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도 불편해 하 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비전이 있고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 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군사들은 유능한 지휘관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사 람들은 건강한 교회와 능력 있는 영적 리더를 찾고 만날 권리가 있다. 교회는 인간을 구원받게 하여 그들이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깨닫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비전은 여러 가지 길을 통해 주어진다. 그래서 비전은 주어지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의 차이점이다. 그렇다면 비전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첫째, 비전은 계시로 주어진다. 성경은 계시의 책이다. 비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주어진다. 말 씀을 듣거나 묵상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신다. 그리고 그 말씀 중에 특별히 잊혀지 지 않고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구절이 있다. 둘째, 비전은 기도의 응답으로 들을 수 있다. 우리는 기도드릴 때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과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셋째, 비전은 일상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영화나 뉴스 속에서 혹은 길을 가다가도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들을 수 있다. 여행 중에도 발견할 수 있다. 넷째, 비전은 역사를 통해 말해진다. 역사적 시점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아는 것 이다. 다섯째, 비전은 사람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내게 맨 처음으로 신학을 권한 사람은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분은 사설 도서관장의 아들로 서 울대학원에서 서양사학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이유를 묻자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고 했다. 하나님은 또 한 번 사람을 통해 비전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날은 1982년 성탄절이었다. 당시 담임목사이셨던 박영승 목사님께서 이유도 말씀해 주시지 않고 133-1번 버스를 타고 모래네 시장에서 내리라고 말씀하셨다. 버스를 타고 갔더니 목사님은 먼저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목사님은 나 를 쓰레기 숲 난지도의 한 교회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1년간 모은 돈을 그 교회에 전하셨다. 그 교회 목사님이 "매년 이렇게 오시는데 성함이라도 알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미소로 답하셨다. 난지도 쓰 레기 더미와 쾨쾨한 냄새를 뒤로 하고 걸어 나올 때 목사님께서 물으셨다. "하나님이 너에게 여기서 목회하라고 하시면 할 수 있겠니?" 나는 침묵으로 대답했고, 지금도 그 답을 만드는 중이다. 비전은 이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리더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확신하고 정리해야 한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항해를 시작하는 배는 없을 것이다. 비전은 공동체의 목적이요 방향이다. 비전 은 공동체가 지향할 목적으로 공동체는 이 비전의 실현을 위하여 움직인다. 비전은 공동체가 지향할 목적으로 공동체는 이 비전의 실현을 위하여 움직인다. 비전은 지도와 같은 것이며 핵심가치로서 공 동체의 생명이다. 사람은 목적 지향적이기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비전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다.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한 가운데 공동체의 비전은 개인의 삶의 목적과 비전을 발견하게 해 줌으로써 삶의 동기를 부여해 준다. 존 맥스웰은 『인재 경영의 법칙』에서 "훌 륭한 비전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비전은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을 설정한다. 비전은 한 조직의 법칙 이나 규칙, 정책 안내서나 조직 체계들이 줄 수 없는 방향을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대신교회가 개척 때 받은 비전이 있다. 서대신의 비전은 개척하기 전까지 사역과 삶을 통해 고민하 고 기도했던 것을 적어 개척 이후에도 계속 다듬어 간 것이다. 이 비전은 서대신공동체의 가슴을 늘 뜨겁게 하는 굳건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나는 이 비전이 추후 2017년까지 이루어지기를 꿈꾸고 있다. 못다 이룬 비전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이 비전은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교회가 되어 그 리스도를 크게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다.
비전선언문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여 세상에 희망을 주는 건강한 교회가 된다."는 나의 목회철학이기 도 하다. 나는 이 비전이 교회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령님이 함께하셨고 지도하셨음을 믿는다. 목회자는 교회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할 에너지를 공급하는 자이다. 그리고 그 비전을 위해 먼저 헌신해야 한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건물을 세워야 한다면 세우겠습니다. 그 러나 그것은 예배만을 위한 예배당은 아닐 것입니다. 예배가 첫 번째 목적이지만 통전적인 이유는 비 전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2장 체질에 따라 일하기: 내게 가장 잘 맞는 것은 무엇인가?
