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하늘을 감동시킨 일천번제 예배자

전병욱 지음 | 규장
1부 하나님을 감동시킨 일천번제 예배자



1장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배드린다




솔로몬은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께 '일천번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렸다. 이 때 일천번제란 '천 번'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한 번의 번제를 드릴 때에 '천 마리의 제물'을 드리는 대규모 제사였다고 생각된다. 즉, 그가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뜻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최상', '지극정성'의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다. 솔로몬은 지혜롭게도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그의 사역을 시작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로 그의 사역을 시작했기에 솔로몬의 모든 사역이 그만큼 강력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언제나 예배로 시작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있다. 아벨의 성공 요인 역시 예배에 있었다.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서 의인(義人)이 되었다. 홍수가 끝나자마자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아브라함도 새로운 거처가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예배를 드렸다. 미국의 시조 청교도들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곳에 정착하자마자 예배를 드렸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이다. 그렇다. 예배하는 민족이나 가정은 항상 승승장구한다.



솔로몬의 형통 요인도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 '솔로몬'하면 생각하는 것이 '솔로몬의 지혜'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언제 솔로몬에게 지혜를 부어주셨는가? 예배를 다 드리고 난 뒤였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4, 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린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설령 우리가 경제적인 고충과 여러 위기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백성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우리를 건져주신다.



솔로몬이 드린 번제

번제는 제물을 통째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다.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도 일천 마리의 양을 통째로 태워서 드린 제사였다. 이 번제는 여호와께 대한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인간의 손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전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번제이다. 또한 번제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 연기를 피워 올리는 제사라는 점이다. '번제'라는 뜻의 히브리어 '올라'는 "올라간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면 올라가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란 무엇인가? 레위기 1장 9절, 13절, 17절에는 공통적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번제는 고깃덩어리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그것을 전부 태워서 연기를 피워 그 향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번제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로, 내 고깃덩어리 그대로 드려질 수 없다. 내 몸을 전부 태워서 내 몸이 연기가 되고, 내 몸이 향기가 되어 주님 앞에 드려지는 삶, 그런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헌신이다.

2장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예배드린다



인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수리형'과 '정비형'이다. 밤낮 망가지고 난 뒤에 고치러 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솔로몬과 같이 사전에 자기 자신의 삶을 정비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하고 매 맞고 난 뒤 하나님 앞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고 하는데 반해 솔로몬은 처음부터, 젊었을 때부터,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역사는 예배자를 통하여 선도되어 왔다. 예배자에게는 무서운 가능성이 있다. 젊어서 예배하는 자는 예측할 수 없는 영적 핵무기 같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통해 일하신다. 특별히 하나님은 젊어서부터 예배하는 자를 통해 일하신다. 성경에도 젊어서부터 기도하고 예배한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무엘이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다니엘을 통해 시대를 움직이신 하나님의 역사 또한 나타나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



핵심에 집중하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다. 그러자 솔로몬은 단 한 가지를 구했는데 그것은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사 하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 또한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당신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정확히 한 가지를 말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송곳 같은 사람, 정확히 맥을 짚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솔로몬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보라. 솔로몬은 "명예를 주십시오", "부를 주십시오", "권력을 주십시오"라고 구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붙들었다. "하나님, 제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요한복음에도 열매 맺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나뭇가지를 잘라버리는 전지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각자 자신의 부르심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받은 은사, 그 은사를 가지고 충성할 수 있는 일들, 그 일로 많은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이 되기 바란다.



참된 지혜의 활용

지혜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혜는 자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기 전에 솔로몬에게 지혜가 있었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란 가지고 있는 지혜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게 주신 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강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투구와 갑옷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에게 맞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투구와 갑옷 대신 자기 몸에 맞는 물매와 돌을 가지고 나아갔다. 그 물매와 돌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시는 물매와 돌이었다. 다윗은 결국 그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면 새로운 은사를 주시는 것이라기보다 이미 받은 은사에 강력함을 더해주신다고 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은 이미 받은 은사에 강력함을 더해주시고 불붙게 하시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



3장 예배자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체험한다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솔로몬이 이렇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번제와 기도 때문이다. 예배와 기도가 솔로몬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배와 기도는 우리 신앙의 근간이다. 지혜와 그밖에 것들은 그 열매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늘날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 지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정작 솔로몬이 드렸던 예배를 부러워하거나 솔로몬이 드렸던 기도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뿌리를 추구해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기도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긴급을 요하는 것이 '부르짖는 기도'이다. 이 나라와 교회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 왜 부족한가?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 중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는 기도 투자이다. 하나님 앞에 구했던 모든 것은 다 이루게 되어 있고 거두게 되어 있다.



