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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이야기 2

엘리스 그레이 지음 | 두란노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이야기 2

엘리스 그레이 편저/김인화 옮김

두란노/2003년 5월/248쪽/8,500원



서문

저는 어머니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삶에서 좋은 것이 무엇이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 중 하나는 어머니가 제 긴 머리를 묶어 주면서 이야기해 주시던 것입니다. 저는 그 부드러운 손놀림과 생기 있는 목소리에 푹 빠져 꼼짝도 않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후에도 어머니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짧은 이야기들을 뽑아 제게 보내 주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어머니를 따라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이야기들, 좋은 이야기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책 속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보십시오. 삶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1. 우정 Friendship

신문 배달하며 배운 인생 - 필립 걸리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나는 신문 배달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돈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인격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당시 나는 원만한 학교생활을 하려면 훌륭한 성격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 중에는 과부인 스탠리 부인이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유리창 너머로 내가 오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자전거를 탄 내 모습이 길 모퉁이에 나타나면 준비해둔 콜라를 갖고 나와 현관에서 나를 맞아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 아주머니 댁에만 가면 꼭 현관 앞에 얼마동안 앉아 있게 되었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내가 콜라를 마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아주머니가 주신 콜라를 받아 마시고 아주머니는 내 옆에 앉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게 아주머니와 내가 아침마다 되풀이하는 일이었다. 내일도 만나자는 약속 같은 것은 없었지만,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그렇게 대화를 나누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탠리 부인은 주로 사별한 남편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주머니는 툭하면 “오늘 아침에도 남편과 함께 시내에 있는 가게에 갔는데….”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그만 콜라를 잘못 삼켜서 켁켁거렸다.

그 날 나는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마 그 아주머니는 외로워서 그러시는 것 같구나. 앞으로도 아저씨가 살아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그냥 조용히 귀 기울여주고 이따금 고개도 끄덕여 주고 미소도 지어주렴. 그러면 그 분도 머지 않아 남편이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을 멈추게 되실 거야.” 그래서 나는 아빠 말씀대로 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나는 스탠리 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야말로 내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아빠 말씀처럼, 몇 년이 지나자 아주머니도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빠의 권유로 스탠리 부인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는 스탠리 부인이 완전히 회복되고 난 뒤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수입이 더 좋은 잔디 깎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한동안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있는 한 교회의 바자회에 갔다가 뜻밖에도 스탠리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배식대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담아주고 있었는데,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하는 그녀의 얼굴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일 년 전만 해도 말 상대가 없어 신문 배달 소년을 콜라로 매수하여 그 아이에게라도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했던 스탠리 부인 옆에는 이제 친구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하나님 품으로 갔지만, 스탠리 부인은 자신만의 공동체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사랑으로 빛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공동체는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때로는 우리를 치료해주기도 하고 다른 그 무엇으로도 맛볼 수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집에 신문을 배달해주는 에드나라는 아주머니는 아이가 셋이고 폐차 직전의 차를 몰고 다닌다. 그녀는 아침마다 내게 신문을 건네며 어제 하루는 어땠냐고 묻는다. 내가 “좋았어요.”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무슨 일 있었나 싶어 현관 앞에서 머뭇거린다. 정말이지 그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나는 가끔 일부러 심각한 문제가 있는 척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녀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도록 하려고 말이다. 그녀는 공동체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공동체는 꼭 사는 지역이 같아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요즈음 근황이 어떠냐고 물어주면 - 무슨 이익이 생겨서가 아니라 정말 당신을 생각해서 - 그게 바로 공동체인 것이다.

이 천년 전, 베드로라는 초대교회 지도자는 공동체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 : 8)." 이 말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때로는 그의 결점을 못 본 척 눈감아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가끔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미소를 짓는 것이 어떤 조언이나 충고보다도 낫다.



2. 사랑 Love

아내 아닌 여인과의 데이트 - 데이비드 파렐

결혼 생활 21년 만에 나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사랑과 친밀함이 식지 않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아내 아닌 다른 여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었다.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시작하면 부부 관계에도 활력이 넘칠 거라며 이 방법을 적극 추천한 사람이 누구일 것 같은가? 다름 아닌 아내였다! 어느 날, 아내는 내게 다가와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당신 자신이 더 잘 알아요." 그리고 이런 말까지 했다. "인생은 너무 짧아요. 그러니 당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제일 많이 사랑해." 나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러자 아내는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 여인과 좀 더 시간을 함께 보낸다면 우리의 부부관계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워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아내의 말은 옳았다.아내가 나에게 데이트하라고 부추긴 여인은 바로 내 어머니였다. 올해 칠순이 되시는 어머니는 20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로 지금까지 홀로 지내신다. 약속한 금요일, 퇴근 후 어머니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평소와 다르게 긴장이 되었다. 멀리서 어머니 집이 보이자 나는 어머니가 이 데이트를 얼마나 고대하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코트를 입고 현관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머리까지 곱게 말아 올리시고 말이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으셨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며칠 전에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어머니는 내게 팔짱을 끼셨는데, 올라가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정말 연인인 듯한 기분을 내려고 그러시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우리는 주문한 요리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서로의 삶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야기하는 데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그만 영화 관람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데이트를 마치고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렸다. 어머니는 차에서 내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저녁을 살 기회를 준다면, 너와 한 번 더 데이트를 하마."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날 저녁 집에 들어가자 아내는 "데이트 어땠어요?"하고 다그쳐 물으며 궁금해 죽겠다는 듯 내 옆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좋았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러자 아내는 '거 봐요, 내 말이 맞죠?'라고 말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어머니와 규칙적으로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느 가장처럼, 수첩의 모서리까지 빼곡하게 스케줄과 약속, 일정을 적어 두고 산다. 그리고 직업과 가족과 이런저런 관계들을 내 삶 속에 끼워 맞추려고 버둥거리면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고 투덜거린다. 그런데 어머니와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나는 삶의 속도를 좀 늦추는 것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임을 배웠다. 또 말로만 들어왔던, '양질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의 말대로, 다른 여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것은 우리 부부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 여인과 데이트함으로써 나는 더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더 좋은 아들도 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지만.

