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인생으로 詩를 쓴다
한홍 지음 | 두란노
1부 선택받은 리더 - 남자, 리더로 부름받다
사울의 추락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리더 다윗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이 버린 리더, 사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확실히 알아야,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어 다스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인간의 정부, 인간 왕을 원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가지고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사람들의 간청을 허락하셨다. 이 철없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급조된 리더가 바로 사울이다.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울은 상당히 겸손했다. 청년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찾아온다. 이미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사울을 기다리고 있던 사무엘은 그가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사울은 집안이나 인물됨도 변변치 못한데 어찌 감히 자기가 왕이 되겠냐고 했다. 사무엘은 초창기 사울의 그 겸손을 사랑했다. 그래서 사울을 만난 그날, 사울에게 하나님의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성껏 전수했다. 왕이 된 사울은 즉위 직후,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는 전과를 세운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하고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보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일부터 했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교한 존재인가? 조금만 남보다 능력이 있으면, 남보다 더 빼어난 외모가 있으면, 남의 위에 세워 주면 이렇게 자기가 최고인 줄 착각하고, 스스로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려는 시도를 한다. 사울도 처음엔 겸손했지만, 얼마 못 가 사고가 나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시간에 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사람의 경우는, 특히 리더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역을 줄로 재어 주셨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지켜주는 구역으로 봐야 한다. 이 구역을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는데 함부로 넘어서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크게 다치게 된다. 사울이 바로 그랬다. 블레셋과의 대접전을 앞둔 사울은 사무엘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를 올려 버린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구별하지 못하고, 왕이니까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자기가 왕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임을 망각하고 있었다.
사울은 계속 인간적인 카리스마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해 나가려 한다. 자신으로 가득 찬 사람은 스스로를 하나님인 양 착각하고, 주어진 선을 분별 없이 마구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파멸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 아말렉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전멸해 버리라는 명령을 사울에게 주신 것이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능력 주심으로 승리를 얻은 사울은, 그러나 다시 한 번 불순종의 죄를 범한다. 백성과 짐승과 재물 중 가장 좋은 것들은 남겨놓고 가치 없고 천한 것들만 멸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이 이 죄를 범하는 순간에, 깊이 한탄하셨다("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불순종하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인간의 비극은 죄를 지어놓고도 죄인 줄 모른다는 데 있다. 죄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부질없는 자기 변명, 자기 합리화, 비겁한 책임 회피다. 특히 리더들은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국가의 문제, 영적 문제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드리려고 좋은 것들을 남겨두었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계속한다. 불순종하는 리더는 이렇게 위기 상황에 부딪히면 말을 둘러대며 변신하는 추한 모습을 보인다. 당신은 어떤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살지 않으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온다. 우리는 사람을 다스리기 전에, 나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에 온전히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울은 업적 중심의 사람이었다.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책에서, 사울처럼 일 중심의 카리스마적 남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그는 항상 일을 해내야만 만족한다. 둘째, 그는 항상 성장하고 확장하기에 몰두해 있다. 셋째, 그는 자신의 인격의 깨끗함, 정직함을 돌보지 않는다. 넷째, 그는 사람들을 일을 이루는 도구로 본다. 다섯째, 그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다. 여섯째, 그는 늘 경쟁적이다. 일곱째, 그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항상 바쁘다. 당신은 어떤가? 사울은 바로 당신 속에 무섭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정치, 기업, 교육 분야 등의 지도자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희생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구세주 콤플렉스"에 빠져 버린다. 세상 모든 문제를 자신이 다 감당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은 야심찬 리더들에게 부탁한다. 구세주 콤플렉스를 버리라. 그러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분명히 하라.
먼저 당신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분명히 머리 속에 각인해 놓는 것이 좋다. 나는 목회자라는 거룩한 성직도 사실은 주인이신 예수님보다 다른 제3의 보스들을 더 의식하고 일하기 쉽다는 데 항상 전율한다. 특히 인간적으로 뭔가 조금 이루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예수님을 보라.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뭐 하나 확실히 된 것이 없었다. 제자들은 아직 형편없는 믿음의 소유자들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 도망쳐 버렸다. 자신의 영향력은 조그만 팔레스타인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못 다 이룬 일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으로 몸부림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당하게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혼자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번민하는 리더들은 이제 그 짐을 내려놓도록 하라.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늘 기억하고, 당신에게 주어진 일들만 하루하루, 하나하나 성실히 하라. 당신은 어느 누구도, 어떤 일도 책임질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라.
다음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리더는 자신의 영혼을 먼저 하나님 안에 세울 필요가 있다. 너무나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자신은 남을 돌봐야 하므로 스스로를 돌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 타인을 위하겠다는 불건전한 자기희생 증후군, 사람들의 고통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느라 자기 자신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세주 콤플렉스에 빠진 리더들의 착각이다. 정작 구세주 예수님은 이런 콤플렉스가 없었다. 군중들이 몰려오자 그분은 아예 배를 빌려 제자들과 함께 달아나셨다.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과 늘 고고히 조용한 묵상과 교제를 하셨다. 당신 생애에 온 세상을 회개시키시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이런 삶에서 배워야 하리라. 자기 자신의 몸과 영혼을 충분히 쉬게 하라. 자신이 먼저 가서 배우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여 건강한 육체와 마음,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라.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남을 도울 수 있다. 끝으로, 좋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좋다.