4장 예배자는 주도면밀한 사명의 실천자가 된다



열왕기상 5장에서는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준비하는 솔로몬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은 의욕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의욕도 있어야 하지만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열정은 있되 지혜가 없어서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의 시대는 가는 곳마다 전쟁이 있었다. 평화로웠던 시간이 거의 없었다. 피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대(代)가 지나고 솔로몬의 대에 이르자 태평하여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다윗 시대에는 전쟁을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솔로몬의 시대에는 평화로운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하는 일이 훨씬 더 긴요했다.

종교개혁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귀중한 두 일꾼을 세우셨다. 먼저는 마르틴 루터다. 그는 다혈질로,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몸으로 부딪히는 사람이다. 종교개혁의 불을 일으킨 사람도 마르틴 루터였다. 따라서 특정한 시기에는 야성미 넘치는 마르틴 루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분위기를 쇄신하고, 시대를 반전시키는 일, 마르틴 루터는 그런 일을 했다. 그는 교황에 맞서 중세 가톨릭교회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몇 십 년이 흘렀다. 불같은 마르틴 루터의 약점을 보완할 만한 인물이자 하나님의 사역을 좀 더 체계적으로 조직해나갈 사람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 존 칼빈이었다. 존 칼빈은 우울질이었다. 게다가 병이 많았다. 병이 많으면 자기도 모르게 우울질로 변화되기도 한다. 칼빈은 생각이 많고 속이 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떤 문제 하나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고 뿌리부터 체계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법조인이기도 하다. 칼빈은 그간의 개혁사상을 체계화한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여 가톨릭의 이론적 공세에 맞섰다.



그렇다. '거룩한 파괴'가 필요한 시대가 있는가 하면, 그 다음 시대에는 '거룩한 건설'이 필요하기도 하다. 한때 의식 있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깨어나야 한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교회가 병들어서 쓰러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짓밟고 비난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이때는 비난하기보다 세워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는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계획과 준비의 시간

솔로몬은 치밀한 계획과 준비 하에 사역을 시작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이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 인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인이며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왕상5:13,15,18).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모든 준비를 다했다는 뜻의 '갖추니라'이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쓰시지 않는다.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까지 준비되는 데 소요된 시간은 무려 80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80년간 준비된 모세를 40년간 쓰셨다. 다윗도 40년간 준비되었고 40년간 쓰임 받았다. 예수님은 30년간 준비하여 3년간 사역하셨다.



정치가 중에는 존 에프 케네디와 링컨, 이렇게 두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존 에프 케네디나 링컨 모두 말을 잘했다. 그런데 존 에프 케네디는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고통을 모르고 자라났다. 그런 케네디는 생전에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지만 역사에 남을 만한 명언을 남기지는 못했다. 반면 링컨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두고두고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정치가로 남아 있다. 고난이라는 준비 기간을 통과한 사람들은 이렇게 깊이가 달라진다.



천재 음악가 멘델스존과 베토벤의 경우는 어떤가? 멘델스존은 굉장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지중해에 요트를 띄워놓고 거기에서 작곡을 했던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매우 아름답고 감미롭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감미로운 데서 끝나고 만다. 반면 베토벤의 음악은 우리의 심금을 울려준다. 합창 교향곡과 같은 곡을 들어보면 절망했던 사람에게 큰 힘을 준다. 베토벤이나 링컨 모두 깊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서 기도가 무엇인지, 영적 능력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난 중에 오랫동안 준비되어왔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을 통해서 장차 깊이 있고 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비되기를 바란다.



2부 일천번제 예배자의 전폭적인 헌신



5장 왕 같은 제사장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생각할 때 흔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doing)라는 명제로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누구인가?"(being)라는 문제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신약성경에는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말씀이 도처에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저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너무나 귀중한 존재이다. 만일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가격표를 붙인다면 그 가격은 얼마나 될까? 아예 가격표를 붙일 수 없다. 그런데도 굳이 가격표를 붙여야 한다면 성도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는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구원할 수 없는 그런 귀중한 존재가 바로 성도이다.



둘째, 우리는 왕이다. 왕은 이 땅을 다스리는 일을 한다. 하나님은 이 땅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인간성의 본질에는 다스리는 속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을 살아갈 때 종으로 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어느 때는 악한 마귀가 우리 속에 게으름이라는 터전을 잡고, 어느 때는 외모에 탐닉하는 진을 치고, 어느 때는 거짓말하는 영(靈)이 우리를 사로잡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깨어버릴 수 있는 능력은 성령의 능력밖에 없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진치고 있는 마귀의 견고한 진을 깨뜨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의 종이 될 수 있다.



셋째, 우리는 제사장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구원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제사장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놀이가 있다. 나는 '다방구'가 세상에서 가장 복음적인 놀이라고 생각한다. 술래에게 잡힐 경우 술래 편에 노예처럼 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다가도 같은 팀이 '다방구'를 외치며 터치해 주면, 그때부터 그들은 다시 자유가 된다. 몸을 던져서 같은 팀을 해방시키면 이내 자유롭게 흩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를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