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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A.W. 토저 지음 | 규장
1부 누가 진짜인가?



1장 진짜는 험한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인 십자가는 '하나님의 역설'이다. 십자가는 '자연인', 즉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완전히 대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단언했다.(고전1:18)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고 믿지만 전보다 더 충만한 삶을 누리며, 또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 땅에서 활동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늘의 시민이기에 세상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을지라도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은 철저한 비관주의자이며 동시에 낙관주의자다. 십자가를 볼 때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것을 확신하며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모두 허사임을 알기에 비관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을 통해 모든 사람의 죄가 해결되었음을 믿는 진정한 낙관주의자이다.



참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혹한 핍박에 고난당한다. 주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 결코 쉬운 길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3,24) 세상은 이런 엄하고 질긴 신앙의 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진리 '전부'를 이야기 할 용기가 없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전진할수록 더 많은 어려움과 원수의 거센 공격에 마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과 고난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 시험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사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에 참그리스도인을 미워한다. 또한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유하였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 언제라도 사탄을 공격할 수 있기에 사탄은 그를 미워한다. 특히 새신자는 신앙의 전사로 성장하기 전에 사탄의 주요 공격목표가 된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단지 참그리스도인의 죽음에 있지 않다. 잘못된 교리, 불완전한 가르침, 부패한 교회 때문에 생기는 낙심을 이용하여, 그들의 결심을 약화시키고, 확신을 무너뜨리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에 대한 의욕을 꺾어놓음으로써 더 이상 사탄에게 위협적인 전사가 되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 적당히 타협하는 안온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착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적당히 타협할 때 사탄은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장 진짜는 솜사탕 복음을 거부하고 가시면류관 복음을 믿는다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의 나침반처럼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제공된 구속'이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진 구원'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와 연합해야 한다. 지적으로 예수님은 주요 그리스도라고 확신하고, 의지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를 따르겠다고 결심하며, 감정적으로 그와 교제함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연합이다. 그분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을 아셨지만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해 세상에 대가를 지불해야함을 정직하게 이야기 하셨다. 바람은 지옥을 향하여 불기 때문에 천국을 향해 걷는 사람은 바람을 안고 걸어가야 한다. 강풍을 안고 영원한 평안으로 갈 것인지, 바람을 등지고 산허리 양지바른 곳에 머물 것인지 우리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3장 진짜는 주님의 '일'보다 '주님'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인도해야 우리는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와 동일한 반응을 할 수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갔다가, 그분에게서 다시 그분의 피조물로 나아간다. 하나님을 자주 오랜 시간 묵상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순간 모든 사고를 그분이 지배하시도록 해야 한다. 건전한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깊은 영성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는 자칫 '주님의 일'을 한다는 미명하에 '일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금방 사람들을 탈진시킨다. 우리의 시끄럽고 분주한 활동들이 다 중지되어 하나님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주의력을 성삼위 하나님께 집중시킬 수 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신앙으로 받아들여라.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최고의 방법이다.



4장 진짜는 행복보다 거룩을 열망한다



참된 영성의 척도는 '우리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욕구들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욕구란 우리의 깊은 속에 자리 잡고, 우리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며, 우리의 삶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신령한 사람은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욕구,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 스스로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려는 욕구, 의로운 삶에 대한 욕구, 기꺼이 희생하려는 마음, 시간을 초월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며, 스스로 사망에서 구원해낼 힘이 없다.(롬8:2) 그리스도 예수 안의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성결하게 되려는 노력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성결을 이루시도록 의지해야 한다.



5장 진짜는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때로 참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그를 미몽(迷夢)에서 구하기 위해 마련해주신 모든 수단들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1) 기도 -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함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 신앙 - 신앙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믿는 것으로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평안한 가운데 행한다.

3) 성경묵상 - 성경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강하게 하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깨우침과 지식을 준다.

4) 순종 - 하나님의 사람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5) 겸손 -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신다.(시25:9)

6) 진지한 사색 - 인간의 사유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7) 성령의 조명 - 성령님의 내적 조명이 없는 사색은 무익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게 하셨다.



6장 진짜 그리스도인의 자가 진단법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 즉 '자아인식'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가면을 벗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님을 보내셨다. 우리는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성령님과 협력하여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다음의 자기발견을 위한 질문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나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4) 나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

5)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가?

6) 나는 누구를 존경하고, 어떤 것에 열광하는가?