목회자는 먼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체질의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체질에 따라 사역하는 것이 어쩌면 일반적인 창조의 섭리에 따른 삶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자신의 체질을 파악하고 나면 지역사회의 체질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처방전으로서의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교우들의 개인차를 고려해야 한다. 게리 토마스는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에서 성경 인물들과 교회의 역사적 운동들, 다양한 성격 기질을 사용해 아홉 가지 영적 기질을 정리했다. 첫째 유형은 자연주의자들이요, 둘째는 감각주의자들이며, 셋째는 전통주의자, 넷째는 금욕주의자, 다섯째 행동주의자, 여섯째 박애주의자, 일곱째 열정주의자, 여덟째 묵상주의자, 아홉째 지성주의자이다. 각자의 내면세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워 하는지 그것을 찾아서 극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목회자나 일반인에게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체질은 중요하다. 목회자가 목회를 하는 지역과 목회자의 정신적, 문화적, 영적 체질이 맞는다면 좋다.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체질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 교회를 이끌었던 흐름이 있다. 심령부흥회, 성령운동, 제자훈련, 셀 목회, 팀 목회 등이 그것이다. 아마 다음 세대에는 영성훈련이 대두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한국교회는 셀 목회 열풍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셀 목회는 목회 방법이 아니라 본질이다. 소그룹 운동은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토착화 없는 모방은 모두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시대가 아무리 빨리 변하고 새로운 것을 요구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으므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기도와 교제 속에서 자신의 체질을 발견하고 본질에 입각한 독특하면서도 일반적인 사역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체질의 극대화와 극단화는 엄연히 다르다. 영적인 리더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능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체질이 파악되었다면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성장과 성숙을 위한 헌신이 필요하다. 또한 가끔은 체질이 바뀌기도 하므로 우리는 체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절대화할 수 있는 분은 단 훈 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를 고치실 수도 있다. 즐거워하는 일만 하는 것은 리더가 아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리더는 즐거움보다는 기쁨을 찾고, 기쁨보다는 의미를 찾는다. 의미의 결론은 십자가이다. 우리가 영원히 체질화 해야 할 것은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인격, 성격의 장점을 활용하시며 필요하다면 바꾸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우리는 영성을 공동체성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인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성은 인격과 능력의 결정체이다. 일 중심이 되면 본질을 잃기가 쉽다. 그러나 한편 리더는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의 과업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 재건의 과업을, 바울은 세계복음화의 과업을 완수했다. 그 동안 이들의 인격은 갈수록 완성되었고 과업과 본질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능력과 인격, 과업과 본질, 일과 사람을 동시에 생각하는 리더,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룬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는 바른 길이 아니라면 절대 가지 않겠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한다. 짧은 목회 생활이었지만, 바르지 않은 길을 가다가 되돌아오는데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기에, 그리고 남보다 앞서 나아가며 길을 만들어야 할 리더이기에 바르게 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리더는 잘 가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바르게 잘 가야 한다.
3장 동역자 확보하기: 함께하는 사람은 있는가?
헌신하지 않는 리더를 따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팔로워의 길을 갈 때, 그가 '헌신된 팔로워의 길을 걸었는가, 아닌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따르는 자로서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부교역자는 교회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부교역자도 담임목사도 같은 주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팔로워로서의 훈련은 리더가 받아야 할 필수적인 훈련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아무나 쓰시지 않는다. 준비시키셔서 준비된 만큼 쓰신다.
동역자는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첫째, 가족이라 할지라도 와서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 둘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대하자. 셋째, 언제 떠나도 실망하지 말자. 넷째, 아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자. 다섯째, 누가 동역자가 되든지 감사는 하나님께 돌리자. 동역자가 중요한 것은 사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다. 또한 그들의 따름을 보고 개척교회 목사의 리더십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는 다양한 곳에서 훈련만 시키신 것이 아니라 그 과정 가운데 필요한 사람들을 미리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인맥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공동체보다 네트워크가 중요한 곳이 바로 교회다. 리더는 갈라디아서 6장 2절이 언급하고 있는 '서로'라는 단어에 대해 정확한 숙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나의 첫 번째 네트워크는 가족들이었다. 동생네, 처제네, 처남네, 조카네, 그리고 사돈들이 있었다. 지난 7년간 그분들은 조금 불편했을 것이나 변함없이, 지혜롭게 자리를 지켜 주었다. 한 번은 한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이 그 많은 가족 앞에서 용감히 설교하시고 그들이 교회를 떠나가지 않은 것을 보면서 목사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존재함만으로도 힘이 된다.
