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아들 키우기
최에스더 지음 | 규장
1장 대한민국에서 아들 키우기 - 그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기여자인 엄마에게 남자인 사내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들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그 좁은 뱃속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며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해서, 태어나 엄마의 품에서 자라는 내내 지칠 줄 모르고 집 안과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그 힘을 감당하느라 엄마들은 허리가 휜다.
이제 열한 살이 되는 나의 큰아들을 키운 지난날을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그 세월을 지나왔나' 하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하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며칠이라도 보낼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우리 아들의 하루는 언제나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세게 열어젖히고 옆방으로 가서 책장에 있는 책을 모두 꺼내 뒤로 던지는 놀이로 시작되었다. 그러고 나서 장난감은 일단 다 뒤집어놓고, 아빠 책상 위로 기어 올라가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온갖 신기한 것들을 모두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보거나, 아니면 침으로 푹 적셔놓은 뒤 아래로 하나씩 던졌다.
어쨌거나 집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문밖을 나서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일단 아이는 뛰기 시작한다. 내 손은 기어이 뿌리치고, '설마 저기까지 갈까?' 하고 속으로 믿어보다가 망설임 없이 가버리는 아이 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왕복 8차선 찻길로 뛰어드는 아이를 붙잡으러 나까지 찻길로 뛰어들어 아이를 데리고 돌아와서는, 아이 엉덩이를 마구 두들겨 패준 적도 있다.
가까운 공원에 모처럼 나가서 조용히 아들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싶어도, 끝도 없이 뛰는 아들 덕분에 공원의 후문은 어디에 있는지, 그 후문 뒤에는 뭐가 있는지, 다시 차를 세워둔 정문 근처로 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아들이 있는 엄마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딸을 둔 엄마들은 이쯤에서 왜 아들을 둔 엄마의 목소리가 큰지, 왜 그 큰 목소리로 제 아들 이름을 그렇게 불러대는지 이해하셨을 줄로 안다. 우리도 딸아이들 엄마처럼 조용하고 우아하게 아이와 함께 걷고 싶다. 정말이다.
이 책에서 나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며 만났던 성경 속의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이전과는 다르게 성경 속의 남자들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남자에 관한 나의 시각을 많이 교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에 관한 엄마로서의 나의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성경 인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며 내 아들에게는 어떤 모습이 있는지, 어떤 모습이 부족한지 잘 살펴보자. 그리고 내 아들은 누구와 비슷해서 누구를 모델로 하여 키우고 싶은지 그림도 한 번 그려보자. 하나님의 일꾼으로 아들을 키우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지와 몰이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을 허락해주실 것이다.
2장 아들은 누구인가? - 하나님의 것이다몇 해 전, 시아버지께서 미국의 한 주립대학으로 1년간 연구교수로 떠나시게 되면서 큰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버님께서는 아이가 아직 어릴 때 넓은 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해주겠다고 하시며, 당신께서 잘 데리고 있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떻게든 말려볼 심산으로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아무리 완곡하게 말려도 비행기 티켓 예매까지 마쳐버리셨다.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아버님의 제안에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가?' 이렇게 고민하는 내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에스더야, 너는 아이들을 내보내놓고 길게 전화도 하고, 책도 읽고 잠도 자고 했지만, 나는 그 아이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뗀 적이 없단다. 너는 이제까지 네가 아이들을 지키고 돌보며 키웠다고 생각하겠지만, 네가 돌아서고 나서까지 아이들을 지킨 건, 미안하지만 바로 나란다. 내가 한국에서만 아이들을 지킬 수 있고 미국에서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섭섭하다."
