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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

웨인 마틴데일 지음 | 사랑플러스
천국 1부. 천국의 신화 벗겨 내기: 논픽션



1. 천국에 대한 신화들



천국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신화들이 있다. 신화 1: "천국은 지루할 거야", 신화 2: "뭐라고? 섹스가 없다고?", 신화 3: "하지만 난 유령이 싫어!", 신화 4: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 신화 5: "고작 왕관이나 쓰고 하프나 켜라고?", 신화 6: "천국은 현실도피자의 생각이야", 신화 7: "믿음이 깊어 봐야 세상에서는 도움이 안 돼"

역설적이지만 천국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이러한 신화들은 성경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너는 무엇을 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 바로 천국의 논리라고 이해했었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천국은 부정적인 장소일 뿐이었다. '전환'이라는 중요한 설교에서 루이스는 이러한 오해를 깨뜨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한다. "우리가 천국에 대해 생각해 낼 수 있는 철학적으로 훌륭하고 성숙한 모든 생각들은 우리의 본성이 욕망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영원한 부정입니다. 음식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섹스도 없고, 운동도 없고, 웃음도 없고, 사건도 없고, 시간도 없고, 예술도 없다고 말입니다." 루이스는 그러나 하나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영원히 그를 기뻐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했다.

천국이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불가능하다. 천국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통해 모든 것이 존재하고 일어나는 곳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모든 즐거움들을 창조하셨다는 루이스의 말을 기억해 보라. 그는 우리를 위한 곳을 예비하고 계시며,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헤리 블레마이어스도 천국에 관한 탁월한 글에서 이 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최고의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했을지라도 그것은 천국을 미리 조금 맛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손과 눈과 말에서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는 곳마다 당신은 하나님의 창조물 속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인격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아름다움과 모든 애정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지으신 창조물에 선행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완전히 펼쳐진다는 것은 우리가 이전에 맛보고 꿈꾸던 모든 사랑스러움과 선한 것이 연합되고, 집중되고, 강렬하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랑 - 그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분의 인격적인 따뜻함 속으로 모이고 서서히 스며 나오는 모든 사랑 -은 그가 우리 앞에 보이신 것이다. 그것은 구속받은 자들이 받게 될 최후의 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독교인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경험들은 긍정이라는 것을 거의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감각은 세상의 집이야말로 오래되고 편안한 곳이라고 속삭이며 우리의 상상력을 세상에 강하게 묶어 놓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작 날아올라야 할 때에 만족스러운 세상 속에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혼란스러움에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루이스의 책, 『천국과 지옥의 이혼』과 그 이후에 『페렐랜드라』를 통해서였다. 이 두 권의 책은 나의 생각을 천국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픽션이 때로는 냉정한 신학적 설명보다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에서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랜섬은 페렐랜드라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즐거움을 경험한 뒤 돌아와 친구들에게 이를 설명하려고 했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세상의 단어들은 너무나 애매했고 상상력도 충분히 구체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은 너무나 생생해서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진정한 즐거움은 그것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의 삶을 즐겁게 만들고, 자꾸 생각하고 싶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기뻐하게 만든다. 천국과 지옥은 부분적으로는 이것을 확대하여 생각해보면 된다. 참으로 완벽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험은 퇴색하지 않는다. 시인 키이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루이스는 『침묵 행성의 바깥』이라는 작품에서 '맬러캔드라'라는 타락하지 않은 행성에서 천국이 보내 준 즐거움을 상상해 보았다. 우주를 여행하는 지구인인 랜섬은 맬러캔드라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성적이지만 인간과는 상당히 다른 '흐로스' 생명체 '효이'로부터 천국의 경험 속에 끊임없이 쌓여 있는 풍부함의 주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것은 고상한 기억들이 계속 쌓이고 쌓인 기억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흐로스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근심 없이 매일 매일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완전함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다. 반대로 지옥에서는 지금의 삶에서 선택한 악한 기억들이 장차 구속받지 못한 것들과 더불어 두려움으로 쌓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기억한다면 세상에서의 선택들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삶 속에서 숨겨진 놀라운 의미를 볼 수 있다. 루이스는 완전하게 된다는 것에 함축되어 있는 흥분과 전율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존재는 근본적으로 완전함을 원하고 있다. 루이스는 완전함에 대한 심오한 의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도 완전하라는 명령은 이상주의적인 과장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것을 하라는 명령도 아닙니다. 그는 지금 우리를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는 성경에서 우리를 '신'이라고 하셨고, 그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가 이 일을 하도록 맡기기만 한다면 - 우리가 원한다면 못하시게 막을 수도 있습니다. - 아무리 연약하고 더러운 인간이라도 남신과 여신으로, 지금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과 기쁨과 지혜와 사랑으로 약동하는 눈부시게 빛나는 불멸의 존재로, 그분 자신의 끝없는 능력과 즐거움과 선함을 완벽하게 비추는 티 없이 맑은 거울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 과정은 길며 부분적으로는 아주 고통스러운 것이겠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그 이하는 없습니다. 그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천국 2부 천국의 신화를 다시 쓰기: 픽션



