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끝에서 발견한 감사
박남규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
제1부 영혼아, 영혼아 - 병상에서 만난 사람들기다리시는 아버지"무슨 일이 있으면 지체 말고 바로 연락을 주세요!" J씨의 가족들에게 신신당부를 해 놓고 병원 문을 나섰지만 '그래도 오늘은 견디시겠지'하고 생각했다. 다른 환자를 만나기 위해 인근 병원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J씨 아내의 음성은 긴박했다. 나는 즉시 모든 약속을 미루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J씨는 2년 전 간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각고의 투병 끝에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이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자신을 치료해 주셨다고 기뻐했는데 회복된 지 반년이 조금 넘어 신장과 다른 장기에 암세포가 전이된 것이다.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왜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인가요? 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죠? 왜?" 하고 분노하며 괴로워했다. 우리가 집으로 찾아가도 냉정하게 거절해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우리 봉사자들은 그의 고통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인내의 한계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죽음에 직면한 당사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얼마가지 않아 J씨는 분노의 감정을 버리고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가장이 변하자 가정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부인과 아이들이 안정을 찾았고, 그로 인해 식구들의 흩어졌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투병하기 시작했다.
내가 급히 병실에 도착했을 때 J씨는 주님이 허락하신 길을 거의 다 달린 상태였다. "선생님! 이제껏 짊어지고 온 무거운 짐을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선생님을 기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선생님을 맞이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수많은 천군 천사가 선생님을 호위하고 밝은 빛을 향해 걸어가도록 인도해 주실 거예요."
육신의 생명이 꺼져갈 때 가장 마지막까지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청력이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을 그의 귀 가까이에 서서 그가 평안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J씨가 투병 중 즐겨 부르던 찬송가 <내 진정 사모하는>을 부르며 천국에 입성하려는 그를 응원했다. 그렇게 찬송과 말씀으로 위로하기를 세 시간이 흘렀다. J씨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고 기진하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이 세상의 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J씨를 바라보는 것은 애가 타고 녹아 흐르는 것처럼 큰 아픔이었다.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임종을 보아 왔지만, 이토록 힘든 임종은 처음이었다. 찬송과 설교와 기도를 하도 많이 해서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이토록 세상을 향한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 있는 가족들을 돌아 보았다. 그런데 꼭 자리에 있어야 할 J씨의 자녀들이 보이질 않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J씨가 요양을 위해 강원도로 내려가 있다가 두 내외만 서울로 올라왔는데, 자녀들이 뒤늦게 연락을 받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지방에 있던 자녀들이 늦은 밤을 헤치고 달려왔다. 아들은 병실에 뛰어들자마자 "열심히 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빠가 먼저 가 계신 천국에서 나중에 만나요! 아빠 약속해요." 하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아들의 말에 식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한마디씩 전했다. 그리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고, 들어야 할 말을 들은 J씨는 이내 평안해져서 자신의 52번째 생일을 3일 남겨 놓고 주님 앞으로 갔다.
J씨를 주님께 보내고 돌아오는 새벽하늘에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식들을 보기 위해 끝까지 기다린 J씨의 모습이 마치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며 문밖에서 애태우시는 하나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 저들을 찾으실 때 제가 더 충성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찾으시는 저들을 위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나는 행복한 사역자"징글벨, 징글벨." 휴대폰 벨소리를 캐럴로 막 바꿨을 때 협력 사역을 하고 있는 장기기증운동본부의 한 형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가 이상한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목사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해서는 자살한 사람의 시신도 받아 주냐고 물었거든요."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자문을 구했다.
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 어쩌면 전화 속의 그 사람은 고통스러운 병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살을 결심할 만큼 고통받는 형제라면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 나는 받아 적은 전화번호로 계속 연결을 시도했지만 부재중이니 메시지를 남기라는 기계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벌써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화번호의 국번을 통해 대략 주소를 알아내고 그 근방에 사는 봉사자와 동행했다. 형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산동네였다. 길 가던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찾아간 형제의 집은 사람이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그가 천장만을 응시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왜소하고 깡마른 체격의 그는 가끔씩 견디기 힘든 통증에 얼굴을 찡그릴 뿐 우리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쿠! 이거 헤매고 올라왔더니 다리가 엄청 아프네요!" 내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너스레를 떨었다. 방 안은 쓰레기와 음식 찌꺼기가 담긴 식기들로 가득했다. 형제가 입을 열어 "그래도 이곳은 저 아랫동네보다 공기도 좋고, 해를 서울에서 제일 먼저 볼 수 있어요."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형제가 자기 집에 애착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직은'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집은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판잣집이었다. 그래도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지붕을 뚫어 만들었다는 '지붕창'은 나름대로 운치 있어 보였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왜 죽으려고 해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제 나이가 마흔입니다. 한때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요. 가구 공장을 운영하면서 아내와 단란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젊은 날에 무절제하게 산 탓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질병보균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모든 게 제 탓이었지만 아내에게 온갖 분풀이를 했습니다. 결국 이혼을 했고, 사업도 망했어요. 설상가상 어느 날부터 소화가 잘 안 되어서 병원에 갔다가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독하게 마음먹고 잘 버텼어요. 그런데 암이 골반으로 전이되어서 이제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저로서는 이 고통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형제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아버지 역시 위암으로 투병하던 중 골반으로 전이되었고, 가족들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농약을 마시고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고통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 기억은 더 또렷이 되살아났다. 