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DNA
게리 스몰리 지음 | 사랑플러스
게리 스몰리 지음
사랑플러스 / 2007년 5월 / 311쪽 / 10,000원
1부 혁명
관계의 혁명2년 전, 관계 개선을 위한 정보를 모으다가, 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믿고 있는 그것을 찾았다. 그 일은 바로 스몰리결혼연구소라고 부르는, 내 아들 그렉의 결혼상담연구센터에서 일어났다. 5년간 그들에게서 훈련받은 부부들에 관한 연구와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고도 놀라웠다. 심각한 고통을 겪은 부부가 지금 당신이 읽게 될 내용을 배우고 적용했을 때, 93퍼센트의 결혼생활이 깨지지 않은 채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수십 쌍의 부부들이 안정된 관계를 맺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내 기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이런 질문을 나에게 주었다. 이 기적적인 변화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렉과 밥의 연구팀이 결혼집중훈련 과정을 통해 겪은 경험을 분석하기 시작했을 때,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모두들 놀라게 되었다. 모든 부부의 관계를 해치는 부정적인 태도는 식별하기 쉬우며, 반복되는 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부부 중에 누구도 자신들이 이 악순환을 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낡고 진부한 상처를 주는 유형에 빠져서, 똑같은 슬픈 순환을 반복해서 겪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서로 치고 박으면서 파멸의 춤이 시작한다.
연구팀은 이 위기에 처한 부부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가르쳤다: 첫째, 관계 DNA, 둘째, 그들만의 독특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춤의 유형, 셋째, 건전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새로운 춤의 단계. 그러자 부부들은 이 원리와 단계를 전심으로 배우고 실행함으로써 서로를 향한 열정을 재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완전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만족스러운 관계 형성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들과 방법은 단지 결혼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도 적용되었다.
우리 모두는 결혼, 가정, 친구관계, 직장에서 따뜻하고 만족스런 관계를 원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섯 단계의 효과적인 춤동작을 이해하고 실행하면,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며, 새롭고도 흥미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것이다. 첫째, '반쪽의 힘'을 알게 될 것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먼
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울 그 날은 위대한 날이 될 것이다. 둘째, 안정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셋째,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기 위해, 당신 스스로를 돌보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이다. 넷째, 감정적 의사소통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이 닿는 법을 배울 것이다. 다섯째, 팀워크에 대해 배울 것이다. 화목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는 데 도움을 주는 '윈윈'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관계의 DNA아담은 창조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는 환경과 조화로운 관계를 가졌으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음에 틀림없다. 에덴 동산은 진정한 낙원이요, 안전한 거주지였다. 아담은 하나님과 안전하고 평화로웠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도 평화를 누렸다. 아담은 우주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확신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이상의 것, 즉 동료 인간, 인간관계를 주길 원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담이 처음 하와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할 뿐이지만, 내 생각에는 육체적 감각이 경험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깊은 친밀감과 그녀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갈망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 내면 깊은 곳에 정서적, 신체적 관계를 위한 갈망과 함께 내적 영혼의 결합 즉,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친밀한 결속력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창조한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고,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에도 무한한 접근을 허용했다. 생명은 아담과 하와에게 매우 좋은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안전하고 깊은 만족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유혹자의 말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산을 거닐면서 나오셨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벗은 몸이 수치스럽고 자기 행동의 결과가 두려웠기 때문에 숨어버렸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묻자 아담은 하와를 비난했고, 하와는 뱀을 비난했다.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의 선택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하나님과 누렸던 화목한 관계는 깨졌다. 둘 사이의 만족스런 관계도 물 건너갔다. 그들의 관계는 파탄됐다. 그 결과로 지금까지도 우리는 무너진 관계 때문에 갈등하고 있다. 관계의 DNA에 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이 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관계의 DNA 코드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1. 당신은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다.
2.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3.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먼저 관계의 DNA의 첫째 요소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바로 이 관계의 진리이다. 당신은 세 가지 종류의 관계 - 다른 사람, 당신 자신,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 를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이 설계의 특징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든 못하든, 그것에 따라 살든 안 살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 DNA는 어쨌든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DNA 코드의 비밀을 풀 수 있다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관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종종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자신을 사진 속에 담아 보라. 상대방과 똑같은 '틀' 속에 자신을 넣고 바라보면 자기 자신이 해결책의 일부일 뿐 아니라 문제의 일부로 보기 시작한다. 당신의 관계를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렌즈를 사용하라.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정확한 렌즈인 하나님의 렌즈를 통해 바라볼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남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이 당신을 바라보는 눈으로 당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그 렌즈는 건전한 관계를 맺기 위한 기초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으면,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상의 위치에 있게 되며, 결국 자신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형을 잃으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인생을 변화시키거나 즐길 능력을 잃어버린다. 또한 상대방 역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그때는 어느 쪽도 자신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며, 그런 상황이 되면 잘못된 이유 때문에 서로에게 반응한다. 때로는 당신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 때문에, 때로는 당신에 대한 과소평가 때문에 반응하게 된다. 서로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없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관계가 이루어지겠는가?
