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이런 대화를 원한다
래리 크랩 지음 | 사랑플러스
프롤로그 : 인생이 시작되는 때1997년 7월 5일 정오가 막 지났을 때, 의사는 내가 암에 걸렸다고 했다. 의사가 나간 후 아내와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무런 기약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살 수 있을지 죽게 될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았다. 2천 년 전, 성 어거스틴의 예화가 떠올랐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오셔서 소원하는 것들의 목록들을 작성해 보라고 하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는가? 배고플 때의 좋은 음식, 멋진 가정생활, 만족스러운 인생의 목적과 보람, 사랑과 모험의 즐거움, 건강, 멋진 직업…. 이 모든 것을 주신 놀라운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를 드리는 주일 아침 교회에서 느끼는 만족감 등.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신다. 네가 원하는 목록들에 있는 것들을 모두 주고 또한 그것들을 즐길 수 있도록 오래 살게 해 주마. 그런데 한 가지 제약이 있다. 만일 네가 그것들을 받는다면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예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당신이 느끼는 섬뜩함은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 때문이다." 내 마음에 이 말이 떠올랐을 때 나는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이었다. 그것은 깨달음의 눈물이었고 소망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영혼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이 산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깊이 살피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이끈다. 우리 인생의 핵심은 하나님이시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우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무엇보다 내가 알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게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신다.
그날 밤 내 생각을 감싸고 있던 어두운 거미줄은 걷어지고, 내 눈은 올바른 초점을 찾게 되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내 영혼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시련이 우리 인생을 주께 열정적이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기 바란다. 성령에 취하고, 신랑이신 예수님께 반해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기뻐하며, 삼위일체 하나님과 춤을 추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 이것이 인생의 핵심이며 가장 깊은 기쁨의 근원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내면에 가득 차고 넘칠 때까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우리 영혼의 가장 강한 소원이 되도록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영혼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열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도록 서로 도울 수 있는 능력 있는 대화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힘 있는 대화를 영혼의 대화(Soul Talk)라고 부르고 싶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말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 이것이 이 책을 통해 꿈꾸고자 하는 비전이다. 이것은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다. 이 꿈은 실현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
저 자신의 영혼을 정직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저 자아의 대화(Self Talk)에 머물러 있고 더 이상의 대화를 모른다. 자아의 대화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하나님임을 알지 못한 채 떠드는 우리의 언어이다. 하나님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것들을 얻고자 할 때만 그를 이용하는 우리의 언어이다. 그럴 때 우리의 입은 더욱 더 종교적으로 유창해지기도 한다. 중세의 지혜로운 영적 지도자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께서는 집에 계시는데 그를 찾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1. 커뮤니케이션의 혁명 : 생명이 살아 있는 말모든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공통된 사실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또한 영혼의 깊은 곳을 만져 주는 말도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중심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않고, 인격에서 흘러넘치는 생명과 힘이 있는 말도 하지 못한다. 두려움과 분노와 좌절로 가득한 공허한 마음속에 소망을 던져주며, 내면의 생명을 움직일 말도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인격적으로 깊이 알지 못하고, 관심 받지 못하며, 감동적인 감정의 교류 없이 외롭게 산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영혼으로 이끌어주거나 또는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운동가들은 성경 구절을 외치며 낙태 반대 운동과 음란물 저지 운동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들은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마치 은혜 없는 율법주의와 도덕주의가 떠드는 말과 같다.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우리 영혼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모든 일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자아의 대화는 예수님 외의 모든 사람들이 본성으로 말하는 언어다. 그것은 자기보호와 자기만족과 자기몰입의 언어다. 만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개입하지 않고 또 우리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 모두는 무덤까지 그런 말만 하다가 죽을 것이다.
2. 새로운 방식의 관계 : 옛 방식은 무효다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관계에서조차도,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하기 전보다 더 지치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맥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생명을 주는 하나됨도 없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도 불붙게 하지 못하는 그런 대화 말이다. 모든 대화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더 자극하든지 아니면 식게 만든다. 우리는 자아의 대화에 머무름으로써 영혼을 만날 기회를 놓쳐 버린다.
예수님은 운명하시기 몇 시간 전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께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죄 많은 세상에 증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니이다."(요17:22, 23)라고 기도하셨다. 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하나 되지 못하고 더 나뉘어졌을까? 왜 우리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가까이 가도록 자극하지 못하는 것일까?
영혼 속에 있는 본성적인 생각과 감정만을 의식하는 우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다양한 자아의 대화를 한다. 그것을 사교적인 자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을 기독교화 하고 영성화 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이것은 서로에게 능력을 줄 수 없는 자기중심적이고 사교적인 자아의 대화일 뿐이다. 우리는 내면 한가운데서 고동치며 영혼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거룩한 생명을 보지 못한다. 그곳은 변장하지 않은 진실이 나오는 곳이며,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우는 곳이다. 각자 영혼 속에 있는 성령의 생각과 감정을 깨닫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영혼의 대화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선한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대화를 하게 된다.
