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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성령의 축제

라인하르트 본케 지음 | 두란노
1부 믿음이 기적을 부른다



희망으로 일어선 앉은뱅이 여인 태어날 때부터 허리가 안 좋았던 진은 무심결에 넘어져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게다 가 장기간의 투병과 약으로 심장과 폐가 약해져서 공기 여과기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되었다. 의 사는 마지막으로 수술을 한 번 더하면, 목숨이 위험하지만 절반의 치료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진은 현재의 고통 속에서 남은 생을 살지 아니면 마지막 수술에 목숨을 걸지,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계속 교회에 나갔다. 그녀는 중고등부 교사로서 활발하게 봉사했고, 십대들을 사 랑하며 그들에게 헌신했다. 십대들은 그런 그녀를 고마워했고, 단지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한 가지 사건이 일어 났다. 교회에서 세 살 꼬마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었다. 어린애다운 단순한 기도였다. 그때 진의 영혼 깊은 곳에서 뭔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녀는 너무도 생생한 꿈 두 가지를 꿨다. 첫 번째 꿈에서 그녀는 척추 수술을 받다가 수술대 위에서 죽었다. 또 다른 꿈에서 진은 넓은 실내에 휠체어에 앉은 열두 사람과 함께 있었다. 외국 억양의 영어로 말하는 특색 있는 목 소리의 남자가 첫 번째 휠체어로 가서 한 여자를 위해 기도했으나 그 여자가 일어서지 못하자, 진에 게 와서 기도했고, 진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치료되었다. 그녀는 죽음의 꿈과 생명의 꿈 중 생명 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후 그녀는 두 번째 꿈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 기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2주 후에 영국 버밍햄에서 청소년 집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진 닐도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나는 버밍햄의 집회 장소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둘러보며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 었다. "주님, 오늘 밤 무엇을 하시렵니까?"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을 보고 있을 때, 주님께서 왼쪽 끝 에 있는 한 여성을 주목하게 하셨다.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휠체어에 앉은 저 여자가 오늘 완 쾌될 것이다." 휠체어에 앉은 진은 내가 설교를 시작하자 내 목소리가 꿈속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같 다는 것을 느끼고 강한 기대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날의 집회는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청소년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사람은 단상으로 나오라고 하자, 거의 1,500명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집회 주최자가 시간이 15분밖에 남 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당황하여 급히 내 앞에 보이는 첫 번째 휠체어로 다가가서 여자에게 기도하고 말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오." 그녀는 짜증난 표정으로 일어서다가 다시 앉았다. 나는 그녀가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멈칫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여자가 왼쪽 끝에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나는 그녀에게 뛰어가서 그녀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 다음에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진은 처음에 바닥에 쿵하고 넘어졌다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수의 이 름으로 걸으란 말에 진 닐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치면서 실내를 빙빙 돌았다. 골반 뼈가 없던 상태 에서 완전히 치료된 것이다. 이 일 후 그녀의 남편은 예수를 영접하였고, 지금은 가족전체가 전 세계 를 다니며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우리 두 사람의 삶 속에서 역사하셔서 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 한지 모른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신가!

부르심의 뜻은 '사랑'이다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북쪽의 트랜스발 분지의 넓은 들판에 서 있었다. 집회가 끝나 모두 흩어진 뒤 하나님과 단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다. 그 분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밤마다 아프리카 지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는 꿈을 꿨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속삭이셨다. "아프리카가 구원될 것이다." 마침내 그 꿈은 나의 비전이 되었고, 나는 <열방을 위한 그리스도>라는 선교기관을 세워 수백 명이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르고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나는 감사드렸다.

