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침묵
래리 크랩 지음 | IVP
제1부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 : 상실된 꿈
남자의 비전결혼한 지 2년이 채 안 됐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길을 잃은 듯 혼란스러웠고 화가 났다. 그가 확실히 아는 것이라곤 자기 아버지와 대화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가 자기를 이해해주고 곁에 있어 주고 자기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관여해 주고 존중해 주기를 원했다. 강의를 늘어놓거나 모른 척 물러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의 영웅이었고 모든 좋은 것의 모델이었다. 아버지는 정숙한 어머니와 결혼해 34년 간 탈 없이 살아왔다. 어머니는 불평이라고는 모른 채 늘 가정주부로 살아온 분이었다. 그의 기억에 어머니는 인근 아동 병원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었지만 - 어머니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다 - 아버지는 언제나 미소로 어머니를 묵살했고 가족 부양은 자기 몫이라고 은근히 꾸짖듯 일깨우곤 하셨다.
교회에서도 아버지는 훌륭한 모범이었다. 장로인 아버지는 매달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 주었고, 신임 협동 목사가 주중 기도회와 성경 공부를 가정 모임으로 대치하자고 했을 때 그것을 지키려고 싸웠고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만인이 다 알았다), 십일조를 충실하게 냈고, 거의 매일 밤 가정 예배를 드렸고, 세 자녀를 늘 잘 단속했다. "장로님 가정은 정말 선한 증거입니다."라는 말을 수시로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늘 미소 지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아버지를 집까지 차를 타고 가는 20여 분의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는 왜 이렇게 숨 막힐 듯 가슴이 답답할까? "아버지?" 그는 말문을 열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 결혼생활이 엉망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미소. 어머니를 34년 동안 집에 묶어둔 그 미소. 남들이 겸손으로 보아 온 그 미소. 처음으로 그는 자기가 그 미소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깨달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두 권의 책 제목, 에베소서 5장을 읽으라고 권고 그리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라는 말씀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버지!" 그는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책들은 다 읽어 봤고, 에베소서 5장도 공부해 봤고, 기도도 할 만큼 했습니다. 아버지께는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왔습니다!"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 사람을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전에도 아버지의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었지만 자기가 그 대상이 된 것은 한 번도 없었다. 침묵. 무서운 긴장의 순간이 흐른 후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 한마디 없이 방을 나갔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그 날 처음으로 나는 우리 아버지가 약한 남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진 남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내 사무실 책상 옆쪽 벽, 날마다 내 눈에 띄는 자리에서 무디의 말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하나님이 그분께 철두철미 완전히 바쳐진 남자와 함께, 그런 남자를 위해, 그런 남자를 통해, 그런 남자 안에서, 그런 남자 곁에서 어떻게 역사하실 수 있는지 세상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그런 남자가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전기 즉 오스왈드 챔버스, 루이스, 존 낙스, 조나단 애드워즈, 어거스틴, 예레미야, 바울 같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즐겨 읽는다. 그들의 생애를 읽다 보면 성숙한 남성상에 대한 현대의 개념이 지난 세대 경건한 남자들이 이해하고 실천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약한 면을 내보이며 아픔을 느끼는 용기에 대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예배와 증거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는 정직한 커뮤니케이션과 잠재력 실현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상한 심령으로 무릎을 꿇었고, 일어나서는 타인을 섬겼다. 이들 옛 남자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게 막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상대로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오늘 우리가 개발하려 애쓰는 덕목들이 그 남자들에게는 자연스레 찾아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는 소그룹으로 모여 감정을 나누고 좀더 친밀한 관계나 자존감의 회복의 원리를 논한다. 그들은 입에서 하나님 이야기가 술술 나오고, 예고 없이 언제라도 기도에 들어가는 남자 선배들과 함께 긴 시간 산책을 했다. (수년간 지속된) "영혼의 어두움 밤"을 지나던 어느 날, 오스왈드 챔버스는 스코트랜드 출신의 나이 지긋한 친구 존 카메론과 함께 개 두 마리를 끌고 토끼 사냥을 나갔다. 산행의 목적은 사냥이었지만, 풀이 우거진 강기슭에 이르렀을 때 카메론은 잠시 멈춰 기도하자고 했다.
챔버스는 그 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무릎을 꿇었고 그가 기도를 인도했다. 이어 내가 기도를 시작했으나 여태까지 그 할아버지가 기도하는 동안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어린 콜리 개가 나를 자기놀이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지 사방으로 날뛰며 내 온몸을 긁어대고 얼굴을 핥으며 신나게 깽깽거렸다. 카메론은 일어나 개의 목을 단단히 잡고는 '조용조용. 자네가 기도하는 동안 내가 개를 깔고 앉아 있겠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했다.
