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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침묵

래리 크랩 지음 | IVP
앞에 선 사람은 물론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내 생각을 사람들 앞에 펼쳐 놓으면 내 생각은 연구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도자를 향한 지나친 비판은 분노한 교만의 영이 표출된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력을 업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비판하는 지도자보다 더 '강한' 남자일 때가 많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자신의 영향이 둔감하며, 누구든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넘어뜨린다. 그들의 그런 자신감은 강해지기 원하는 의존적인 남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다. 그들은 지도자의 어려운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강한 남자들은 강한 모습 이면에 세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불안정이다. 강한 남자들은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남성성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것을 내보이려 권력을 과시한다. 반면 힘 있는 남자들은 자기 힘을 과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힘을 통제하고 있다가 선한 취지를 도모할 때만 사용한다. 둘째, 얄팍함이다. 연속선상의 강 쪽에 해당되는 남자들은 일단 그 능력과 매력만 넘어서면 별로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깊이 느끼는 것이라고는 권력 욕구뿐이다. 그러나 힘 있는 남자들은, 극도의 절망을 야기할 수 있는 자신이나 타인의 흉한 모습도 포함해서 현실의 모든 면을 두려움 없이 직시한다. 힘 있는 남자들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가장 어두운 밤 속에 희망의 힘으로 말한다. 셋째, 오해다. 강한 남자들은 참된 남성성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민감함을 나약함으로 착각한다. 그들의 생각 속에서는 권력과 힘이 동일하다. 반면 힘 있는 남자들은 용감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의 벽장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 민감함과 인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힘을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권력의 통제로 정의한다.

원죄 이후, 남자의 삶에 남자 연장자들과 동료들이 미치는 영향력보다 더 강한 영향력은 없다. 여기서 남자 연장자들이란 특히 우리의 성장기에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남자 동료들이란 우리가 어울리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이다. 뭔가 정말 강력한 것이 우리 앞에 있다. 아버지와 형제로서의 관계는 남성성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비밀의 종류는 다양하다.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된 비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했던 일이나 내가 했던 일이나 내가 했던 일에 대한 기억이다. 충동, 고민, 동기, 생각, 신념, 감정 등 내면의 실체에 대한 비밀도 있다. 비밀은 세 가지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① 비밀은 용기를 약화시켜, 남자들이 신비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② 비밀은 분리를 조장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어렵게 하며 그리하여 남자들은 기억할 것이 줄어든다. ③ 비밀은 자신감을 헤쳐, 남자들이 주변 공동체 안에 힘있게 들어가 질서를 회복하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즐거운 기대를 앗아간다.



우리는 내 형제가 되어 줄 남자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부터 다른 남자의 형제가 되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써야 한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는 능력의 저수지가 있다. 그 능력의 일부를 남자들이 형제가 될 때에만 발산될 것이다.기독교계의 낙관론은 대개 다음 개념을 기초로 한다. 하나님의 핵심 목표는,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 복 주시거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우호적 환경으로 문화를 변화시킨 것이라는 개념이다. 상담자들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우리 기도와 활동과 단합된 영향력이 나라를 변화시키고 경건한 사회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두 그룹 모두 우리를 하나님의 참된 소명과 갈라놓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변화되어야 할 것은 우리 개인의 삶과 기독교 공동체들이다. 우리는, 문제가 찾아올 때도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법과 고통이 완화되지 않을 때에도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회 운동은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훨씬 쉽다. 기독교적인 기준을 위한 투쟁에는 겸손을 해치는 호전성, 용기로 가장한 공격성이 개입될 때가 있다. 또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도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우리 자신 안에 있건만, 사회 운동과 개인 문제의 해결은 우리에게 그런 자기 인식을 일깨워주지 못한다. 경건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건을 단지 명백한 죄를 피하는 것(그리고 남들도 똑같이 하게 하는 것) 내지 문제를 해결해 승리라 부를 만한 즐거운 기분을 되살리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는 한 그렇다.



우리 시대의 절실한 필요는 더 많은 상담자를 훈련하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사회의 도덕적 부패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우리를 부르는 지도자들을 통해 채워지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세계의 가장 절실한 필요는 단순히 이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삶의 질을 소유하고 드러내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건한 남녀들이다. 우리가 영적 성수의 길을 깨우치고 성령님이 우리 내면에 심어 두신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을 식별하여 거기 반응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 30년 후 멘토 세대에 대한 내 꿈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 대한 환멸, 삶에 대한 낙심, 다른 사람에 대한 실망은 모두 서구 문화의 고질병, 형통한 삶의 만족을 요구하는 병의 산물이다.