소년은 거인(巨人)을 침몰시키고다윗은 양을 치면서 강한 체력을 연마한 전사였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용서했고 자기에게 잘못한 주위 사람들을 용서하고 품어주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진정한 영적 리더십은 이렇게 사람을 품어 주는 것이다. 그는 수금을 다루며 노래를 부르는 악사였다. 감성이 그만큼 풍성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리더에겐 따뜻한 가슴, 풍성한 감성의 깊이가 필요하다. 당신의 인생에 찬양이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문학이 있고, 시가 있고, 음악이 있는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다윗은 하나님이 세워 주신 그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성심껏 최선을 다했다. 목동과 악사와 가족의 서열에 이르기까지 다윗의 모든 인생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우리 인생의 아주 보잘 것 없는 순간순간도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은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을 불러 쓰신 적이 없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일을 소홀히 않고 성실히 하면 하나님의 큰일에 쓰임 받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 같으면 사자 같은 전사로 돌변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적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한 데 대한 분노였다. 이 땅의 남자들이여, 직장이 위협받기 때문에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서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기도하라. 광야에서 쫓기면서도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걱정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윗의 영광을 챙겨주셨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늘 "여호와를 의지하라,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한마디 구호로 모든 명령을 대신했다. 골리앗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다윗에게 골리앗은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런 위대한 믿음을 가진 지도자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비전과 용기를 주어, 함께 위대한 일을 이룬다. 하나님의 지도자는 태산 같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그러고 나면 그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이 시대의 다윗이 되어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서라. 당신에게 주어진 작은 돌(재능, 노력)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던지라. 골리앗은 반드시 쓰러지게 되어 있다.
2부 훈련받는 리더 - 남자, 리더로 만들어지다도망자 다윗블레셋 최고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군대의 영웅이 되어 백전백승하던 장군 다윗.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울의 창을 피해, 왕자 요나단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왕궁을 탈출한 다윗은 10년 가까운 세월, 소중한 20대를 유대 광야 곳곳으로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이 시절 다윗은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도망자의 세월 속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담겨 있었다.
다윗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뼛속 깊이 체험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사울과 그의 부하들의 집요한 추적을 받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원수의 땅인 블레셋으로 들어가고, 미친 사람 행세까지 했겠는가? 인생의 도망자 시절은 우리의 기존 가치관을 뒤엎어 버린다. 평소에 우리가 애지중지 하던 것들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재정리된다.
다윗은 처절하도록 외로웠다. 그러나 인간들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깊고 진솔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수많은 시편의 묵상들이 나왔다. 다윗은 인생의 광야를 지나면서 자신의 자아가 철저히 부서지는 것을 체험한다. 인간은 다 자기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며 살아간다. 우리의 시퍼런 자아는 남을 힘들게 하고, 내 자신을 힘들게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인생의 광야에 들어갈 때 비로소 어줍지 않은 자아가 부서지고 녹아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한다. 성공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반성을 잘 안 한다. 가진 것을 모두 잃어봐야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최고의 인생을 산다.
도망자 다윗은 육체적으로 계속 쫓기는 피곤하고 급박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그의 내면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시편 34편은 그가 미친 척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직후 쓴 시인데, 첫 서두가 찬양으로 시작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는 자기 목숨을 살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감사는 꼭 풍성하게 넘쳐서 드리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임재, 터치를 느낄 때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다윗은 그 절박하고 힘든 환경에서 기도로,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며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다윗의 도망자 시절, 역사에 남을 사건은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일이다. 사울은 3천 명이 넘는 정예부대를 투입, 다윗 일행이 숨었다는 엔게디 황무지를 샅샅이 수색한다. 미로 같은 굴들 사이로 도망가던 다윗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기도가 그대로 시가 되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런데 사울이 볼일을 보러 들어온 굴이 바로 다윗과 부하들이 숨어 있던 곳이었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이 준 기회라며 다윗을 부추겼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사울의 벗어놓은 겉옷자락만 베고, 사울은 그냥 살려서 보낸다. 다윗의 부하들은 기가 차서 기절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날 때부터 사울과의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었다. 사탄은 사울을 비롯한 모든 인본주의적, 권력지향적 인간들의 영혼을 독선, 권력욕으로 병들게 하는 악한 세력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늘 기도함으로써, 인간을 미워하기보다 그 뒤에 있는 악한 영적 세력을 대적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은 사울 또한 한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리더십임을 알았기에 그것을 존중했다. 다윗은 부하들에게 "내가 어떻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칠 것인가?"라고 꾸짖는다. 다윗은 여기서 인간적인 지도자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 준다.
적을 용서한 다윗은 사울 왕까지도 감동시켰다. 다윗은 사울에게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다. 왜 자신을 자꾸 해하려 하느냐."며 큰 소리로 외친다. 이 말을 듣고 사울은 감격하여 울면서 "내가 네게 그렇게 악하게 했음에도 네가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위대한 사람이다.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임을 내가 안다. 그때는 내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하며 오히려 자기 가문의 안위를 부탁한다. 물론 또 다윗을 잡으러 돌아오는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지만 말이다. 다윗의 거룩한 용서는 사악한 적의 마음에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악한 적들의 가슴에 거룩한 감동을 주는 큰 용서의 사람이 되기 바란다.
새벽을 위한 어둠사울의 추적은 계속되고 다윗과 부하들은 블레셋 원수들의 땅으로까지 도망한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고통스럽던 다윗의 도망자 생활도 서서히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악인은 악인의 손으로 벌하게 한다고 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 블레셋이 연합군을 조성하여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군과 엄청난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사울 왕조를 몰락시키는 전조가 된다.
사람이 힘들 때는 하루가 천 년같이 느껴지는 법이다. 다윗이 이렇게 힘든 도망자 시절을 견디고 기다린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 37:7). "대저 행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한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9-10).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을 때만이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