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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직접 만나라

스킵 하이지그 지음 | 가이드포스트
제1부 예수님의 인격



소리로 임한 메신저(세례 요한, 목적의식이 분명했던 사람)




요한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역청과 메뚜기를 먹으며 단순하고 은둔적인 삶을 살았다. 사람들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했고 혹시 메시아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아니라는 분명한 대답에도 사람들이 계속 묻자 그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선지자적인 말로 대답한다.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그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다가올 심판에 대해 말했다. 이것은 요엘, 에스겔 그리고 예레미야와 같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본받은 것이었다. 요한은 사람들의 급소를 찔렀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은 질퍽거리는 요단강 물 속에 들어와 요한에게로 나아와 세례 받을 차례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요한은 거부했다. "저야말로 당신이 주시는 세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제게로 오십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이제 하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요한아, 내가 세례를 받는 것은 중요하단다. 그 세례를 통해 내가 죄 된 인간들과 동일시되기 때문이지. 네가 죄를 비난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으로는 죄를 치유할 수가 없단다."

요한은 깨달았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는 타락한 인간들과 동일시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예수님은 죄 된 사람들 속에서, 인생에서 새로운 일이 벌어지려면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죄 된 세상을 심판하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잡아 줄 메시아를 선포해 왔던 요한은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그런 예수님의 의중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마침내 요한은 주님의 명령에 순복하여 그분께 세례를 베풀었고, 그 순간 놀라운 표적이 일어났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요한은 너무나 확실한 음성을 들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음성은 분명 예수님이 흔히 말하는 '인자' 그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선언이었다.

요한이 예수님을 다시 만난 것은 몇 주 후였다. 그 시점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을 보내면서 사단과 대면하여 승리하신 후였다. 예수님은 요한을 만나기 위해 요단강으로 오셨다. 예수님을 본 요한은 그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우러나온 듯한 선언을 한 마디 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 : 29)."

요한의 인식이 이처럼 엄청나게 변화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그렇게 중대한 역할을 하실 분의 삶에 대해 꾸준히 연구는 했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행동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주 모호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한을 깜짝 놀라게 하셨고 그를 변화시켰으며 그의 사명을 굳건하게 해 주셨다. 당신도 예수님을 만나면 선입견들이 산산조각 날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이 생각한 대로 행동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열린 마음과 종교계의 속물들에 대한 분노, 혹은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무관심 등을 알게 되면, 그런 예수님 때문에 당신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시는 열망으로 당신의 죄를 사해 주시고, 당신에게 제2의 기회를 주시려는 열망으로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하실 수도 있다. 요한이 예수님과의 첫 만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거부하지 말고 예수님이 당신을 만들어 가기 원하시는 방식대로 당신의 마음을 열라.

예수님과의 만남은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강물 속에서 계실 때 그분의 긍휼을 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면, 보통 아주 기본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나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진정 우리를 변화시키는 훌륭한 진리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더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그분을 더 깊이 알게 되며 더욱더 사랑하고 섬기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해 가고 깨달음이 자라가면 예수님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메시지도 달라진다. 요한은 광야로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목적 없는 심령들에게 영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요한의 외침이었다. 무리들이 요한에게로 나아오자 그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근원되신 분을 가르쳐 주었다. 요한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숨김없이 말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 : 30)." 창조 세계를 창조주께 돌려 드리고 죄인들을 구세주께 돌려 드리며 소망 없는 자들을 소망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요한이 전한 메시지의 특징이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삶의 목적이 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프로그램에는 당신만이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구할 것 중의 하나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러한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가 말하는 것과 역행하지 않나 싶을 때조차도 말이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을 만드셨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그 계획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사명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됨으로써 요한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 더 이상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살지 않는 분을 도대체 어떻게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 생각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우선 당신을 예수님께 소개하라. 물론 그분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지만 말이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씀드려라. 허공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당신의 말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으라. 다음에는 예수님에 대해 배우라. 성경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을 누리라. 그분의 거룩한 본성을 관찰하다 보면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거나 싫어하실 행동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것이며,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당신은 그분을 더욱 누리게 될 것이다.

종교는 한계가 있다(종교인 니고데모, 예수님을 만나다)



니고데모는 부유하고 유명한 데다가 바리새인으로서 의로운 자가 되기로, 즉 온갖 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별하기로 서약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그는 평생토록 율법의 모든 상세한 것들을 준수하기로 맹세했고, 그런 규칙들을 완벽하게 지키면 천국행 티켓을 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것으로 충분치가 못했다. 그의 영혼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종교의 우물 옆에서 오랜 동안 그 물을 마셔 왔지만, 니고데모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영혼이 고갈되어 있다는 것을.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갈증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 사람의 가장 큰 필요가 무엇인지 바로 그 핵심을 찔렀다. 니고데모가 육체적 탄생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듯이, 하나님 나라는 또 다른 탄생, 즉 영적인 탄생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예수님은 강력히 주장하신다.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만 재생산할 뿐, 영적인 생명은 생산할 수 없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그 무엇도 니고데모가 그토록 필요로 하는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의 많은 동시대인들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생명 없는 종교 의식을 통해 생명을 가져오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하셨다. 니고데모가 알아들을 만한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구약 선생인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신 약속을 기억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 : 25∼26)."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선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니고데모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정결함이 필요했다.

