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
로날드 사이더 지음 | IVP
제1장 스캔들의 심각성주제가 이혼이 되었건, 물질주의, 무절제한 성생활, 인종 차별, 결혼 생활에서의 신체적인 학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의 부재가 되었건 간에, 여론 조사 결과는 소위 복음 주의자이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성경의 명백한 도덕적 요구에 뻔뻔스런 불순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통계 수치들은 정말 충격적이다.
이혼조지 바나는 1999년 전국 여론 조사에서, 이혼을 경험한 사람 중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비율(26%)이 비그리스도인(22%)에 비해 약간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나의 여론 조사를 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그 수치는 거의 변함이 없다. 2001년 8월에 있었던 새로운 여론 조사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전체 인구의 이혼율이 거의 같았는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이혼율이 33%이며 나머지 미국인의 이혼율은 34%였다. 통계적으로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미미한 차이다.
바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복음 주의자를 구별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란 "오늘날 그들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한" 이들이며, 또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갈 것"으로 믿는 이들이다. 반면에 복음주의자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몇 가지 사항에 동의하는 이들이다. 예수님은 죄 없는 삶을 사셨다는 것, 영원한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 성화된 삶을 살아야 할 것. 확실히 후자는 신학적으로 훨씬 더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그리스도인 그룹에 해당한다.
복음주의자에 대한 정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혼율은 어느 정도인가? 바나가 실시한 1999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과 똑같은 수치다. 이 통계에 따르면, 25%의 복음주의자들이-총 인구의 25%와 똑같이-이혼을 경험했다. 그들의 주님이요 구세주인 분이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반복적으로 이혼을 정죄하셨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가?
물질주의와 가난한 자들복음주의자들은 부유해질수록 자기를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돈을 쓰면서, 교회에 내는 돈의 비율은 점점 더 줄인다. 오늘날 평균적으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십일조의 2/5 정도를 교회를 기부한다. 2002년, 바나는 거듭난 성인의 6%만이 십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00년에 12%였던 데 비하면 50%나 하락한 수치다. 또한 2002년에는, 바나가 엄격하게 분류했던 복음주의자들의 단 9% 만이 십일조를 하고 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살면서 가구당 42.409달러의 평균 소득을 향유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12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연명하고 있다. 최소한 10억 명에 달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 론스발르 부부는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만 제대로 해도,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1,430억 달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UN의 연구에 따르면, 1년에 700-800억 달러의 추가 비용만 있으면 전 세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본적인 건강 관리 및 교육 지원이 가능하다. 미국인들이 십일조만 제대로 한다면, 이 비용을 모두 부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한 600-700억 달러의 여유 자금까지 생길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인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최종 권위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한다.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신실한 백성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믿음과 실천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1970년대 후반, 나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 협의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내가 속한 소그룹에는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지의 수석 편집인 칼 헨리(Carl Henry), 휘튼 칼리지(Wheaton College) 총장 허드슨 아머딩(Hudson Arnerding), 예수 전도단(Youth With a Mission) 창설자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등 유명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 로렌 커닝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저는 복음주의 공동체가 좀 더 검소한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본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말이죠" 이 말로 토론은 끝이 났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권면의 말이 어디 있겠는가!
성적 불순종유명한 복음주의 연사인 조쉬 맥도웰은 수십 년 동안 복음주의 청소년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강연을 해 왔다. 나는 몇 해 전에 그가 복음주의 청년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비교해 볼 때, 이들의 혼전 성관계 비율이 고작 10% 적은 수치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남침례교 총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의 후원을 받는 "진정한 사랑은 기다린다"(True Love Waits)라는 프로그램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혼전 성행위를 줄여 보려는 복음주의자들의 시도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1993년 이후로, 약 2,400만 명의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서약에 서명했다. 이 젊은이들은 과연 자신의 서약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을까? 2004년 3월, 콜럼비아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의 연구원들은 그들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7년 동안 이 서약에 참가했던 12,000명의 십대들을 관찰했다. 슬프게도, 서약을 했던 이들의 88%가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맺었고, 12%만이 약속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들은 또한 성병에 걸린 십대의 비율은 "서약을 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거의 동일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결혼 관계에서의 신체 학대한 중요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해에 평등주의 가정의 아내 3%이하가 남편이 휘두른 폭력에 피해를 입었다. 남편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전통 가정에서는 10.7%의 아내들이 매를 맞았는데, 이는 평등주의 가정보다 300%나 높은 수치다. 20,00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그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에서는 전통 가정에서 일어나는 배우자간 학대가 40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보수 개신교회에 출석하거나 보수적인 신학관을 견지하는 남편들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가정 폭력에 관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NAE 소속)에 대한 폭넓은 연구는 복음주의 교파 내의 신체 및 성적 학대 행위 정도가 일반 대중과 거의 같다는 점을 발견했다.
