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김승학 지음 | 두란노
김승학 지음
두란노 / 2007년 10월 / 408쪽 / 13,000원Part 1 말씀 지도를 따라서우리의 준비는 완벽하다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성지로 알고 있는 유적지의 위치가 만일 잘못된 것이라면,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가!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년을 보내면서 기독교인들이 성지라고 생각한 성경의 유적지 가운데 상당한 부분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정확한 성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 당시 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주치의로 있었는데, 이 신분은 성지를 탐사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우리가 확인하고자 했던 곳은, 성경에 기록된 시내산과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진행했던 대장정의 현장들이다. 기가 막힌 사실은 많은 성지가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추측으로 사실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지가 잘 못 인식된 것은 622년에 이슬람 국가가 이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고고학적인 조사를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고, 527년에 로마 제국이 시나이 반도에 있는 무사산(Jabal Musa ; 모세산)을 시내산이라고 명명해버렸기 때문에 이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 진실인양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내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이렇게 힘든 여정을 감행하게 된 동기는 참으로 우연한 경험 때문이다. 대구에 계시는 부친을 통해서 비디오테이프를 넘겨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순간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탐험가 론 와트(Ron Watt)와 그의 아들이 찍은 것으로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반도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쪽으로 갔다고 밝히고 있었다. 비디오테이프에는 아라비아 북서부에 있는 홍해 횡단 기념 기둥이 촬영되어 있었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에 위치한 라오즈산에서 찍은 금송아지 제단을 보여주면서, 금송아지 제단은 라오즈산이 시내산임을 증명하는 고고학적인 물증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나는 기어코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현장 탐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2001년 3월 2일 금요일 첫째 날, 우리는 이 모험의 대장정을 출발했는데, 특히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오직 알라신만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성경의 유적지가 기독교 성지로 알려짐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가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지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고, 이 우려는 성지에 대한 강력한 통제로 나타났다. 우리는 회교도들의 제 2의 성지인 메디나(Medina)를 거쳐서 2001년 3월 4일 주일 셋째 날 나바테아의 유적지인 메다인 살레(Medain Saleh)에 도착했는데, 이 메다인 살레는 에돔 족속의 요새였던 페트라(요르단 남쪽에 있는 고대 도시의 유적,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처럼 큰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만든 무덤들 50여개가 여기저기에 음산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 50여개의 무덤들은 하나 같이 두부를 잘라 놓은 것처럼 정교하게 바위를 조각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 수가 있는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지도를 보니 우리가 가고자 했던 라오즈산이 있는 타북(Tabuk)까지는 497km가 남아있었다.
하나님의 성산을 찾아서2001년 3월 5일 월요일 넷째 날 이른 아침, 타북 시내에서 필요한 음료수와 음식을 준비하여 해발 2401m나 되는 라오즈산을 향해서 출발했다. 이 라오즈산이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는 시내산인 것이다. 우리는 라오즈산을 찾기 위해서 지도를 일일이 짚어 가면서 목적지를 살펴보다가 작고 가는 글씨로 '와디 무사(Wadi Musa ; 모세강, 아랍인은 무사로 발음한다. 와디는 비가 올 때만 강을 이루는 마른 강)가 표기가 된 곳을 발견했다. 이 와디 무사의 출발지가 라오즈산이기 때문에 와디 무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라오즈산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우리가 라오즈산으로 가는 도중에 내가 지니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주치의라는 신분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를 수도 없이 체험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의 성지를 제대로 확인하도록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섭리적인 배려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니까 1987년, 나는 6개월 동안의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회교도의 성지인 메카에서 가장 가까운 제다의 뉴제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내가 한의사였으므로 처음으로 침구 한방과를 개설하게 되었다. 당시 왕자는 목 디스크로 심히 고생을 하고 있었으며, 내국의 어떤 병원에서도 왕자의 목 디스크를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수술을 받고자 여행 준비를 마친 중이었다. 왕자는 한국에서 온 의사가 침을 놓아 병을 치료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왕궁으로 불렀다. 내가 왕자를 처음 접견할 때 받은 인상은 교양과 품위와 위엄을 한 몸에 지닌 왕자다운 풍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왕자의 목 여기저기에 침을 꽂았는데, 얼마 후 왕자의 입에서 미소가 돌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왕자의 눈은 존경심과 고마움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내 손을 잡아 흔들기도 하고 나를 껴안기도 했는데, 이 사실은 왕자의 목 디스크가 깨끗하게 치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왕자는 그 자리에서 자기의 주치의가 되어 자기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목 디스크 한번 치료한 것으로 왕자의 주치의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섭리적인 역사인 것이 분명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성지 탐험의 후원자를 준비하신 순간이었다.
