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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게리 토마스 지음 | CUP
저자 서문



보스톤 외곽에 있는 왈던 폰드 근처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오두막 터였던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소로우는 진리의 일부분을 발견한 타고난 신비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너무나 심취된 나머지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놓쳐 버렸다. 가까이는 갔으나 시선을 너무 아래에 두었던 것이다. 그 역시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처럼 작은 진리에 가려 큰 진리를 보지 못했다. 소로우는 피조된 것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포기했으며, 이것은 아기의 아름다움과 아기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에 너무나 빠져버린 나머지 창조자 대신에 피조물을 경배하기 시작하는 부모나,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에 너무 큰 성취감을 맛본 나머지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의 교회를 예배하기 시작하는 목사와 다르지 않다. 일시적인 것에 가려 영원한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은 훌륭한 탐구 대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치우친 마음으로 대할 때 우리의 첫사랑을 버리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하다.

이 책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다.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렘 30:21)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싸움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세상이 정말 보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데 헌신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소명은 바로 그것이다.

1. 믿음의 여정 / 하나님을 더 친밀하게 만나기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지음 받았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알며 사랑하려는 일이야말로 우리 마음의 진실된 외침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기에는 너무 힘든 대상 같다. 육체와 시간에 매인 우리가 어떻게 영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겠는가? 지성에 한계가 있고 우리의 열정 그 너머의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무한히 거룩하고 영화로우시며 그 마음에 죄가 한 번도 자리한 적이 없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나를 따라 오라'며 우리를 부르실 때 이뤄지는 그분과 우리의 관계만큼 불균형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인간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보이지 않으며 그 음성도 직접 들을 수 없는 분과 어떻게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과 거룩한 열정으로 불타는 마음을 안고 믿음의 여정을 살았던 사람들이 던진 궁극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소중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이 싸웠던 싸움과 발견한 지혜, 이들의 승리와 패배를 소개하고 싶다. 또한 이들의 지혜와 실제적인 조언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열정까지 전해주고 싶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옛 영성가들의 삶에서 풍성한 유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폭넓게 일치하는 사상과 이들이 하나님의 영을 추구하는 실제적인 모습과 특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성'에 관한 관심이 너무나 고조되어 있는 이때에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인간 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이다.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리에 근거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타인 중심적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주된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고통과 의심과 기쁨을 함께 하는 타인 중심적인 사람이 되라는 소명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의 참된 성취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런 후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받은 사랑에 반응하는 것에서 이뤄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본질이다.

2. 결승점에서 출발 / 영적 목표 설정하기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얻는다는 사실에 깊이 잠겨 있기 때문에 구원을 이 루려고 애쓴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문에 다른 귀중한 진리를 놓치고 있 다. 바로 우리가 성장해야 한다는 진리이다. 성장은 고통스럽다. 대부분의 경우 성장은 어려움과 고 통을 이겨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장의 동기를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예수께서 나를 위해 이미 다 하셨어요."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그 러나 이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게으름에서 나오는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장을 촉구 하는 말로 가득하다.

