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한홍 지음 | 두란노
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한홍 지음
두란노/2004년 3월/247쪽/12,000원
1부 순종하는 리더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
1945년 4월 12일,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미국인들은 믿기 어려운 뉴스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누구보다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그의 뒤를 이어 33대 대통령으로 취임해야 했던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었다. 하루아침에 거인 루스벨트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미주리 주 시골 출신 트루먼의 부담이 얼마나 컸겠는가? 트루먼은 당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늘의 달과 별들과 모든 행성들이 나에게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만약 일생에 한 번이라도 기도한다면,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너무나 위대했던 전임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심적 스트레스임에 틀림없다. 이런 일은 리더의 삶 속에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성경에도 그런 지도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전무후무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다.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면서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모세의 리더십 하나에 의지했다. 모세가 바위를 치면 물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민족과 싸울 때는 그가 지팡이만 들고 있어도 백전백승했다.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선 지도자, 그가 바로 모세였다. 그런데 광야에서의 40년 방황 생활이 끝나고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 전설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것이다. 후계자로 등장하여 그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게 된 여호수아의 심정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고, 반드시 그 인생의 끝이 온다. 이 한계를 아는 것이 리더십의 첫 단계다. 무대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바뀌어도 비전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모세는 죽었지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던 비전, 곧 노예의 땅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꿈은 계속되었다.
다만 역사의 큰 그림을 놓고 볼 때, 큰 비전의 흐름은 같아도 그 비전을 이루는 단계나 그것을 감당할 사람은 다를 수 있다. 각 리더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맡겨진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비교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준비하는 리더가 있으면 정복하는 리더가 있고, 그 후에 그것을 지키는 리더가 있는 법이다. 획일화에 물들어 있는 시대에는 다양화하는 리더가 있고, 그 다음에는 다시 차별화하는 리더가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나 지도자로 세우시지 않는다.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에 따라 미리 훈련받고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안다. 즉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내적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대로 행동하는 법을 익힌 사람이다.
그런데 이 천하의 여호수아도 막상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음으로써 졸지에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자리에 섰을 때, 정신이 아찔하고 두려움이 먹장같이 몰려왔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여러 절에 걸쳐 중복하여 강조하신 것으로 보아, 당시 여호수아는 심한 스트레스와 상당한 두려움에 눌려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함께 갔던 다른 10명의 동료들은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가 살아 있을 때의 얘기다. 아마 당시의 여호수아는 지도자 모세를 믿고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세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이 없어진 상태에서 과연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것은 모세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결국 하나님이 이미 주신 축복의 열매를 따먹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대부분의 리더는 “내가 무언가 이루었다”, “내가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하며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성숙한 리더십은 다르다. 나의 지혜, 동업자, 돈, 조직, 노하우를 비롯한 그 외의 모든 것이 다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리더는 늘 감사하고 겸손할 줄 아는 것이다. 삶이 경박한 것은 묵상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A. W. 토저는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바로 그 사람의 말을 들으라.”
남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무렵,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무참히 죽어 갔다. 양측의 운명이 걸린 대전투를 앞둔 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깊은 번민 속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본 참모들이 링컨 대통령에게 이렇게 위로했다. “각하, 염려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십니다.” 그러자 링컨은 말했다. “그것은 적군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지.”
팔로워십에서 시작하라
성경에는 정작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리더십을 말해야 할 부분에서 오히려 ‘팔로워십’ 혹은 ‘서번트십’을 얘기하고 있다. 리더십 훈련 과정의 기초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따르고 섬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따르는 법을 모른 채 리더 자리에 오를 때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파멸로 이끌고 갈 수 있다. 이 점을 명확히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권위를 허락해 주실 것이며 그 권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이 있다.