우리가 와디 무사를 거슬러 라오즈산으로 가고자 했을 때, 지형이 복잡해서 잠시 방향감각을 잃었기 때문에 이곳 지리에 통달한 베두인을 기용하기로 했다. 물기 없는 메마른 땅, 험준하기 짝이 없는 산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얼마 쯤 오르다가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라오즈산 정상에만 구름 기둥이 걸려 있었고, 이 구름 기둥은 산 정상의 10% 정도를 가리고 있었다. 이곳이 하나님이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나팔소리와 함께 모세를 만나시기 위해서 강림하셨던 바로 그 산이란 말인가! 숨이 막힐 것 같은 감동과 감격, 그리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 때 베두인이 차를 멈추고 나를 내리게 하더니 한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으며 수 천 년이 됐을 것 같은 그림들이 그 흩어진 바위들에 새겨져 있었다. 샌들의 그림도 있었고, 뱀 모양의 지팡이 그림도 있었다. 이런 암각화(바위에 새겨진 그림)는 이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우리가 계속 산 정상을 향해서 오르고자 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비밀경찰들의 엄중한 통제로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라오즈산의 정상에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985년에 협정을 통해서 세운 레이더 기지가 설치되어 있어서 통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즈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엘림과 모세의 제단우리는 출애굽기 15장 27절에 소개된 엘림을 찾아보기로 하고, 그 엘림으로 추정되는 에인 무사로 방향을 잡았다. 이 에인 무사는 모세가 그의 부인이 될 십보라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얼마쯤 달리자 어느덧 마을이 보이는 곳으로 접어드나 싶었는데 언덕 아래로 파란 바다가 한눈에 가득히 들어왔다. 거기에 차를 파킹해 놓고 얼마쯤 걸어 내려가자 지름 10m 정도 되는 물웅덩이가 보였다. 이 물웅덩이가 바로 에인 무사 곧, 모세가 십보라를 처음 만났던 그 우물이라는 것이다. 이 우물 부근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담장을 처서 금지구역으로 만들어놓은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엘림이었다. 거기서 현지 마을 사람이 전해준 이야기로는 이 담장 안에는 모세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큰 돌이 두 개가 있었는데 이 제단들이 지금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전광석화처럼, 혹시 이 두 개의 모세 제단을 우리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후에 이 예감은 사실이 되었고, 나는 이 엄청난 발견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2001년 3월 6일 화요일 다섯째 날, 예인 무사를 떠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홍해 부근이었는데, 숙소를 구할 수가 없어서 난감해 할 때 해안 경비대의 배려로 해안의 텐트에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되었다. 왕자의 주치의라는 신분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비대장은 왕자의 주치의라는 신분증을 확인하고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날이 새자 엘림에 있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모세의 두 제단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세의 없어진 두 제단이 이 홍해 해안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 있는 이 홍해 해안과 엘림이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으며, 만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이 모세의 제단을 버렸다면 이 부근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추측을 했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눈부신 해안 백사장을 상당한 시간을 걸었다 싶었을 때 나의 시선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잘 다듬어진 둥그런 바위 하나가 있었다. 높이가 1.2m 정도 되는 바위인데 윗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고 패인 곳에는 두개의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그 구멍에 탄 재 같은 것이 가득 찬 채로 굳어져 있었다. 움푹 패인 곳은 새끼 양 한 마리를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모세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사용했던 바로 그 제단이 아닐까? 만일 이와 똑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이 돌은 엘림에서 모세가 제단으로 사용한 그 돌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확신한 나는 열심히 그 부근을 찾아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무렵, 우리가 잠을 잤던 텐트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얼마 전에 발견한 그 돌과 똑같은 모양의 돌덩어리의 형체가 눈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렇게도 두 돌덩어리가 같을 수가 있을까! 바로 3500여전 전에 모세가 엘림에서 사용했다던 그 제단, 언제부터인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던 모세의 두 제단을 찾은 것이다.