고난을 덜고 문제를 해결하고 원치 않는 감정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우리를 설득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도자요 주목받는 전문가가 된다. 그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우리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단호하고 미친 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그리스도를 찾는 일은 자존심을 깨뜨리는 긴 싸움이다. 그것은 절망을 거쳐 더 밝은 기쁨으로 이어지다 다시금 더 어두운 절망을 거쳐 더 밝은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싸움을 회피하는 남자들은 피상적인 회개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정작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그들의 참 헌신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 타인의 중심을 만질 수 있는 열정을 가꿀 수 없다.



론은 그 모임을 그만뒀다. 대신 교회의 어느 나이 많은 남자와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전혀 모르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론은 그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의 기도는 달랐다. 깊이 사랑하는 친구와 친하게 대화하는 것 같았다. 4개월 가까이 론은 이 남자를 만났다. 매주 만날 때도 있었다. 론은 그에게 그의 삶, 결혼생활,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 들려 달라고 했다. 그 남자는 언제나 성경을 가져왔고 첫 손자의 사진을 보여 주는 할아버지처럼 종종 감격에 젖어 성경을 펼치곤 했다. 론이 그 나이든 남자를 더 이상 꾸준히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론의 아내는 아쉬워했다.



자신보다 그리스도께 더 푹 빠지는 법을 배우는 남자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남자가 될 것이다. 이 세대의 남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가를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비용계산은 쉽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 대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친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자기 영혼의 공허감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보다 자기발견과 자기실현을 더 중시하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을 거부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자아를 찾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내게는 꿈이 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인지는 시간만이 말해 줄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꿈은 정말 단순하다. 앞으로 30년을 내다보며 나는 기독교계 도처에 흩어진 소수 그룹들을 본다. 그 곳에서는 경건한 성품과 영적인 지혜가 학위와 기술보다 존중되고 성취나 전문 지식보다 귀하게 통한다. 나는 지금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본다. 그들은 본래 우리가 견디도록 되어 있지 않은 세상에서 본래 우리가 느끼도록 되어 있지 않은 성향과 충동에 맞서 싸우면서, 그 삶에서 오는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지금 결혼생활이 비참한 사람들, 자녀들 때문에 행복한 가정에 대한 희망이 무너진 사람들,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들, 어린 시절 학대당했던 말 못할 기억에 짓눌려 공포로 긴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심장이 터질 듯 거부당한 상처가 깊은 사람들, 내면에 날뛰는 변태적 성욕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 끝없는 외로움의 무게에 눌려 모든 희망을 포기하기 직전인 사람들을 본다.



내 꿈속에는,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서 흩어져 있는 지혜로운 남녀 군대가 보인다. 고난의 불 속에서 빚어지는 성품인 차분한 분별력과 예리한 지혜로만 무장한 군대이다. 이들은 남들이 좀처럼 치르려 하지 않는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다. 그것도 긴 세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대가를 치러 온 사람들이다. 이 남자들은 아버지들이다. 이 여자들은 어머니들이다. 그 조용한 존재가 느껴지고 존중받는 경건한 사람들이다.