모세의 권위 밑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아온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스라엘의 모든 리더를 소집한다.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지체 없이 순종한다. 제때에 결단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리더가 될 수 없다. 완벽한 작전 계획은 없다. 전문화되고 고급화된 오늘날의 문화에 길들여진 탓인지 너무나 많은 지도자들이 영적인 야성을 잃어버렸다. 많은 리더들이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거나 안전과 명예를 따지고 있다. 그러나 파워는 행동하는 리더십을 통해 폭발한다. 확신이 서면,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지체말고 움직여라.
여호수아는 3일 동안 양식을 예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중요한 작전 한 가지를 지시한다. 갓, 르우벤, 므낫세 지파를 가나안 상륙 작전의 최선봉 부대로 지명한 것이다. 이 세 지파에게는 지켜야 할 오래 전의 약속이 있었다. 광야 시절 미디안 광야에서 사나운 부족들과 큰 전쟁을 치러 혁혁한 전과를 세운 이들 지파들에게 모세는 많은 가축을 하사했었다. 그런데 많아진 가축으로 요단강을 건너기가 어려워진 이들은 요단강 동편의 땅에 그냥 머물기를 원했다. 그러자 모세는 크게 화를 냈고, 세 지파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자기 지파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정착시켜 놓고 다른 지파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이 완결된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특권층은 많이 누리는 만큼 그에 따르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호수아는 이 세 지파에게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또한 여호수아가 이 세 지파를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최선봉 부대로 세운 것은 그들이 가진 전문성 때문이었다. 이 세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용맹한 사람들을 뽑을 때 항상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지파들이었다.
본래 팔로워들은 리더가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따라하는 무능력한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쩌면 리더도 지니지 못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에,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그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탁월한 리더는 각자의 전문성을 따져 적절한 팔로워들에게 일을 배분한다. 리더십이 전체 그림을 보고 큰 목표를 향해 팔로워들을 이끌고 격려하는 일이라면, 팔로워십은 각자 독특한 전문 기술을 가지고 그 리더십에 협력함으로써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일이다. 역할의 차이이지 지위의 차이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이 분명할 때 리더는 교만하거나 무례하지 않으며, 팔로워는 비굴하거나 방관자적인 자세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세 지파의 리더들이 기꺼이 신참 지도자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 우리가 가리이다”. 리더십이 검증되지도 않은 신참 지도자의 명령을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자리로 기꺼이 나아가는 이 전격적인 순종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팔로워의 모습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여호수아의 위대함에 압도된 것이 아니라 그를 리더로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본 것이다. 카리스마를 지닌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추종자들인 가신 그룹을 만들려는 함정에 쉽게 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실패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세워 주신 권위임을 느낄 때 팔로워는 순종하게 된다.
최선봉 부대로 뽑힌 이 세 지파들은 기쁘게 순종하는 것에 한 수 더 떠서,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까지 한다. 성경 본문에는 리더와 그 뒤를 따르는 백성들 간의 끈끈한 사랑과 사명을 다하겠다는 헌신의 모습이 나온다. 자기들 가운데 불복종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고 말함으로써 순종의 굳은 의지를 보여 준다. 리더와 팔로워들 간의 이 감동적인 팀워크는 결국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가나안 정복을 이뤄내고 만다.
한 걸음씩 내딛으라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했다. 이것은 지도자로서 그의 성실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지도자들은 항상 새벽을 깨우는 삶을 살았다. 여호수아는 싯딤에 진을 치고 여리고로 정탐군을 보냈다. 3일 후 돌아온 그들은 여리고 성 사람들이 이미 하나님의 군대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공포에 떨고 있다고 보고했다.
