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게리 토마스 지음 | CUP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이끄는 9가지 영적기질 -
게리 토마스 지음 / 윤종석 옮김
CUP / 2003년 6월 / 292쪽 / 1,000원
서문오랜 세월 교회는 교인들에게 기도의 방법도 하나, 예배의 방법도 하나, 성경 공부의 방법도 하나라고 말해 왔다. 구원의 길이야 당연히 하나 - 예수 그리스도 - 지만 우리의 복된 구주를 예배하고 사모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 자체에 있을까 아니면 기도의 시간과 방법에 있을까? 내가 믿기로 우리 하늘 아버지는 그 자녀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의 다양성으로 인해 즐거워하신다. 하나님은 하늘 아버지께 가까이 가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는 자녀들을 찾고 계신다. 당신이 그 방향으로 나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1부 영성에의 길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은 영적 처방을 내릴 때가 많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까? 30분 내지 60분간 QT 습관만 들이고 주일 아침마다 교회에만 나오면 됩니다.” 대개는 표준화된 QT에 약간의 변화를 가한 것이다. 왜 그럴까? 간단하고 일괄적이며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것만으로 안 된다.
나는 내 안에 표준화된 QT로는 절대 만져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QT훈련은 유익했지만(지금도 유익하다)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다. 내 영적 존재의 다른 부분들은 잠자고 있었다. 아울러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동일한 좌절을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도대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오와의 농부한테나 워싱턴 D.C의 변호사한테나 똑같은 유형의 영성을 처방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 고전을 읽고 내 여정을 남들과 나누면서 나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발견했다. 그 길들은 서로 다른 영성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적 활력을 일깨워 주었고, 그리하여 그들 내면에 여태 한번도 만져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만짐을 입었다. 이런 발견을 계기로 나는 사람마다 다른 하나님 사랑의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영적 기질’의 탐색에 나섰다. 영적 기질이란 성격 기질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영적 기질의 초점은 각자 하나님과 관계 맺는 가장 좋은 길을 이해하여 그분과 가까워지는 새로운 길들을 개발하도록 돕는 데 있다.
성경을 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동일한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한 하나님을 예배한 방식은 가지각색이었다. 아브라함은 종교적 성향이 있어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다. 모세와 엘리야의 경우 악의 세력들과의 다양한 대결이나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 행동주의 영성의 색채가 풍긴다. 다윗은 열정적 예배 방식으로 하나님을 기뻐했는가 하면 그 아들 솔로몬은 무수한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영적 기질들에 이름을 붙이고자 내가 두 번째로 연구한 분야는 역사상 교회의 분리였다. 기독교 역사의 여러 논쟁을 살펴보면서 나는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의 차이가 그중 많은 논쟁의 배후가 된 것을 발견했다. 네 주자 - 로마 카톨릭, 루터교, 칼빈주의, 재침례파 - 모두 하나님을 사랑했으나 사랑의 표현 방식이 독특했다. 근본적으로 신학의 차이도 많았지만 예배의 기호와 관련된 부분들도 있었다. 예배의 기호가 갈릴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배우기보다는 분리를 택해 새 교회를 시작할 때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별 흥미를 못 느끼면 모든 체험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향이 기도에 도움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하면 향의 사용을 무조건 이상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도 있다. 두 그리스도인은 교리상 중립적인 예배의 기호를 가지고 신학 문제화 할 것 없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을 주셨다. 이 차이가 예배에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칼 융은 인성을 묘사하고자 네 가지 특성 기준을 개발했다. 그 기준을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즈(Isabel Briggs Myers)가 체계화한 것이 유명한 마이어즈 브릭스 성격 검사다. (외향적-내성적, 감각적-직관적, 사고형-감정형, 판단형-지각형) 영적 기질과 성격 기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브릭스의 ‘유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한 성향과 소양을 지닌 존재로 지으셨다. 성경 인물들과 교회의 역사적 운동들과 다양한 성격 기질을 사용해 우리는 아홉 가지 영적 기질을 찾아볼 수 있다.
1. 자연주의 영성 :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자연주의자들은 아무리 아름답고 단출한 건물일지라도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가 강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들을 대할 때는 책을 덮어라. 시범도 보일 필요 없다. 그저 숲 속이나 산이나 너른 들판을 걷게만 해주면 된다. 그들의 마음은 야외로 나갈 때 한껏 치솟아 하나님을 예배한다.
