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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원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다

옥한흠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
행복한 가정에는 대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입니다. 아내와의 담소를 나누는 동안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는 미더운 친구이자 다정한 말벗이지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이 느껴지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의 행복을 바라며 살아가지요. 그런데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조건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으뜸으로 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물질이 풍족하면 행복이 쉽게 따라오고, 가난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더 화목하고 서로 더 많이 사랑한다는 미담이 더 많이, 더 자주 들려옵니다. 물론 부잣집은 화목하지 않고 가난한 집이라야 화목하다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하지요. 가난한 가정도 다투고 싸우니까요. 부잣집이라고 해서 모두 불행한 가정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가족끼리 화목할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은 대화의 부재에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형제자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는 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또 있을까요?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모든 원인은 대화의 부족에 있습니다. 하지만 불화를 일으키는 잡다한 이유가 밑바닥에 아무리 많이 깔려 있다고 해도 대화만 이루어지면 화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남자는 하루 평균 2만 5,000마디 정도의 말을, 여자는 3만 마디 정도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남편은 일과를 마칠 때쯤이면 이미 2만 5,000마디의 말을 거의 다 해버리고, 그야말로 녹초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거꾸로 아내는 3만 마디의 말을 다하지 못하고, 아니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한 사람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기다리니, 그 관계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가족 사이에 대화가 줄어들고,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가족들은 대화의 빈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습니다. 대화가 빈곤하게 되면 고독이 찾아옵니다. 나는 고독만큼 무서운 살인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죄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고문당하는 것도 아니요 굶는 것도 아닌, 독방에 갇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수용소에서 지내는 그들은 서로 교제하며 마음을 나누는 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막는 것은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고독이 심해지면 합병증이 생기게 되는데, 그중 가장 무서운 병이 오해라는 감정입니다. 대화를 나누어야 할 상대와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섭섭한 감정이 생기고, 이 감정은 오해를 낳게 되는 것이지요. 오해는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마비시키는 독침입니다. 오해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의 벽은 점점 두꺼워집니다. 아침저녁으로 형식적인 인사와 웃음을 나누지만, 마음과 마음은 완전히 닫혀 있는 비극적인 부부와 가족들…….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많은 가정이 진실한 대화를 잃어버린 비정한 공동체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이 공간은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잠깐 동안 함께 머무르는 참 어색한 곳이지요. 서로 쳐다보려니 쑥스럽기만 합니다. 자연히 눈은 층수를 가리키는 안내판을 향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한 곳을 쳐다보면서 어색하게 내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곳이 바로 사회라는 엘리베이터가 아닐까요? 더구나 가정이 이런 엘리베이터 같은 곳이라면, 이는 더할 수 없는 비극이겠지요.



가정에서의 대화는 단순히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깊은 관심이며,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는 애정입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한자리에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대화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가 오고 가는 가정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가정이든 부부 사이에 금이 가는 시련과 불행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대화가 있는 가정에는 불행이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가난을 이깁니다. 고난을 극복합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합니다.



진짜 인생은 해 아래 있지 않습니다



가장 원초적인 기준으로 세계를 둘로 나눈다면, 해 위의 세계와 해 아래의 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해'는 주 세계를 둘로 가르는 기준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 위의 세계는 영원불멸한 신이 존재하는 영원의 세계이며, 해 아래의 세계는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해 위에 있는 영원한 세계라든지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는 고민조차 않으면서 해 아래의 철학, 즉 인생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좋은 집을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돈을 벌어 자기 마음에 똑 드는 집을 갖게 되었어요. 넓은 정원에는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크고 평평한 돌도 가져다 놓고요. 그런데 이 돌들은 그 집주인이 한국전쟁 와중에 수십 번 사선을 넘으며 피를 흘리고 싸우던 전장에서 가져온 것들이었어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그 돌들을 정원에 가져다 놓은 거죠. 그리고 2층에는 북쪽으로 창이 난 서재를 하나 만들어 책도 읽고 조용히 명상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어요. 북쪽에 남겨 놓고 온 부모님을 늘 생각하는 마음에서였지요. 그 집 어느 한 곳도 의미 없이 만든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장의 생각을 따라 아내와 자녀들은 집을 볼 때마다 항상 그 의미를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집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남은 가족은 그 집을 더 유지하고 지탱할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요. 새 주인이 이사 왔는데, 그는 그 전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의미를 담아 그 집을 지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새로 온 가족들에게 그 집은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전쟁터에서 가지고 온 돌도, 지붕도, 북쪽으로 창이 난 서재도 가족들을 위한 거실도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해 아래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해 위의 실체와 해 아래에 있는 실체를 연관 시켜놓고 볼 때 비로소 해 아래 있는 것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해 아래의 인생으로 세상을 보면, 아침이 되면 해가 올라오고 저녁이 되면 서산으로 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할 뿐입니다.



인생에는 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세대만 지나면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인생은 망각의 제물입니다. 인생은 한평생 땀 흘려 쌓은 것을 모두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고 손 털고 가는 빈털터리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마지막 가는 길에 무덤 하나 소유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영원히 잠드는 것이 인생입니다.