나는 이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실감나게 깨달았다. 내가 키우고 있는 아들을 사실은 하나님께서 키우고 계셨으며, 그런 그 아들을 하나님께 보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중에서야 부모 동행이 아니면 어린아이들이 와서 공부할 수 없다는 미국의 법을 알고 한바탕의 해프닝은 조용히 끝이 났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요게벳은 이제 태어난 지 석 달이 되어 엄마를 알아보고 싱긋싱긋 웃었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기 모세를 살리려고 바구니를 만들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바구니를 만들었을까? 라헬은 어린 요셉과 막 태어난 베냐민을 남겨두고 눈을 감아야 했다. 참으로 눈을 감기 어려웠을 것이다. 죽는 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남겨진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눈이 감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 눈물짓는 여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소원을 아뢰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셨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아이를 젖 뗄 때까지만 자신이 키우고, 이후에는 하나님의 성막에서 자라게 한다. 그때는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고 성막에서 온갖 추잡한 죄를 저지르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던 것 같다.
이 세 엄마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신의 아이들의 손을 놓았다. 결코 쉬운 포기는 아니었으나 그들은 순종했다. 라헬이 어쩔 수 없이 놓았던 요셉의 손을 잡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 이끄셨다. 요게벳이 나일 강에 띄운 모세를 건지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한나가 근심과 걱정을 물리치고 놓았던 사무엘의 손을 하나님께서 잡으시고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를 다지셨다.
3장 아들은 누구인가? - 자기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이다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아이들이 때때로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겨우 말을 하게 되는 나이에는 동화책에서 본 것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더 자라서 이제는 구분할 때가 된 것 같은데도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면, 이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구분이 안 되어서 그러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설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는 책에서 본 내용을 현실에 적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계속 이야기들을 자주 지어냈다. 지어낸 이야기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지어낸 이야기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충분히 가르쳤고, 알아들었는데도 으쓱하고 싶은 마음에 정말 일어난 일이었다고 고집 부릴 때, 나는 아이에게 "너는 누구냐?"고 대뜸 물었다. 이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아이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네가 하나님 일을 할 사람이고, 너의 할아버지의 손자이고 너의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보이지 않는 너의 이름표에는 네 이름만 적혀 있는 게 아니라, 너의 아버지의 이름, 할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적혀 있는데, 그 이름들을 달고 있으면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 아이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지만, 그 순간은 참 숙연해졌다. 자기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아이라 하더라도 그의 행동에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
성경에서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과 그 사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이 그 인생에 얼마나 큰 복이어서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반대로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저주여서 사람을 절망과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히게 만들며 죄의 노예가 되어 마귀에게 끌려 다니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동시대를 살면서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사람이 바로 사울 왕과 다윗이다. 사울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더 준수한 자가 없다고 성경이 표현할 정도로 출중한 외모의 청년이었고, 아버지의 작은 명령에도 최선을 다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는 기름부으심을 받으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그러나 사울은 기름부으심을 받았을 때의 은혜를 곧 잊어버리고 만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 하는 것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늘 민감하게 살펴보았다. 왕이 된 후에는 전쟁을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겠는데, 오겠다고 약속했던 사무엘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제사장의 일을 하고야 만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 몰랐고 철저한 오해 속에 살다 간 사람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영광도 잃어버리고 생명도 잃어버린다.
베들레헴 사람인 이새는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 다윗을 아들 축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사무엘의 눈에는 다윗이 얼굴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워 보였으나, 이새의 눈에는 아무리 어려도 제 몫은 해야 하는 아들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잘 알았던 어린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양들을 돌보는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목동으로 찬양자로 자신의 어린 날들을 성실하게 채웠으며, 그 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세워지는 기름부으심을 받았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 왕의 심기를 달래는 노래하는 사람이었을 때에도, 긴 세월 동안 사울 왕의 칼을 피해 도망 다니는 처지에 놓였을 때에도, 자신은 사울 왕의 아랫사람임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를 섬겼다. 다윗이 사울에게 무모해 보일 정도로 충성했던 까닭은 그가 겸손해서라기보다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4장 아들은 누구인가? - 아버지이다아들들은 아빠를 닮고 싶어 한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도 메고 구두도 신고, 자동차 운전도 하고,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용돈도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시계도 차고, 머리에 무스도 바르며 꼭 아빠처럼 진짜로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부부는 아빠가 하고 다니는 모양보다는 아빠의 말씨, 조용한 걸음걸이, 깔끔한 뒷정리, 근면 성실… 뭐 이런 것을 먼저 배우기를 바라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것은 나중 일인 것처럼 보인다. 아들이 자라서 맡게 될 여러 가지 역할 가운데서 중요한 하나가 아버지의 역할인데, 아이들은 그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우게 된다.