오래 전부터 가장 인기 있는 기독교 작가인 존 클리마쿠스는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우리는 모든 악 과 모든 덕에 관하여 자신이 출발점이나 중간이나 결승점 가운데 어디에 와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펴 야 한다." 우리에게 목표 설정과 지속적 성장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자신이 출발점에서 멈춰 서 있는 지, 중간 지점에서 만족하고 있는지, 아니면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 문학과 영성에 관한 고전들을 탐구하면서 하나님과 아주 활발하게 동행했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들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재발견하는 첫 번째 단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분 명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세대를 통해 세운 많은 목표를 살펴보는 것은 유익이 된다. 클리마쿠스는 신자들을 '냉정함'으로 인도하려 했다. 이것은 세상적인 열정을 천국을 향한 갈 망으로 바꾸는 방향 전환을 말한다. 16세기 십자가의 요한은 '신적 연합'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이 것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영적 어려움의 여러 단계를 통과한 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영 적 결혼이다. 나의 목표를 발견한 것은 아빌라의 테레사를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기도의 여섯 단계 를 거쳐 마침내 일곱째 단계, 곧 그녀가 '내성'이라고 부르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게 해 주었다. 이 영성가들은 모두 한 가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목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형성 해 주었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성장을 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 진보는 훌륭한 목표지만 영적 진보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이것 은 마가복음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일차적인 관심과는 전혀 동떨어져 보인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 목 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사색(기도, 묵상,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적 사역 (가르침, 치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섬김)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 내가 받아들인 목표는 나 자신을 하나님 중심으로 만든 후에 타인 중심적이 되는 것이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의 무지를 몰아내셨으며, 귀신을 물리치셨고, 병든 자와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바꿔 말하면, 예수께서 걸으실 때 지옥이 그분의 발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우리에게 분명한 목표를 제시해 주신다. 그것은 바로 지옥이 우리의 발 앞에 서 산산조각 나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목표, 곧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 들에게로 흘러 넘치며 그로 인해 우리의 발 앞에서 지옥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하나 님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를 계속해서 능력있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해준다. 이 목표는 핵심적인 질문, 즉 "우리 주변 사람들이 변화 받고 있는가?"로 우리를 이끈다. 이러한 나의 목표는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동일한 목표였다.

분명한 영적 목표 설정에 관한 옛 영성가들의 예에서 유익하다고 느낀 몇 가지 단계들을 소개하자면, 첫째, 시간을 내어 복음서를 읽으면서 당신과 그리스도를 비교해 보라. 둘째 옛 영성가들이 목표했던 바를 느껴 보고 친숙해져라. 셋째, 기도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재점검하라. 넷째,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 다섯째, 관련 성구나 책을 찾아 정보를 늘려라. 여섯째,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기 억하라.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3. 목적이 이끄는 영성 / 일곱 가지 영성 훈련



이 장에서는 헌신이 없이는 목표가 성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그저 목표를 머리 속에 그리기만 하면 그 목표가 성취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게으름, 이기적 야망, 탐심, 교만, 그리고 그 밖의 잘못된 태도와 죄를 이기기 위해 평생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학교나 직장, 결혼생활, 자녀 양육, 운동, 그 외 거의 모든 분야에서와 같이 영적 성장의 경우도 성공할 수 없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영향을 받은 윌리암 로우의 저서 『경건한 삶을 위한 부르심』에서 로우는 이렇게 촉구한다. "당신은 경건한 책읽기와 거룩한 묵상 그리고 금식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살찌워야 한다. 그래야 이생이 끝날 때 시작되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즐기며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한 두려움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계속 점검하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모든 의무에 대해 양심을 엄하고도 부드럽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태함에 빠지며 결코 천국의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지금까지 잊혀졌거나 등한시된 영성 훈련의 일곱 가지 방법을 살펴보자:

(1) 경건한 책읽기

- 경건한 책읽기는 첫째, 순전히 지적인 훈련이 아니라 마음의 적극적인 변화에

목적이 있다.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은 천천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각 단락을 음미하면서 성령에 귀를 기울이며 읽는 것을 말한다. 어떤 부분은 강조되며, 그 부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가 읽고 있는 진리를 우리의 영혼에 적용시키는 모습이다. 둘째, 다섯 권의 평범한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책을 두세 번 읽는 게 더 유익하다. 셋째, 저자의 제한된 시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그의 인생 여정에서 어느 시점에 있는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넷째로, 진리는 때때로 역설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영적 고전들을 읽되,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종합하려는 자세로 읽어라.

