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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목사 중고등부 혁명

홍민기 지음 | 규장
1부 청소년과 함께 뒹굴 줄 모르면 가르치지 말라



같이 먹고 놀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라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국에서 신학과 목회의 기초 수업까지 받았으며 이민 2세와 3세를 상대로 10년 가까이 청소년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2월, 서울로 부르심을 받아 현재 강남교회 고등부를 맡아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실시한 '관계 중심'의 청소년 사역을 한국교회에 접목시키며, 세상과 전통의 가치관에 좌우되지 않고, 말씀 중심으로 사역해 온 일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특별히 두 가지 분야에 집중하여 사역했습니다. 첫째, 주중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학생들과 꾸준히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생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인 학습을 신앙과 연계하여 사역했습니다. 둘째, 수련회 때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학생들과 같이 놀고 뒹굴면서 그들이 예수를 만나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도록 인도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수련회 기간은 단 며칠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는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변하여 예수의 복음을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믿음 : 대접받는 대로 행동한다

제가 한국에 와서 첫 교회 수련회에서 선택한 놀이 프로그램은 카지노 게임입니다. 저는 그들을 존중하고 어른으로 대접해줍니다. 그들이 대접받는 대로 행동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미숙한 점이 많아 실수도 많지만, 의외로 우리가 놀랄 만한 일들을 해내기도 합니다. 청소년일지라도 우리가 대우해주면 그만큼 자기 몫을 합니다. 아이들이 죄에 쉽게 무너지는 것은 자존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그리고 사역의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시고 얼마나 만족해하셨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여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수련회에 웬 카지노

카지노는 게임일 뿐입니다. 정작 그 게임을 어떻게 하느냐가 카지노의 성격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고등부 수련회에서 카지노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3주가 걸렸습니다. 분주히 다니며 애쓰는 제 모습이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퍼진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쓰시는구나. 정말 좋은 수련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인식만 심어줘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지요. 단순히 앉아서 계획만 짜기보다 발품을 팔아가며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 이상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역자를 보면 식사할 때도 독상 받고 예배 때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식으로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아이들에게는 절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그런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할 때, 아이들은 저와 블랙잭을 해서 칩을 다 잃으면 다른 코너에 가서 성경퀴즈를 풀어야 했고 거기서 답을 맞히면 칩을 다시 주었습니다. 그러면 여지껏 성경 한 번 안 읽던 녀석들도 성경 말씀을 막 외우기 시작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경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결국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접근하도록 하는 과정이자 도구에 불과합니다. 관심 있던 것을 해보면서, 흥미를 가지고 신나게 놀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프로그램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수련회에서는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설교 안 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노는 일입니다.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한 회복과 기도를 통한 치유

청소년 사역을 지속해 오는 동안 저는 아이들과 벽을 쌓는 사역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사역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사역자가 한 아이씩 붙잡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청소년 사역자에게는 아이들만의 문화와 그들의 눈높이를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인 감각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지 타협할 수 없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 그리고 이를 통한 회복과 치유입니다. 이것은 세상 어느 프로그램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한 채 CCM 몇 곡 불렀다고 예배드렸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사는 오직 예배를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청소년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가?



한번은 제가 수련회에서 참담한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화장실 뒤에서 한 녀석은 망을 보고 한 녀석은 빨리 피우려고 담배를 마구 빠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와 그들 사이에 맺어왔던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거짓으로 자기를 감추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저는 제 태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더욱 교회에 나와야 하겠기에 차라리 제가 담뱃불을 붙여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곧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련회가 끝날 때쯤 되자 담배 피우는 장소에는 아예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담배를 끊었다는 아이들까지 속출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을 향해 "너는 이것이 잘못이다"라고 지적해서 그 아이가 변화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변화는 그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감해줄 때 일어납니다. 저에게는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기성세대보다 방황하는 한 아이가 더욱 소중합니다. 저도 담뱃불을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붙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제가 보지 않은 곳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는 아주 혼쭐을 내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아이와 저 사이의 정직한 관계를 무너뜨리는 배신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제가 아이들의 흡연을 용납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대해서 아이들을 크게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변화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수련회까지 와서 술을 마셨다면 그것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외적인 모습에 촉각을 곤두세워서는 안 됩니다. 각각의 중심을 사랑해야 합니다. 술, 담배, 마약,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에만 신경 쓰다보면 그 아이들의 중심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멀리서 손가락질하며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앞과 교회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치유하시는 주님께서 어루만지시어 청소년들이 술, 담배 등을 끊고 예수를 영접하는 기적까지 일으켜 주십니다.



관계의 마력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모델이 필요합니다. 사역자와 교사는 바로 그 역할 모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인정받는 모델이 되려면 우선 그들과의 관계를 우선해야 합니다. 그들과 만나서 부대끼고, 같이 놀고, 같이 먹고,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자는 일들을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고 밥 먹지 않으려면 설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설교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100명이 나온다고 하면 듣는 아이들은 고작 2,3명뿐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설교를 하려면 아이들과 먼저 접촉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가르치는 당신이 누구냐?"가 더 중요합니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관계성을 강조하면서 다가오는 이단에게 쉽게 넘어갑니다. 쉽게 갱단에 들어가는 것도 모두 이 관계성 때문입니다. 갱단에 들어가면 소속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사역자)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절대로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은 똑같습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관계를 추구합니다. 부흥하는 사역의 중심에는 바로 이 관계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보아야 믿는 영상세대입니다. 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대신 할 역할 모델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역할을 부모와 사역자와 교사가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청소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가 되라



뉴욕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다 보니, 변화된 아이들이 집에 가서 또 다시 아픔을 겪는 일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가정에서 잘 받아주기는커녕 "이제는 공부해라", "이제는 말 잘 들어라"라고 애초에 문제를 일으켰던 상황의 말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 역시 훈련되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역 단체를 결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브릿지 임팩트(Bridge Impact)입니다.



