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기술
고든 스미스 지음 | 사랑플러스
1. 하나님과 춤을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차원에서 끊임없이 선택이라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확신을 가지고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기술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확신 속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의견들첫 번째 견해는 '청사진 접근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점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삶에 대한 완벽한 계획, 즉 청사진을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두 번째의 관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 주시는 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사진'의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인을 찾고자 하며, 그것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검토한다. '지혜'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우리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 중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의견을 물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들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를 격려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 목소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들과 교회사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만남을 누렸으며 그분의 목적과 뜻에 관해서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단지 일반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의미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게 될 선택과 결정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과의 사귐우리는 하나님과 독특하고 인격적이며 역동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추종자인 동시에 친구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 자신의 소원과 의지, 인격, 문제, 사귐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자유로운 두 의지 사이의 만남이다. 더욱이 삶의 전환점, 즉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깊이 만나고 알 수 있으며, 우리 자신에 대해 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삶의 위기 한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그 위기를 맞는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변화된 자들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행동하다.
분별과 인도하심분별은 결정해야 할 그 때에만 제한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경험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분별이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말씀을 듣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접근 방식에서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기도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은 기도 안에서 유지되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 수 있는 것도 기도 안에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와 동기, 소원,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는 것도 기도 안에서이다. 분별, 그리고 사귐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과의 만남에 관해 우리는 순전히 실용적인 태도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모델은 두 가지 의지와 두 가지 자유, 즉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소통이라는 현상을 가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나의 반응, 특히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응답은 순종적이어야 한다.
분별의 기술을 개발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보다 앞서갔던 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들은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많은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우리보다 앞서 갔던 이들이 전해준 축적된 지혜를 모으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2. 최선의 선택분별은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서로 경합하는 선택 가능성들 중에서 차별적인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에서의 분별은 우리의 신앙과 겸손 속에서 신중하게 사고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될 수 있고 사랑의 사람들이 되라는 부르심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선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결정들이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하나님의 의도나 그분의 뜻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있다. 둘째로 이그나티우스는 분별이 필요 없는 선택의 또 다른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으며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가 되는 선택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토저가 지적한 것처럼 성경은 선택의 종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는 두 가지의 선한 선택 사항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할 순간이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럴 때에 우리는 주께로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분께 묻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라는(약1:5-6)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
최고를 구하라우리가 최고의 선택을 찾는다고 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구하고 있음을 가정한다. 분별은 이전에 내렸던 결정과 헌신에 비추어서 최선의 것을 추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결정한 근본적인 헌신들이나 전제를 어기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 원칙은 과거를 존중한다.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변덕스럽거나 자신의 결정을 쉽게 바꿔서는 안 된다. 분별은 언제나 현재에서 최선의 것을 추구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면, 우리는 가장 어려운 때일지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리석음과 실수를 그대로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또 하나의 새로운 날로 맞을 수 있으며, 과거의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최고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분별은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이다. 분별은 결정을 위한 것이며, 내적인 평화와 확신 속에서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분별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이며 상황적인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상황을 분별해 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상황일지라도 각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도하신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지침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것을 분별하기로 결심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하며, 또 한편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시키는 다른 이들의 억압적인 판단이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 구별하기 분별이란 이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들과 사탄의 거짓 증언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해 내는 것이다. 물론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영적인 분별의 기술을 개발해야만 한다. 구약의 신자들에게 있어 분별은 주로 거짓 예언으로부터 참된 예언을 구별해 내는 것을 의미했다. 신약의 신자들도 거짓 교사들과 참된 교사들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성령의 증언을 인식하는 분별의 행위가 특히 중요하다.
웨슬리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된 기독교란 진심에서 우러난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분에 대한 응답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가정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들은 연합을 이루며 그 속에는 조화와 이해가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성령의 내적 증거가 언제나 외적인 사인을 가지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은 웨슬리 교리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과 연합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두 가지 사인을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 사인은 확신,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다. 두 번째 사인은 인격, 즉 성령과의 연합의 열매로 우리가 도덕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기쁨과 선을 행하려는 소망, 악으로부터 돌이킴 등의 변화가 내적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적인 기쁨과 확신은 반드시 도덕적인 개혁을 수반하게 된다.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것은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내적 증언을 알아듣고 그분의 격려하심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는 첫째,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둘째,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 셋째, 우리를 진리로 이끄신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는 우리가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 우리를 인도하신다.
기도의 중요성분별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도를 통한 그분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관계라는 맥락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사귈 수 있는 통로인 기도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 기도는 듣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도를 위해서 때로는 우리가 그저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침묵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토머스 그린은 분별을 기도와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는 행위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라고 말하였다.
3. 분별의 기초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최고의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사의 모든 시대에 등장했던 영적 대가들은 이 문제, 즉 우리의 근본적인 헌신이라는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러한 자세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의 문제이며 그리스도의 존재 근거와 그분의 가치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분별에 있어 가장 큰 위험은 우리의 교만과 이기심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별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의로움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최선의 것은 단지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한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최선의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의(義)에 대한 근본적인 헌신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다.
성경에 의해 새로워진 마음만약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은 주로 성경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분별에 있어 성경이 첫 번째 객관적 기준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관적인 성령의 증언은 객관적인 성경에 비추어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그 말씀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를 전달해 주신다. 이는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살아 있게(골 3:16) 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충만함(엡 5:18)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마음이 성경에 완전히 젖어야 비로소 우리는 무수한 소음들 가운데에서 성령의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신자는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 뜻과 그 분의 목적을 좀 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최고의 것을 분별하도록 도와준다.
공동체 속에서의 삶분별을 시험할 수 있는 두 번째 객관적인 기준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에서의 삶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인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이다. 다른 성도들과 교제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심각한 영적인 위험에 처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얻은 영감이나 통찰력, 인식들을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가 받은 영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신앙의 공동체가 주는 격려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로부터의 견제와 균형도 필요하다.
4. 하나님의 평화이제 분별에 있어서 하나님의 평화를 아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검토해 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의 문제를 다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항 종교개혁(Counter Reforamation) 시기의 스페인 신비가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모든 시대와 전통,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분별의 필수적인 원리를 발견하였고 이를 정식화하였다. 그는 『영신수련』이라는 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 속에는 '분별을 위한 규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감정은 중요하다이그나티우스의 첫 번째 통찰은 분별이란 우리 마음속에, 특히 우리의 감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 양심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들, 우리 마음에 남겨진 인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마음의 움직임을 지각하고 그것을 제대로 평가함으로써 그분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다.
위안과 절망이그나티우스의 두 번째 통찰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감정들은 위안과 절망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위안은 평화, 기쁨, 만족, 평온함의 감정으로서, 행복함과 무사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망감이란 분노, 억압, 낙담, 내적 혼란 등의 감정이며, 때로는 무기력의 감정일 수도 있고, 구체적인 느낌이나 반응이 아닌 단지 내적인 불안감일 수도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우리의 감정적인 기복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성찰하는 훈련을 하게 되면, 그것의 중요성을 바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반복적인 양식이나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질서 있게 처리할 수 있고 우리의 내적인 반응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며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절망스러울 때 결정을 미루라이그나티우스의 세 번째 통찰은, 절망감을 느낄 때에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절망감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욥과 예레미야, 혹은 다른 이들에게 그러셨듯이). 절망감을 느끼는 동안에는 행동의 방향을 변경하거나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아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