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위대한 나
로버트 맥기 지음 | 두란노
제1부 참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1장 질그릇 안에 있는 나솔직하게 털어놓기우리 중에는 방치와 학대, 조종으로 인해 정서적·영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 방치와 학대와 조종은 흔히 역기능가정(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이혼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재, 지나친 분노와 언어적·신체적 학대 등등)에서 나타나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의 죄악된 본성과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함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간다. 그래서 상처의 결과들을 발견해 나가다 보면 간혹 울적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상처가 깊건 다소 가볍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직하게 살피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야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화내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성경을 보라.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 우리와 사람들이 피상적인 관계를 맺거나 피상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다윗은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 51:6)라고 썼다. 주님은 우리가 진실하고 정직하기를 바라시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사랑과 용서와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성경 안에서 자기 가치 찾기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자괴감을 갖게 하고, 우울증에 빠뜨리는 전쟁터라고 경고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영적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태평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그리스도께서 이미 궁극적으로 전쟁의 승리를 확보해 놓으신 것도 모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전쟁터가 아닌 놀이터라고 생각한 나머지 어려움이 닥치면 놀라고 혼란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는 자기실현은 인생의 문제들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문제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얼마나 잘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우리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발견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교회와 세상 모두로부터 잘못된 가르침을 들어왔다. 세상의 일부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좋아하게 만들면 자기 가치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적 자아상은 그런 식의 제한된 견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해 자신과 하나님과 타인들을 정확하게 인식한다. 정확하고 성경적인 자아상 안에는 힘과 겸손, 죄로 인한 슬픔과 용서에 대한 기쁨,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깨달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모두 담겨 있다.
2장 내 안의 위대한 나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됨최초의 인간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았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 가운데 인간에 비할 만한 것은 없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갖추고 온 땅을 다스릴 임무를 부여 받은 탁월한 피조물이었다(창 1:26-28). 아담과 하와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최초의 인간은 지성, 자유 의지, 감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품을 드러내게 될 존재였다.
사탄도 아담과 하와처럼 완벽하게 창조된 존재였다. 그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된, 가장 지위가 높은 천사였다. 또한 더없이 아름답고 강했으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섬기도록 허락받았다. 그러나 루시퍼는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 반역했고 천사 삼분의 일과 함께 천국에서 쫓겨났다(사 14:12-15). 이후 그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보다도 영리한 뱀의 형상으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아담은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지만, 루시퍼처럼 하나님께 반역한다면 권세와 완전한 상태를 상실하고 사탄과 죄의 종(롬 6:17),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엡 2:3)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을 파괴하면 자신이 땅을 차지할 수 있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탄은 먼저 하와를 속였고, 하와는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다. 아담은 하와와는 달리 사탄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안전함을 스스로 버리고 하와를 따라 죄를 짓기로 선택했다.
그로 인해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을 잃었을 뿐 아니라 그분과의 친교와 교제도 상실했다. 아담이 의도적으로 반역함으로써 사탄은 지상에서 힘과 권세를 얻었다. 그 순간부터 모든 역사는 예루살렘 외곽의 한 언덕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그곳에 구세주를 보내셔서 인간의 반역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하셨다. 나아가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우리의 행동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반영하는 것일 때가 많고 대개는 스스로에 대해 믿는 바와 일치한다(잠 23:7).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자기 가치의 토대로 삼으면, 우리의 행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인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구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불안정에서 나오는 불안감과 두려움과 분노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가정환경은 신념과 정서를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신념과 정서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스콧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는 가정에서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새롭고 힘든 일을 시도할 때마다 스콧의 부모는 기를 꺾어 놓았다. "스콧, 넌 아무것도 못할 거다. 그러니 시도도 하지 마라." 이런 식의 말을 20년 동안 듣다 보니 그는 그 말을 정말로 믿게 되었다. 왜 그가 성적 불량으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제대로 하는 일 없이 직장을 계속 옮기는지 스콧 자신도, 부모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봐야 결국에는 실패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스콧은 그런 자기 인식에 맞추어 모든 일을 해 나갔던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서 분리될 때,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방법은 스스로의 능력과 다른 사람들의 인정뿐이고 결국에는 주위 상황에 따라 자신을 판단하게 된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을 끊임없이 속여서 어떤 일을 매우 잘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고 믿게 만들고 있다. 사탄의 거짓말은 아래의 등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기 가치 = 행위 + 평판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제2부 나에 대한 거짓된 믿음3장 나의 가치는 행위에 달려 있지 않다사탄의 거짓말우리 대부분은 사탄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를 속였는지 모른다. 사탄은 우리를 자신이 세운 기준조차 채우지 못하는 무능함의 포로, 자괴감의 노예로 만들어 다짜고짜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사탄은 우리에게 쇠사슬을 채워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유와 목적을 체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공이 만족감과 행복을 안겨 준다는 말은 누구나 믿기 쉬운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모종의 기준들에 도달하면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한 우리는 그 기준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러나 거듭해서 실패했고 그때마다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 남보다 많은 성공을 거두는 경우에도, 가끔 겪는 실패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곤 한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모두는 일정 수준의 기준을 만족시켜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우리의 안전과 가치는 위협을 받으며, 그런 위협을 느낄 때 실패의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 순간, 특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야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거짓 믿음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자신을 이렇게 생각할 때, 사탄의 왜곡된 진리가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서 자주 드러나게 된다.