브릿지 임펙트는 "청소년들과 부모, 청소년들과 청소년 사역자들 간의 다리가 된다. 그리고 청소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가 된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브릿지 임펙트는 우선 부모들을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리더로 훈련시킵니다. 브릿지 임펙트 사역의 일환인 가정 캠프를 통해서 회복된 가정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가정이 회복되면 부모가 회복되고 아이도 회복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엄청납니다. 아버지가 바로 서면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교회 직분자로서 제대로 서게 되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출했다 하면 목사님 집부터 찾아라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는 특히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교회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떡하느냐는 문제로 저는 여기저기로 자주 불려 다녔습니다. 그럴 때 소위 문제아라는 아이들은 자기 편드느라 고생하고 욕먹는 목사에게 의리 지킨답시고 집에도 안 가고 평소 안 하던 기도까지 하며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있는 한 아이들은 신앙이 흔들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다른 곳에 가서 해결점을 찾지 않습니다. 한때 자기에게 따뜻한 정을 보여준 사람, 그래도 그 아이들 눈에 바람직한 모델로 보이는 목사나 교사를 찾아옵니다.



저는 가출한 아이들에게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 즉시 부모한테 데리고 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전화하려면 "제가 데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든가 "며칠 데리고 있다가 보내겠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렇게 데리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죄의 구렁텅이에 빠질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출하면 일단 친구 집을 전전합니다. 그러다가 힘이 들면 여러 가지 유혹과 죄에 빠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가출하고 싶으면 저희 집으로 오라고 당부합니다. 아이들이 먼저 "저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저 좀 만나주세요"라고 전화할 수 있을 정도의 교사나 사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단 한 번의 예배로도 변화될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주일예배가 살아 있으면 아이들이 변합니다. 한 아이는 정말 깡패 중에 깡패요, 아주 몹쓸 짓만 하고 다니는 문제아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데려다가 집에서 먹이고 재웠습니다. 하루는 같이 주일예배를 드리자고 권했습니다. 이 아이가 예배를 드리러 온 그 날, 정작 제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회개하고 진정으로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예배당에서 뒹굴고 소리 지르면서 자기가 잘못 했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똑똑히 기억합니다.



한번은 이 아이를 간증자로 세운 적이 있습니다. 15분 정도 간증한 다음 아이가 내려오고 단상에 올라가 보니 아이들이 전부 울고 있는 게 아닙니까. "나같이 몹쓸 놈, 나 같은 깡패도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셨다. 그런 하나님께서 너희들도 모두 사랑하신다"라고 한 간증에 아이들이 크게 감동한 것입니다. 그때 사역자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최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도로 인도하며 초청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때는 제 설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배를 너무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의 예배가 풍성할 때는 좀 더 찬양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참 찬양의 은혜가 깊어지는데 돌연 "시간이 되었으므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은혜 그만 받고 예배드리자고 합니다. 물론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청소년 예배 때는 성령의 움직임을 좀 더 세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주일예배를 기대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주일예배를 생각하면 재미없고 설교 생각만 해도 졸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목사님 설교는 재미있고 우리 목사님은 웃긴다는 생각이라도 갖게 해야 합니다. 재미 역시 우리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2부 청소년 사역,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청소년 투자에 인색하면 경로당 교회 멀지 않다



지금처럼 혼미하고 기준이 없는 사회에서, 이 땅의 회복은 청소년들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청소년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죽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에 교회가 그저 성경만 가르치는 옛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쇠귀에 경 읽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말씀이 없이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열심히 제자훈련을 시키는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사역자와 학생들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한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공부에 찌든 아이들

처음 한국 학생들을 만났을 때 제가 받은 인상은 그들이 공부에 찌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에 찌든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속이 상하는 한편, 저는 교회나 가정에서 정말 잘못하고 있는 점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을 크리스천의 가치관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으로 키운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대접받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결국엔 '모자라다'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고3이면 교회생활을 안 해도 하나님이 이해하신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공부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라면 운동, 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달란트입니다. 각자 개인의 달란트는 무시한 채 모든 아이들이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강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목적 없는 공부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라는 소리만 들으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누가 뭐라고 하든 아무런 반응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매일 똑같은 소리를 지겹게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해라", "밥 먹어라", "일찍 자지 마라"는 식의 잔소리만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특히 학원에 다니면서부터 학교에 대한 불신까지 생겨났습니다. 학교 시간에 오히려 잠을 자는,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말과 구호로 사랑하기보다

제가 바라본 한국교회는 단적으로 장년을 위한 교회입니다. 지금 교회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흔한 예로 보통 교회당에서 제일 좋은 예배실과 제일 좋은 장소는 모두 어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마땅히 놀 곳조차 없습니다. 사회나 가정에서는 교육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온갖 관심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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