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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

토머스 화이트맨 외 지음 | 사랑플러스
서클

나는 상담실에 일곱 개의 의자를 둥그렇게 놓았다. 서로 어색해하는 분위기가 밤공기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긴장을 풀어 주려고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여러분을 왜 불렀는지 궁금할 거예요. 저는 잘 알고 있지만, 서로와는 초면이죠? 제가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으며 자신과 비교해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차례로 들어본 이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그들은 비이성적일 정도로 어떤 사람이나 관계에 끌리고 있다. 그리고 마약 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처럼 통제력을 상실했다. 내가 볼 때, 그들에게는 현재 맺고 있는 관계가 바로 마약이다. 둘째, 그들에게는 그 관계를 깰 힘이 없다. 그들도 깨려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쓰레기 같은 남자랑 살다가 이혼당한 후, 다시 쓰레기 같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 결말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면서도. 셋째, 그들은 사람이나 관계를 통해 자기를 채우려고 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기를 온전하게 해 줄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는 성 혁명과 이혼 그리고 기술의 진보로 인한 개인들의 고립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는 모두 건강한 관계를 갈망하지만 어떻게 해야 건강한 관계를 누릴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왜곡되고 균형이 깨져, 불합리할 정도로 높은 기대와 낮은 자아상이 뒤범벅된 관계를 맺곤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필요를 종종 구세주를 바라는 것에 버금갈 만큼 높이 쌓아올리곤 한다.



이 시대의 영화와 음악, TV는 온통 "사랑에 빠져 있지 않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한 정열로 들끓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라면 이성적인 것은 뭐든 거부해야 한다"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것은 화면 위에서는 그럴 듯하게 연출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왜곡된 관계만 양산할 뿐이다. 인간적인 사랑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서로에게 자기 삶을 주며 하나가 되어 가는 두 사람의 문제다. 헌신된 관계는 위대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균형 잡히고 건강한 것이어야 한다. 건강한 사랑만이 두 사람을 소진시키지 않고 세워줄 수 있다.

제럴드 메이는 『중독과 은혜(Addiction and Grace)』에서 "영적으로 볼 때, 중독은 우상의 뿌리 깊은 형태다. 일단 거기에 중독되면 그것이 우리의 거짓 신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것들을 숭배하고 거기에 관심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사랑은 한쪽에 내팽개쳐 두고서"라고 말한다. 인간적인 사랑이 우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위험하다. 거기서는 절대로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자신은 자기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눈에서 자신의 영혼을 찾으려 하지 마라.





중독적인 관계의 유형들

중독의 노예가 되면 평생 한 가지에 매달려 살게 된다.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게 된다. 중독은 중독자의 개성을 잃게 만들어 마약 주사만을 찾아다니는 기계로 전락시켜 버린다. 관계 중독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을 자기가 흠모하는 허상으로 바꿔 버린다. 중독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시켜 잘못된 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독자가 그렇게도 추구하는 온전함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관계 중독의 세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 사랑 중독 - 어떤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사랑한다. 매번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줄기차게 로맨스에 빠진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은 행복의 빛이 바래고 나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랑 중독자 가운데는 희미해져 가는 감정을 되살려 보려고 자신이 비참해지든 말든 아랑곳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이 바람 피고 무시하고 모욕 주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 가해도 아무 소리 못한다. 다시 자기를 사랑해 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충족감을 가져다 주는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직 그 관계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온전한 두 사람이 만나 하나 되는 게 중요하다.