2.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신화들



어떻게 굳어진 이미지와 생각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세계를 떠나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루이스가 훌륭하게 창조한 상상문학에서 가능하다. 어떻게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 역시 상상문학을 통해서 가능하다. 훌륭한 픽션이라는 이 독특한 선물은 지성과 상상력과 감정에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픽션은 우리의 정신적인 전경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예수님도 항상 이야기를 통해서 가르치셨다. 이야기는 형식적인 적용을 일삼는 모든 추상적인 범주들에 도전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루이스가 판타지를 통해 천국을 탐색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가 성경적인 진리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했던 모든 시도들은 잘못된 것의 신화를 벗겨 내고 진실한 신화를 다시 쓰는 과정이었다.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특히 북유럽 신화와 같은 신화들을 좋아했다.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신에 대한 신화는 그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과 감정은 도덕적인 진실로 다가왔지만, 그는 이런 신화들이 '고귀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루이스는 모들린 대학을 산책하면서 그의 친구 톨킨과 다이슨이 오래된 신화가 '인간의 상상력에 주어진 신적 진실의 희미한 빛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은 실제'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생각이 바뀌었다. 데이비드 다우닝은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위대한 모든 신화들, 신이 인간을 위해 그 자신을 희생했다는 내용의 신화들은 구속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보다 높은 영역에서부터 온 선물이라는 것을 선천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는 것에 대해 논쟁했다. 그들에게는 성육신이 신화에서 역사가 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약을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전 세계의 신화 속에서 발견되는 중심적인 주제 속에도 포함되어 있다. ...루이스가 사랑했던 그리스신화와 북유럽 신화들은 단지 생각할 가치가 없는 현실도피적인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 신화들은 합리적으로 변화하는 진리에 대한 보물창고가 되었다. 신화는 부분적이며 왜곡되어 있지만 논리적인 탐구의 영역을 넘어서는 진리에 대해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루이스는 다른 모든 신화들이 지적하듯이 진실한 신화인 기독교에서 선하고 현실적인 것으로 방어할 수 있는 세계관을 발견했다. 그것은 역사에 기반하고 있는 믿음이자 그의 강력한 지성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믿음이었다. ...물론 그때부터 루이스에게 기독교는 모든 매혹적인 신화와 이야기들의 근원이자, 모든 신화들의 열쇠로 역사 속에서 역사 자체가 펼쳐지는 신화가 되었다."

루이스는 신화와 진리 그리고 사실이라는 세 요소가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믿는다. 우주 3부작 『침묵 행성의 바깥』, 『페렐랜드라』, 『저 무서운 힘』 중 두 번째 작품인 『페렐랜드라』에서 영웅 랜섬은 이제 비인간적인 웨스턴과 싸워야만 한다. 세계의 운명이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우리 세계를 위해 심오한 행위를 했던 것처럼 랜섬이 그와 같은 일을 하게 될 때, 화자의 목소리는 신화적인 부분을 감지하고 있다.

"오래전 맬러캔드라(화성)에서, 그가 페렐랜드라에 오기 한참 전에, 랜섬은 신화와 진리와 사실의 세 영역이 순수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해 왔었다. - 그러한 구분은 일면적이며, 타락의 결과인 영혼과 육체 사이의 불행한 분리의 결과이다. 지구에서조차 성찬은 이러한 분리가 유익하지 않으며 최종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성육신은 이러한 분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알려 준다. 페렐랜드라에서는 그런 구분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무슨 일이든 지구인들은 그것을 신화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랜섬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고 있다. 무시무시한 어둠 속의 실재는 이렇게 귀중한 보석 같은 진리들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천국에 대한 신화를 다시 쓰면서 루이스는 인물과 상황을 놀랍게 배열하여 다섯 개의 주된 주제를 발전시켰다. (1) 예수님은 모든 것의 중심이다. (2) 천국은 전적으로 실제적이며, 우리의 지상에서의 삶은 천국의 그림자이다. (3) 천국은 하나님의 인격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이것은 천국이 완전하며, 선과 정의와 자비의 창조와 사랑이 함께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천국에서 인간성은 자신의 창조된 가능성이 실현되고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곳은 우리의 진정한 자연스러운 고향이다. (5) 모든 우리의 열망은 근본적으로 천국을 향한 것이다. (6) 우리는 예수님의 탁월함을 선택함으로써 천국을 선택한다. 이러한 주제는 성경적이며, 루이스의 픽션을 읽으면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열정의 위대한 근원을 되찾게 된다.