오늘날 신앙을 가진 남자들은 편리한 하나님, 당장 유용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나님과 조용히 교제할 기회보다는 군중에게 우러름 받는 스릴에 더 취한 지도자들이 그런 하나님 상을 부추겼다.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오래 남은 죄는 여로보암 왕이 저지른 죄다(참고. 왕상 12장, 특히 26∼33절). 그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지방 신으로 전락시킴으로 백성들의 예배에 편리를 도모했다. 그것도 전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했다. 작전은 통했다. 그는 큰 추종 세력을 얻어 22년 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하나님의 최고의 사역이 대규모 군중 가운데서 시작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는 그것을 완결된 일로 착각하기 쉽다. 현대의 남자들에게 대규모 군중은 자신이 남자라는 느낌을 준다. 축구팀을 응원할 때건 예수님의 이름을 환호할 때건 우리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아무 흥분으로나 지신을 채워 내면의 공허를 달래려 한다. 큰 집회에 가 있으면 왠지 진짜 남자가 된 듯한 기분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이전 남자 세대들은 긴 세월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를 끝까지 맹렬하게 싸웠다. 단지 대형 집회에서 새로운 열정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거나 치료를 통해 자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온전히 자신을 드릴 때에만 그 싸움은 가라앉았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기쁨은 죄를 아파하는 마음을 통해 찾아왔고, 그 상한 심령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헌신으로 이어졌다. 그리스도를 친밀하게 알아가는 과정은 성령의 깊은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 사역은 대규모 군중 속에서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고독 가운데 고통스럽게 기도하는 긴긴 세월을 거쳐 일어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얻은 소득이 무엇이든 그 가치는 크게 퇴색되어 버렸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 - 말할 수 없는 고난, 처참히 상한 심령, 깊은 회개를 통해서만 가능한 - 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옛길로 돌아가자고 호소한다. 현대 기독교 사상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좋은 교훈들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신을 찾는다는 더 확실한 구심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고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이제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시도록 무대를 치우고 싶다. 다른 모든 생각이 그분의 향기에 젖어들 만큼 그분의 아름다움과 능력에 완전히 우리 시선을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분을 예배하는 것, 그분께 기도하는 것, 성경전체를 통해 그분을 간절히 찾는 것, 우리의 교만과 미지근한 헌신을 아파하며 그분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 성령으로 우리를 채우시도록 그분을 바라는 것, 다른 모든 것을 태우는 열정과 일심의 목표로 그분을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옛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기 바란다.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먼저 경건해 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 남자들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남성상을 찾는 일에 더 골몰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남성성을 공부하고 그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과오를 범하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우리 열정은 진실하고 꾸준하기보다 인위적이고 변덕스러운 것인가? 우리는 남들(특히 자기 가족들)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거룩함에서 자라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잡음으로써 뜨겁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가?
론은 교회에서 매주 한 번 새벽에 모이는 남성 모임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정욕과의 싸움, 가정에서 느끼는 긴장, 직장 생활의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서로 끌어안고 때로 울기도 하며 서로 붙들어 주었다. 모임을 마칠 때면 론은 언제나 남자로서 세상과 부딪힐 각오와 힘이 넘쳤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한테서 모임에 그만 나가라는 남을 들었을 때 론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내는 그 모임이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모임에 다녀온 남편은 자상하기보다 오히려 흥분되어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도의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행하겠다는 의지가 더 단호했다. 우리 심령에 변함 없는 예배의 마음이 자라지 않는 한 남자다워지려는 노력은 결코 진정한 남성상을 만들 수가 없다. 행여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주말 세미나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얄팍해질 것이다.
그리스도를 찾는 일은 자존심을 깨뜨리는 긴 싸움이다. 그것은 절망을 거쳐 더 밝은 기쁨으로 이어지다 다시금 더 어두운 절망을 거쳐 더 밝은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싸움을 회피하는 남자들은 피상적인 회개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정작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그들의 참 헌신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 타인의 중심을 만질 수 있는 열정을 가꿀 수 없다.
론은 그 모임을 그만뒀다. 대신 교회의 어느 나이 많은 남자와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전혀 모르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론은 그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의 기도는 달랐다. 깊이 사랑하는 친구와 친하게 대화하는 것 같았다. 4개월 가까이 론은 이 남자를 만났다. 매주 만날 때도 있었다. 론은 그에게 그의 삶, 결혼생활,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 들려 달라고 했다. 그 남자는 언제나 성경을 가져왔고 첫 손자의 사진을 보여 주는 할아버지처럼 종종 감격에 젖어 성경을 펼치곤 했다. 론이 그 나이든 남자를 더 이상 꾸준히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론의 아내는 아쉬워했다.