이 세 가지 관계의 DNA 요소는 상호 관련성이 있다. 하나가 균형을 잃으면 나머지 둘도 삐꺽거린다. 하나를 강화시키면, 나머지 둘도 저절로 견고해진다. 하나님-자신-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계명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DNA 안에 감춰진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첫째요 가장 위대한 관계이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은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과 관계있다는 것이다. 이 세 관계는 마치 우리의 유전자 구조의 일부 같다.
이제 관계 DNA의 두 번째 요소, 하나님이 당신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음을 살펴보자. 물론 모든 관계를 항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나 형제나 자식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선택할 능력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곤경에 빠진 관계 가운데서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할 때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사실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람들을 상담할 때마다 그 사람이 선택을 하는 순간 발휘되는 강력한 힘에 나는 항상 놀란다.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선택은 변화와 같은 말이다.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리고 그 변화는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저지르는 많은 실수 중 하나는,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선택과 변화를 뒤로 미루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대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관계를 방해하는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발전시키는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인생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장 흥분된 부분은 나의 모든 생각이 나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매일 어떤 환경에 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슬픈 감정이든 기쁜 감정이든 모든 감정을 내가 결정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선택하는 것과 나에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기로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이 자유가 좋다.
마지막으로 관계 DNA의 세 번째 요소,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기로 선택하면서, 자신들의 DNA도 위반했다. 자기 선택의 결과에 부딪혔을 때 아담도 하와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다. 우리도 그와 같다. 관계의 어려움에 봉착하면 상대방을 비난한다. "저 남자 때문이에요." "저 여자 때문이에요."
결론적으로 인생은 관계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관계를 위해 당신을 창조하셨다. 이 점은 바꿀 수 없다. 유일한 선택은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당신과 다른 사람들이 그 관계 때문에 큰 고통을 받게 만들 것인지이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선택하라. 생명을 선택하라. 기쁨과 평안과 만족이 당신의 관계 속에 넘쳐흐르게 하는 결정을 하라. 그리고 개인적인 책임을 질 준비를 하라.
관계를 파괴시키는 춤표면적 문제는 대부분 실제 문제가 아니다. 재정이나 상대방같이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근본 문제가 아니다. 근본 문제는 두려움이다. 거의 모든 갈등의 문제는 누군가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두려움과 씨름한다. 각자 모두 두려움의 춤을 추고 있는 셈이다. 근본적 두려움을 건드렸기 때문에 상처, 요구, 두려움, 반응이 관련된 파괴적인 두려움의 춤에 걸려든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해결책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상처를 받으면,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상대방이 바뀌기를 원하나 해결책은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에덴동산의 죄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관계 속에서 두려움의 춤을 춘다. 그리고 그 춤을 계속 추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두려움의 춤은 불과 순식간에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얼마나 빠르고 미묘한가! 누군가 당신의 두려움을 자극하면, 당신은 상대방이 변하여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도록 만들기 위해 옳지 못한 행동이나 말로 반응한다. 당신의 그 반응이 다시 상대방의 근본적 두려움을 자극하고, 그도 당신처럼 자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옳지 못한 행동이나 말로 반응한다. 그래서 당신과 상대방 둘 다 최악의 두려움의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근본적 두려움이 있다.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과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점에서 나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명의 훌륭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몇 년 전 그 두 친구가 각각 다른 때에 내가 무시당하고 지배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 말을 했다. 사실 그들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듣기로 선택한 것이다. 과거의 내 반응은 늘 나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나의 근본적 두려움을 건드린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는 데 정말 선수였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고, 내가 정말 한 인격체로서 어떤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악한 의도가 담긴 나의 말을 전혀 통제할 힘이 없는 것 같았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내가 그 두 친구를 완전히 무시했고, 틀림없이 그들의 근본적 두려움을 건드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관계는 끝났고 각자 우리는 그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 자체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15년 이상 우리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 작년에 그 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두 친구와의 관계가 크게 회복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친구나 부부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처의 유형을 변화시키는 법을 알지 못하면, 20년 동안 똑같은 다툼을 계속할 것이다. 아무 것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관계가 결코 진전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데 적응할 뿐이지, 당사자들 모두가 갈망하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통제불능의 싸움까지 악화되어 관계가 파탄하게 된다.
두려움의 춤은 기능적으로 장애가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추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춤이기 때문에 장애가 있어도 "기능을 한다." 문제는 그 춤을 추다 보면 원하지 않는 곳에 정확히 다다른다는 것이다. 반복하는 습관 때문에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이다. 그들은 자신의 친구관계나 결혼생활이 '진행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변에 아는 모든 사람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생각도 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 기존의 것을 바꾸는 모험을 하겠는가?
두려움의 춤이 보여 주는 최악의 특징은 자신의 행복과 성취감을 위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친구, 가족, 배우자에게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할 때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도록 창조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런 의존성은 하나님 한 분을 위해 계획되고 마련된 것이지, 배우자나 친구, 상사에게 매달리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춤은 어느 정도는 '효과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