2. 감각주의 영성 :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감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위엄과 아름다움과 광휘에 푹 잠기기 원한다. 그들은 예배 의식과 엄숙하고 장엄한 것에 특히 끌린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드릴 때 시각적 장치와 소리와 냄새에 가득 젖어들기 원한다. 향, 정교한 건축, 고전 음악, 격식 있는 언어가 그들의 마음을 상승시킨다. 오감이야 말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침투하시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3. 전통주의 영성 : 의식과 상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전통주의자들은 흔히 신앙의 역사적 차원에 속하는 것들, 즉 의식, 상징, 성례, 제사 등에서 양분을 얻는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훈련된 신앙 생활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대개 이들은 규칙적 예배 참석, 십일조, 주일 성수 등을 좋아한다.
4. 금욕주의 영성 :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금욕주의자들은 혼자 남아 기도하는 것밖에 바라는 것이 없다. 그들을 대할 때는 의식이나 종교의 부속물, 바깥 세상의 소음을 모두 거둬라. 주의를 산만하게 할 만한 것을 모두 치우고 - 그림도 없고 시끄러운 음악도 없이 - 혼자 단순성 속에 기도하게 하라.
5. 행동주의 영성 :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행동주의자들은 정의의 하나님을 섬긴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기사일 때가 많다. 그들이 정의하는 예배란 악에 맞서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교회를 다시 세상에 나가 불의와 일전을 벌이기 위한 재충전의 장소로 본다.
6. 박애주의 영성 :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박애주의자들은 남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그들은 가난하고 초라한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다고 고백하곤 한다. 그들은 남들과의 관계 위에 쌓아 올려진다. 보통 사람들은 남을 돌보는 일이 피곤할 수 있지만 박애주의자에게는 오히려 재충전이 된다.
7. 열정주의 영성 : 신비와 축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열정주의자들의 영적 혈액은 예배의 흥분과 신비이다. 감각주의자들이 아름다움에 에워싸이기 원하고 지성주의자들이 개념을 붙들고 씨름하기 원하듯 열정주의자들은 즐거운 축제에 감격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응원단장들이다.
8. 묵상주의 영성 :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묵상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연인으로 지칭한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신랑의 이미지가 그들의 하나님관을 주도한다. ‘거룩한 낭만’으로 들어서는 아가서야말로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성경 본문일 수 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가장 깊고 가장 밝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한다.
9. 지성주의 영성 :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지성주의자는 회의론자일 수도 있고 헌신된 신자일 수도 있으나 어느 경우든 칼빈주의, 유아 세례, 여성 안수, 예정설 따위의 교리를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신앙’이란 체험 못지 않게 이해의 대상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때 그분이 가장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이상적’ 그리스도인은 전부는 아니라도 다수의 영적 기질을 보여줄 수 있다. 앞으로 기질별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겠지만 나는 모든 기질의 모본으로 예수님을 꼽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자신의 영적 기질(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공통 분모가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나와 있다. 예수님에 따르면 신앙의 모든 참된 표현에는 네 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흠모)을 다하고 목숨(의지)을 다하고 뜻(신념)을 다하고 힘(몸)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흠모, 신념, 헌신, 봉사가 나타나야 한다. 책을 전체 다 읽음으로서 당신은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온,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훨씬 더 포괄적 시작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삶의 계절 속에서 하루하루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그 사랑을 늘 새롭게 간직할 것인가?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이해에 어떻게 자라갈 것인가? 그것은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가능하다. 그 관계를 가꿔온 그리스도인들의 수많은 방식을 일단 이해하면, 그분 곁에 더 바짝 더 꾸준히 걸을 수 있는 길들이 우리 앞에 더 많아질 것이다.
2부 영성의 아홉 가지 색깔
1장 자연주의 영성 -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예배드리는 장소가 우리 예배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의례적 건물과 푹신한 회중석을 떠나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전혀 새로운 ‘성전’, 즉 야외로 나가고 싶어한다. 야외로 나가면 글자 그대로 메마른 심령에 단비가 내리고 딱딱한 영혼이 녹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주의자들은 보아 왔다. 대다수 회중이 꾸준히 야외에서 모이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개인이나 소그룹 예배자들은 조용한 곳에 나가 야외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큰 유익을 누릴 수 있다.