니고데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좀 더 밀어부쳤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 : 8)." 바람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바람의 효과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때 예수님은 부드럽게 도전을 주신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아니더냐? 이것은 너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필요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신 것이다. 이 유식한 바리새인의 진정한 문제는 지성이 아니라 불신이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 : 12)." 이제 니고데모의 마음 상태는 완전히 발가벗긴 채 드러났다.

"하늘에게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 : 13)."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천국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시점에서 니고데모는 하늘나라에서 직접 내려온 사람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지성과 지성을 맞대고,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만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영생의 길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권세도 가지고 있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 : 14∼15)."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분의 구속 사역에 대한 가장 분명한 통찰 중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날 밤 이후 니고데모의 삶은 어땠는가?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니고데모가 강력한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으로 밀어넣는 것에 대해 기꺼이 동료들과 맞섰고,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시신을 돌봤다.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이 호기심 많은 질문가는 용감한 지지자로 성숙했다. 새 생명의 신호가 니고데모 안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당히 의미 깊은 영적 성장이다. 바람은 불고 있었고, 그 효과는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니고데모를 만나 주신 예수님은 오늘 당신과도 만나고 싶어하신다. 당신은 이 초청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니고데모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본성상 매우 호기심 많고 태어날 때부터 인생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여정은 시작된다. 무엇이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지, 이 세상은 왜 창조되었는지, 왜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호기심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문을 열어 주었다. 당신도 당신의 영적 호기심에 답변해 줄 근원 되신 분께 직접 가 보았는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신학적, 철학적 견해를 따라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영혼의 갈망은 피상적인 만남으로는 만족될 수가 없다. 지성과 지성을 맞대고,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 헌신하라. 니고데모와의 만남에 있어서 예수님께 뭔가 목표가 있었던 것처럼, 그분은 당신의 삶에 대해서도 선한 계획과 목적들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과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당신을 그분의 나라로 데려가시고 당신이 변화되도록 돕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길을 억지로 강요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누구나 받아들이시지만, 먼저 당신이 예수님을 믿을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죽기까지 당신을 사랑하시는 분임을 믿고 나아오라. 그리고 그분 나라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라.

상한 마음의 치유자(예수님과 상처 입은 자들)



우리의 문화 속에서는 행복을 찾는 것이 일종의 강박증이 되어 가고 있다.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권은 너무도 성스러운 것이어서 헌법에까지 명시되어 있지만, 행복은 결코 끝이 없는 추구이다. 행복을 잘못된 곳에서 찾으려고 할 때는 특히 그렇다. 사마리아의 옛 도시인 수가성의 우물가에도 온갖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던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인생이 평탄치 못했다. 그녀의 과거는 실패한 관계의 파편들로 얼룩져 있었다. 한 번씩 이혼할 때마다 그녀의 꿈은 조금씩 더 깨졌을 것이고 쓰라림도 점점 더 깊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매번 쓰라림을 경험할 때마다 불신감도 커졌으리라.

이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우물에 왔을 때 한 유대 남자가 우물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마음 상태가 어떠했을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은 여행을 할 때 사마리아 땅은 밟지도 않을 정도로 사마리아인들을 저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바로 오늘 우물에 물 길러 온 발걸음은 거룩한 선약이었다는 사실. 거기 있는 남자는 바로 그 시간에, 바로 그 장소에 오기 위해서 일부러 먼 길을 돌아온 것이었다. 예수님은 정중한 요청으로 이 상호작용의 주도권을 잡으셨다. "물을 좀 달라(요 4 : 7)." 이 말은 그저 서로의 무장을 풀고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다가간 예수님을 맞이한 것은 회의주의였다.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예수님은 좀더 깊이 파고들어 소망이라는 신경을 건드리신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 : 10)."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 : 13∼14)." 그러나 이 말씀에 반응하는 이 여인의 목소리에는 영적인 갈증과 현실적인 비관주의가 뒤섞여 있는 듯하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그녀의 말이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 경험들이 영적인 감수성을 둔하게 만들었다. 이제 좀 더 개인적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명사수처럼 예수님은 그녀 개인의 삶을 겨냥한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단 한 마디 말로 그녀의 전 인생이 이 이방인 앞에 발가벗겨졌다. 그분은 죄악과 상처의 해골들이 쌓여 있는, 그녀가 꼭꼭 잠궈 버린 벽장문을 열어 버렸다. 왜 예수님은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 깊은 상처를 덮고 있는 딱지를 왜 떼어내는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그녀가 받아 마시고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갈증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 그녀는 존경을 표하면서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예수님을 좀 더 시험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것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질문은 어느 성전이 진짜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은 잠정적으로 분열을 유발할 수 있었고, 따라서 대화를 끝장내게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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