솔로몬이 세운 홍해횡단 기념기둥2001년 3월 7일 수요일 여섯째 날, 우리는 하끌로 향했다. 하끌은 론 와트의 비디오테이프에서 눈이 닳도록 보았던, 솔로몬이 세웠다는 홍해횡단 기념기둥이 있는 곳이다. 이 홍해횡단 기념기둥은 홍해수 저편과 이편 두 곳에 솔로몬이 세운 것으로서,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솔로몬이 세웠다는 홍해횡단 기념기둥이 하끌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론 와트의 비디오테이프에서 본 영상들이다. 바다와 근접한 작은 집들, 그리고 해안가 백사장 위에 세워진 붉은 페인트 깃발,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모든 것인데 참으로 막연하고 답답한 탐험의 길이었다. 우리는 론 와트가 비디오테이프에 담은 솔로몬이 세웠다는 홍해횡단 기념기둥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 붉은 깃발을 찾기 위해서 바닷가를 35km 정도 달렸다. 나는 차를 천천히 몰면서 주변을 구석구석 샅샅이 끈질기게 관찰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하얀 백사장의 눈부신 반사 빛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이 가물거리게 보일 정도로 시력의 피로를 느껴 이 탐사를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 되었을 때, 드디어 우리를 흥분시키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붉은 깃대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홍해 해안가에서 약 500m 정도 동쪽 방향으로 떨어진 곳, 광야가 펼쳐지는 곳에 바로 그 금속 깃발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 붉은 깃대 옆에 있어야 할 솔로몬이 세웠다는 홍해횡단 기념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이 부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탐문해 보았더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이 홍해횡단 기념기둥을 홍해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반도의 비하히롯, 지금은 관광지로 변한 누웨이바(Nuweiba)해안을 출발해서 홍해를 통과한 다음 미디안 땅, 곧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건너온 것이 분명하다면, 몇 가지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반대편 누웨이바 해안에도 솔로몬이 세웠다는 홍해횡단 기념기둥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홍해에 수장된 애굽 군사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미디안의 수르 광야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 가지 모두 증거가 있었다. 론 와트 팀이 찍은 비디오테이프는 누웨이바 해안의 솔로몬 홍해횡단 기념기둥을 담고 있으며, 그들은 고고학자들의 도움으로 그 돌기둥에 쓰여 있는 몇몇 글자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글자는 에돔, 솔로몬, 죽음, 이스라엘, 모세 등의 글자임이 판독된 것이다. 또한 론 와트 팀은 영국 해군사령부가 위성 촬영한 홍해 지도를 통해 누웨이바 해안에서 홍해를 가로질러 미디안(사우디아라비아)땅까지의 바닷길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으며, 그의 발표에 의하면 누웨이바 해변, 즉 시나이반도 쪽에서 경사 6도의 기울기로 서서히 바다 속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완만한 넓은 길이 바다 건너편 미디안 땅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 바닷길을 조사하는 중에 애굽 병거들의 바퀴들, 말발굽, 말의 뼈들, 사람의 뼈들을 홍해바다 속의 산호더미 속에서 찾아내는데 성공했으며 찾아낸 일부의 병거 바퀴를 이집트 국립 박물관 관장에게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라오즈 산에 세 번째 오르다2001년 3월7일 수요일 여섯째 날, 집을 떠나온 지 엿새가 지났다. 이번에는 아비얏(하얀 계곡) 코스를 통해서 세 번째 라오즈 산에 올라가기로 하고 지도를 확인하면서 아비얏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는 거기에서 우연히 만난 한 트럭 운전사의 도움을 받아 와디 아비얏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는 이곳 지리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의 트럭을 좇아 22km 정도의 오르막길을 오르게 되었을 때 그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게 하더니 산 아래쪽을 가리켰는데, 계곡 전체가 하얀 색깔이었으며 바로 이곳이 와디 아비얏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 운전기사에"혹시 라오즈 산을 아십니까?" 하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 산에서 근무하는 군인입니다. 그 산은 미사일 기지라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라오즈 산에 오르겠다는 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군인과 헤어진 다음, 와디 아비얏을 통과하여 시내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작은 동산을 돌아서자 갑자기 드넓은 광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어떻게 산 뒤로 이렇게 넒은 광야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사실은 광야 맞은편에 론 와트의 비디오테이프에서 본 아론의 금송아지 제단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론의 금송아지 제단까지 접근했다. 금송아지 제단은 철망으로 둘려 있었고, 푸른 철판 위에는 "여기는 고고학 지역임으로 접근하는 자는 왕명에 의거 보호받을 수가 없다"라는 글씨가 아랍어와 영어로 선명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사람을 섬뜩하게 할 만큼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아래 부분에는 다듬지 않은 거의 1m 크기의 둥그런 바위들이 받치고 있었는데, 그 위로 가로 10m, 세로 5m 정도의 높이로 돌무더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윗부분은 평평한 자연석이 놓여 있었으며 다듬은 흔적은 없었다. 바위에는 힘센 황소의 그림이 열두 마리나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었는데, 역시 애굽 신 아피스의 형상이었다. 애굽 신 아피스의 형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라암셋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섬겼던 우상이며, 그들이 아론을 충동질해 바로 이곳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다. 우리가 오르고자 했던 라오즈산은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론의 금송아지 제단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되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