여호수아의 첫 번째 명령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제일 앞에 서서 행진하고, 백성들은 거리를 두고 그 언약궤를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궤’라고도 불리는 직사각형 상자로서, 그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했므로 언약궤를 따르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라는 말이다. 두 번째 명령은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을 때 리더를 탓하기 전에, 따르는 사람들도 회개하고 바로잡아야 할 점들이 많이 있다.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까지 이동하는 데 하루는 족히 걸렸을 것이다. 마침내 요단강 가에 도착한 백성들은 거기서 진을 치고 또 3일을 보냈다. 분명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공격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눈앞에는 요단강이 당장이라도 삼킬 듯이 넘실대며 흐르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당장 강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먼저 강물을 멈추게 해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에 순종하여 뛰어들면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지만, 그 기적의 파워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순종과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마침내 역사적인 요단강 도하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2백만 백성의 역사적인 대이동이자 기적 그 자체였다. 평소보다 수심이 3-4m 이상 깊어지고, 물살도 빨라져 시속 16km 이상의 급류가 흐르는 우기였다. 어려운 일은 우리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력하거나 인맥을 동원하면 웬만큼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우리 능력 밖이다. 리더에게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가 언젠가는 찾아온다. 도무지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이것을 어떻게 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흐르는 강물 속으로 용감하게 발을 들여놓자마자 믿기 어려운 기적이 벌어졌다. 그 엄청난 요단강물이 갈라지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벽이 되어 양쪽으로 쌓인 것이다.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수많은 가축들이 짐차를 끌면서 요단강을 건너는 데는 반나절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제사장들은 그 긴 시간 동안 결코 가볍지 않은 언약궤를 메고 계속 서 있어야 했다. 하나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하나님과 함께 서 있으면 요단강과 같은 무서운 장애물로부터 백성들이 보호받는다. 뼈가 꺾어지고 등이 휠 것같이 괴롭고 아프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라. 당신이 이끌고 있는 공동체가 당신의 그 인내와 고통을 발판 삼아 요단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거룩한 패기로 새 역사를 창조하라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넜을 무렵,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뜻밖의 명령을 내리셨다. 각 지파의 12 대표들에게 갈라진 요단강 한복판, 아직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고 서 있는 그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각자 큰 바위를 한 개씩 찾아서 들고 나와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요단 강물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즉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제일 먼저 앞장섰기 때문일 것이다.
요단강 한복판에 도착했을 때 여호수아는 의아스러운 일을 한 가지 더 행한다. 12명의 대표들이 큰 돌을 하나씩 파내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여호수아 자신은 강 중앙,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바로 그 발 앞에 12개의 돌을 원형으로 세워 놓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일은 그 순간 여호수아 자신이 감격에 겨워 자발적으로 한 행동인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홍수로 범람하는 요단강을 갈라 주신 사건을 기념하기 원했던 것이다.
강 한가운데서 언약궤를 메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제사장들과 여호수아가 존경스럽다. 그들은 백성들이 강을 무사히 건널 때까지 거의 온종일 언약궤를 메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했다. 여호수아는 가장 마지막에 육지로 올라왔다. 진정한 리더란 이렇게 가장 먼저 진격하고 가장 늦게 퇴각한다. 리더의 자리는 불가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자 같은 용기와 더불어 무쇠 같은 인내와 책임감을 요구받는 자리다.
모든 사람이 육지에 닿자 나뉘었던 강물은 성난 물결로 순식간에 합쳐져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장애물 앞에 서 있을 때는 한없이 막막해도 하나님과 함께 지나면 순식간에 꿈같이 그 장애물을 뒤로하고 서 있게 되는 법이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진을 치고 각 지파의 대표들이 운반해 온 12개의 돌을 기념비로 세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완전한 새 사람, 새 민족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상기시키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것은 바로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였다. 이제 광야를 벗어나 물질적으로 풍성하고 평안한 때에 태어날 다음 세대는 그만큼 타락할 위험이 클 것이기에 부모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녀에게 영적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제2부 도전하는 리더
영적 리더십을 견고히 세우라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발을 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첫 번째 명령은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 축복을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우리를 빚으신다. 여리고 성을 코앞에 둔 거리에서 이스라엘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믿음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적군 앞에서 완전히 무장 해제되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쟁은 이스라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자연적인 승리와 기적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