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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여정

레이 프리차드 지음 | 사랑플러스
믿음의 여정 레이 프리차드 지음 사랑플러스 / 2006년 11월 / 184쪽 / 7,500원

놀라운 여정



우르라고 불리던 한 장소<진리1>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느 곳으로 이끄실지를 알지 못한 채로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유복한 중년 남자로서 4천 년 전 갈데아 우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와 그의 아내 사라에게 인생은 행복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분명히, 명확히, 틀림없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으며, 궁극적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히 11:8). 갈데아 우르는 세계적인 도시였다. 그런데 누가 우르를 떠나고 싶어 하겠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는 것은, 그의 친구들과 직업, 전통, 가정, 지위, 조국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내가 보여 주는 땅"(창 12:1)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건강과 미래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우르를 떠날 때, 아브라함은 자신이 건너온 다리를 불태웠다. 이제 그에게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일에 대한 보증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고, 어디에 도착하게 될지도, 이 여행이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으며, 심지어는 그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곳이 약속의 땅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사실뿐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막연한 상태였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보증이나 확실성 없이 산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확신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고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그의 순종을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그가 '순종'하였고 '떠났다'고 말한다.

믿음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세세한 것들까지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있다. 나는 그저 믿음으로 나아가고 그분이 나를 인도하시는 곳으로 따라갈 뿐이다."

<진리 2>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약속을 이루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히 11:9). 그는 약속된 땅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장막(Tent)에서 근근이 살아가야만 했다. 그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는 데에는 몇 백 년이 걸리게 될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결코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이삭이나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는가? 그렇다. 그가 우르를 떠난 것은 옳았는가? 그렇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고 있었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장막에서 살아야 했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몇 세대에 걸쳐서 일하신다. 반면 우리는 이번 주말 모임에 입고 갈 스커트나 셔츠로 어떤 것을 살지에 대해 걱정한다. 이 두 가지 관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진리 3>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당신의 눈을 절대로 하늘에서 떼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히 11:10). 아브라함은 장막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안전함과 항구성을 가진 장소를 찾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시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21장은 그 도시를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2절)이라고 묘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백성들의 최종적인 거주지인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라. 하늘나라는 도시이다. 그곳은 참 사람들이 넘치는 참 공간이다. 그곳은 갈데아 우르를 떠나온 아브라함이 찾고 있던 도시이다. 아브라함은 하늘나라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설계하고 만드신 도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가 진짜 주인인가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려우리 교회 팀은 시타델(거대한 요새)을 방문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거대한 건축물을 구경한 다음에, 피뇽으로 돌아가기 위해 트럭을 탔다. 먼짓길을 달리면서, 나는 몇 달 전에 우리 교회를 방문했던 초청 강사가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강사는 우리가 젊은이들이 좀 더 일찍 결혼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그는, 자녀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리고 직업을 가질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현대적인 가르침은 성서적이지 않으며, 물질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성서적이지 않은 까닭은, 독신을 지켜야 할 유일한 이유는 대학을 마치고 직업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고전 7장 참고). 또한 결혼보다 물질적 안정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기 때문에 물질주의적이며, 우리 자녀들 대부분이 결혼하기까지 섹스를 절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구별하라성적인 유혹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학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취직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다(고전 7:9). 만약 우리가 세속적인 결혼관에 찬성하는 우리의 견해를 정말로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의 젊은이들을 준비시키는 데 있어서 교회가 담당해야 할 역할을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생에 걸쳐, 모든 이들이 독신으로 시작하여,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하고 어떤 이들은 다시 독신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다. 독신인 사람은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도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

내 말은, 일찍 결혼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갖는 것 자체가 성경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녀들에게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수년 동안 결혼을 미루게 만들면서,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 채 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러나 직업을 결혼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혹은 자녀들이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 우선해야만 한다.그게 다인가?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위해서 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직업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직업이 당신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은 하나의 직업으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훨씬 더 멋진 일이다. 직업을 가지고 세상의 기준에 따라 그 직무를 잘 수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신 자신에게 물어 보라. 예수님이 직업을 가지셨나? 아니다. 그분은 세상의 구주가 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계셨다. 직업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훌륭한 경력을 쌓는 경험이 아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을 통해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셨다. 그분은 성공자인가, 실패자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이 장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잃는다는 진리가 담고 있는 몇 가지 의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십대 아이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을 위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다음 세대가 예수님을 위하여 그들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밀려오는 악의 물결에 맞설 수 있는 영적인 자원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물질주의의 공허한 유혹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에 따라 살도록 도전을 주자.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유일한 것, 즉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자.