천천히 차를 몰며 숙소로 향하는데 깡마른 십대 소년이 갑자기 앞에 나타나 내 차를 세웠다. 데이빗이라는 그 소년은 안수기도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성령을 받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듣자 내 가슴속에 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소명이 일깨워졌다.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다. 그는 울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와 작별을 하였다. 몇 달 후 트랜스발 분지의 원주민 부족 지역에서 일어나는 부흥의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그것이 데이빗과 연관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지역에 다시 사역하러 찾아갔을 때 데이빗이 찾아왔다. 우리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날 밤에 목사님의 기도를 받은 후 마치 공중에 떠서 가는 것 같았어요. 마을에 도착했는데 제가 아는 아주머니가 둘째 아이를 보따리에 싸서 안고 울며 가고 있었어요. 그 아기는 열이 심해서 울고 있었어요. 저는 그 아이가 곧 죽을 것임을 직감했어요. 저는 제 안에 계신 성령을 계속 느끼고 있었어요. 그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 전에는 몰랐던 억누를 수 없는 사랑이 제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어요. 그러자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배고프다고 말했어요. 이것이 소문이 나서 추장의 딸을 고치고, 마을에 복음을 전했어요. 제가 아는 곳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어요." 데이빗이 가고 난 후, 나는 그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부족의 강한 금기 사항을 깨고 아픈 아이를 위해 기도해도 되냐고 물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것을 긍휼,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동정, 공감, 애정을 뛰어넘는,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 후의 진실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증인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데이빗은 고향마을을 떠나 슬럼가에 들어가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경고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강하게 나타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멀어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틀림없이 그 과정은 서서히 진행됐을 것이다. 그는 실패, 실망, 낙심, 퇴보, 시련, 시험, 유혹을 맞았을 것이며, 이런 것들은 우리 모두에게 온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선택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누구라도 탕자가 될 수 있다. 내가 다시 한 번 데이빗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얼싸안고 하나님의 사랑은 1977년의 밤이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그의 회개를 돕고 양을 먹이라 말해줄 것이다.

외로운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데이빗 이타는 나이지리아의 한 무슬림 가정에서 외동으로 자랐다. 어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냉담한 아버지에게서는 한 번도 친밀감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았다. 친구도 별로 없던 그는 외로움의 한계에 도달하여, 외로움을 떨쳐버리려 대학에 들어갔다. 곧 그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였고, 외로움은 사라졌다. 학생, 교직원, 심지어 청소부들까지 모두가 데이빗을 좋아했다. 어느 날 한 전도집회에서 데이빗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의 아버지의 성격처럼 무정하고 완고하고 냉담한 무슬림의 믿음과 달리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늘에 계신 사랑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죽게 하셨다. 그는 예수님을 선택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등교하던 데이빗은 차에 치어 넘어졌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병실에 있었다.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고, 팔 다리엔 깁스가 되어 있었다. 말을 하려는 순간 입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의사는 그것이 심각한 두부 손상결과로 나타나는 실어증이라고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는 치료비와 입원비로 몇 주 내에 가진 돈을 다 썼다. 가재도구들을 팔아서 약값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옛 친구들이 그의 짐을 훔쳐갔는지 방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친구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절망의 구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는 결국 외로울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

데이빗이 자살을 결심하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어떤 다른 분은 그를 위해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크고 상냥한 눈을 가진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의 병실에 들어왔다. "내 이름은 리타예요. 간호사 교육을 받고 있지요." 성경책을 본 그녀는 반가워하며 성경책을 집어 들다 책갈피 속에서 데이빗이 쓴 자살 유서를 읽었다. "절대로 이렇게 하면 안돼요! 이런 끔찍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데이빗은 노트에 적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친구들은 나를 배신했어요. 나는 가진 것을 모두 잃었어요. 나는 혼자예요. 하나님조차 나에게 신경 쓰지 않으세요." 리타는 성령께서 그녀에게 그가 자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으려면, 그녀가 먼저 그의 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의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리타는 매일 데이빗을 찾아왔다.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그가 있는 마르쿠디 종합병원에 취직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 청년이 청혼을 했을 때도 데이빗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힘들다고 거절했다. 그녀는 매일 그를 찾아왔고, 식사도 준비해 왔으며, 믿음이 주님 안에 굳게 서도록 격려했다. 그러나 데이빗은 그녀의 견고한 믿음 앞에서 더 힘들었다. 자신은 그녀에 견주어 전혀 자격이 없다고 느껴져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마음이 더 편했다. 그는 사랑하기 힘든 괴팍한 사람이 되어갔다.

