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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

마레히사 이시이 지음 | 지원북클럽
제1장 세계정세와 성서의 예언



세계를 읽는 좌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을 때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정보만으로는 결코 진실을 알 수가 없다. 세계정세를 아는 중요한 축이 있다. 그 좌표축이 바로 성서이다. 성서를 기독교만의 경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성서는 기독교만이 아니라, 유태교에서도, 이슬람교에서도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서는 다가오는 인류역사의 종말이 어떤 모양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성서연구자의 관점에서 9ㆍ11 테러사건을 볼 때 이것은 결코 예상을 뒤엎는 행동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사건 다음날 있은 강연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주모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라고 단정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첫째로 이 사건이 2002년 1월 1일 유로화 완전 도입 직전에 일어났다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2002년 1월 1일은 유럽합중국의 탄생의 순간이며, 아주 새로운 세력권의 탄생의 날이었다. 그 직전에 세계 경제의 중심인 뉴욕이 붕괴한 것이다. 글로벌경제의 기본통화의 위치를 획득한 유로화로 볼 때 미국은 두드려 없애야 하는 존재이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세계의 돈은 당연히 거대한 경제권인 유럽합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9ㆍ11 테러사건이 발생하기 수개월 전부터 아프가니스탄 전 국왕 자비르 샤를 중심한 탈레반 이후의 아프간 신정권 수립안이 NATO가 관계하는 유럽 안전보장전문가에 의해 입안되고 논의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것은 유럽이 테러 발생을 알고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실제 지배세력이었던 탈레반이 사실상 붕괴되고 아프간 신정권회의가 유럽과 유엔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든지 체포되든지 탈레반정권은 없어져야 한다는 게 서방세계의 공동목표라고 나는 주장해 왔는데 지금은 그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뉴욕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심장부가 파괴된 직후에 유럽연합의장으로부터 전 세계로 하나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는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그것(윤리적 글로벌화)은 유럽에서 시작된다. 유럽 기준으로 일을 결정할 때 지구상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검토하는 게 중요하다." 유럽주도의 새로운 세계화가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얼마나 멋진 타이밍인가! 이것이 단지 우연일까? 성서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우리들은 또 하나의 성서의 예언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리얼타임으로 목격하는 증인이 된다.



예언이란 본래 어떤 뜻인가?

예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미스터리 책이나 음모담 같은 이상한 것을 생각한다.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의 저술 목적과는 동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내가 여기서 꼭 검증해 보고 싶어 하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과 일반 예언을 명확히 구별해서 이해해주기 바란다. 성서의 예언(預言)은 한자의 뜻과 같이 '맡긴 말'이다. 예정할 '예(豫)'자가 아니고 은행예금의 '예(預)'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을 맡아서 말하는 예언자'라고 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활약했던 사회적 배경에서 유래한다.



원래 성서라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유래한 책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신권국가였다. 야훼(하나님)라고 불리는 유일신을 믿었으며, 그 신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자이며, 그의 주권과 권위로 세워진 나라라는 것이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존재'했으며 그에 의해서 어떤 특정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건국된 나라가 이스라엘이고 유태라는 것이다. 그 민족의 시작은 아브라함이었는데 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현재의 이라크)라는 곳에 살고 있었으나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는 네 본토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거기서 너로 많은 민족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다신교로서 애니미즘(무속신앙) 문화 속에서 생활하던 남자였으나 그때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 가족을 이끌고 태어난 고향을 떠난다.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만 음성을 따라 갔던 것이다. 성서는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교환된 '아브라함의 계약'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 계약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1.약속(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2.사명(네 이름을 축복하겠다). 3.목적(땅의 모든 족속이 너 때문에 복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기둥이다. 성서는 이 계약을 믿고서 떠난 남자와 그 계약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기록한 책이며, 동시에 그 사명과 목적을 곡해한 유태인과 그 결과 유태사회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역사의 기록인 것이다.



그 이후 기원전 1400년경 나타난 모세는 약 40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한 영웅이다. 당시 모세가 120만 명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가나안(현 팔레스타인) 지방까지 데리고 간 것은 이집트의 람세스 2세 때이다. 가는 도중에 시내산 꼭대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에게 매우 중요한 헌법이었던 십계명을 받는다. 법률로부터 사회 제도까지 모든 것이, 창조자였던 하나님의 지시로 이루어졌고, 그의 종인 모세가 시행했다. 이런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의 주체인 야훼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그들의 국가적 관심사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모세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모세와 같은 초 카리스마가 죽자 상황이 달라진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각각의 형편에 따라 비난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이방종교의 풍습에 동화되기도 하고, 사회생활이 황폐되기도 했다. 그와 같은 시대에 등장한 이들이 예언자들이다. 그들은 황폐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본래의 뿌리를 일깨우기 위해 죽을 각오로 일어났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점쟁이나 무당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예언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만일 하나라도 틀려서 말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즉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적당히 속이는 것이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삶과 죽음의 협곡에서 살았던 사람들인 것이다.

예언자들이 말한 내용 가운데는 그들의 시대 이후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역사 속에서 실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내용은 앞으로 실현될 일들이다. 만일 예언이 과거에 100% 적중했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로 예언된 것도 100%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론일 것이다. 성서에 예언이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예언을 부여한 주체가 역사를 시간 추의 밖에서 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역사라는 말을 영어로 'His-tory'라고 하는데 이것은 His와 Story의 혼합어라고 한다. His(하나님의) Story(이야기)는 성서적 역사관의 기초가 된다.