7) 나는 무엇을 보고 웃는가?



2부 누가 가짜인가?



7장 가짜는 인스턴트이다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빠르고 손쉽게 처리하는 것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남는 시간을 재미있는 일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발명된 것들이 바로 인스턴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스턴트 기독교는 "우리 영혼에게 부과될 수 있는 모든 의무를 '한두 가지 신앙'의 행위로써 다 할 수 있으며, 그 후에는 우리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더 이상의 영적 전진을 갈망하는 욕구를 억압한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마치 신생아와 같아서 자라기 위해 영양과 운동이 필수적이다. 지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성숙해가야 하며, 영적 훈련과 성장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빌립보서 3장 7~16절에 사도바울의 고백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8장 가짜는 인격변화를 소홀히 한다



죄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우리는 선과 악, 적과 친구,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의 가치판단은 왜곡되어 있고, 사물을 본질 그대로 거의 통찰하지 못한다. 우리가 끈질기게 집착하는 한 가지 잘못된 개념은 시간에 대한 것이다. 시간은 강처럼 흘러가는 물질과 같아서, 평생 이 흐름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함께 흘러간다고 착각한다. 또한 '지금 알 수 없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시간은 인간성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공간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 힘을 갖고 있지 않듯이 시간도 그런 능력은 없다. 죄인을 성인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이 아니고 '변화'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를 일으키시기 때문에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인간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이다. 복음의 능력은 탐욕적인 사람을 후한 사람으로, 교만한 사람을 겸손한 사람으로 바꾼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55:6) 여기서 변화를 나타내는 단어는 "찾으라, 부르라, 버리라, 돌아오라"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 스스로 변화해야 하고, 변화 받아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



9장 가짜는 하나님의 징계를 십자가 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과 '징계를 당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 다르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의 의지적 선택의 결과이다. 십자가는 그가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순종하여 따를 때 그에게 닥치는 고난을 의미한다. 반대로, 징계는 '불순종의 길'에서 발견된다.



징계와 십자가를 구별하는 것은 내게 닥친 고난을 내가 선택한 것인지 아닌지를 보면 된다. 징계를 당하면서도 십자가를 진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계는 마땅히 회개해야 하며,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외에 제3의 고난이 있는데, 이것은 화재, 홍수, 사별, 부상, 사고, 질병, 노령, 피로 등등 자연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고난을 선한 것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기도와 겸손과 인내로써 역경을 친구로 만들고, 고통을 선생삼아 깊은 영적 진리를 깨닫는 경우이다.

10장 가짜는 행함으로 죄용서함을 받으려 한다



은혜는 이성과 모순 되며, 이성을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율법주의의 본질은 '자기속죄'로 '이신칭의(以信稱義)'와 반대되는 개념이며, 이것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이단이다. 물론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경건한 슬픔'이 있지만(고후7:10), 슬픔의 감정을 곱씹어 만성적 슬픔에 이르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다. 선행을 통해 죄를 상쇄하려는 시도 역시 끝없는 본능적 이단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를 씻어낼 수 있다. 아버지의 용서를 믿고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탕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믿기에 그 죄 많은 과거를 잊을 용기를 가질 수 있다.



회한과 감정적 고행은 겉으로 볼 때 깊은 회개의 증거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사랑'의 한 형태이다. '좀더 선한 자신'을 실망시킨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교만의 결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존경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존경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한 회한이 없다.



11장 가짜는 신조를 무시한다



'신조가 아닌 그리스도를!'이라는 말을 진리처럼 주장하는 신조무용론자들은 때때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밀어내고 '죽은 신조'를 붙드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조는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바탕에 깔려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것이기에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신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이 영속성을 가지려면 지식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성이 있는 곳에는 신조가 있게 마련이다. 표준적인 신조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등등- 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고백이며, 우리의 예배 대상이신 하나님, 곧 진리에 대해 명문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신조무용론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아버지가 누구신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지 인간이신지,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신 분이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이고, 이 믿음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음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려면 그분에 관한 진리를 제대로 알고 믿어 행해야 한다.



12장 가짜는 신학을 경시한다



하나님을 불편하고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신이 화목하지 못하다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겨우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면서도 그들은 마음 한가운데 두려움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신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에게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의문들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독교의 계시이다.



신학이 중요한 만큼 신학의 진리가 사변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진리를 삶으로 실천할 때에야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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