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성(性), 그 끝없는 유혹

케이 아더 지음 | 프리셉트
성(性), 그 끝없는 유혹

케이 아더 지음/마영례 옮김

프리셉트/2004년 4월/354쪽/10,800원



태초에 - 하나님께서 성을 만드신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한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다. 우리는 성행위를 거의 숨쉬듯 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몇 분 동안 TV 채널을 돌려 보라. 성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사람들과 성행위 장면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거의 모든 광고 속에서 성이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원한다면 어떻게든 성욕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랑이 아니라 성 관계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그저 아무 단어나 하나만 입력해 보라. 아무 경고도 없이 전혀 몰랐던, 그리고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정보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집을 나와 길을 가다 보면 길고 요염한 다리와 엉덩이를 다 드러내는 꽉 끼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의 행렬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화제도 성 관계라는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영화를 보러가서는 어떤가? 당신은 살결이 부드럽고 따뜻한 누군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여성용 향수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앉아 있거나, 아니면 유연한 힘을 발산하는 남자와 가까이 달라붙어 앉아 있게 된다. 머리 속에는 생각해서는 안 될 생각이 가득 차 있고 몸은 원해서는 안 될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데이트하던 사람과 함께 집으로 가서는 어떻게 하는가? 정말 한 5분 정도만이라도 더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성 관계를 하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할 것인가? 그런 상황 속에서 ‘갈 때까지’ 다 가건 가지 않건 간에, 하나님께서 애초에 의도하신 성 관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원래의 설계도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책인 창세기로 돌아가 보자. 창세기 1장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은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진 순서를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남자를 먼저 만드신 다음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 그리고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돕는 배필이 되도록 여자를 지으셨다. 모든 들짐승들 중에는 아담에게 어울릴 만한 동반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왜 다른 남자 한 사람을 더 만들어서 아담의 동료가 되게 하지 않으신 것인가?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점이 있는 것인가? 왜곡되지 않은 참 진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 각자가 남자와 여자로 각기 다르게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하와는 아담의 돕는 배필이 되기에 적절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둘 다 출산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건 간에 두 사람의 남자가 성 관계를 통해 아기를 낳을 수는 없다. 두 사람의 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정자와 난자가 있어야 하고 정자와 난자가 있으려면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출산하여 번성하고 또 그 아이들이 자라 또 다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낳아 점점 더 번성해가도록 창조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창세기 2:24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기록된 것을 기억하는가?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 관계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정말로 놀랍고도 경이로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각각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을 때, 그 둘이 성 관계라는 행위를 통해 한 몸이 될 수 있는 해부학적 구조를 갖게 하셨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룰 때 가장 놀라운 환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 호르몬이나 신경이나 감각 기관이나 다른 신체적인 특성들 모두 남자와 여자가 육체적으로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결혼을 통해 기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성 관계,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이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 관계를 열정적인 것으로 만드셨다. 완전한 성 관계는 온전히 하나가 되는 친밀감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열망을 갖도록 한다. 신성한 순결함으로 하나가 되는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찾으시는 신부,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보여주는 거룩한 비유이다.



순결한 처녀의 초상화 -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이유

오늘날에는 순결을 조롱 거리로 여기고 책망해야 할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이 자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성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순결을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즐기는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성 관계를 강조하는 요즘, 십대 사춘기나 사십대 중년이나 갱년기에 이른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이성과의 열정적인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서의 우리의 순결에 대해서는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실 것인가? 결혼하기 전에 순결을 잃었다고, 순결을 강제로 빼앗겼기 때문에 이 책을 계속 읽어 나가기가 너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이 책을 덮으려고 하지 말라. 문제를 피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망치려고 해도 과거가 늘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 가도록 하라.

유일한 선물

처녀란 그 어떤 남자와도 성 관계를 갖지 않은 여자를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처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성 관계라는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질을 만들어 주셨다. 질에는 월경을 내보낼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을 남겨 두고 질의 입구를 부분적으로 막고 있는 처녀막이라고 불리는 점액질의 막이 있다. 결혼한 남녀가 한 몸으로 결합하게 되는 신성한 날 밤에 남편이 풀어 볼 수 있도록 아내가 남편에게 주는 포장된 선물과 같은 것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여자의 질을 봉해 놓으셨다. 그것은 여자가 남편을 위해 간직해 둔 선물, 곧 그녀의 순결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 선물은 단 한 번, 단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성 관계는 결혼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가? 성 관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창세기 2:22~25절을 보면 성 관계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이끌어 가셔서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책임을 전적으로 지게 하신 남자와 그 여자를 위한 것이다. 그녀는 그의 뼈 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이었다. 그는 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부모까지 떠나도록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남은 생애를 그녀와 함께 살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와 한 몸을 이루게 될 여자였다. 성 관계를 갖기 전에 먼저 헌신이 앞서야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번밖에 줄 수 없는 선물을 경솔하고 어리석게 내어 준 것을 후회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순결을 되찾을 수 없다. 모든 한숨과 눈물과 후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순결을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처녀가 된 듯한 기분’을 회복할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순전함을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어 주시며, 에베소서 5:25~27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순결한 신부로 맞아 주실 수 있으시다.

