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불처럼
하용조 지음 | 두란노
바람처럼 불처럼
하용조 지음
두란노/2003년 5월/173쪽/6,800원
1부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가”를 알고 싶어합니다. 또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면서도 가끔씩은 “내 생각과 욕심, 야망이 이 안에 있는 것을 아닐까?” 혹은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이고 어디까지가 내 생각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2,600여 년 전, 한 선지자도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하박국이 살던 시대의 유다 땅은 부정과 부패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 악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왜 악이 득세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던 중 엄청난 환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온 세계에 가득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았습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환상이었습니다. 바다와 강과 모든 것을 흩으시고 악한 세력을 무찌르시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한 후에 하박국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합 3:16). 분노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던 그의 소리는 중보 기도로 바뀝니다. 번민은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하나님을 만나면 이렇게 변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한 지적 활동, 이성의 활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심장을 쏟는 것입니다. 내 창자가 떨리고 입술이 떨리며 내 삶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주 생생하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깨닫고 만나고 체험하려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직접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능력으로 나타나신 것이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경험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드러냅니다. 그것이 성령의 내적 증거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실체가 내 몸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의 오감, 이성, 경험의 세계를 말씀이 통치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박국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시가 되고 찬양이 되고 예배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크게 일곱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구원받은 자녀임을 기억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십시오. 둘째, 하나님과의 접속이 불량하기 때문입니다. 숨은 죄가 있거나 이기심, 욕망, 야망 등의 죄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셋째,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하나님께 나가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신앙을 통해 사리사욕, 야망을 채우려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넷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십시오. 여섯째,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기보다 자기 뜻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십시오. 일곱째, 자기 포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조용히 해야 상대방 말소리를 들을 수 있듯, 내 생각을 죽이고 내 자존심과 의지를 꺾어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을까요? 첫째, 매일 기도하십시오. 둘째,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바, 나와 하나님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제거하십시오. 셋째,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 성경적인 세계관과 가치관과 안목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민감해집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임없이 지속하며 민감하게 자기 영혼을 다듬어 놓으면 쉽게 하나님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2부 성령과 나
“성령이 오시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곳곳에서 성령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실제로 그것을 담당하신 분은 성령이셨습니다. 태초에, 성령은 수면에 운행하셨고 인간을 만드실 때에도 역사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인격이십니다.
또한 성령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구약 시대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일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나 홍해가 갈라진 사건,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직전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 때 애굽을 다녔던 죽음의 신, 그 역시 성령이셨습니다. 또 성령은 한나를 비롯하여 여러 여인들의 태를 열어 주기도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약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으며,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고 나서부터 예수님의 능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성령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 안에도 여전히 역사하시며 우리를 치유하시고 소망을 주시며 믿음 주셔서 초자연적인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성령 세례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십시오. 성령 세례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그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둘째, 성령 세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기다림이란 기도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다리라고 하셨을 때 모여서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기까지 기도하십시오. 금식하며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셋째, 성령 세례를 먼저 받은 사람이 안수하는 것도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입니다. 성령 받은 사도들이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하신 예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이미 받았다면 다른 이들이 성령 세례를 받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넷째,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은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은 순종하는 것,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 들지 말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성령 세례가 임한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성령 세례를 받으면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침묵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이런 교제를 통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내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실 지식이나 돈, 권력이나 육체는 진정한 힘이 아닙니다. 진짜 힘은 위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힘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또한 성령 세례를 받으면 죄나 악한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명예, 돈이 부럽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열등감, 우월감, 좌절감에서 벗어나 믿음의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의지가 약했던 사람이 강한 의지를 지니게 되며, 불안하고 근심 걱정 많던 사람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희미하게만 여겨졌던 구원에 대한 확신이 확실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희미했던 십자가가 빛나는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 능력의 십자가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물론 성령님이 우리에게 직접 구원을 주시지는 않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더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거룩과 성결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렇습니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그리고 죄가 떠난 자리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거룩이 임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120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바람, 하나님의 바람, 성령의 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영이 자기들 안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안에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자 그들 안에 있던 두려움, 염려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졸았던 그들,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처럼 살 수 없었던 그들,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소리쳤으나 도망쳤던 그들. 그렇게 나약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떠나신 뒤에 변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님, 성령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증거했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도 달게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도 바울은 중앙아시아를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여신 문을 보았습니다. 환상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가 가야 할 곳은 로마였습니다.
당신의 꿈도 달라지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녔던 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거기서 머물지 않고 또 하나의 고비를 넘어, 한 계단 올라서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과거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아주 큰 꿈을 갖고 계십니다. 위대한 꿈입니다. 하나님을 축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나만큼 작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꿈과 이상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는 배에서 유라굴로 광풍 만나고도 성령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는 승선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유라굴로 광풍을 빠져나가는 비밀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비결입니다.
3부 성령 충만한 삶
“성령의 강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우리는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시대와는 다른 계시록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시대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대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 우는 사자처럼 날뛰고 일곱 인, 일곱 대접, 일곱 나팔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이 있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이 강력하게 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부으실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지니면 환난이 있어도 무섭지 않습니다. 환난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환난이 아니라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재앙과 저주가 많은 세상에 성령이 강렬하게 역사하면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심장부에 복음이 들어가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모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채워질 것입니다. 모든 족속이 문을 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공산주의 국가가 문을 열 것입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서 많은 족속이 예수를 믿으려고 마음 문을 열게 된다는 말입니다.
에스겔은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 정세는 오늘날같이 극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초강대국인 앗수르, 바벨론, 애굽 이 세 나라가 각축전을 벌이며 밟고 지나가던 이스라엘은 마치 태풍 앞에 놓인 촛불 같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주전 580년경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잡혀가 32년 간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에스겔도 포로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잡혀간 지 5년 되던 어느 날, 그발 강가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망해야 합니까? 하나님 백성이 이렇게 되다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울고 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심판하셨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회복시키시고 민족적 부활을 허락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의 새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소욕을 따르십시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때리기도 하시지만 싸매기도 하시며, 심판하기도 하시지만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고 부활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대언하니 마른 뼈에 힘줄과 살이 붙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하나님은 생기에게 명령을 내리라고 하셨고,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생기가 사방으로부터 와서 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는 어느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에 다 있습니다. 온 우주를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이 사망한 자에게 들어가자 이제 마른 뼈가 정말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적으로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수천 년 동안 민족의 부활을 꿈꾸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에스겔서의 이 말씀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일을 겪었어도 살아남았고,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지는 일을 당했어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