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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삶과 신학

마크 디바인 지음 | 한스컨텐츠
마크 디바인 지음

한스컨텐츠 / 2007년 1월 / 318쪽 / 10,000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며 내게로 와 죽으라고 명하신다."

- 디트리히 본회퍼



1943년 2월, 슐라블렌도르프가 폭약실험을 시작했다.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폭발 전 지지직하는 치찰음 때문에 독일제 폭탄은 사용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그 순간 목사이자 비폭력 저항운동가이고, 주일학교 교사이며 평화주의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그가 슐라브렌도르프의 암살 성공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를 쓴 장본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죽음을 기도할 수 있었을까?

본회퍼는 한가로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절체절명의 문제들에 맞닥뜨렸다. 일촉즉발의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던 나치 정권 하의 독일, 바로 이 히틀러의 제3제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로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구체적인 결단들을 내려야 했다.

"우리의 임무는 국가가 법과 질서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남용할 때 바퀴 밑에 깔린 희생자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그 바퀴 자체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우리는 순교자의 피를 요구하는 날이 온다고 해서 놀라거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



본회퍼의 이런 담대함은 유전된 것이기도 하다. 본회퍼의 할머니인 91세의 줄리 본회퍼는 나치 정권에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시작하자 감시 중인 나치 돌격대의 대열을 헤치고 곧장 유대인 상점에 물건을 사러 들어가기도 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모든 교회가 그 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결국 본회퍼의 지하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된다. 나치는 국민과 국가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법령들을 쏟아냈는데, 이 법령은 강제수용소의 설립을 허가하면서 훗날 본회퍼가 처형당하게 될 수용소를 세우는 근거가 되었다. 1938년, 독일과 전세계는 '수정의 밤'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낀다. 유대인 회당과 상점, 집들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타오르는 화염을 피하려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 이후로 나치 정권은 불에 기름을 붓듯 극악하게 타올랐다.

폭풍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미국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한 본회퍼는 국제적이고 공식적으로 히틀러 반대 운동을 광범위하게 펼쳤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칼 바르트의 생각에 근본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칼 바르트는 자신의 날카로운 충고가 젊은 동료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에 괴로웠을 것이다. 이때 쓴 본회퍼의 저서 『제자도의 대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며 내게로 와 죽으라고 명하신다. 나 스스로 대단한 일을 이루려 함이 아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고 돕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섬김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께 속한 모습이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유대인 친구와 이웃이 새로운 곳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한 칼 바르트 등과 함께 유대인들을 서방국가로 몰래 탈출시키는 일에 가담했다. 반란을 계획한 이들은 이 반란에 히틀러 암살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실제로 암살을 시작으로 반란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일단 이러한 상황이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자 권총이나 폭발물을 전혀 다룰 줄 몰랐던 본회퍼도 자신에게 암살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함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결국 히틀러 암살기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본회퍼는 체포되었다. "용기란 두려움 없는 마음이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 행동하려는 의지다." 이것이 바로 본회퍼가 형무소 독방에 갇혀 보여준 용기였다. 그가 남긴 종이쪽지에는 '수배중인 다른 이들을 배신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자살이 어떤 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인했던 그도 심문과 고문 앞에서 이처럼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잘 견뎌냈다. '옥중서간'인 『저항과 복종』에는 제3제국의 흥망성쇠 앞에서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한 제자가 선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본회퍼는 탈옥을 계획했다가 이내 포기했다. 탈옥에 성공했을 때 게슈타포가 가족과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1945년 4월 5일, 히틀러는 본회퍼를 포함한 일명 '조센 모임'의 회원들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고, 4월 9일 아침 일찍 그는 동료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강제수용소의 담당 의사는 그날 보았던 본회퍼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한다.

"문이 반쯤 열린 독방 사이로 죄수복을 벗기 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본회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 이 사랑스러운 형제가 정말 신실하게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확신으로 기도하는 모습에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형장에서 다시 짧게 기도한 후 담대하고도 편안한 모습으로 단두대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몇 초 후 처형당했습니다. 근 50년 가까이 의사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결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형집행 후 며칠 동안 수용소 밖으로는 연합군의 폭탄소리가 빗발쳤다. 그리고 2주 후, 미군이 수용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방면했다. 그리고 다시 1주 후, 56세의 히틀러는 입속에 권총을 연발로 쏘아 자살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순교한 그리스도인일까? 그는 우리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본회퍼는 현대 세계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복잡한 사건들과 공포를 마주했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기록했던 설교자이자 목사였다. 본회퍼는 성경을 믿는 2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장에서 본회퍼가 추구했던 희생적인 제자도의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씀을 해석하는 습관에 젖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 말라. 말씀이 우리의 말과 삶을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 디트리히 본회퍼

인간적인 마음을 따르지 않으려면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았던 본회퍼는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직관을 동일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해석할 수도 없다고 믿었다. 역설적으로 디트리히가 깊은 묵상과 깨달음, 심지어 기도를 통해 이처럼 확신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생각이 사실임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으로 나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확신이 성경에서 되풀이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이다. 말씀을 통해 듣는 주님의 음성은 이전에 들었던 어떤 확신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무척 놀랍고도 어리둥절한 경험이다. 주님의 제자로서 말씀에 나아가는 것은 칼 바르트의 말처럼 '성경이라는 새롭고 오묘한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성경운동으로의 회귀



1932년부터 본회퍼의 제자였던 한 사람은 그가 학생들에게 "모든 성경말씀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충고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본회퍼는 이 같은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음을 자신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그 후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 오늘날까지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완전히 바꾸어놓은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성경을 깨달은 것이다. … 나는 종종 말씀을 전했고 수많은 교회에서 성경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설교했다. 하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20세기 초반에 성급하게 제기되었던 고등비평에 따라 성경에 접근하는 학자들은 점점 줄고 있다. 그러나 본회퍼가 고등비평의 이런저런 방법론들을 결코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을 해석할 때 반역사적이거나 신비적인 접근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경을 독단적으로 비평하며 읽는 데는 분명한 한계와 위험이 있으며, 그렇게 읽어서는 성경의 진정한 특징을 인식할 수 없고 결국 성경 특유의 보물, 다시 말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디트리히가 슐라이허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아주 간단한 고백이지만 난 성경만이 인간의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며, 우리가 말씀을 통해 응답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겸손히 묻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네."