성경 속에서 참 허무한 두 왕을 만난다. 역사 이래 더 이상의 부와 지혜를 겸한 자가 없을 정도의 왕이었던 솔로몬 왕과 죽음 앞에서 기도로 생명을 연장 받았던 히스기야 왕이다. 잠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을 지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말씀이다. 그러나 정작 이 글을 쓴 솔로몬 자신은 아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치지 못했는가 보다. 아니면 가르쳤으되 삶으로 보여주지 못해서 아들이 배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왕이었으나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귀한 글을 남겼으나, 그 말씀대로 살아보지는 못했다. 이 얼마나 허무한가? 나의 깨달음이 다른 사람은 살리고, 나와 내 자식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두렵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남유다 왕국에 한 왕이 있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처럼 옳은 일을 한 왕이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왕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그 당시에 대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그 때에 앗수르는 유다 사람들을 잡아가기도 하고, 왕궁에 있는 은과 금을 빼앗아 가기도 했다. 그리고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려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성을 완전히 포위해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 히스기야는 이전의 왕들이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오던 것처럼 하지 않고,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오직 하나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는다.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강하고 악명 높기로 유명한 앗수르의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조용히 죽이신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솔로몬도, 히스기야도 큰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의 중심에 자기 자신만 있고 자식은, 다음 세대는 안중에도 없게 되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가 되었다고 다 아버지로서 세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어린 아들을 키우지만, 나중에 이 아이가 어떤 인물이 되어 세상에 이름을 낼 것인가만 그려보지 말고, 한 사람의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아들을 키우자. 무엇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하는지, 무엇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남편들은 아버지가 되는 순간, 아니 아버지가 되기 전부터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5장 아들은 누구인가? - 군사이다이름이 유별나게 특이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름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가 컸다. 내 이름에 온갖 장난을 거는 남자아이들이 싫었고, 내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이 싫었다. 학생 때,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들이 출석부에서 아이들 이름을 죽 읽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호명을 멈추고 출석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셨다. 분명 내 이름을 읽기 위해 몇 초가 필요하셨던 것이다. 늘 그때쯤 엄마께 여쭤본 것 같다. 내 이름을 왜 에스더라고 지으셨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같은 대답을 해주셨다. "아들 셋을 내리 낳고 너를 가지니 금방 딸인 걸 알겠더라.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지. 이왕에 딸을 주신다면,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딸을 주시기를 바란다고, 게다가 얼굴도 예쁘고, 딸 하나 있는 게 엄마 닮아서 못생기면 안 되잖니."
'나라와 민족,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할 사람이다.' 이런 작은 소리가 어린 시절 내 귀에 심심하면 들려왔다. 나는 정말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일찌감치, 내가 그런 인물이 되기에는 공부를 너무 못하며 끈기도 없고 노력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라와 민족이라는 단어는 점점 흐려지고 옅어지다가 마침내는 사라지고, 나는 흔하디흔한 아가씨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일찍 결혼을 선택하게 되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성경을 읽어가는 중에 엘리야 선지자가 승천하는 장면을 만났다. 그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람이 될 거라는, 어린 시절 들려왔던 소리가 다시 깨어나 나를 점점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아기를 우리 민족의 병거와 마병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부족해서 제 힘과 지혜로 키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아기가 엘리야와 같이 민족을 품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첫아들을 태중에 품고 극적으로 재회한 '나라와 민족'이라는 단어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내 기도의 운명이 되어, 지금까지 이 아이를 위한 기도 제목이 되고 있다.
선지자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악하기로 유명한 아합 왕과 그의 왕비 이세벨의 시대에, 우상에 찌든 이스라엘 민족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선지자이다. 그는 민족이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신, 그들의 머릿속에서 많은 우상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버린 신, 조상들에게서 배운 것은 이제 거의 다 사라지고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바다를 갈랐다던가, 하늘에서 먹을 것을 내렸다던가 하는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