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아기를 낳은 이후에도 심약한 상태가 계속되어 한동안 고열로 몸이 많이 허약해졌다. 그러나 이런 병치레는 시댁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심한 죽을병이라 해도 삶보다 어렵고 힘들지는 않았다. 덕분에 나는 아무리 심하게 앓아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나의 노력과 남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밀려오면 하나님은 나를 인내로 무장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다. 그러나 사탄은 나로 하여금 모욕감을 느끼도록 부추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나를 다시 혼란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서 한번은 병이 점점 심해져 의사도 내 생명에 대해 절망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은 내가 아무런 희망 없이 죽어 간다는 것을 알고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그러나 나는 아무런 공포심 없이 죽음을 받아들였고 죽음이 임박했어도 담담했다. 그 죽음의 의식을 모두 치른 후 나는 거의 기적처럼 회복되었는데, 이 사건은 훗날 내게 커다란 복을 주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친정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 프란치스코회에 있는 사제를 그곳으로 보내주셨다. 그는 원래 다른 지방에 가려고 계획했으나 하나님께서 경로를 바꾸신 것이다. 내가 기도할 때 느끼는 어려움을 토로하자 그는 말했다. "부인, 그것은 이미 부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밖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부인의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부인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이 말은 어둠을 격파하듯 내 마음에 깊숙이 박혔고 충격은 감미롭게 느껴졌다. 그의 말에서 나는 내가 지난 수년 동안 찾았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었다. 주님은 내 영혼 안에 계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해주셨다. 그것은 어떤 개념이나 생각의 적용에 의한 것이 아니고 매우 달콤한 것에 실제로 사로잡힌 것이었다.

"네 이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아 1:3). 나는 이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내 영혼 안에서 향기름 내음을 느꼈고, 그것은 내 모든 상처를 단번에 치유했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갑자기 너무 많이 변했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나조차도 이를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내게 문제가 되었던 결점이나 하나님과의 거리낌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불 속에 타 버리듯 사라졌다. 나는 주님께서 도구로 쓰신 그 신부님이 나를 계속 지도해 주길 바랐다. 신부님은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 때문에 허락하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성을 지도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했다고 했지만 나는 간절히 요청했고, 신부님은 하나님께 여쭈어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신부님은 하나님께 '그 임무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 여인은 나의 신부니라!'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로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마치 몇 분처럼 지나갔다. 열정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온갖 상상력과 생각을 배제한 상태에서 오직 기쁨에 사로잡혀 기도했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결한 상태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 없이 내 영혼은 기도에 집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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