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기도
래리 잭슨 지음 | 예수전도단
들어가는 글1990년 여름, 버지니아 주에 있는 버지니아 비치의 호텔에서 칩거하며 혼자서 조용히 사역을 정리할 때였다. 갑자기 예수님의 고난을 연구해야겠다는 갈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 때는 이미 부활절이 한참 지난 때여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인간이 되어 죄인의 하나로 취급받으신 예수님의 고난(사 53:12)에 대해 왜 하나님이 관심을 갖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하자,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고 계심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역을 새로운 관점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말씀을 계속 읽어갈수록 깨달음의 정도도 더해갔다. 난생 처음으로, 예수님의 고난이 중보기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수 년 동안 우리 교회의 중보기도팀을 인도하던 틴덜 수녀 등 여러 자매가 기도 시간 동안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경험 덕에 이사야 53장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고난을 중보기도와 연관시킬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성령님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정확한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예리한 칼날처럼 사용하신 말씀은 이사야 53장이었다. 거기서 이사야는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굽어보았고,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자신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낮추고 인간의 죄악을 대신해서 고통받으시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사야 53장 12절 말씀의 후반부가 송곳처럼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죄인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하면서 죄인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동일시하신 것과 달리 우리 자신을 다른 죄인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범죄자를 기피하는 것이 사실이며, 분명 사람 앞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자체도 꺼려한다! 즉, 죄만 역겨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까지도 혐오스러워 한다! 칩거 기간 동안, 과연 그런 태도가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인지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그러면서 결론을 얻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고, 또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 받았던 예수님을 따르는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죄인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도다.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들을 위해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심각한 죄에 사로잡힌 우리의 기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증오가 아닌 사랑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가르침이나 경책의 목소리도 결코 흘려 듣지 않을 것이다.
1장 새롭게 배운 원칙부르심을 받기 전에, 나는 NEC(국영 교육 기관)에서 전자공학을 가르쳤다. 당시 나는 예수님에 대한 나의 사랑과 천국이 어떠한지를 열심히 얘기하고 다녔다. 나는 어떻게 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굳이 강요하지 않았지만, 또한 다른 누구도 내 생활 방식이나 선택에 참견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미국의 교회는, 짐 배커 목사가 헤리티지 재단과, 개인적으로 아는 몇 사람에게 사기를 행함으로써 수백만 달러를 탈취한 사실 때문에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 최악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TV 방송전도자가 스스로 죄에 빠진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배커 목사의 사건 이후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지미 스워거트 목사의 사건이 터졌다. TV에 나와서 미국인의 도덕성 쇠퇴를 경고했던 목사가, 다름 아닌 바로 성적인 죄에 빠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기독교 공동체에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꽤 성공적인 사역과 결혼생활을 영위하던 목사가 죄를 저질렀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졌다.
지미 스워거트 목사의 사건이 대서특필된 지 며칠 후 어느 날,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내게 다른 동료들이 함께 식사를 하려고 다가왔다. 그리고 국내외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된, TV 전도자들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날 친구들에게 해준 나의 답변은 전세계 교회가 자주 사용하는 문구다. "하나님은 그래도 하나님이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와중에도 끝까지 존속하지. 지미 스워거트 목사에게 집중하는 대신 자신의 영적인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을 거야."이 말에 동료들이 흠칫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제대로' 말해줬다는 확신을 안고 식당을 나왔다.
칩거 기간 동안, 나는 이 일을 다시 생각했다. 동료들을 마구 야단치면서 자기만족에 빠졌던 나의 모습에 반해, 이사야 53장에 나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죄인 중 하나로 여기셨다! 내 자신이 얼마나 그리스도와 다른지 깨닫는 순간, 아픈 마음과 함께 회개의 기도가 내 입술을 채웠다. 성령님은 그 날의 기억을 사용하셔서, 성경이 말씀하는 중보기도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하고자 하는 큰 결단을 내리게 하셨다.
나는 그 당시 가족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파예트빌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새롭게 계시하신 '죄인의 자리에 서는 기도'로 단단히 무장한 나는, 맡고있던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 새로운 중보기도 원칙을 가르쳤다. 냉담했던 청취자들은 이 말씀에 커다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나는 아주 희한한 경험을 했다.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겪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며 어떤 원칙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 경험을 나누는 이유는, 그 동안 나와 같은 중보기도자들을 만나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는데, 내 얘기를 듣고 안도감을 느꼈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무렵, 나는 라디오 방송 사역을 그만 두고 모든 시간을 교회 개척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중보기도로 저녁 예배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던 중에 느닷없이 내가 동성연애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즉시 기도를 멈추고 무슨 일인지 살펴보았다. 나는 한 번도 성적인 문제로 갈등한 적이 없거니와,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극히 행복했다. 동성연애자의 느낌이 아주 생생했기에 처음에는 무척이나 걱정했지만, 어쩌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그런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 사람이 동성애의 묶임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느낌을 주셨다.