결론그저 오늘날 복음주의 내에 불손종이 만연하다는 정도로 말하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이혼율은 보통 사람들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자기 중심적인 물질주의는 복음주의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이전 세대가 보여 준 약간 더 후한 기부 생활을 신속하게 파괴하고 있다. 십일조를 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6%에 불과하다. 또한 무분별한 성생활(혼전 성관계와 간통)을 정당화한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비율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인종 차별 및 아내에 대한 신체 학대 행위는 그 어떤 곳보다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심각한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나 자기 삶에서 부할하신 주님의 임재를 누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낯 뜨거운 행위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그리스도인들이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각각의 그리스도인 그룹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기독교 성직자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은 44%에 불과했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32%, 복음주의자에 대해서는 22%만이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복음주의자들이 기적을 부인하는 신학적 자유주의를 거부한 것은 정당했다. 오히려 우리는 수많은 면에서 기적이야말로 성경적인 믿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거기에는 깨어진 죄인들이 초자연적인 힘으로 도덕적인 변혁을 힘입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제는 복음주의 생활 방식이 우리 삶에서 기적적인 요소들을 단호하게 부정하고 있다. 사탄은 틀림없이 냉소적인 비웃음을 흘리고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저 울 뿐이다.
제2장 성경적 비전현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이나 실천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예수님이 기대하신 바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수치스럽게 실패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종과 급진적인 제자도를 요청하셨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변화된 생활 방식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놀라운 삶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갖게 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의 위선은 오히려 불신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 때가 있다.
복음서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값비싼 순종을 요구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막 8:34-35). 또 언젠가는,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고 주장하셨다. 예수님은 여기서 히브리식 과장법을 사용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문자 그대로 자기 가족을 미워하거나 소홀히 하기를 원하지는 않으셨다. 그저, 오늘날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이는 미지근한 신앙이나 두 주인을 섬기는 행태를 거부하라는 말씀을 가장 명확하고 분명한 용어로 전달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첫 자리로 모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그분을 무시하는 처사를 범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죄를 짓는 것 모두를 원하는 미지근한 신자들을 비난하셨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눅16:13).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들은 코웃음을 쳤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처럼, 그들은 "돈을 좋아했다"(묵 16:14).
손쉬운 이혼을 정당화하는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과 달리, 예수님은 이혼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분명하게 제한하셨다. 예수님 시대에는, 남편이 아내와 헤어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음행한 까닭이 아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사람은,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마19: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 14:23)라고 주장하셨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안 된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만, 가지 된 우리는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머무를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께 순종함으로써 가능하다!
자기 제자들이 삶의 중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될 것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런 급진적인 명령을 주신 것이 실제적인 처방임을 아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3:34). 실제로,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확실히 기대하고, 자신의 제자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요17:21) 할 만한 사랑으로 서로 돌아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사도행전사도행전의 처음 몇 장에는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놀라운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교제가 그 특징이었다. 매우 감동적인 경제적 공유는 그러한 특징을 보여 주는 모범이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행 2:44-45). 사도행전의 뒷부분을 보면, 각 가족들이 사유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새로운 교제권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재산을 공동 자금으로 털어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경제적 공유는 아주 광범위해서 그것을 지켜본 이들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4:34). 이처럼 놀라운 경제적 공유는 강력한 전도 효과를 낳았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고 말한 직후, 바로 다음절에서 누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다"(4:32-33)
로마서바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놀라운 말씀으로 로마에 보내는 서신(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조직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을 시작한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자신의 선한 행위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쓴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롬 3:28).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4:3). "하나님이 우리 죄악을 용서하실 때는 더 이상 우리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신다"고 선언했던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였다(4:6-8). 칭의 -우주에서 가장 거룩한 그분 앞에 흠 없이 서는 것 -는 선행이 아니라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계속해서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이 그분의 놀라운 자비를 보이시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 바울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얻는 칭의'라는 이 강력한 가르침에 대해 일어날 반대 의견을 곧바로 진압한다. "그럴 수 없습니다!"(6:2) 바울은 이런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 그럴 수 없는가?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 우리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죄가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면, 우리가 짓는 죄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