둘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직업/사명의 목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명 지향적으로 사는 대신 직업 지향적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세속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도 우리의 영혼을 잃을 수 있다고 이미 경고하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생명으로 이르는 길이다! 문제는, 당신이 '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당신의 삶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왜 이 지구에 보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더 높은 지위를 이용하라. 단순히 최고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지는 말라. 하나님은 "바로 이때를 위해서"(에 4:14) 당신을 이곳에 보내셨음을 깨달으라. 모든 새로운 기회와 모든 승진의 배후에는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라. 최고에 오를 때, 누가 당신을 거기까지 보내셨는지를 기억하라. 직업만을 중요시하고 사명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 삶의 모든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을 알 때 당신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당신이 드렸던 가장 어려운 기도



좀 더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1. 하나님은 내 삶에 관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2. 하나님의 뜻에는 내 삶을 향한 그분의 바람도 포함된다.3. 그러나 나 역시 내 삶을 향한 나 자신의 바람을 포함한 나 자신의 뜻을 가지고 있다.4. 이 두 뜻은 종종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5. 갈등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 둘 중 하나가 우세하게 된다.6.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때, 나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세하기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겪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할 때, 우리는 필요하다면 우리 자신의 뜻이 전복되기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있는 병원 침대 옆에 서서 이런 식으로 기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모든 간구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간구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도는 거의 응답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진심으로 구하기 힘든 기도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이 드리는 기도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기도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셨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기 어려운 데에는 적어도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이유 1>"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단 하나의 뜻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거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분이 통제하시거나 당신이 통제하게 된다. 둘 중 하나일 뿐, 둘 다일 수는 없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당신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당신이 삶을 진정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유 2>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 기도가 어려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가 우리의 의지에 관련된 것이라면,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삶의 통제권을 내어드리면, 그분이 우리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시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때, 혹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것과 반대의 것을 주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보지 않는가?

<이유 3>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때때로 괴로움과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 잔이 자신 앞에 놓여 있음을 보시고, 두려워하며 뒷걸음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마 26:39). 이것은 불신앙의 말이 아니다. 믿음의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를 온전히 이해한 사람의 말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셨다. 그분은 기꺼이 그 값을 치르려고 하셨다. 그러나 고통의 잔이 가까워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그 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신 것이다. 예수님조차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힘들어하셨다면, 우리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하셨다. 이 기도를 위해서 그분은 목숨을 내놓으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겟세마네에서 그리도 고통스러워하셨던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유 4>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의 상태를 거스르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때로는 마치 하나님이 주무시고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다음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현재 상태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신에게 마땅한 지위를 사탄이 찬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세상이 지옥으로 변해가는 동안 한가로이 구경만 하고 있지 않으신다. 사실, 그분은 현재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베들레헴으로 보내셨다.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괜찮았다면, 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셨겠는가? 모든 것은 끔찍할 정도로 나빴고, 계속 더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인간 역사에 개입하셨다.

그것은 성자처럼 그저 뒤로 물러나는 기도가 아니다"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현재의 상태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전투적인 기도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하고 잘못된 것에 도전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심약하고 소심한 이들의 기도가 아니다. 이것은 세상에 가득한 황폐함을 바라보며 "너무 화가 나! 그저 가만히 앉아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이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눈앞에서 불의가 행해질 때, 당신은 그 싸움에 뛰어들어 그곳에 실제로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지금 당신은 무엇과 씨름하고 있는가? 당신은 손이 아플 정도로 무엇을 그리도 꼭 붙잡고 있는가? 당신이 하나님께 드리기를 두려워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마침내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면서 꽉 움켜쥐었던 주먹을 펼 때, 당신은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까지는 참 행복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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