'성경의 재발견'이라는 그의 '회심'의 여파로 디트리히의 목회 정체성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본회퍼는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다. 그는 형 칼 프리드리히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형님이 보시기에 제가 여러 가지 면에서 좀 광적이고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따금 제 자신도 이런 모습이 두렵습니다. …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처음으로 드디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1936년 4월 본회퍼가 매형 슐라이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도 있다. "제가 어느 순간, 성경을 하나님의 요상한 말씀으로 치부해 버릴 마음이 없고,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온힘을 다해 묻는다고 이야기한다면 이해하시기가 쉽겠습니까? 저에게 성경 이외의 모든 것은 점점 너무 불확실해 보입니다. 전 자신의 거룩한 부분으로만 뛰어드는 게 두렵습니다. … 또한 매형께 아주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제가 이런 식의 성경 읽기법을 깨닫고 매일같이 성경을 보면서 더 놀란다는 사실입니다. 수없이 신학적으로 벗어나 헤매다가 이렇게 기본으로 되돌아오는 법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믿지 못하실 겁니다."

신실한 성경 읽기의 회복을 위해 이처럼 진정으로 참회하며 회심했던 본회퍼는 결코 신학적으로 다른 이들의 사상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신학자로 성장하는 중대한 사건들 속에는 칼 바르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전에 '성경이라는 새롭고 오묘한 세계'와 부딪히면서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경험했던 바르트는 신학을 결코 개인의 큰 희망이나 꿈, 환상을 예측하는 도구로 축소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특히 초반에 바르트는 하나님의 '완전히 다른 면'을 강조했다. 이때까지 바르트의 의도는 인간의 방법과 생각이 하나님의 그것과 다르다는 자각을 회복하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출처를 통해 확인하고 확증하는 일이 아니라 계시나 심판을 통해 나타난다.

말씀이 계시를 통해 오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찾으려면 그것을 그분이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에서 발견해야 한다. 또 말씀이 심판을 통해 오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심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모든 부분에 의문을 품고 이의를 제기하여 결국 오직 참되신 하나님께 저항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온 모든 인류에게 죄가 있다고 심판했다.

본회퍼는 신앙고백이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조금도 잊지 않았다. 그의 저항운동이 고백교회를 통해 알려졌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앙고백과 성경해석 역사를 중시하는 개신교의 신조주의에 관한 든든한 지식 덕분에 성경의 내용을 통달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성경해석에 절대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성경을 깨닫게 된' 본회퍼는 오랫동안 확립되어진 성경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전해지는 말씀을 다시 듣고자 했다. 이 점에 관해서 본회퍼는 개신교교인들에게 자유롭게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상속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자기 스스로 알맞은 때에 성경을 해석하고, 믿음의 각 세대가 말씀을 통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전통과 이 땅의 모든 것을 시험할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성경과 기도



본회퍼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는 예레미야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면서 윤리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생각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질문에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문제 자체도 해결해주신다. 이제 그에게는 주님의 관심, 가치, 목적, 요구, 약속이 주요 관심사로 부상한다. 그것이 진실하고 타당한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하시는 말씀과 세상을 어떻게 판단하시느냐와 일치된다. 본회퍼나 그에 앞선 칼 바르트는 현실이란 놀라울 정도로 성령과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한 것이며, 심지어 동일시된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진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함께 섰다는 말씀이 있다. 성령의 증거를 통해 본회퍼는 스스로 온전한 세상, 진짜 세상, 칼 바르트가 말하는 '성경이라는 새롭고 오묘한 세계'에 이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자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아주 광범위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역사에 빠져든다. 속죄함의 은혜를 입은 주인공이자 당사자로서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의 거룩한 역사 가운데 자신도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거룩한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살아계신 주님의 성품과 목적을 알 수 있는 창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

현실의 실현화



본회퍼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현실의 실현화를 의미했다. 현실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현실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와 약속들을 마주하게 된다. 주님께서 하신 일, 또 그분의 말씀과 약속이 현실에 대해 필적할 만한 다른 해석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께서 모든 의미를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실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진리에 복종함을 의미한다. 또 인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남을 의미한다. 믿음으로 걷는 것은 이와 반대되는 예상들과 모든 증거들에 맞서 현실 가운데 하나님께서 드러나심을 믿는 것이다.

본회퍼는 상황윤리를 거부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하게, 또 심지어 소망이 낳은 낙천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책임감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담대함, 낙관주의, 소망 이 세 가지를 본회퍼의 윤리적 사고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본회퍼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현대인의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의무를 부담스럽지만 감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요구나 부름 없이도 일반적으로 순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최종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나 응답을 기대하고, 심지어 기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 하나님께 어떤 확신이나 특별한 계시를 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평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최선을 다할 때 자유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인도하고 계세요" 혹은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신비주의파인 광명회와 같은 모습은 옳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가 교회에 기대하며 확신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시는 하나님과 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의 마음가짐, 또 이를 기록한 성경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전하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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