우리 팀이 그 도시에 갔을 때 나는 데이빗과 리타의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2003년 2월에 <열방을 위한 그리스도>는 마쿠르디에서 전도 집회를 개최했다. 집회소식을 들은 리타는 데이빗에게 참석을 권했다. 데이빗 자신도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나님께 치유를 구하기로 했다. 그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본케의 전도 집회에서 치료해주시길 간구하기로 했다. 만일 이번에 실패한다면 그는 리타와의 약속을 깨고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데이빗은 본케와 직접적으로 만나 기도를 받고 싶었으나, 너무 사람들이 많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치료가 필요한 각자의 신체부위에 손을 얹으라고 한 뒤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에, 데이빗도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을 때 위에서 내려오는 따뜻하고 강한 빛을 느꼈다. 빛 속에서 한 손이 내려오더니 그의 뒷머리를 만졌다. 그 손이 뭔가를 제거하자, 그 즉시 큰 짐을 더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데이빗은 반복해 말했다. 자신의 온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하나님 아들의 귀한 이름 밖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날 데이빗과 리타 부부는 여러 곳을 다니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신 일을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셔서 구원의 은혜와 치유의 능력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가족, 하나님의 보물섬그 다리는 고정시켜주는 장치나 받침대가 전혀 없이 깊고 험준한 바위 골짜기 위에 위험하게 걸려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다리로 계곡을 건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때 한 어리석은 사람이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떨리는 자신의 발을 응시하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어 건너편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골짜기에서 짙은 안개가 솟구쳐 올라 남자 바로 앞의 나무판자를 덮었으나,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가 안개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면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내가 그에게 소리쳐 경고하는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고통의 칼날이 내 영혼을 찔렀다. 그 남자는 나의 형인 위르겐이었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안개 속으로 들어가, 추락했다. 나는 잠을 깼다. 침대보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형이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방황하고 있음을 알았다. "주님, 제가 본 꿈이 무슨 뜻입니까?" "위르겐은 죽음으로 가는 다리 위에 있다. 만일 네가 그의 불신앙에 대해 경고하지 않으면,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

우리가족은 5남 1녀로 프러시아에서 피난 나올 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 나왔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어도 믿음만은 풍성했다. 처음에 본케 집안의 여섯 남매는 믿음의 유산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형들은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쟁 중 우리가 경험한 일조차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우연, 운, 운명 따위로 돌렸다. 나의 형들은 모두 주님을 버렸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으로 봤고, 그들의 지성을 사용하여 우월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 살 때 아프리카 선교사의 소명을 받았고,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위르겐을 포함해서 형들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와 주님의 관계를 공공연히 비웃고 열등한 인간종족으로 여기고 핍박했다. 그들은 각자 선택한 학문의 영역에 부지런히 정진했다. 내가 사역에 대해 힘쓰던 때에도 형들은 내 사역을 비웃을 따름이었다.

주님께서는 내게 편지를 써서 꿈에서 본 것을 말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꿈에서 본 것을 써서 형에게 보냈다. 얼마 후 형이 내게 보낸 편지를 받았다. 형은 아내와 헤어지고 친한 친구도 세상을 떠나 자살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꾼 꿈과 똑같은 꿈을 꿨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이 꿈이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이면 동생 라인하르트를 통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얼마 후 내 편지를 받고나서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드렸으며, 죄용서 받았다고 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엉엉 울었다.

가족의 유대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깊은 영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형과 나를 하나님께서 연결시키셔서 똑같은 꿈을 꾸게 하실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방법들의 한 예일 뿐이다.

홍해를 가른 나이지리아 탈출기수백 명이 살해되고 있었다. 폭도들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였다. 폭도들은 만나는 기독교인들마다 살해했다. 공군장교가 찾아와 우리에게 최대한 빨리 떠나라고 말했다. "목사님이 여기 오래 머물수록, 폭동은 장기화될 것입니다." 슬픔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나이지리아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그러나 내가 여기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카노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불타고 있었다.

전도 집회 시설팀 팀장인 윈프리드 웬트랜드가 내게 왔다. 그와 아내는 불타는 카노의 연기보다 더 뜨겁게 영혼구원의 사명에 불붙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12년을 생활했다. 그가 말했다. "아내와 저는 남아서 장비들을 집으로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아내는 임신 9개월이었다. 나는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꺾을 수는 없었다. "목사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히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든 죽든,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지켜보실 것입니다. 제발 우리를 주님께 불순종하게 하지 마세요." 윈프리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내가 그 음성에 불순종하라고 말할 순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얹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그들을 둘러싸 주시기를 기도했다. 나는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정말로 두려웠다. 카노의 거리에서 기독교인들이 색출되어 살해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윈프리드가 그 거리에서 피처럼 붉은 색에 블록체로 J-E-S-U-S라고 새겨진 대형트럭을 장시간 운전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적기를 몸에 두르고 전투지역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전도 집회 팀은 윈프리드 가족만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우리가 탄 버스는 공항으로 달렸고, 곧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뒤에 남은 윈프리드와 그의 가족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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