두 번째 네트워크는 젊은 시절 만남의 끈이 닿은 선배님들이었다. 서울, 대전, 당진, 청주, 부산, 강릉과 제주도에서부터 이사 온 교우나 결혼하는 자녀들을 소개해 주셨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서대신 가족이 된 청장년이 약 70명이 된다.
세 번째 네트워크는 목회자들과의 모임이다. 하나는 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이 주선하는 기도모임이다. 여러 교단에서 배우고자 하는 분들 10여 명이 모였다. 만남 속에서 부족한 자신을 본다. 그래서 그 모임이 좋다. 교제를 통해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누구를 비방하거나 헐뜯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교제가 긍정적이다 보니 서로에게 힘이 되며 도전이 된다. 그리고 이동원 목사님, 김명혁 목사님 같은 분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어서 만남을 통해 배우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지역사회 목회자 모임으로 막내로 따라다니며 배우고 있다. 지역이라 자칫 경쟁적인 관계가 될 수 있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함께 나누는 열린 모임이다.
네 번째 네트워크는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신학교 동기로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들과 사랑해 주는 선배님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후배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다섯 번째 네트워크는 취미생활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다. 운동 동호회 사람들과 있다 보면 세상사는 이야기, 힘든 푸념들을 듣는다. 때론 기독교에 대한 공격도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1년쯤 되니 그분들과 친구가 되었고 크리스천이 동호회 신입회원으로 들어오면 '서대신교회가 좋다더라'면서 추천해 주신다. 이렇게 운동을 하며 몇 분을 전도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내 안의 버려야 할 것도 발견했다. 하루는 인맥지도를 그려보았다. 폭이 좁은 인맥지도였다. 하지만 캐나다에 안식년을 보내면서 발견한 것 중에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인맥지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수정되어야 할 부분도 많았다. 이제 더욱 그 폭을 넓혀야 할 때다. 세상을 이해하고 품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4장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 로드맵을 그리자
릭 워렌은 '어떻게 해야 교회가 성장할까?'라는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라고 했다. 올바른 질문은 "무엇이 우리교회 성장을 막고 있는가?"이다. 생명체는 반드시 성장한다. 교회는 조직체가 아닌 유기 체요 생명체다. 그래서 성장 저해요인을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 완전한 교회란 없다. 우리가 말하는 건강한 교회는 완전한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건강한 교회를 위해 기도해 왔고 개척하면서 늘 건강한 교회의 그림을 그려왔다. 건강한 교회의 원리는 균형 을 갖춘 교회이다. 예배, 선교, 교육, 친교, 봉사가 균형을 이루는 목회를 하는 것이다.
리더십을 갖춘 목회자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 GE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세상의 기업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사람을 키워서 세우는지 볼 수 있다. 군대, 기업, 공무원 등의 모든 공동체는 내규나 일정한 기준을 갖춘 자에게 멤버십을 허락한다. 그러나 예외인 공동체가 하나 있다. 바로 교회이다.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그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어느 공동체에서도 볼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늘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공동체 중 가장 탁월한 리더십이 요구되며, 그만큼 탁월한 리더를 배출할 수 있는 곳이다. 리더가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력, 체력, 통찰력, 추진력, 설득력 등이 필요하다.
단순하고 역동적인 사역 중심의 구조
교회의 조직은 자칫하면 너무 복잡해질 수 있다. 교회는 '양육과 사역'이라는 큰 틀 속에서 세워져야 건강하다. 이를 위해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시스템은 팀 사역으로의 전환이 필수이다. 리더는 교회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역 구조가 복잡해지면 역동성도 떨어지고 무슨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교회가 사역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전도를 한번 점검해보라. 전도는 교회 사역의 기둥이다. 리더는 성도들이 꾸준히 전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훈련해야 한다.
영적인 교제와 열정이 있는 교회교회는 하나님, 사람, 거룩함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열정이 부흥에만 집중된다면 그것은 건강치 못한 것이다. 거룩함에 대한 열정은 곧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다. 그리고 그 열정은 일이 아닌 사람에 대한 열정이다. 하나님과의 친밀감 있는 영적인 교제, 그리고 그 교제에서 나온 영적인 열정이 교회를 이끌어 간다. 교회의 건강 지수는 리더십과 거룩성이 그 선두에 있다. 영적인 열정은 우선 일대일 관계가 잘 정립되어 있어야 잘 타오를 수 있으며, 소그룹이 움직일 때 교회의 열정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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