형제는 차분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혼한 전 부인이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듣고 생명처럼 아끼던 서민아파트를 내주었고 자신의 몸은 기증하기로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은 장례를 치러 주는 사람에게 주기로 유언장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주변을 정리하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죽음의 공포는 더해만 갔다. 그는 무섭고 떨려 가만히 누워 겨우 요기만 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에게 가장 먼저 해 줄 일은 그가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이 급선무였다. 통증 완화를 위해서 협력 병원들과 협의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형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당장 끼니를 해결해 주어야 했기에 가지고 간 생식을 먹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형제에게는 낳아 준 어머니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 분에게도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았다. 그가 지금까지 받아 보지 못한 사랑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권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주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사건을 전하고, 남은 삶을 사랑과 평안 가운데 보내도록 섬겼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난 1월 14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그가 듣고 마음을 열었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이루어져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감사함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나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내가 조금만 피곤해 보여도 안쓰러워하며 "목사님은 왜 환자들, 그것도 가장 고통 받는 암 환자들을 위해 이 사역을 하십니까?" 하고 묻는다. 그 물음에 내가 "다른 사역자들이 힘들어하는 사역을 하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면 그들은 또 무엇이 그리도 행복하냐고 되묻는다. 이쯤 되면 나는 내가 왜 행복한 사람인지 반추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정서적, 사회적, 물질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죽음에 대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빈부의 차이와는 상관없다. 나는 죽음 앞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을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면서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 그 속에는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오묘함이 있다. 이런 기쁨을 아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도록 섬기는 특권과 함께 유가족들과 '우리'가 되어 삶의 변화를 통한 승리를 맛보는 현장에 서 있다. 어찌 내가 행복한 사역자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섬김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주께서 나에게 믿음과 사역을 통한 감사를 주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을 섬기는 사역은 하나님이 나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은혜의 비밀스러운 통로이다.
그렇지만 올 한 해 소망이 있다면 내가 행복하지 못해도 좋으니 더 이상 고통 받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소망일 뿐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세상의 환경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우리 자신을 바꾸지 못하면 결국 나는 여전히 오늘도 '행복한 사역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맡은 일에 감사하며 그들을 섬길 것이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 3:22, 23).
환자에서 호스피스로환자의 명단을 펼쳐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환자 명단과 호스피스 봉사자 명단에 중복되는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환자이면서 자신보다 더 연약한 자들을 섬기기 위해 자원하여 봉사자로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다른 봉사자나 환자보다 더한 간절함이 베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들 중에 특히 마음을 더 아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임 선생이다. 그의 아내의 요청을 받고 처음 그의 집을 찾았던 것은 더운 여름이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그 원인은 모태신앙이면서도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던 임 선생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번창한 사업체를 거느린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임 선생은 경제 사범으로 구치소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다. 구치소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그에게도 고통의 나날이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부터 소변을 마음대로 볼 수 없게 되어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악성 방광암이었고, 치료를 위해 석방되었다.
그는 항암제 후유증으로 머리털은 하나도 없었으며, 부종으로 퉁퉁 부은 얼굴에는 불만스런 표정이 가득했다. 나는 말씀을 전하며 소망을 가지고 투병하자고 권면했다. 처음엔 닫힌 마음을 열지 않던 그가 차츰 깊이 묻어 두었던 믿음을 회복하고 의미 있는 투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차 치료가 잘 마무리 되는가 했는데 암이 재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병이 재발했으니 전에 받았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그것도 자주 해야 한다는 말에 그는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이 화를 냈지만, 한 가닥 소망을 걸고 치료에 임했다.
하루는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그를 보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임 선생, 그렇게 두려워하지만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호스피스 봉사자로 섬겨 보는 것이 어떻소?"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목사님, 내가 환자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하실 수 있습니까?"
내 제안을 뿌리치고 돌아갔던 그는 1주일 후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하루 이틀 고민을 거듭할수록 꼭 해야 할 일 같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며 호스피스 사역에 지원했다. 그는 지금 능력 있는 봉사자이다. 그의 투병 생활이 다른 환자의 투병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환자들을 섬기며 사역 내용을 보고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완쾌된 자의 넘치는 기쁨이 묻어난다. 다른 사람은 똑같은 병세로 수술과 치료를 여섯 차례나 받아야 했는데 그는 오늘도 "아무 문제없음"이라고 쓰인 진단서를 들고, 환자이자 봉사자로서의 삶을 활기차게 살고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베드로전서 4:7-11).
어느 유학자의 병상 세례영정 밑에 있는 성경책은 잠언서 3장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고, 5-7절 말씀엔 빨간 색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성경책에는 사이사이마다 손수 만든 색인이 붙어 있었고, 성경책 옆에는 기도문이 펼쳐져 있었다.
영정의 주인공인 윤 선생은 대쪽 같은 성품과 전형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그는 담낭암이 간과 여러 장기에 전이되어 소천했다. 향년 68세였다.
윤 선생에게 암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통증이 가슴 밑으로 지나가기에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찾아가 볼 것을 권유했다. 윤 선생의 아들 내외는 종합병원에서 최종 진단 결과를 받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담낭에서 시작된 암이 이미 간과 전신으로 퍼졌고, 이 정도라면 통증이 꽤나 심했을 텐데 지금까지 병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아들은 지금까지 청렴한 모습으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