3. 창공을 천국으로 바꾸기: 침묵의 행성 바깥"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주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편 8:3

루이스의 우주 3부작(혹은 랜섬 3부작)은 아마도 과학소설과 신학적인 논의가 결합된 최초의 작품일 것이다. 루이스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방법대신 과학소설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를 몰래 들여왔다. 클라이드 킬비는 이 3부작에서 신학적인 주제가 취하고 있는 목표를 적절하게 요약했다. "아마도 『침묵 행성의 바깥』과 『페렐랜드라』의 목표가 이때까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저 무서운 힘』은 무엇이 일어날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처음 두 작품이 죄에 의해 손상된 세상을 보여 준다면, 세 번째 작품은 죄의 지옥 같은 악몽이 미쳐 날뛰는 것을 보여준다. 앞의 두 작품이 죄 없고 조화로운 장소인 천국이 어떤 모습일지 미리 예시한다면, 세 번째 작품은 죄의 파괴로 영원히 훼손된 장소인 지옥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 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3부작 중 『침묵 행성의 바깥』은 천국과 지옥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다음의 주제들과 관련된 상상력 풍부한 관점들을 제시하며, 나머지 두 책에서도 동일한 주제들이 다시 타나난다:

* 타락하지 않은 창조와의 조화(창조물과 그의 환경 사이)* 동물과 인간, 천사, 그리고 신과 다른 창조물 사이의 조화* 죄로 인한 사망* 새롭고 더 나은 것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기 원하시는 필수적인 것으로써의 죽음*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과의 관계 속에 있는 잠정적인 인간성과 현재의 창조물(우주)* 개인과 세세한 것까지 고려하시는 하나님(오야르사는 웨스턴 같은 엄청난 죄인에게조차, 즉 그의 '구부러짐'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자비를 베푼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겸손(예를 들면, 육체적인 한계로 인해 우리가 볼 수 없는 것, 루이스는 상상하기 어려운 천국의 차원들을 암시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관점을 제시했다.)* 빈 공간이 아니라 영광으로 충만한 천국

천국으로서의 우주우리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세계는 어디에나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티끌 같은 모래 속에서조차 우주를 볼 것이며, 위를 본다면 시편 기자의 말처럼 "창공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 루이스는 우주의 광대한 공간을 보았을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의 문제』의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무신론자였던 시절에 우주가 빈 공간이라는 것은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에게 우주는 생명이 없는 커다란 텅 빈 쓰레기장으로 보였고,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조차도 수백만 년 전에는 생명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먼 미래에 태양연료가 모두 떨어지고 나면 지구상의 생명체가 사라져 다시 그런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창조에 대한 흐릿한 시선은 루이스가 회심한 것처럼 예수님의 빛에 의해 명확해져 갔다. 회심을 통해 루이스는 우주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우주는 텅 빈 공간에서 비옥한 생명의 원천이자 생생한 생명으로 바뀌었다. 조지 무사치오의 말처럼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해 우주에는 다양한 종류의 있음직한 생명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통해 완전함과 충만함, 생명과 에너지, 선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는 우주를 전혀 낭비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주의 빛나고 무수한 소산들은 밤마다 수많은 눈으로 지구를 내려다본다. 예전의 사상가들이 우주를 창궁 - 영광을 선포하는 창궁 -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랜섬은 이 '창공'을 떠나 중력이 작용하는 맬러캔드라(화성)를 향해 가면서, 새로이 발견한 영광들을 뒤에 남겨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높이와 추락하는 느낌 - 창공 속에서는 전혀 없던 -이 계속 반복되었다. ...갑자기 우주의 빛들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악마가 더러운 스폰지로 창공의 얼굴을 문지르는 것처럼 빛나던 광채가 창백하고 비루한 회색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반대로 그가 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맬러캔드라의 대기에서 거의 벗어나 창공에 가까운 멜딜론을 여행할 때에는 그는 예전의 부풀었던 마음과, 솟아오르는 장엄함, 아무런 요구 없이도 무한하게 주어지는 삶과 힘에 대한 느낌을 한번은 침착하게 또 한번은 황홀하게 느꼈다. 창공에서는 천국처럼, 가장 평범한 경험조차도 숭고하게 되고 모든 감각들은 더욱 예민하게 되었다.

『침묵 행성의 바깥』에서 '창공heaven'과 '천국heaven'이라는 단어는 천국과 연결되는 두 개의 중요한 고리이면서, 동음이의어라는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이와 같이 사용되는 동음이의어가 또 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바꿔서 사용되는 단어인 맬럴딜이 있으며, 그 다음으로 창공에 사람들을 거주하게 하고 맬럴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영들이나 천사로 사용되는 단어인 엘딜이 있다. 엘딜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천사들의 일을 수행하며, 공포에 떨게 만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현명함에 있어서는 존경받을 만하다. 웨스턴 박사처럼 단지 어리석거나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만이 감히 그들과 언쟁하거나 헛되이 그들을 속이려고 한다. 엘딜들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실체가 없는 육체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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