유명인사들은 평범해질 것이다. 웃어른의 몇 마디 말씀이 주말 세미나의 명강사가 내놓는 모든 인생 성공 비결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대규모 '기독교' 행사는 전도, 의미 있는 기도, 뜨거운 예배, 성경적인 교훈 등으로 국한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개발 집회에 참석하는 것보다 멘토의 집에서 보내는 하룻저녁을 더 사모할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에 삶을 바꿔놓는 힘이 더 크다는 것을 그들은 알 것이다. 기독교계의 시상식 행사는 이전과 같이 할리우드 행사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공로를 치하할 때, 업적을 이유로 그들을 더 중요한 존재로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의미 있게 낮추는 접근이 사용될 것이다. 최고의 명예를 놓고 그리스도와 다툴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본다. 멘토 세대를 본다. 삶의 도전에 대응하도록 우리를 돕는 일에서, 훈련된 전문가들보다 더 존중받는 지혜로운 웃어른들을 본다.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보다 더 깊이 우리 영혼에 와 닿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경건한 사람들을 본다. 내 꿈이 실현되려면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다. 부흥운동에 불을 붙이는 겉모습만 화려한 유사품 기적이 아니라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깊고 확실한 기적이 필요하다. 거대한 추종세력을 끌어들여 신문 1면 기사를 장식하는 운동과 행사라면 그 동안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개혁은 꽤 오랫동안 없었다. 이제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꿈은 깊이 있고도 단순한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남자들이 남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여자들이 여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이 든 여자들은 어머니가 되고 젊은 여자들은 자매 역할을 배우는 이와 유사한 꿈에 대해서도 책을 쓸 수 있고, 써야 한다. 영적 어머니와 자매에 대한 책은 영적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이 책에 어울리는 짝이 될 것이다. 내 꿈속에서 나이 든 남자들은 아버지 역할을 하고 젊은 남자들은 형제 역할을 한다. 세상 도처의 남자들이 제 목소리를 되찾고, 힘을 발휘하고, 진정한 남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기쁨을 회복할 때, 기독교 공동체는 그 본질부터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남성성의 모조품에 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짜 남자가 된다'는 이 개념이 문화적 유행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거대한 군중의 열기, 새로운 공식이 주는 희망, 강사들의 자극적 교시, 헌신을 외치는 결단, 현대 구루(guru)의 개념 등 통상적 요소들이 수반된 단순한 운동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의와 열정의 일시적인 분출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혁이다. 즉 상한 심령, 회개, 오래 참음, 기쁨의 주기가 반복되는 하나님의 깊은 역사이다. 생명을 낳는 연합의 차원에서 관계의 신비에 들어서려면 하나님의 능력 부여가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두신 모든 것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자신을 모두 드려야 한다.



멘토 세대가 되려면, 차세대를 참된 경건으로 이끌 수 있는 인품과 지혜를 지닌 남자들로 가득한 문화를 이루려 한다면, 내면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남자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품 대신 모조품을 파는 사단의 수완이 절정에 달한 시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적당히 좁은 길을 본래의 더 좁은 길로 착각하기 쉬운 이 시대에, 우리는 우선 남성성의 기적이 무엇인지 그 개념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꿈의 회복 : 멘토 세대당신이 남자답지 못한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면 당신은 필시 그에게서 이런 모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통제적이다(비인격적으로 힘을 행사한다).

· 파괴적이다(또는 위험하다).

· 이기적이다(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특정 기분에 집착한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는 대화를 통제한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조종한다. 그는 자기가 감당할 자신이 없는 상황이면 무조건 피하는 쪽으로 자기 삶을 수습한다. 그는 아무도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교묘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자기가 정상에 서거나 적어도 도전 받지 않는 자리에 서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는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른다. 그는 의견을 내놓거나 아예 침묵을 지키는 쪽을 선호하며,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 우정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를 빼고는 아무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당신에게 관심을 보일 때면 마치 자동차 영업사원이 당신의 가족사진을 보여 달라고 할 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그는 파괴적이다. 한동안은(때로 장시간) 동료들이 그에게서 격려와 도전을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과 행동은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가족들이 가장 빨리 가장 깊이 상처를 느끼지만 그들은 너무 두려워서 자신에게조차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는 빈정거리는 말과 비열한 태도로 노골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가끔은 폭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의 이기심은 늘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분명히 드러난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위급한 순간에 극명히 표면에 떠오른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들은 통제적이고 파괴적이며 이기적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남의 눈에 띄는 부분, 그의 면전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 두꺼운) 표면을 벗겨 보면 거기 이러한 잡초들을 떠받치는 뿌리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나름의 생명력을 지닌 뿌리이다. 대개의 경우 파헤쳐지지 않고 남아 있는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남자답지 못한 남자들의 통제 욕구 밑에는 무력감이 있다. 파괴적 힘은 증오에 찬 분노에서 온다. 또한 그들은 이기심만이 생존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일 정도로 두려움에 차 있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통제와 위협과 이기심으로 삶을 지탱하려 애쓰는 무력감과 분노와 두려움에 찬 남자가 나타난다.남에게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남자 : 의존욕구다른 사람이 필요 없는 남자 : 강자욕구결론제3부 뭔가 강력한 길이 있다 : 멘토 세대

아버지 : 우리를 믿어 주는 남자진정한 남자는 아주 다르다. 하나님이 남자 안에 두신 에너지가 해방될 때 남자는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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