성서는 예언을 부여한 야훼라는 주체가 물리적 우주의 제1원인이라고 선언한다. 이 하나님이 물리적 세계를 창조한 순간에 물리적 법칙이 만들어진 것이며, 그 순간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과거, 미래라는 개념은 하나님에게는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영원의 한 순간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어떤 일이 미래에 일어나기 전에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만이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할 수가 있다.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 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사야 42장 9절)



성서는 무엇을 예언하고 있는가?

성서 속에는 꼭 이해해야 할 몇 가지 키워드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날 우리와 관련 있는 것은 '종말의 날'이라고 불리는 내용이다. 이것은 세계역사의 마지막에 관한 테크니컬 타임이며 문자그대로 '종말'을 의미한다. 어떤 구절에서는 '그 날', 또는 '주의 날'이라고도 나와 있다. 이것은 모두가 끝나고 마는 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새로워 지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정치가 바뀐다거나 세상이 좋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리적 법칙까지도 완전히 바뀐다는 놀라운 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날에 관해서 성서는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부터 2600년 전에 세상의 마지막 때의 세계정세를 극명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가 예언한 마지막 날의 모습을 간단히 열거해 보자.



1. 세계에 흩어졌던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에 귀환해서 나라를 재건한다.

2. 성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주권 안으로 들어온다.

3. 중동문제가 세계를 위험한 상태까지 끌어올린다.

4. 예루살렘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중요한 도시가 된다.

5. 유럽이 결집된 강대한 군사경제 지역으로 발전한다.

6. 세계는 글로벌화 된다.

7. 러시아가 유럽에 대항할 수 있는 세계적인 세력이 된다.

8. 아시아에 2억의 병사를 가진 강대한 군사세력이 존재하게 된다.



성서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말하고 있던 마지막 징조는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제2장 성서가 밝혀주는 가까운 미래



이스라엘은 세계의 타임테이블

성서를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세계의 시계가 될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세계에 대한 '징조'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을 보면 역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종말의 때'를 아는 시각표를 보는 것과 같다. 종말의 날에 대한 분명한 징후의 하나는 세계의 눈이 이스라엘로 모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문제야말로 세계의 화약고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분명 성서가 말한 대로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세계역사상 유태인만큼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민족은 없다. 그들은 조국을 잃어버리고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으면서 2000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으나 멸망하지 않고 나라를 재건했다. 조국이 멸망한 민족으로서 5대 이상을 단일 민족으로서 순수성과 아이덴티티를 보존한 것은 유태인을 빼고는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유태인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다름 아닌 예수가 2000년 전에 이미 예언한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24:34). 여기서 '이 일'이라고 말한 것은 앞서 언급한 종말의 징조를 말하며 '세대'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제이나'라는 말로, 제너레이션(generation)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Nation(민족)'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예수가 유태인을 가리켜서 "종말의 시대에 일어날 일이 전부 일어날 때까지 이 민족은 멸절하지 않는다."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방랑생활을 거쳐 마침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이 생활 속에서 모세가 백성들 앞에서 말한 설교가 신명기인데 그 안에는 축복과 저주의 선택이 백성들 앞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따르면 축복을 받을 것이지만, 만일 따르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유태민족은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귀환하고 거기서 국가로 발전하게 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와 간음의 길을 선택하고 만다. 즉, 저주를 선택한 것이다.



그로부터 800년 뒤 예언자 이사야는 분명하게 예언한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빌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이사야 39:6) 그리고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결국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바빌로니아에 끌려가게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기원전 600년경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의 포로기간이 70년간이 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유태인은 예언한 그대로 70년 후에 바빌로니아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귀환한다. 귀환을 허가한 사람은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인데, 놀랍게도 고레스가 태어나기 175년 전에 예언자 이사야는 그의 이름을 실명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에는 유태인이 저주를 선택할 경우 그들은 두 번 조국을 쫓겨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두 번째는 앞서와 다른 나라가 공격해올 것인데 '독수리'의 날음 같이 치러와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언대로 기원전 68년에 시작된 유태인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려고 기원후 70년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1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다. 로마제국의 상징이 '독수리'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치다. 살아남은 유태인은 생명을 구하려고 세계 여러 나라로 피난했고, 이 때부터 방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성서는 분명히 세계 중에 흩어진 유태인이 다시 모여 조국을 재건할 때가 온다고 여러 번 말했으며, 예언자 에스겔도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그것을 극명하게 예언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방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에스겔 36:24).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에스겔 36:21).

성서의 예언가들은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다시 같은 장소, 즉 고대 도시 예루살렘에서 일어나 부흥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세계 역사학자들은 성서의 예언을 믿지 않았으며 1900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서학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혹평 당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사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재건된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날이 언제 도래해도 좋다는 대전제가 이미 준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말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세계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종말을 향한 걸음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예언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예언이라면 믿지 않는, 그리고 반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의 예언을 둘러싼 이야기 가운데 근년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큰 뉴스가 있다. 그것은 사해사본의 발견이다. 구약성서의 유명한 예언서 가운데 이사야서라고 부르는 예언서가 하나 있는데 이 책에는 실로 놀라운 예언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예수가 어떻게 태어날까, 그리고 어떻게 죽을까라는 것에 대해 상세히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이사야 53장은 십자가의 전경뿐 아니라, 왜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나기 700년 전에 기록된 것이나 그 기술된 것이 너무도 정확하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목격한 제자들이 이사야가 쓴 예언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이사야서에 그 내용을 삽입한 것"이라고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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