* 성 중독 - 성 중독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포르노다. 포르노는 자위 행위를 통한 성적 쾌락에 초점을 맞춘다. 성 중독자들은 자신의 성적 충동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다른 약물과 마찬가지로 성 충동도 중독자를 점점 깊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포르노를 보는 데서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원하는 만큼의 기쁨과 성적 해방감을 위해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성 중독자들은 자신을 증오한다. 자기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유년기 때 받은 학대에 기인한다. 그들은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자기의 나쁜 행동에 대해 벌을 준다. 성 중독이 야기할 수 있는 가장 큰 파괴는 성적 만족의 파괴다. 부부간의 사랑 표현이 되어야 하는 성관계가 독을 품은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곧 섹스로 생각하고 그것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또 어떤 사람은 힘, 지배력, 자기 가치 같은 것들을 성적 행동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섹스하고 있는 동안은 자기가 힘과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 사람 중독 - 사람 중독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강해 그 사람을 통해서만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삶이 온통 그 사람 중심이 된다. 그 사람이 멀리 있으면 혼자된 듯한 느낌이 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가 옆에 있으면 모든 세계가 그를 중심으로 돈다. 이것이 감정적 의존인데 아주 위험하다. 사람 중독자는 자기 자리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며 자기 인식의 끈을 놓고 산다. 그래서 관계의 균형이 깨져 버린다. 최악의 경우, 그들은 육체적으로 끔찍한 학대를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방에게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중독은 낭만적이지 않은 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종종 동성 간의 우정에서도 감정적 의존이 발생하곤 한다. 가족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중독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식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 그래서 그들을 놓아 보내기를 거절한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 의견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완벽한 엄마나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아빠의 인도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 밖에도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컴퓨터를 통해 섹스 중독이나 사랑 중독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르노 웹 사이트나 채팅 방에서 몇 시간씩 보낸다. 컴퓨터 중독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터넷 포르노가 '안전한 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이러스 감염에 관한 거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포르노의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포르노가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 오히려 강력한 힘을 가진 신형 무기를 하나 더해 줄 뿐이다.



중독 증상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랑 중독, 성 중독, 사람 중독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 셋은 분간하기 어렵다. 한 중독에서 다른 중독으로 전이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중독의 사이클은 계속 돌게 된다.





사례연구 : 샐리

샐리는 모든 유형의 관계 중독을 다 갖고 있었다. 내용도 다양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 엄마의 편집증, 남편의 학대, 이 모두가 그녀를 끝없는 갈망에 불타게 했다. 그리고 이 갈망은 여러 남성들과의 성적인 관계로 표출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가 원할 때만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녀의 성적 욕구에는 아무 관심 없었다. 그녀는 그게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혼하고 만난 남자들은 육체적 관계가 훨씬 더 정열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욕구가 조금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받기 원했다. 그래서 육체적 관계를 허락했다. 그러나 매번 이용당했고 깊이 절망했다. 이것은 여성 성 중독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그녀는 성 이상의 것을 갈망했다. 성은 단지 좀 더 깊은 관계로 가기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했다. 제리와의 정사는 황홀감과 절망감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변호사라는 그의 사회적 신분은 그녀에게 자기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 그 느낌도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 순간 그녀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제리와 사귀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경계선을 모두 포기했다.



리처드와 사귈 때도 그랬다. 리처드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관계의 주도권은 항상 그가 쥐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마약 같은 충동에 이끌려 자신을 마구 깎아내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누군가 날 사랑해 주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오래지 않아 '누군가의 사랑을 얻고 그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것이 사랑 중독자들이 경험하는 나선형 추락이다. 그들은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고 한다.



샐리는 사람 중독증상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남편에게 학대당하면서도 묵묵히 참고 견뎠다는 게 그 증거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그녀가 자기 생각이라고는 하나도 가질 수 없게 했다. 자기가 그녀의 신이 된 것이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자의식에 깊은 상처를 받은 후에야 가까스로 그에게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남편에게서 벗어나자마자 곧 새로 숭배할 신을 찾아냈다. 제리는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자 너무 기뻤다. 그녀는 그가 장난삼아 자기에게 수작 건다는 걸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주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 낙원에 있는 상상도 했다. 이후 리처드와의 관계 역시 헛된 공상에 불과했다. 혼외정사란 결국 그런 것이었다. 거기에는 진정한 사랑에 요구되는 헌신이나 부단한 노력이 없다. 그런데도 샐리는 그들을 구세주로 보았다. 그들의 결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었다. 사람중독자들은 이렇게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곤 한다.