자신보다 그리스도께 더 푹 빠지는 법을 배우는 남자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남자가 될 것이다. 이 세대의 남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가를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비용계산은 쉽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 대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친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자기 영혼의 공허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보다 자기발견과 자기실현을 더 중시하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을 거부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자아를 찾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내게는 꿈이 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인지는 시간만이 말해 줄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꿈은 정말 단순하다. 앞으로 30년을 내다보며 나는 기독교계 도처에 흩어진 소수 그룹들을 본다. 그 곳에서는 경건한 성품과 영적인 지혜가 학위와 기술보다 존중되고 성취나 전문 지식보다 귀하게 통한다. 나는 지금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본다. 그들은 본래 우리가 견디도록 되어 있지 않은 세상에서 본래 우리가 느끼도록 되어 있지 않은 성향과 충동에 맞서 싸우면서, 그 삶에서 오는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지금 결혼생활이 비참한 사람들, 자녀들 때문에 행복한 가정에 대한 희망이 무너진 사람들,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 어린 시절 학대당했던 말 못할 기억에 짓눌려 공포로 긴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심장이 터질 듯 거부당한 상처가 깊은 사람들, 내면에 날뛰는 변태적 성욕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 끝없는 외로움의 무게에 눌려 모든 희망을 포기하기 직전인 사람들을 본다.
내 꿈속에는,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서 흩어져 있는 지혜로운 남녀 군대가 보인다. 고난의 불 속에서 빚어지는 성품인 차분한 분별력과 예리한 지혜로만 무장한 군대이다. 이들은 남들이 좀처럼 치르려 하지 않는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다. 그것도 긴 세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대가를 치러 온 사람들이다. 이 남자들은 아버지들이다. 이 여자들은 어머니들이다. 그 조용한 존재가 느껴지고 존중받는 경건한 사람들이다.
유명인사들은 평범해질 것이다. 웃어른의 몇 마디 말씀이 주말 세미나의 명강사가 내놓는 모든 인생 성공 비결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대규모 '기독교' 행사는 전도, 의미 있는 기도, 뜨거운 예배, 성경적인 교훈 등으로 국한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개발 집회에 참석하는 것보다 멘토의 집에서 보내는 하룻저녁을 더 사모할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에 삶을 바꿔놓는 힘이 더 크다는 것을 그들은 알 것이다. 기독교계의 시상식 행사는 이전과 같이 할리우드 행사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공로를 치하할 때, 업적을 이유로 그들을 더 중요한 존재로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의미 있게 낮추는 접근이 사용될 것이다. 최고의 명예를 놓고 그리스도와 다툴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본다. 멘토 세대를 본다. 삶의 도전에 대응하도록 우리를 돕는 일에서, 훈련된 전문가들보다 더 존중받는 지혜로운 웃어른들을 본다.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보다 더 깊이 우리 영혼에 와 닿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경건한 사람들을 본다. 내 꿈이 실현되려면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다. 부흥운동에 불을 붙이는 겉모습만 화려한 유사품 기적이 아니라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깊고 확실한 기적이 필요하다. 거대한 추종세력을 끌어들여 신문 1면 기사를 장식하는 운동과 행사라면 그 동안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개혁은 꽤 오랫동안 없었다. 이제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꿈은 깊이 있고도 단순한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남자들이 남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여자들이 여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이 든 여자들은 어머니가 되고 젊은 여자들은 자매 역할을 배우는 이와 유사한 꿈에 대해서도 책을 쓸 수 있고, 써야 한다. 영적 어머니와 자매에 대한 책은 영적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이 책에 어울리는 짝이 될 것이다. 내 꿈속에서 나이 든 남자들은 아버지 역할을 하고 젊은 남자들은 형제 역할을 한다. 세상 도처의 남자들이 제 목소리를 되찾고, 힘을 발휘하고, 진정한 남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기쁨을 회복할 때, 기독교 공동체는 그 본질부터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남성성의 모조품에 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짜 남자가 된다'는 이 개념이 문화적 유행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거대한 군중의 열기, 새로운 공식이 주는 희망, 강사들의 자극적 교시, 헌신을 외치는 결단, 현대 구루(guru)의 개념 등 통상적 요소들이 수반된 단순한 운동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의와 열정의 일시적인 분출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혁이다. 즉 상한 심령, 회개, 오래 참음, 기쁨의 주기가 반복되는 하나님의 깊은 역사이다. 생명을 낳는 연합의 차원에서 관계의 신비에 들어서려면 하나님의 능력 부여가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두신 모든 것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자신을 모두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