(2) 훌륭한 본보기들을 본받아라

- 성숙의 과정에서 우리는 훌륭하고 긍정적인 본보기들을 찾아 그들

에게서 배워야 한다. 나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특별한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많은 것을 묻는다. 어떻게 그들이 현재처럼 되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3) 덕목을 길러라

- 참된 덕은 성취물이 아니라 은사, 곧 성령의 열매이다. 옛 영성가들, 그리고 성

경은 우리가 성령의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영적 훈련은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어두운 부분에 종이 될 필요는 없다. "전 원래 그래요."라는 말은 겸손한 고백이 아니라 게으름의 고백이다.

(4) 불편함을 활용하라

- 우리는 때때로 우리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에 자연스럽게 빠진다. 그

러나 이러한 자기 탐닉은 우리를 유약하게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요한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힘을 기름으로써 '영적 쇠퇴'와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고 훈련함으로써 우리의 열정과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가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실제로는 우리의 인격을 형성해 가는 영적 전투들이다. 진정으로 성장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은 적이 아니라 친구일 수 있다.

(5) 진리를 몸에 적용하기

- 몸에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윌리암 로우는 몸

을 훈련시키는 일이 거룩한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라고 했다. "행동은 전적으로 영에 속한 것도 육에 속한 것도 아니며, 습관도 영과 몸 양쪽 모두의 행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확실한 것은 헌신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습관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늘 묵상하고 영을 훈련시키고 또한 내적 기질에 편안함을 느끼는 모든 외적 행동에 대해 몸을 연습시키고 훈련시켜야 한다." 율법주의의 위협 때문에 진리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훈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물론 행동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과 행위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행동을 다스림으로써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모든 행위들은 마음에서 기질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기에 우리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외적 행위들의 주인이 되는 것은 마음의 내적 상태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설령 우리가 몸과 영혼을 훈련시킨다 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은 이런 훈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악을 행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 죄를 덮으며, 선을 행할 때에도 성령께서 우리를 지탱시키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6) 일찍 일어나라

- 아침에 기도하는 것은 많은 유익을 준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면 우리 영이 하나

님께로 향하며, 마음에는 감사가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영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7) 되돌아보며 살아라

- 이기적인 선입견은 영적 성장을 가로막지만, 분별 있는 자기 회상(성찰, 반

성)은 기독교의 본질적이고 건강한 요소이며 영적 성장을 확인하게 해주는 거울이다. 자기 성찰은 우리가 게을러지는 것을 막아주고, 성장이 지체될 때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 모든 영적 훈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일깨워진 마음으로 모든 것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에 반응하는 은혜의 영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로운 삶과 혹독한 훈련이 있더라도 그 속에 은혜로 채워진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노른자 없는 계란과 같다. 책임과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를 떠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이다.

4. 경건한 삶 살기 / 죄와 유혹 피하기 고전과 그 저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들이 죄와 유혹에 정직하게 접근한 모습에서 용기를 얻는 다. 17세기 신비주의자 페네롱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적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나 자신은 어느 누구보다 다루기 힘든 존재이며 나로서는 도저히 바꿀 수 없 는 존재이다." 프란시스 드 살레도 당시 유명한 영적 조언자였으나 자신에게 가장 힘든 두 개의 감정 은 바로 사랑과 분노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이 받는 유혹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받 는 유혹에 부드럽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기 마음의 죄를 알고 있었지만 본받을 만한 삶을 사 는 법을 발견했다.


경건한 거룩을 구할 때 우리는 먼저 죄의 불합리성을 이해하고, 무엇이 거룩이고 무엇이 거룩이 아닌 지를 논의해야 한다. 죄가 정말 무엇인지 깨달을 때 기독교의 도덕적 요구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룩은 짐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바울을 비롯한 옛 영성가들은 거룩이 열정을 이기는 것이라기보다 열정을 깨끗한 삶으로 바꾸는 문제라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파 스칼의 말처럼 "거룩과 선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경험이 보여준다." 거룩은 따뜻한 난로이며, 바 깥 차가운 곳에서 떨고 있는 우리를 불러들이는 안식처이다. 참된 거룩의 뿌리는 규범이나 원칙이나 기준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참되고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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