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미루어진 기쁨
낸시 거스리 지음 | 사랑플러스
프롤로그어느 토요일 아침, 이웃집이 모두 불타버리는 사건을 보면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큰 상실을 경험한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잃은 것은 너무도 크고 흔치 않아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오래 전에 살았던 욥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그는 역사상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일 것이다.
욥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욥이 자신의 고통과 상실에 대해 보인 반응에 매우 놀랐다. 그리고 욥은 그런 큰 고통을 겪기 위해 특별하게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욥은 결코 고통을 받을 만한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과연 욥과 같이 이유도 모를 그런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꿋꿋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모든 희망이 다 사라졌을 때 마지막까지 남을 그런 믿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을 당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바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 참혹한 소식을 접하게 되기 전, 고통스러운 죽음을 예감하기 전, 호프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이다.
상실이웃집에 불이 난 지 2주 후, 나는 딸을 낳았다. 남편과 나는 그 애에게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온 호프(Hope)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우리는 그 이름이 그렇게 큰 의미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딸이 태어나자마자 의사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했다. 내 딸 호프는 내반족증(발이 뒤틀리는 병)으로 몸에 힘이 없었으며 외부의 자극에 둔감했다. 호프는 젖을 잘 빨지도 못했고, 두 손도 바깥쪽으로 뒤틀려 있었다. 호프를 검진한 유전학자는 그 애가 신진대사 장애를 일으키는 젤웨거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로 인해 6개월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치료법도 없어서 회복이 불가능하며,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천천히 딸아이의 병실로 걸어갔고, 우리는 울고 또 울며 하나님을 불렀다. 나는 이 엄청난 실망과 슬픔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딸이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욥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욥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좀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짧은 옛날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신앙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려고 한다. 욥은 대단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악을 멀리하는, 동방의 의인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을 향한 욥의 신앙을 믿지 않았다. 욥으로부터 인생의 안락함을 빼앗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 이 내용은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왜 하나님은 사탄이 우리 인생에 그렇게 많은 고통을 주도록 허락하실까?
그러나 이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것을 잃은 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먼저 살펴보자. 욥의 이야기는 그의 고통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그에게 닥친 그 고통의 길 한가운데서 전에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욥의 말년에 하나님께서는 처음보다 더 큰 복을 주시고 욥은 수명을 다해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일생을 보냈다.
바로 이런 것이 당신과 내가 원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고통 이후에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 우리가 전혀 보지 못했던 방법으로 하나님을 다시 보는 것, 하나님의 축복으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고 인생을 아름답게 마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부터 욥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그의 일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의 고통의 길들을 따라가 보면 욥의 이야기는 우리를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인도해 줄 것이다.
눈물남편과 나는 199일을 우리 딸 호프와 같이 보냈다. 우리는 그 아이를 사랑했고 호프와 함께했던 날들은 행복했다. 호프를 묻고 난 다음 날,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우리 믿음이 이 고통을 조금은 덜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우리의 믿음은 호프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커다란 힘과 용기를 주었어. 우리는 호프가 천국에 간 것을 알기에 안심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구해 주었잖아.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 고통은 덜어주지 않는 것 같군."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나의 슬픔을 함께하려 했다. 난 정말 축복 받은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빨리 극복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래서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 눈물만이 나의 깊은 슬픔을 덜어 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은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엄청난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간다고 느낄 때 우리를 위해 울어 주는 주위 사람들은 마치 양동이 가득 우리의 슬픔을 덜어 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행히도 우리는 슬픔을 혼자서만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 53장 3절에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을 '슬픔의 사람' 그리고 '슬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슬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고, 상실 없이는 알 수 없는 새로운 관점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슬픔에 대해 잘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며, 우리의 슬픔을 빨리 극복하라고 재촉하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와 슬픔을 나누시는 분이시다.
고통을 없애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것과 다른 하나는 고통에 정면으로 부딪쳐, 이것을 진리의 빛 가운데 드러내고 세세하게 조사하며 이 고통의 문제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후자를 택했다. 슬픔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슬픔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욥은 그에게 닥친 고통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죽음과 같이 깊은 고통과 상실 속에서 욥은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드러내고 슬퍼했다. 그는 자신의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모두 깎아버렸다. 그는 고통으로 아파했다. 당신은 슬픔으로부터 도망가거나 그저 잊으려 하기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망과 비통의 감정에 맞서며, 하나님의 손이 당신의 마음과 머리를 회복하심을 바라겠는가?
