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코드 깨기
어윈 루처 지음 | 규장
프롤로그『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는 예수에 대해 또 하나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즉 예수는 결혼한 사람이요, 여권신장주의자(feminist)이며,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뿌리를 파헤칠 것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신약성경의 기록은 예수의 삶과 사역에 대한 믿을 만한 보고서인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참뿌리를 찾는 이 여행에 당신을 초대하는 바이다.
혹시『다 빈치 코드』를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하여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스의 왕족과 결혼했다.
* 이 사실이 알려지면 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교회는 이것을 대중이 알지 못하도록 억눌러왔다. 어떤 고도의 비밀조직이 이와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 문서가 세상에 공개되면 현재의 기독교는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의 저자 댄 브라운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분을 주(主)와 구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직접 공격하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적 신성(神性)'을 세상에서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문서와 이론들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 중심적 지배구조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여신 숭배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의 책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 빈치 코드』가 세상 사람들에게 단지 소설로 알려진다면,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이 스스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데 있다. 세뇌, 협박 및 집단적 고행의 혐의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는 가톨릭의 한 경건한 분파인 오푸스 데이가 실존하듯이, 시온 수도회 또한 실존한다는 말이 영어판『다 빈치 코드』의 표지 접지에 언급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미술 작품, 조각, 문서 및 비밀 의식에 대한 언급이 모두 정확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의 구성(plot)의 기본 틀은 댄 브라운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세기 동안 존재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비교적(秘敎的) 사상이나 뉴에이지(New Age) 사상을 주장하는 여러 책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마이클 베전트(Michael Baigent)의 책『거룩한 혈통과 성배』(Holy Blood,Holy Grail,1983년 출간)에서도 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댄 브라운이 이 구성을 빌려다가 근거도 없는 사이비 역사 이야기로 포장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주장 중 전부 또는 일부가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다 빈치 코드』에서 댄 브라운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 땅에서 사역할 때 예수는 놀랄 만한 영향력을 끼친 역사적 인물이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라든지, "300년 동안 계속된 마녀 사냥에서 교회는 무려 5백만의 여자들을 말뚝에 달아 화형시켰다"라는 말들은 분명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며, 이런 것들은 기독교에 대한 그의 공격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다. 그 본질적인 문제들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된다.
* 콘스탄틴 대제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날조했는가? 그가 소집한 니케아 종교회의가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正經)으로 채택되어야 할지를 결정했는가?
* '영지주의 복음서들'(Gnostic Gospels)이 신약시대의 역사를 말해주는 신빙성 있는 문서인가?*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채택되어야 하는지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결정의 근거는무엇인가? 그 결정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 오푸스 데이는 예수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시온 수도회를 파괴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는가?
* 영지주의는 기존의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인가? 하나님에 대해 견해가 일치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반드시 견해가 일치해야 하는가?
1장 콘스탄틴 대제 코드 - 콘스탄틴 대제가 억지로 예수를 신격화시켰다는 허구를 깬다 『다 빈치 코드』에 따르면, 황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수를 신격화했으며, 복음서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고는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를 강화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 실현에 부합되는 복음서들을 채택하도록 종교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콘스탄틴은 세부적인 신학적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교리적 견해 차이 때문에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신민을 통합할 수만 있다면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종교회의의 개회 연설에서 콘스탄틴은 교리적 분열은 전쟁보다 더 나쁘다고 역설했다. 개회 연설이 끝나자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여기서,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된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를 이단이라고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인류의 구속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골1:16)는 성경의 교훈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다 빈치 코드』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가 상대적으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역사가들은 그 종교회의에 참석한 대표의 수가 318명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300명이 넘는 참석자들 중 단지 다섯 명만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 교리의 채택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중에서도 결국에는 단 두 명만이 서명을 거부했다.
『다 빈치 코드』의 등장인물 티빙의 주장과는 달리,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리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선지자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다. 이에 관한 증거는 많다. A.D 110년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순교하기 위해 로마로 가던 길에 몇몇 교회에 일련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 나타난 그의 교리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한 분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 하나님"(Christ Go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리기 200년 전에 이미 이렇게 썼던 것이다. A.D 112년에서 118년 사이에 사도 요한의 제자인 서머나의 폴리캅(Polycarp)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교인들은 예수의 신성, 승천 및 영화롭게 되심을 믿고 있었다고 한다. A.D 100년에 태어나 A.D 165년에 순교한 저스틴(Justin Martyr)은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도이며 만유의 주(主)이시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A.D 177년에 리용의 감독이 된 이레니우스(Irenaeus)와 콘스탄틴보다 1세기나 앞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주장했던 터툴리안을 증거로 들 수 있다.