현대 문명의 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가려진 진리이긴 했지만 분명 성경은 야외에서 읽도록 된 책이다. 구약과 복음서의 많은 예화와 비유는 자연에 바탕을 둔 것이며, 따라서 자연 속에서 그 의미와 힘이 되살아난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현현’, 즉 그분이 임하신 사건은 대부분이 광야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은 사막에서 하갈을, 산에서 아브라함을, 강나루에서 야곱을,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만나 주셨다. 예수님도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찾으셨다. 사역 초기에 그분은 나사렛을 떠나 호숫가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 하나님이 첫 남자와 여자를 위해 낙원을 지으셨을 때 그것은 휴양시설이었던가? 하나님은 나무가 울창하고 강이 넷으로 갈라져 흐르는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니는 쪽을 택하셨다.
야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날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혀 새로운 캐스팅으로 우리 마을을 찾아온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공책에 ‘자연의 언어와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길 만큼 자연의 비유를 좋아했다. 장미에 가시가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현세의 단맛에 쓴맛도 섞여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는 마귀와 유혹을 나타내 주며, 바다로 흐르는 강물은 만물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가 듣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통해 말씀하실 것이다. 책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당신의 시간이 고인 물처럼 정체돼 보이거든 코트와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라. 거기 닫지 않는 학교가 있다.
하나님은 종종 야외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만나 주신다. 개혁교단의 <벨기에 고백서> 제2조는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와 보전과 통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신다. 우주는 가장 기품 있는 책으로 우리 눈앞에 있다.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이 그 책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밝히 보여 준다.”고 말한다. 존 밀턴은 명시 ‘실낙원’에 이렇게 썼다. “피조물을 묵상하며 우리는 한 걸음씩 하나님께 올라간다.” 피조 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도 생각하라.
한편, 우리에게 늘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쉼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몸과 영을 쉬기에 야외보다 좋은 곳은 없다. 예수님은 분주한 사역 일정 중에도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며 힘을 얻곤 하셨다. 제자들한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우리를 돌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피조 세계는 하나님이 우리의 추운 마음을 덮어주시는 따뜻한 이불일 수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다.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나는 진정 하나님을 보려면 우선 조용히 시간을 내어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거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믿어야 하고 다음으로 지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끝으로 받아야 한다. 첫 번째 단계로, 자연을 감상적으로 대하거나 우상으로 삼지 않으려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으로의 온전한 회심이 필요하다. 루터는 피조 세계를 ‘하나님의 마스크’라 표현했다. 마스크란 일부 가려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 뭔가가 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 깨어나는 두 번째 단계는 죽어버린 지각의 요소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시스의 제자 성 보나벤처는 야외에서 하나님을 구하기 위한 ‘훈련’ 지침을 제시했다. 첫째, 산과 하늘과 바다 등 피조 세계의 광대함을 생각한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과 지혜와 선을 분명히 보여준다. 다음, 피조물의 무수한 종류에 주목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동시에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끝으로,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살펴본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없다. 그것은 너무 광대무변해 온 세상을 경이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 말씀하실 시간을 드리지 않는 한 - 그리고 대화의 주도권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 한 - 우리는 받을 수 없다. 내 의제와 하나님의 의제가 다를 때가 많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분이 내 영적 산책을 주도하셔야 한다. 그분은 내가 들어야 할 말을 아신다. 숲에 가거든 받으러 가라. 걱정일랑 집에 두고 가라.
자연주의 영성의 유혹* 개인주의 - 예수님은 야외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셨으나 다시 세상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로 그리하셨다. 우리는 자연을 구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을 피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 영적 미혹 - 심리학자들은 성지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성경 인물이나 심지어 예수님으로 생각할 정도로 감격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통찰을 아주 세심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의 산책 중에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권위를 둘 것이 아니라 검증 대상의 조언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확실한 기준은 성경뿐이다.
* 자연의 우상화 - 어떤 자연주의자들은 범신론, 즉 자연 숭배의 우상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모든 자연 속에 하나님이 있다든지 자연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단 피조 세계에 둘러싸일 때마다 하나님의 존재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성령이 없다면 우리도 우상 숭배의 선을 넘어 범신론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와 우리를 지도하시는 성령이 있기에 우리는 범신론의 이단에 빠지지 않고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자연의 메시지를 음미할 수 있다.
자연주의 영성에의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