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영적도해
최바울 지음 | 펴내기
1. 하나님의 사정 세계에는 그 수를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잡신이지만 더러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신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많은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진짜 참신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신이 인간에게 "나를 경배하라"고 요구하려면, 그 신은 그럴 만한 신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능력, 즉 파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신이 힘은 엄청나지만 선하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악한 신 앞에 영원히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존재가 소멸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배하기에 합당한 신은 '능력'과 함께 '선함'을 가진 신이어야 합니다.
감성과 영성의 원초적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현대인들은 소위 영적 민감성이 떨어져 신들을 가깝게 느끼지 못하지만 원시 시대에는 사람들이 신들과 교감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신에 관한 이야기가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면 신이 나타나서 이야기한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이 어떤 신인지 검증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불꽃 속에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모세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신이 다른 잡신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것을 감지합니다.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그 백성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공개하기 시작하십니다. 애굽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두 민족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세계 대제국 애굽의 중심에서 신들이 충돌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세계제국 애굽신을 압도합니다. '파워 인카운터(power encounter)'가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목도하며 분명히 알게 됩니다. "여호와 신, 그분은 세계제국의 어느 신보다도 더 크신 분이구나!"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유대인들은 이것을 목도하고 흥분합니다. 그리고 모세를 따라 담대하게 출애굽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실 뿐 아니라, 죄가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어두움이라고는 한 점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 강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성결케 하라. 내가 돌격할까 하노라"고 경고하십니다. 빛은 어두움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하신 분을 죄인인 인생들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직접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당신의 선함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세상 어느 신이 자기를 신앙하는 인생들을 위해서 희생합니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하나님이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전능자시며 선한 신인 것을 완전하게 증명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무슨 문제나 훼손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 창조가 필요했을까요? 우리는 에덴 동산의 타락 사건을 보면서 그 사정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에덴에 침입함으로써 아담과 하와가 결국은 범죄하게 됩니다. "너도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는 사단의 도전은 하나님의 권위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너도 하나님이 돼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꼬임에 넘어가 버립니다. 사단의 승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 부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숨어 있던 아담이 대답합니다. "제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여기 숨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또 물으십니다. "너희의 벗었음을 누가 네게 고하였느냐?"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은 배후를 찾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배후를 아십니다. 그러나 아담에게 배후를 지목하여 입술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여기에 하나님의 사정의 맥락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고백을 들은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잘못을 추궁하시지 않고 즉각 뱀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뱀에게는 배경이나 배후를 묻지 않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저주를 받아라!"고 단호하게 저주를 명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범죄한 사단을 영원히 저주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고소에 따라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사단을 정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정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저주하신 후에 범죄한 인간을 구원할 방법에 대해 즉각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사단을 멸하고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주께 나오기만 하면 그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사해 주시겠다고 하실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결과는 저주가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범죄하면 우리는 고통을 당하게 되나 하나님께 나아오면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그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패러독스입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패러독스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인생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적인 패러독스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사단의 정사와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부터 패러독스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정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하나님의 심정을 갖게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는 에덴 사건과 이후의 일관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원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단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영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영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머리를 재기불능으로 상하게 하셨지만 어둠의 세력은 그 권세가 꺾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인생들을 속이고 유혹하면서 우는 사자들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이제 주께서 재림하시면 사단은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과 함께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은 우리를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시지 않고 이 땅에 남겨 두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는 운명주의적이지만 우리의 신앙은 종교가 아닙니다. 삶이요, 실체요, 영적 전쟁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뒤로 하고 모호한 종교적, 신학적 용어만이 난무하는 요즘, 신자들은 신학적, 지적 체계와 교회 운영의 시스템 속에서 영성을 잃어버리고 나약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체계화된 지식과 신학은 없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어 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의 권세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2. 