남자들의 경우

남자들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결혼할 때까지 여자는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남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남자잖아! 그 성욕이 얼마나 강하고 남자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얼마나 쉽게 자극을 받게 되는지는 하나님도 아실 거야. 머리 속이 온통 여자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는 남자를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잖아. 하나님도 남자들이 결혼할 때까지 기다릴 거라는 그런 기대는 안 하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보는 것 때문에 얼마나 쉽게 자극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실제로, 성경에 순결이라는 단어가 남자에게 사용된 곳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순결을 지킬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단 말인가? 대답을 찾을 수 있다면 남자의 순결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성경에서 두 군데를 찾아 살펴보도록 하자. 잠언 5장에서는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에 비추어볼 때 아버지는 물과 우물이라는 비유를 통해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네 샘물”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잠언 5장을 통해, 남자는 집에서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남자는 낯선 여자나 매춘부나 부도덕한 여자의 품속이 아니라 아내의 품속에서만 만족을 얻도록 되어 있다. 성적인 욕구 때문에 목이 마를 때 그는 자신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도록 되어 있다. 그의 우물은 그의 아내를 뜻한다. 그의 샘물, 즉 그의 정액과 정자를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나누어주면서 길거리나 동네 전체에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다! 어린아이의 성을 결정하는 것도 바로 남자의 정자이다! 남자의 정자에 의해 딸과 아들이 결정된다! 남자들이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으면 씨를 심어야 하는 자리에만 - 젊어서 취한 아내에게만 - 그 씨를 뿌려라.

이제 고린도전서 7장을 보기로 하자. 고린도전서 7장에서의 바울의 대답을 통해 우리는 남자도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이 구절에 의하면 자신의 정욕을 잘 다루기 위한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남자가 정욕에 불탈 때 해결책은 혼전 성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당신이 직접 본 것이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성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결혼은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해결 방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말하고 어떤 그림을 제시하건 간에 남자도 여자와 다를 바 없이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를 받아들여라. 여자의 순결을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의 순결을 훔치고 도둑질하지 마라. 그리고 자신의 순결을 잃지 말라. 당신이 순결한 여자와 결혼할 권리가 있듯이 당신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도 순결한 남자와 결혼할 권리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사용하지 않으신다. 정욕이라는 제단에 당신의 순결과 신성한 성 관계를 제물로 바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성 관계에 대한 경고 - 혼외 정사가 불러오는 결과

안전한 성 관계에 관한 문제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누구와 하건 상관없이 성 관계를 용납하고 있다. 혼외 정사는 이제 더 이상 은밀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순결 대신 ‘안전한’ 성 관계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안전한 성 관계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그 대답이 있다. 그 구절을 찾아보기 전에 먼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썼던 당시의 정황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리스 로마시대(A.D 1세기)는 오늘날의 우리와 비슷한 성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문란해진 성범죄가 대기를 뒤덮었을 뿐 아니라 그 먼지가 어디에나 쌓여 있었다. 한 역사 학자는 “로마인들이 탐닉하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망신스럽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독교의 메시지가 전파되면서 구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이 전해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결한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옛 방식대로 살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이 지켜야 하는 원리와 계명들은 로마 사회 속에서는 이해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어울리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 관계와 관련된 행실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4:1~8)

이보다 분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란을 피하고 거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색욕을 좇아 살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색욕을 좇아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어떻게 거룩하고 성결하고 존귀하게 보전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지시를 받고 있다. 이것은 강력한 말이다. 혼외 정사는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짓도록 요구하고 부추기고 설득하고 강요하는 것이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 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게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지된 열매를 따먹지 않도록 조심하라 - 성 관계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

너무 많은 정보는 때때로 파괴적일 수 있는데, 그것은 불필요한 정보가 생각할 필요가 없거나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의 생각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학교의 성교육이 지금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진정한 성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려 주고, 행동에 따르는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제 성 관계는 부부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외에 하나님께서 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간음과 탐심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 가운데 2개의 계명이 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는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명령한 제7계명이다. “간음”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나압’(na' ap)이다. 이 단어의 어근에는 ‘다른 사람의 아내나 약혼녀와 성 관계를 가지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압이라는 단어에는 또 ‘변절하다’라는 비유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인 제10계명 역시 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탐낸다는 것은 어떤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남에게 속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탐내기 시작하면 그 탐내는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우리는 그 상황을 장난처럼 쉽게 여기며 우리의 열망과 감정과 꿈과 스스로 만들어낸 필요 등에 이끌려 점점 다가가고 간음을 행함으로써 제7계명을 어기고 이런저런 변명 거리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갈망하거나 탐내는 일을 엄격하게 금하신다. 간음이 불러온 비극, 남의 것을 탐하고 욕망을 이기지 못한 결과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을 가져온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