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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 만난 주님

앤 그레이엄 로츠 지음 | 예수전도단
1장 아직도 자고 있는가!



머리로는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



거의 30년에 걸쳐 기독교 사역을 하는 동안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많이 만나봤지만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 차이 역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인 45㎝였다. 성경 지식이 풍부하고 충실하게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의 의식과 행사에 익숙하고 기도와 성경공부 모임과 전도에 열심을 다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은 많았다. 하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 돈, 욕구를 희생하고 예수님을 삶의 우선으로 삼는 그런 그리스도인은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앞세우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포기하려는 그리스도인도 별로 없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 명성, 신분, 우정, 재산,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인은 만나기 힘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 어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위대한 그리스도인, 즉 머리에서 45cm 내려와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음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만다.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깨끗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찾아오신다. 그리고 깨어나 하나님을 쳐다보라고 하신다.

이 세상이든, 아니면 자신의 가정이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둔다는 것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세상의 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삶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자신의 삶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만 열심히 바라보느라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그런 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독선이나 비판의식, 영적 자만, 정죄감에 빠져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모두 해결해야 할 난제이지만, 우리가 먼저 모든 문제에 공통분모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사야 시대에 유다가 대했던 최대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최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안정을 이룰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안정을 누릴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 인도, 위로, 소망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최우선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즉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 죄다.

9·11 사태라는 끔찍한 참상이 일어난 후에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미국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했고, 심판의 이유는 국가와 사회의 죄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지적한 사회악은 낙태와 동성애를 허용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분의 백성인 교회를 '불꽃같은' 눈과 '빛난 주석과 같은' 발로 주목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허용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깨우는 기상나팔로 사용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가고 난 뒤, 정부 관리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마저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구조대와 구호물자가 너무나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나누며 따뜻한 온정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미국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솔선수범해 이재민들을 돕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와 내일 일어날 일을 위해 오늘 준비해야 할 필요성에는 모두가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미국 대도시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유령의 도시로 변했다. 더러운 물이 출렁거리는 길거리마다 마치 "너의 죄를 회개하라.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라"라고 쓰여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경고의 메시지는 상대방을 재앙의 요인으로 몰아붙이는 성난 목소리 속에 퇴색해버렸다. 하나님의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를 정치적 논쟁으로 치부했다. 또한 그 목소리들은 재앙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를 체험한 용감한 몇몇 사람들의 간증을 무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권유를 묵살했다.

당신은 주님을 보아야 한다. 주님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마저도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는 당신의 갈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받는 것과는 정반대인 듯하다.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 하나님의 도움은 문젯거리, 스트레스, 압박감, 고통, 재난 등으로 위장해서 온다. 먼저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기 위해서 말이다.

2장 깨어 일어나라!



폭풍은 하나님이 보낸 전령일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가서 처음 신앙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혹은 우연히 참석한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쭈뼛거리며 앞에 나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은 식고 하나님과 누리는 관계는 머릿속에 갇혀 전혀 마음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꼭 일이 터진다. 일종의 실패와 고통스런 일들, 겹치는 불행들, 그러면 자연히 우리 속에는 불만이 생기고, 왜 나에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닥쳤는지 묻곤 한다. 하지만 그런 좌절과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그런 위기를 허락하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인생의 폭풍 속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명심해야 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알아내야 한다. 평온한 때나 교회 집회보다 삶을 뒤흔드는 위기 가운데서 예수님을 더 잘 보게 되고 개인적인 신앙이 부흥되는 일이 많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미국의 테러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의 폭풍이었고 미국인들은 물론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 폭풍에는 하나님이 특별한 말씀이 들어 있으며, 그 말씀은 미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강하고 분명한 메시지였다. 이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지옥으로 향하는 이 세상과 복음에 대해, 천국의 소망과 영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나는 이것이 폭풍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뜻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들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

당신은 눈물로 침대를 띄우고 요를 적셔본 적이 있는가?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온 세상이 캄캄해지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통곡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경험한 것은 불화, 질투, 오해, 거짓말, 배반의 쓴잔인가? 이러한 벽이 당신을 비참하게 고립하는가?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너무 심해서 탈진할 정도인가? 때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드는가?

아무리 당신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할지라도 한 가지는 명심하라. 당신의 생애에 신앙 부흥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짊어진 그 고통의 무게와 짓누르는 압박을 매개체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준비해 그분의 영광에서 나오는 작은 섬광에도 당신의 삶이 변화되도록 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당신은 코앞에 닥친 고난과 씨름하고,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지며 압박은 차츰 더 당신을 짓누를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는 죽지 못해 사는 때도 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그런 삶의 위기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문제를 가져온다. 특히 난생 처음 빠듯한 수입으로 살아야 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렇듯 개인에게나 재정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나는 오히려 큰 기대를 하곤 한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겹겹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 하나님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여긴다. 과연 그 일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나는 그 말씀을 듣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당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신앙 부흥을 위한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준비하라.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눈이 열려 그분의 영광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기상나팔일지 모른다.