사탄의 거짓말에 대응하는 여러 모습들매일 매일 해야 할 목록을 작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한순간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언제나 약간 긴장한 상태로 있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누군가 그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으면 그는 화를 냈다.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만족감을 얻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비참해질 뿐이었다. 언제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 왔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주님이 목표를 달성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를 원하신다고 믿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가끔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의 해결책은 늘 더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더 잘 쓰고, 스스로 정한 규칙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되돌아 왔다.
그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부과한 규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정한 스케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간순간 주의를 기울여야 그분의 주 되심을 체험할 수 있다.
4장 오직 그리스도만이 삶의 원천이다속죄양, 그리스도자신의 가치를 행위, 평판과 동일시하는 일은 행위의 덫으로 당신을 사로잡기 위해 사탄이 만든 공식(자기 가치=행위+평판)을 그대로 믿는 짓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 등식을 완전히 폐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와 능력과 전혀 별개로 우리를 확고하게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다(고후 5:21).
자, 이제 대차대조표 하나를 머릿속에 그려 보자. 한쪽에는 당신의 모든 죄가, 다른 쪽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적혀 있다. 이제 그 둘의 위치를 바꿔라. 이것이 칭의(稱義)의 개념을 잘 보여 준다.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돌리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그리스도]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 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칭의(稱義)에는 죄책감이 따라붙지 않고,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지도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셨다. 히브리서 10장 17절은 이렇게 말한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께 완전히 용서를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놀랍지만 칭의(稱義)가 뜻하는 바는 죄의 용서 그 이상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신 바로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자격, 즉 의(義)를 허락하셨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가치를 우리에게 돌리신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이상 저주 받은 죄인이 아니라고 선언하신다. 우리는 죄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 하나님께 온전한 기쁨을 선사하는 피조물이 된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 후손들이 의로운 사람들이 되어 그분의 사랑과 영원한 뜻을 온전히 체험하길 원하셨다. 죄로 인해 그러한 관계가 끊어졌으나 예수님이 완벽하게 우리 죗값을 치르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풀어내셨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의로운 지위를 누리며 주님을 알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로 생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안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왠지 불쾌하고, 하나님도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보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분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땅을 창조하시고 풍요롭게 채우시자 땅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이와 똑같이 우리는 전에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의로운 자로 선포되었다! 로마서 5장 1절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은 모든 사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완전하게 죄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은 나를 온전히 기뻐하신다."
칭의의 요점은 이 땅에서는 우리가 완벽함에 이를 수 없고, 자기의(自己義)를 향한 최선의 노력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이다(사 64:6).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아들로 우리 죗값을 치르게 하시고, 우리에게 아들의 의(義), 즉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완벽한 지위를 허락하셨다.
이는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상관없다거나 무슨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죄용서와 의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과 삶을 향한 강한 의욕을 느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고린도후서 5장 9절, 빌립보서 3장 8-11절과 그 외 다른 여러 구절에서 자신을 의롭게 만드신 하나님께 기쁨과 존경과 영광을 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표현했다.
우리가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안다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시도 하는 것이다!
5장 부정적인 'Yes!', 긍정적인 'No!'거절 하나도 두렵지 않다당신은 거절의 두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차갑고 무심한 모습을 연출해 일부러 깊고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피한다. 거절을 두려워하며 움츠러들어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거절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모든 사람의 요구를 끊임없이 받아주는 사람도 있다. 부끄러움이 많아 쉽사리 조종당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에 민감해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거절의 두려움이 커지면 적의를 품게 되거나 신경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평판에 근거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면 결국 속박에 이르게 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납하심의 진리 안에거하면 자유와 기쁨을 얻게 된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