사단의 세계경영 창세기 4장 1-17절을 보면 옛 뱀 사단이 어떻게 인생을 경영하는지, 어떻게 세계를 경영해 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 사건 이후 사단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인에게 살인을 시킨 것입니다. 가인은 사단의 도구가 되어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문제의 발단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을 예배했으나 가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아벨을 시기했고 다음은 안색이 변하여 하나님께 분노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수법은 늘 동일합니다. 첫째는 시기하게 하고, 다음은 하나님께 불평하게 하고, 마지막으로는 사람에게 범죄케 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경고했으나 가인은 반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마지막 경고를 하십니다.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그러나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죄가 공격해 오고 사단이 공격해 오더라도 하나님은 가인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사단에게 몰려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오셔서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퉁명스럽게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죄를 고백하고 배후를 밝히며 나오기를 바라셨지만 완악한 가인은 이번에도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핏소리가 호소한다고 말씀하시며, "네가 유리하며 방황할 것이다.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그러자 가인은 두려워 떨며 살려 달라고 애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셨던 것처럼 즉시 살려 주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며 "너를 해한 자는 7배의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우주적인 선포를 하십니다. 이전의 엄하심을 일순간에 감추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경계와 한계가 없으십니다. 단, 조건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이것마저도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보호하심에도 불구하고 홀로 선 가인이 제일 처음 한 것은 성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자기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인처럼 행합니다. 미래가 두려워서 돈으로, 권력으로, 또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자기의 성'을 쌓는 것입니다. 내가 성을 쌓으면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지만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나의 미래를 책임지십니다. 그러나 결국 가인의 후손은 계속 성을 쌓아 가면서 세계문명을 건설해 갔습니다. 성은 현대적 의미로 하면 '도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문화와 문명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는 힘(power)이 없습니다. 문화(culture)는 '경작하다(cultivate)'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사람이 노력해서 경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창의성을 발휘해서 얻어 낸 모든 것을 문화라고 합니다. 즉, 자연계 내에 구별된 인간계를 문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유형 및 무형의 모든 것'을 문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문화적 수준'은 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문화는 형태만 다를 뿐 문화적 수준은 동일합니다. 이것을 '문화의 상대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명은 다릅니다. 문명은 자연계 내에 인간계, 즉 문화의 영역 안에서 도시화된 부분을 말합니다. 문명(civilization)은 도시(city)라는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문명은 도시화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을 통해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문명은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힘은 테크놀로지, 즉 기술의 힘을 말합니다. 기술에는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테크놀로지는 과학적 기술을, 테크닉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 기술 등을 말합니다.
세계는 오랜 역사 동안 발전과정을 거쳐 두 문명을 낳았습니다. 하나는 물질문명이고 또 하나는 정신(종교)문명입니다. 최근에 세계는 두 문명의 갈등과 대결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현재 서구 기술문명과 이슬람 종교문명 사이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서로 힘이 있기 때문에 충돌하는 것입니다. 이슬람 종교문명은 과학 기술의 힘은 없지만 종교적 테크닉으로 엄청난 힘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종교나 정치는 다 테크닉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 집단을 조직하면서 큰 힘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도시문명을 건설했고 그로부터 인류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명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성을 쌓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가인의 후예들은 집단을 이루어 그 유명한 바벨문명을 건설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계 영적전쟁의 핵심 주제가 문명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벽돌 굽는 기술을 발명한 그들은 어느 날 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이면 이제 그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거대한 성을 쌓을 수 있겠다고 자만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바벨문명을 건설하자며 분주히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들이 이처럼 문명을 건설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한심한 인생들에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하나님의 방법은 언어를 혼잡케 해서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을 복잡하게 하심으로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언어의 분화, 즉 언어 발달은 음운이 체계적으로 대응관계를 가지면서 변화하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시스템을 한순간에 붕괴시켜 버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한 공동체 내에서 리더가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비전이나 뜻을 생각지 않고 자기 성을 쌓기 시작하면 의사소통이 마비됩니다. 그리고 끝내는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성령 안에서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것과는 정반대 현상입니다.
3. 하나님의 세계경영 하나님은 바벨문명 사건 이후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적극적이면서 영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경영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일이 완성되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사단을 영원히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경영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자까지 아끼지 않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동하여 두 가지 맹세의 약속을 하십니다.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것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적의 문'이란 세상을 장악한 거대문명의 도성들로, 여기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축복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핵심 전략을 다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략적 계시를 예수님께서는 '유언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그리고 마침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강림하셔서 '모든 민족'의 언어와 방언으로 직접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이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고,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시고 축복하실 때에는 먼저 통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험의 모형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이 떡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