3장 눈을 떠라!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신다



만약 하늘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분명 지능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분일 것이다. 나는 그분의 인격과 성품을 알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나 제삼자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알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의 잡다한 의견에 만족할 수 없었다. 진실을 알고 싶었다. 천국에 대해서, 지옥에 대해서,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그런데 놀랍고도 놀라운 사실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주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오직 한 분, 살아 계시고 진정하신 하나님이 존재하는데 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또한 그 하나님은 나와 당신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하신 분이다. 우리는 단지 깨어나 눈을 뜨고 그분을 보기만 하면 된다. 혹 하나님이 억지로라도 당신의 마음눈을 열어서 자신의 영광을 보여 주려고 하시는가? 그러한 목적에 이용하시고자 당신에게 마음과 정신, 재정의 위기를 견디라고 하시는가? 혹시 당신은 상황이 악화될수록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려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닌가?

더 이상 하나님을 거부하지 말라. 하나님께 화내고 불평하지도 말라.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 있지 말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막무가내로 간구하지 말라. 더 이상 자신과 환경이라는 포장지에만 신경 쓰지 말라. 당신의 태도를 바꾸라.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라.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는가. 포장지를 버리고 안을 들여다보라.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눈을 여시도록 하라. 눈을 떠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 기도하면서, 기대를 가지고, 진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지만 마리아는 미처 보지 못했다. 아마도 슬픔과 혼동과 무력감과 절망 때문에 눈이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곁에 서 계셨건만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이 조용히 인내하시며 당신의 삶 가운데 그분의 능력을 증거하려 하시는가? 그 능력은 최초의 부활절 아침 이후 조금도 희미해지거나 감소되지 않은 능력이다. 당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 그 문제에 집중하느라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눈물이 앞을 가려 주님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고통, 슬픔, 혼란, 무력감, 절망 때문에 생애 최고의 축복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이 바로 당신 곁에 계신 것은 아닌가?

소박한 옷과 신발로 포장된 인간의 육체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 그분을 보라. 당신의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신 그분을 보라.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분을 보라.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의 마음에 부드러운 음성으로 '너를 사랑한다. 너와 함께, 너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나를 초청하'고 속삭이는 그분을 보라. 만약 당신이 마음의 눈을 떴다면, 그래서 그분을 당신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당신의 삶 속에 모시기를 바란다면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자.

조심해야 한다! 모든 교회가 죄를 허용하고 있다. 고의로 짓는 죄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근슬쩍 들어오기 때문에, 서서히 용납하고 받아들이다가 종국에는 그 죄를 자라게 하는 지경까지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죄는 결단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부르셔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삶 속에 있는 죄를 꾸짖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거룩함과 순결을 요구하신다. 보이는 죄악이 아무리 흉측하더라도 보는 것이 유익하다. 만약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되려면, 반드시 그런 '더러움'과 직면해서 고백하고, 깨끗이 하고, 고쳐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삶에 빛을 비추었는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 지위, 인격, 임재, 찬양, 거룩함에 대한 설명이 당신을 좌절하게 만들었는가? '내가 그렇게 더럽고, 나쁘다니! 이게 다 죄라고?' 그럼 이제는 희망을 가져라! 당신의 마음눈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열려 있다. 이사야가 눈을 열어 예수님이 정말로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삶에도 '빛'이 비쳤다. 그리스도의 눈부신 순결함과 완벽한 거룩함 앞에서 이사야의 눈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4장 마음을 찢어라!



그분은 너무도 크시고 우리는 너무도 보잘것없다



주님을 보기 전에, 이사야는 당시의 변화하는 세상을 향해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죄를 회개하라고 외쳤다.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이사야는 온 맘으로 절규하듯 이 말씀을 전하면서 타락한 사회의 죄악들을 하나씩 들추어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고 있었다.

저녁 뉴스를 보거나 조간신문을 읽으면 가끔 나 역시 삿대질을 하면서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라고 소리치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나의 초점은 오로지 사람들이 짓는 죄악에 있었다. 주님을 보기 전에는 이사야도 사람들의 죄악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보고 눈이 열린 이후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새롭게 깨달았을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사야는 통곡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신비한 황홀경으로 빠져들지도 않았다. 엄청나게 신령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구약시대 요엘 선지자의 표현을 빌자면 이사야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돌이켜야 했다. 무력함과 좌절 그것이 이사야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주님이 발하시는 거룩함과 순결의 빛에 노출된 이사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숨을 수도, 더 이상 누구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희생자가 아니라 죄인이었음을 깨달았다.

당신의 삶을 되돌아보라. 당신이 지은 죄가 천근만근 무겁게 양심을 짓누르던 때가 언제였는가? 당신의 믿음이 너무도 적고, 형편없고, 어리석고, 너무도 구제 불능처럼 느껴져서 살고 싶은 의욕조차 잃어버린 적이 언제였는가? 그렇다면 바로 그 순간이 죄 없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던 순간이 아닐까? 당신에게는 최고로 끔찍했던 그때가 사실은 가장 주님과 가까웠던 때가 아닐까? 당신의 죄가 그분의 거룩한 빛 가운데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당신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던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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