우리는 영혼 속에 있는 새 생명의 기적을 보지 못하고 있다. 참지 못하고, 강요하며, 불안정한 의식이 영혼 속에 살아 있어서 선하고 능력 있는 새 생명의 의식을 밀어낸다. 관계를 편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내면을 깊이 살피고, 영혼 속에서 흘러넘치는 생명의 강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각 장들은 영혼의 대화를 배우기 위한 실전의 장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단번에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 번에 한 가지씩 배워서 은혜의 리듬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 나간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영혼의 대화는 영혼을 돌보는 언어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당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모국어이다.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을 때 당신의 영혼에 거하게 된 성령의 언어이다. 이제 당신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말할 수 있다.
영혼을 돌보는 일은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첫째, 내면을 생각하라. 다른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영적 전투를 보라. 사람들이 말하는 문제의 뒤에서, 그리고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둘째, 비전을 생각하라. 성령께서 왜 사람들의 영혼에 들어오셨는지, 무엇을 위하여 오셨는지 성령의 진정한 계획을 생각해 보라. 성령께서 상대방의 삶에서 행하기 원하시는 비전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셋째, 열정을 생각하라.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당신의 영혼 속에 일어나는 혼란을 직시하라. 자신의 자아에 대한 관심이 마치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교묘하게 꾸미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영혼에 있는 혼란을 잘못 판단하지 않고 분명하게 볼 수 있으려면 먼
저 자신의 혼란을 명확하게 보아야 한다.
넷째, 영혼의 이야기를 생각하라.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알아야 한다. 그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이야기와 그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에 대해 알아보라. 그러면 그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깊은 것을 말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관심을 갖고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섯째, 성령의 역사를 생각하라.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자아를 깨뜨리라. 깨어지기를 저항하는 자기방어와 자기만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따르라. 성령께서 영혼 속에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령과 호흡을 맞추는 초자연적인 리듬이 필요하다.
3.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라 : 새로운 언어생활의 시작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과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들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비밀이나 갈등을 당신에게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겠는가? 나는 부족하고 어설프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능력을 줄 만한 대화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때 느끼는 어색하고 어려운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영혼의 대화를 배울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 안에는 겸손한 심령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은혜의 능력이 있다. 올바른 시작을 위한 원칙은 이것이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 하는 말은 자아의 대화이고,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할 수 있는 말이 영혼의 대화이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 능력을 끼칠 수 있는 말은 성령 없이는 할 수 없다.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고자 한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야 한다. 그의 행하심과 리듬의 속도에 순종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이다. 바울은 '성령의 새로운 길(영의 새로운 것)'을 '의문의 옛 생활의 길(의문의 묵은 것)'과 대조시켜 묘사했다(롬7:6, 개역). 나는 대화할 때 더 이상 어떤 형식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화의 형식을 억누르던 어떤 부담감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를 도와주려 하거나 다른 전문가 도움을 받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라. 그 대신 내면을 생각하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내면을 깊이 살펴보는 것을 우선하다 보면 리듬에 맞는 동작처럼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생명과 그의 진정한 내적 전투가 무엇인지 발견될 때까지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수천 명이 모인 집회에서 사람들이 넘어가고 쓰러뜨리고 성령 안에서 육신은 죽은 것이라고 선포하는 데는 흥행 기술이 요구된다. 그것은 기대와 희망을 잃어버린 절박함에서 나오는 집단적인 강박증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시간이 흐를수록 특별한 이적들이 점점 줄고 조용한 기적들이 일어났음을 생각해 보자.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영혼의 대화는 "치유될지어다!"라고 외치는 식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고, 예수께서 성령께 의존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사람들을 사랑하고 거룩한 성품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야말로 바로 능력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기적이다. 마르틴 루터는 그것은 '왼손'의 능력이라고 불렀다. 오른손의 능력은 사람들 위에 특별하게 나타나는 능력이고, 왼손의 능력은 사람들 안에 있는 조용한 능력으로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버리지 않는 능력이다.
4. 하나님 우선주의 : 영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의 현장우리는 잘못된 싸움을 하고 있다. 해결책으로 더 쉬운 방법을 택한다. 영혼을 돌보기보다는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주일학교 출석을 높이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며, 이혼율과 낙태 숫자에 대항하여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커지면서 도덕적 운동이 영혼의 대화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중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있어 첫 번째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들을 대중이나 어떤 모임 안에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으로서, 가까운 친구로서, 친근한 동료로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히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하고 투명한 관계 속에서 진정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우리의 내면에서 죽어가고 있다. 아무도 당신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발견하고 흥분하는 사람도 없고,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이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생명과 어떻게 닿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 한다.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것에 대해 상관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에 의해 심령이 바뀌지 않고 굳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 영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적인 전투를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전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 것이다.
내 친구 중에 팀 벌크라는 야구 선수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투수인 그는 뉴욕 메츠와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공을 던졌고, 뉴욕 양키스의 일류 선수로 그의 경력을 마쳤다. 그는 입양한 다섯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찍 은퇴했다. 『메이저리그 아빠』라는 자신의 책에서 그는 그의 사랑과 놀라운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는 반응애착장애로 판명이 났다. 팀과 그의 아내 크리스틴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게다가 막내딸은 10개월일 때 수술을 하다가 뇌를 다쳐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