그전에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교인이 느끼는 고통을 몸소 체험하는 경험을 자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저 깨달아 알 뿐이다! 나는 그때마다 교인 앞에서 그 깨달음을 말하라는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두렵지만 순종했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경험을 했다.
어쨌든, 그 날 경험한 동성애의 느낌은 실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대신해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날 저녁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동성애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 예배에는 외부 방문자가 한 사람도 없었고, 당황한 나는 그 날의 느낌을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없던 것으로 넘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다른 지역에서 기도모임을 하고 있을 때, 또다시 그 느낌이 왔다. 지난번처럼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무슨 일인지 깨닫게 해주시길 간구했다.
그 때, 성경 말씀 두 가지가 떠올랐다. 이사야 53장과 로마서 8장 말씀이었다. 그리고 마치 봇물 터지듯이 새로운 깨달음이 내 영혼을 가득 메웠다. 하나님은 그 날의 기도 경험을 통해 몇 달 전에 가르쳐 주신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셨다. 바로, 죄인의 자리에 함께 서서 그들과 그들의 생활양식을 인정하며 중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대다수가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동기와 계획은, 이를 경험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드러날 만큼 위대했다.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이 차츰 내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나는 너를 훈련하기 위해서 동성애자처럼 느끼도록 허락했다. 너는 그들을 이해하는 유리한 위치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또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믿음으로 진실하게 기도하며 울부짖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 위에서 다른 사람의 죄악 때문에 죽임 당하는 과정을 겪으시며,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자행되는 모든 사악한 일을 직접 경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다. 인간의 몸을 입은 성육신을 통해 그리스도는 죄인의 자리에 이르셨다. 예수님은 천사나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광으로 옷 입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인간이 지금껏 당해 왔고 앞으로도 당할 모든 아픔을 죄다 경험하기로 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죄인과 함께 어울리고 함께 잡수시는 것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만지도록 내버려 두시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나 있냐고 비난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인간이면서도,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듯 살아갔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죄 많은 여인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육체를 가진 다른 사람과 자신을 기꺼이 동일시하셨다.
기도의 더 깊은 수준을 깨닫게 되었기에, 중보기도의 원칙을 교회에 가르치고자 하는 나의 열정은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죄인의 자리에 서는 기도' 원칙이란 그저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긍휼히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계시라고만 오랫동안 생각했다. 기도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 원칙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랑하는 가족의 삶과 태도가 바뀌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온다는 고백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이 원칙대로 기도하면, 그 원칙은 즉시 입증되었다.
2장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한 결과대부분 우리 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힘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처럼 생각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서는 기도' 원칙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은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유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단 우리가 이 기도의 원칙을 받아들이게 되면, 기도생활이 즉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도생활을 지속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충분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특히 기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과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식구들이 변화되려면, 하나님을 아는 다른 가족이 이러한 기도의 수준으로 충분히 중보할 때에야 가능하다. 자신의 중보기도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사람들은, 이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기도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비탄과 고통을 겪으셨다. 그분이 그 곳에 계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다. 우리가 죄책감과 비탄과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받으신 고통은 그 이 일이 있기 몇 천 년 전에 이미 이사야 53장에서 예언되었던 것이다. 예언자들과 서기관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을 기대하며 이사야서를 연구했으며 베드로서에 따르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이 큰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0-12).
이사야서를 연구했던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 완전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죄 안에 있는 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고, 대신 예수님께 속한 모든 것(죄 없는 인간)을 우리에게 주셨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감당해야 할 모든 저주와 비난과 죄책감, 외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감싸 안으셨다. 그리고 대신 구원과 건강, 스트레스를 주는 내적 문제로부터의 자유, 기쁨, 교제로 바꾸셨다. 예수님은 그분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풍성한 유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경험하신 모든 것 안에는 불변의 목적이 숨겨 있다. 갈보리의 사건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구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 무엇인지 묵상해야 할 것이다. 죄란 우리를 영원한 지옥으로 이끄는 몰이꾼이다. 그래서 처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가족의 일원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구원이란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유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은 목숨을 바치셨다.
예언자들의 예언처럼, 우리는 하늘의 보화를 누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논의되는 보화(원칙)를 찾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찾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보화를 찾을 수 있는 지도를 가지고 계신다. 성령님이 우리를 지도하고 인도하시도록 내어드리라.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생활은 곧 하늘의 풍부와 보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다.
오늘날에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억압과 고통 속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나는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당하는 연약함과 영적인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고통을 당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범을 보이셨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더 깊이 알고, 고통을 통해 얻는 능력을 깨닫기 위해서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0-11).
그리스도인이 다른 이를 위해 영적인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를 싫어하는 것은, 모든 고통은 사탄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사탄의 권세 아래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다른 이를 위해 고통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가운데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고통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뢰하라는 의미다. 고통의 상황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3장 그리스도와 동일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