헛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해'라는 존재를 없애야 합니다. 해 위와 해 아래를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해 위의 영원한 세계를 통해 우리 인생을 살피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해 아래의 인생은 떴다 졌다 하는 해를 보면서 인생의 단조로움과 지겨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해 위의 세계를 인정한다면 공중의 해를 통해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생물이 살아 숨쉬게 된 것을 감사하며 감격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바다 위를 여행하는 사람이 여객선에서의 시간이 의미가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밤새도록 고기를 잡는 어부에게 돌아갈 항구가 없다면 그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항구가 있기 때문에 그가 흘린 땀이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 인생이 이렇게 태어나서 죽고, 또 태어나서 죽고, 그저 살다가 운 좋으면 행복하고 운 나쁘면 고생만 하다가 죽는 인생이라면, 그것만이 전부라면 의미 있는 인생이란 없을 겁니다.



해 아래의 인생만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헛됩니다. 하늘 위의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잘살든, 못살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어떤 삶이든지 살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비관론이나 운명론 따위는 없지요. 이들은 자신 있고 당당하고 평안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한없이 정답고 매력 있는 말입니다. 그 범위도 아주 넓은 말이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사랑, 부부간의 사랑, 연인끼리의 사랑, 형제 자매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우정, 불우이웃에게 베푸는 온정, 하다 못해 애완동물을 아끼는 마음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데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범주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 많은 사랑 중에서 어떤 사랑이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일까요? 누구든지 사랑문제 앞에서는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는 것 없이 아낌없이 주었나, 헌신적으로 사랑했나, 한없이 사랑했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나……. 이 모든 물음에 고민하지 않고 "네"하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사랑하려고 매번 다짐하지만 무너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나도 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기뻐했던 적이 있습니다. 웃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이 정말 행복해서 웃는 걸까?' 하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한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 마음 가득히 만족을 주고 기쁨이 넘치게 하는 진실한 사랑을 기대했지만 실망하고 상처 입고 나서, 여전히 마음속 텅 빈 공간에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증만 일어났었지요. 나야말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은 연기나 기침처럼 감추기 어렵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감추기 힘든 사랑을, 내 주위를 연기처럼 감싸고 있던 그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실망하고 상처 입은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빛과 같은 사랑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에게서 새어나오는 빛조차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하니 우리는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곤란스럽고 어려운 일이 있을까요? 눈만 뜨면 미운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누구든지 가리지 말고 진실로 사랑하라는 말은 숨이 막히게 합니다. 이럴 때는 먼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실천해보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 자주 보는 이웃들부터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점점 확대되어 자연히 잘 모르는 사람도 사랑하게 되지 않겠어요? 바로 앞에 보이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안 보이는 존재까지도 진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감출 수 없고 죽일 수 없는 것이지요.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부터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 봅시다.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언젠가 못다 한 사랑을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사랑할 수 없음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의 씨앗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세상에는 사랑을 주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요한 사람도 없습니다.



진짜 사랑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마음과 목숨,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 즉 나의 전 인격을 송두리째 동원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내 인격 전부를 동원하지 않고는 내 몸을 사랑할 수 없듯이 상대를 나 지신처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같이 남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 쉬운 말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한 마디라도 진실하게 하려면, 인격 전부를 동원하고 소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부를 투자하지 않으면 진실하게 사랑을 할 수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지인 중에 한 사람이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4개월 동안 누워서 죽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영양제 주사로 연명했지요. 그러나 그는 육체가 주는 고통과 괴로움을 이를 악물고 참고 또 견뎌냈습니다. 그가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도 참는 집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병원에 찾아갈 때마다 만나는 그의 부인은 4개월 동안 밤이고 낮이고 남편 곁을 떠나지 않고 남편과 함께 고통을 나눴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을 통해서 한 몸이 되어 사랑하기 때문에 똑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통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려면 때로는 치미는 울화도 참아야 하고, 경제적인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참아내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며 인격을 동원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만큼 고통이 따릅니다. 사랑의 표현 하나하나에 자신의 전 인격이 송두리째 뿌리뽑히는 것 같은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진실한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이 이 사랑의 고통을 모릅니다. 아니, 사랑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고통 당할 것 같으면 아예 사랑을 피해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내 몸과 같이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좀더 나은 길을 선택하라는 뜻과 같습니다. 누군가 싸움을 걸어 왔을 때 똑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항해서는 안 되겠지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워지는 사람 앞에 가서 사랑을 전하기 위해 한마디라도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너무 냉랭해서 도무지 사랑이라는 것을 내게서 찾아볼 수 없다면 마음 문을 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악한 마음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뿐입니다.



내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서 얼음처럼 차가워진 관계가 있지는 않은지 둘러봅시다. 사랑의 치료법은 더욱 사랑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에는 대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입니다. 아내와의 담소를 나누는 동안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는 미더운 친구이자 다정한 말벗이지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이 느껴지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의 행복을 바라며 살아가지요. 그런데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조건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으뜸으로 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물질이 풍족하면 행복이 쉽게 따라오고, 가난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더 화목하고 서로 더 많이 사랑한다는 미담이 더 많이, 더 자주 들려옵니다. 물론 부잣집은 화목하지 않고 가난한 집이라야 화목하다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하지요. 가난한 가정도 다투고 싸우니까요. 부잣집이라고 해서 모두 불행한 가정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가족끼리 화목할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은 대화의 부재에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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