예배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호프가 죽고 나서 가장 가기 힘든 곳은 바로 교회였다. 교회에 갈 때마다 내 안에는 아주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났다. 나는 아무도 호프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호프에 대해 묻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교회에 가기 힘들었던 이유는 단지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나님 때문이기도 했다. 찬양을 할 때, 내 귀에 들려오는 그 가사들은 나를 목메게 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하고 그를 찬양하는 것이 가끔은 솔직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내 모습 때문에 나는 욥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나도 놀라곤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심지어 욥은 모든 희망을 잃고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중에도 하나님 앞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예배는 순종과 관련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내가 순종하기로 결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감정들을 변화시키시고 내가 진심으로 예배 드릴 수 있게 도우셨다. 위기의 한가운데서 멋대로 행동한다면 자기 연민에 빠져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 우리는 우리의 슬픔과 어려운 문제로부터 눈을 돌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지금 가지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좀더 넓은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고통 중에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자기 스스로는 아무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풍성하심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시게 된다.
감사수요일마다 남편 데이비드가 호프를 돌봐주었기 때문에 나는 성경 공부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남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을 때 남편은 말했다. "지금 진료실에 와 있는데 호프 때문에 온 건 아니야. 매트가 오늘 아침 체육 시간에 넘어져서 앞니가 부러졌어."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남편과 내가 잃을 수 있는 것이 오직 호프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커다란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 왔던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호프가 우리를 떠난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날 많은 가슴 아픈 일들은 모두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우리 아들 매트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부부 중 어느 한 사람도 잃게 하시면 안 되고요. 교통사고도, 암도, 재정 파산도 안 돼요! 아셨죠, 하나님?"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감사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며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고 말하는 욥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잊는 법을 깨달았다. 욥은 고통을 당하기 훨씬 전부터 자신은 그저 청지기이며 그의 엄청난 재산과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할 때 당신은 그 선물을 탐욕스런 마음이 아닌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그것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셨던, 하지만 지금은 가져가신 그 선물에 대해서도 기꺼이 감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해 보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 직위,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스리실 것이라 믿으며, "나로 인해 네가 모든 것에서 풍족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원망불공평하고 부당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남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가 제일 많이 책임을 묻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고난이 닥칠 때는 누구나 '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깐 멈추어 생각해 보자. 당신이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들만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없는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욥은 자신에게 편하고 축복 받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원망을 돌리는 것을 피했다.
그렇다면 원망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죽음, 질병, 파괴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이 세상이 죄로 부패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들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죄의 저주 아래에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욥과 같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다.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의 품성과 행위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이며,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이며,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생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이런 사람은 어려움과 씨름할 때일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나님을 원망하여 지게 된 무거운 짐을 벗고, 또 그 원망 때문에 생긴 슬픔과 낙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시각을 얻기 원하는가? 그 출발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강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고통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것이 생각난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면 고통을 겪어도 괜찮습니다.' 어떤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언가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일 그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물론 나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자신의 삶에 즐겨 초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십중팔구 우리의 인생에는 고통이 찾아온다. 주위를 둘러 보라. 인생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어려움을 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나 욥에게 고통이 찾아왔을 때, 욥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받았는데 재난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소?"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그 모든 것을 기대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인생의 고통이 오는 것을 허락했다면 그것은 그 고통 속에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경험한 후, 그 마음이 더 깊고 아름답게 변화된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고통들에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 있는 믿음은 우리를 더 깊은 헌신으로 인도한다.
예수님은 고통을 그저 참는 데 그치지 말고 고통으로부터 배우라고 하신다. 히브리서 5장 7~9절은 내가 너무 힘들고 가장 슬펐을 때 잡고 일어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계획에는 때때로 고통과 죽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즉 당신과 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그분이 고통 받고 아들이 죽임 당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계획에 순종하셨지만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셨다. 나는 이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께 울부짖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그렇게 많은 고통을 허락한 것은 당신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까지 당신의 모습을 빚으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성품을 순결하게 하고 우리의 이기심과 죄를 없애려면 고통이 필요하다. 고통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고통의 여정 초기에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요, 하나님. 내가 이 일을 꼭 겪어야 한다면, 저에게 지금 모든 것을 보여 주세요.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저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세요. 이 믿을 수 없는 고통이 제 인생에서 그냥 낭비되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임을 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고통을 통해서 마침내 내 삶에 선을 이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