또 다른 증거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이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들에 경배하는 것과 황제 숭배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은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믿듯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참하나님의 참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과 다른 신들을 함께 경배할 수 없다"고 말하며 황제의 칙령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신앙을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다 빈치 코드』코드의 등장인물 레이 티빙 경은 80개 이상의 복음서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채택될 수 있었으나 오직 사복음서만이 채택되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이 바로 콘스탄틴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콘스탄틴과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자들이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문제와 정경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말하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주는 문서는 오직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뿐인데. 그의 글에는 이 점이 논의되었다는 암시조차 나오지 않는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경의 문제를 논의했다는 주장의 근원은 한 저자 미상의 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A.D 887년경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진 저자 미상의『세투스 시노디콘』(Vetus Synodicon)이라는 책은 그때까지 열린 전교회적 종교회의들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각각의 종교회의에 대해 한 장씩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니케아 종교회의가 그리스도의 신성, 삼위일체 및 정경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기록할 정도로 엉터리 역사가였다. "니케아 종교회의 참석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정경의 자격이 있는 책들과 그렇지 못한 책들을 구분했다. 그들은 회의를 할 때마다 책들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집의 거룩한 제단 옆에 쌓아놓고 회의를 했다. 그들은'주님,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들이 위로 놓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으며, 위에 놓은 책들을 정경으로 채택했다. 백 번 양보해서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결혼했다거나 여권신장주의를 담고 있는 책들을 종교회의가 신약 정경에서 제외했다는 주장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2장 다른 복음서 코드 - 사복음서와 다른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허구를 깬다 '다른 성경'이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성경은 66권으로 되어 있지만, 이 다른 성경은 약 50권으로 되어 있다. 이 성경 안에는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진리의 복음서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영지주의 성경의 주장에 따르면 동정녀 탄생,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같은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들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새 성경은 우리의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관용적이다. 이 성경은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거의 다 믿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영지(靈知)'(Gnostic)라는 말은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오직 계몽된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지식'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특히 여권신장을 강조했다. 때때로 그들은 하나님을 '양성적(兩性的) 하나님'으로 묘사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기독교의 성경은 장구한 세월 동안 역사적, 고고학적 비판을 거쳐 살아남은 성경이다. 우리의 성경과는 달리「영지주의 성경」에는 도시, 강, 골짜기나 특정한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 영지주의 복음서들을 읽어보면, 그것이 실제 사건 기록임을 자처할 만한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들은 단순히 다양한 선생들의 묵상을 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물질(육신)을 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의 기원'의 문제, 그리고 악과 피조세계의 관계 문제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하며, 인간의 문제는 '죄'가 아니라 '자기인식의 결여'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구원론이 모든 면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힘으로 신적 존재를 직접 만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아무리 급진적인 학자라 할지라도 영지주의 성경의 도마복음서가 신약의 도마에 의해서, 빌립복음서가 빌립에 의해서 씌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초대교회는 가명으로 씌어진 책들을 철저히 거부했다. 이것은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신빙성을 얻어 보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영지주의 문서들은 신약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지 않았다. 그 문서들의 전정성을 인정하기 원하는 학자들조차 "그것들의 저작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A.D. 150년 정도이다"라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경의 복음서들은 A.D 70년 이전에 목격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래서 영지주의 문서들은 그 내용이 비역사적이며, 심지어 반역사적이다. 연대기적인 역사 기록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으며, 조사연구, 지리 및 역사적 정황에 대한 관심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영지주의 복음서들과 외경(外經)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외경은 가톨릭에서는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책들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영지주의 복음서를 받아들이길 원하는 세력이 지금 왜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역사란 더 이상 객관적인 사실들을 발견하여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역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다 빈치 코드』의 성배 연구 전문가 티빙 경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두 문화권이 충돌할 때 패자의 문화는 말살되고, 승자가 역사를 기록한다. 이 역사책에서 승자의 대의는 찬양을 받고 패자는 멸시의 대상이 된다. 일찍이 나폴레옹이 말했듯이, '역사는 합의된 거짓말(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날 영지주의 복음서들을 받아들이려는 일부 사람들의 열망은 건전한 역사 연구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여권신장주의를 확산하고 현대인을 닮은 예수를 만들어내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성적 엑스터시를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상은 성(性)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는 꾸며낸 이야기이다. 이런 책들은 진지한 역사적 검증작업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3장 막달라 마리아 코드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허구를 깬다다빈치의 그림들에 숨겨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성배(聖杯)는 잔(盞)이 아니라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이다.『다 빈치 코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은 역사적인 기록의 일부"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이 장에서 우리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일련의 다른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 정말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넣었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성배라면, 그것에 관한 역사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가 결혼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다 빈치 코드』에 의하면, 예수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던 다 빈치는 그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 그림에는 식탁 위에 잔이 없는데, 이는 마리아가 바로 성배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다 빈치가 일부러 그렇게 그렸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로버트 랭던은 "레오나르도는 사실상 교회에 의해 말살된 여성적 신성(神性)과 여신을 상징하기 위해 최후의 만찬에 마리아를 등장시켰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카고 예술학교의 브루스 바우처(Bruce Boucher)는 댄 브라운의 해석에 반박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