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원리를 상속하라
강준민 지음 | 두란노
형통의 원리를 상속하라
강준민 지음
두란노/2003년 4월/149쪽/6,500원
1. 성경적 형통의 비결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하길 원하십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형통의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을 입술에 두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면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형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는 것이 여호수아의 형통이었습니다.
성경적인 형통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개발해서 사용함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씨앗의 목적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씨앗과 같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용도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따라 사는 것이 형통입니다.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형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십시오. 형통을 좋아하십시오. 형통한 사람들을 연구하십시오. 형통이 형통을 낳고, 성공이 성공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로 싫어하는 것들은 주지 않으십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당신이 형통을 싫어하고, 형통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당신은 형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형통을 선물로 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이삭이 흉년을 만납니다. 그래서 내려간 곳이 블레셋 땅입니다.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경제적인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농사를 지었던 블레셋 땅은 그리 좋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방인과 같았던 이삭에게 좋은 땅을 내어 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을 축복하심으로 이삭이 마침내 거부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와 경제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결같이 힘들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형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형통은 하나님이 맡기신 과업을 성취하는 것이며, 악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실 때, 요셉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형통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과 함께하실 때, 그는 포로로 끌려갔지만 바벨론에서 재상이 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한 사람, 하나님의 형통의 원리를 따라 산 사람은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통하길 원하면 형통한 사람에게서 배우십시오
이삭이 형통한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형통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배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형통도 마찬가지입니다. 형통을 원한다면 형통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형통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형통한 사람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통한 사람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형통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 먼저 할 일은 형통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형통에 대한 집중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형통에 대한 집중된 관심을 갖고, 형통에 대해 마음을 여는 순간, 형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형통에 대해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형통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 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에 따라 우리의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형통을 보통 사람의 말로 표현한다면 성공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마음으로 원하면서도 성공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치 현실이 그랬고, 기업가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원리와 방법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형통한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통된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형통하는 사람들에게는 형통 의식이 있습니다. 승리 의식이 있으나 풍부 의식이 있습니다. 둘째, 형통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태도를 생명처럼 여깁니다. 셋째, 형통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형통의 원리를 적용하는 데 탁월합니다. 넷째, 형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형통케 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통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전진한다는 것입니다.
형통의 비결을 배워 실천하십시오
형통의 열매는 형통의 비결을 배운다고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의 열매는 배운 것을 실천할 때 맺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들은 사람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말씀하십니다(마 7 : 24). 그렇다면 이삭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배운 형통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결박을 당한 채로 아브라함의 형통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이삭이 배운 형통의 비결은 순종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이전에 받았던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이유는, 이삭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아브라함은 예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2. 환경을 초월해서 축복받는 비결
환경을 초월해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십시오
이삭은 환경을 초월해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삭이 환경을 초월하여 축복을 받은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비결은 이삭이 환경을 초월해서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이삭은 블레셋 땅에 머물렀지만 그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하는 축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아침 이슬과 같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연기와 같은 인생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우리의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뿌리를 강변으로 뻗친 것처럼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십시오. 그렇게 되면 흉년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경을 초월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7~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부디 뿌리깊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직시하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삭은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습니다. 흉년이 들었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거부가 되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시기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앞길을 막으려는 음모가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창세기 26장 14~1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사람들은 잘되는 사람을 시기합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발견한 사실은,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사람보다는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해서 배가 아픈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현실을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흉년을 만나자 현실에 민감하게 대처하기 위해 블레셋으로 내려왔습니다.
인생에서 형통한 사람들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소유했습니다. 앞을 내다보는 것을 선견하다고 말하는데, 지도자는 선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정견이라고 말합니다. 선견과 함께 필요한 것은 정견입니다.
21세기는 변화의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빠른 변화의 속도 때문에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은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살면서 형통하는 길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함께 변화를 직시하면서 변화에 빠른 속도로 대처하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견하고 정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보는 것입니다.
이삭은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방이 막힌 것 같고 절망적인 환경이 우리를 엄습한 것 같을 때에도 하늘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다리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임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모든 손길이 다 끊어져도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면 모든 것이 역전될 수 있습니다.
이삭은 바로 역전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가 블레셋 땅에 들어갈 때는 초라한 나그네였습니다.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 때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형통에 형통을 거듭하자 나중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머리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비전을 갖게 됩니다. 환경만 바라보면 환경에 압도를 당하게 되며, 문제만 바라보고 문제만 생각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그래서 문제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경을 초월해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 속에서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가 비전이 되며, 문제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환경을 따라 살지 말고, 믿음의 법칙을 따라 사십시오
첫째,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 사십시오. 아브라함이 형통했던 것은 하나님을 통해 바라봄의 법칙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믿음의 법칙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합니다. 환경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주시기 전에 먼저 바라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기 전에 그 땅을 먼저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둘째, 언어의 법칙을 따라 사십시오. 믿는 자는 믿음으로 고백하는 언어를 통해 환경을 초월하는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은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미래를 창조하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말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셋째, 강청하는 기도의 법칙을 따라 사십시오. 형통하기 위해서는 불타는 소원, 강렬한 소원이 필요합니다. 강렬한 소원이 강렬한 감정을 만들어 내며, 그 강렬한 감정이 우리의 기도를 뜨겁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소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합니다. 집중하게 되면 놀라운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 에너지가 우주를 움직이며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같은 기도라도 강청하는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인생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고,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끈질긴 기도, 변함없는 기도로 하나님을 붙잡으면 시대를 초월해서 형통하게 됩니다.
넷째, 행동하는 법칙을 따라 사십시오. 이삭은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그 인도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소원을 가지고 기도도 해야 합니다. 입술로 고백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며, 지혜는 행함에 있는 것입니다.
3. 훌륭한 거부가 되는 비결
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한 거부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잘살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화려한 차는 아니어도 안전한 차를 타고 싶고, 비싼 집은 아니어도 안락한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방은 불편해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방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가 잘살고, 형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이 형통하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고 살기를 원하셨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성경은 훌륭한 거부가 되는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훌륭한 거부란 물질만 많이 소유한 거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시기하고 부러워하는 거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거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한 거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부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훌륭한 거부의 자아상을 소유하십시오
이삭이 훌륭한 거부가 된 것은 그가 훌륭한 거부의 자아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따라 행하시고,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말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아갑니다. 우리의 생활환경은 우리의 생각의 결과인 것입니다.
자기 생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상입니다. 자아상은 자신의 이미지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자아상입니다. 지금의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자아상입니다. 건전한 자아상, 긍정적인 자아상, 성경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그 모습대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훌륭한 거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거부가 되는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아상 이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대부분 쉽게 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복권 당첨으로 받은 돈의 크기와 자신의 자아상의 크기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자아상과 맞는 돈만 소유하고 나머지를 모두 탕진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세일즈맨이 한 달에 3천 달러 버는 자아상을 가졌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자아상을 바꾸지 않는 한 3천 달러 이상의 돈을 벌지 못합니다. 물건을 더 팔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는 일단 3천 달러의 수입이 들어오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아상에 해당하는 돈만 소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더 많은 수입을 얻기를 원한다면, 먼
저 자신의 자아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더 많은 수입을 얻어서 자신의 필요를 채울 뿐 아니라 남은 수입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자아상을 소유한다면 그의 수입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3천 달러를 번 후에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남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가운데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