중독자 중에는 바닥까지 떨어져야만 치유되는 사람이 있는데, 샐리가 그랬다. 그녀는 약물 의존도가 높아져 건강이 위기에 처해지자, 그제서야 자신을 관계 중독으로 이끈 자존감이라는 문제를 돌아보았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는 작업을 했고 자존감을 높였다. 지금 그녀는 참 보기 좋다. 목소리에서는 활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기가 다시 중독에 빠질 수 있으며 앞으로도 위험한 시기를 종종 지날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치도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다.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독적인 관계의 특성

중독을 어떤 특별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충동으로 정의한다면, 모든 헌신된 관계에는 중독적인 요소가 얼마간 들어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정의한다면, 대부분의 중독적인 관계에도 진정한 사랑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 결국 건강한 관계와 중독적인 관계는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로맨스와 우정은 이 두 관계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건강한 관계와 중독적인 관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들이 있으며, 이것을 알면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건강도를 좀더 잘 측정할 수 있다.

* 자유로운 선택 VS 강요 - 건강한 관계에서는 함께 있고 교제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중독적인 관계에는 자유로운 선택이 없다. 강박적인 느낌만 있다. 관계 안에 머무르고자 하는 강박적 충동 때문에 육체적, 성적, 감정적 학대를 참고 견디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강압적인 충동이 발하는 힘도 그만큼 커져, 결국은 신념과 가치관과 삶의 기준을 상당 부분 희생시키고 타협하게 된다. 고작 자신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을 붙잡기 위해.



* 상호 지원 VS 상호 의존 - 건강한 관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성장하고 자기 역할을 다하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준다. 그러나 중독적인 관계에서는 사랑보다 동정심 그리고 우월감과 상대방을 구해 주고자 하는 강박관념으로 교정하고 개선시키려고 애쓴다. 그래서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한 사람은 도움을 바라고 다른 한 사람은 그가 도움을 청해 오기를 기다리는 패턴이 자리잡게 되는데 이것을 상호의존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의존자를 구해 주면, 그때부터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의존자가 더 이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구원자는 그를 돕는 데서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의존자를 계속 자기 옆에 두고 싶어한다. 그래서 중독적인 사이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객관성 VS 장밋빛 안경 - 건강한 관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독적인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단점을 부인한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옛말 그대로다. 사랑에 빠지면 장밋빛 안경을 쓰기 쉽다. 그러나 첫눈에 반하는 이 감정이 성숙한 사랑으로 자라지 않으면 문제가 생겨난다. 열정이 사라지면, 많은 연인들이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러나 건강한 사랑은 그때부터 성장한다. 성숙한 사랑을 꽃 피우기 위해 정직해지는 위험을 감수한다. 건강한 관계는 객관적이고도 책임감 있는 사랑으로 자라 인생의 모든 풍파를 거뜬히 이겨낸다.



* 배타적인 관심 VS 다른 친구들과의 균형 - 건강한 관계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상대방의 삶에서 우선 순위를 갖고는 있지만,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자기가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필요도 많지만, 관계 밖에서 충족되는 필요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서로의 친구들을 거리낌없이 공유할 수 있다. 물론 친구 때문에 둘의 관계가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 신뢰 VS 질투 - 건강한 관계는 질투심을 없애기 위해 상대방을 신뢰한다. 그리고 그가 때로 실망을 안겨 주고 상처 주고 바람 펴도 그것과 상관없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게 되면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과의 관계 중독은 피할 수 있다. 또한 누구를 사귀든, 신뢰가 바탕이 된 열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 회복 VS 계속되는 역기능 -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중독적인 관계에 잘 빠지면서도, 자신의 역기능적인 배경에 대해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필요를 계속해서 부인한다. 그것이 자신의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건강한 관계는 자신에게 있는 역기능적인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



* 건강한 의존 VS 지나친 의존. 감정적으로 의존적인 사람도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강한 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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