고마워요 어머니.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3. 격려 Encouragement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크 - 엘렌 재버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크를 만들 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엄마와 함께 그 케이크를 만들던 일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엄마 옆에 서서 달걀 깨 넣기, 설탕 뿌리기, 케이크가 프라이팬에 달라붙지 않도록 팬에 조심스레 기름 두르기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밀가루에 우유, 물, 달걀, 설탕을 골고루 섞어 반죽한 후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열심히 치댔다. 반죽이 완성되자 엄마는 반죽을 팬에 조심스레 얹고 오븐에 넣으셨다. 엄마는 케이크가 구워질 동안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로 나가셨고 나는 식탁에 앉아 아빠에게 드릴 생일 카드를 만들었다. 케이크는 바로 아빠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이머가 울리지는 않았지만 케이크가 어느 정도 구워졌는지 매우 궁금해진 나는 오븐을 살짝 열어보았다.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보였다. 가운데는 둥그렇게 부풀어올랐고 가장자리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재빨리 오븐 문을 닫았는데 살짝 닫는다는 게 그만 ‘쾅’ 하고 너무 세게 닫아서 아직 말랑말랑한 가운데 부분이 움푹 꺼지고 말았다.

몇 분 후 타이머가 울려 엄마가 오븐 문을 열었을 때 우리의 아름다운 케이크는 국그릇처럼 가운데가 움푹 패인 이상한 모양이 되어 있었다. 아빠를 위해 오후 내내 정성을 들여만든 케이크가 엉망이 된 모습을 본 나는 너무 속상해서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도 속상해서 나를 혼내시려다 내가 서럽게 울자 참으려고 애쓰셨다. “어디 보자. 이 웃기게 생긴 케이크를 어떡하면 괜찮게 만들 수 있을까? 우선 맛이나 한번 볼까?” 엄마는 그 부분에서 두 스푼 정도를 떠서 내게 한 입 주고 엄마도 한 입 드셨다. 케이크는 정말 꿀맛이었다.

“맛은 좋지만 여전히 못생겼잖아요.” 내가 망쳐 놓고서는 엄마에게 심통을 부렸다. 그러자 엄마는 “밖에 나가서 데이지 몇 송이 좀 꺾어올래? 엄마는 이 가운데 부분에다 설탕을 펴 바를게.” 라고 말씀하셨다. 꽃을 꺾어왔더니 그동안 엄마는 위에 흰 설탕을 펴 발라 아까보다 훨씬 더 근사하게 변한 케이크를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찬장에서 젤리단지를 꺼내셨다. “자, 이젠 움푹 들어간 가운데 부분에 데이지를 꽂자. 이렇게 말이야. 어때 훨씬 예쁘지?”

“엄마, 제가 이때까지 본 케이크 중에서 제일 예뻐요!” 완성된 케이크를 보며 나는 탄성을 질렀다. 정말 기뻤다.

그 날 나는 엄마에게서 아주 귀한 교훈을 하나 배웠다. 우리 삶이 언제나 완벽한 날들로만 채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실패작들로만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했을 때 우리에게는 그것을 성공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 일곱 살 꼬마나 일흔일곱 살 노인이나 상관없이 - 언제나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4. 미덕 Virtue

내 어머니 - 폴 브랜드

우리 어머니는 젊은 시절 정말 빼어난 미인이셨다. 그러나 연세가 드시면서 그 모든 아름다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젊은 시절의 어머니 사진을 늘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인도에서도 아주 외딴 곳에 사시며 장티푸스, 이질, 말라리아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시는 동안, 어머니는 어느 새 삐쩍 마르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되셨다. 곱던 피부는 강한 햇살 바람에 수십 년간 노출된 가죽처럼 질기고 뻣뻣해졌으며, 내가 지금껏 살면서 누구에게서도 본 적 없는 깊은 주름이 어머니 얼굴을 덮었다. 자신의 얼굴이 그렇게 망가졌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잘 아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집에 거울을 두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바위투성이인 산길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떨어져 병원에 실려간 적이 수도 없다. 이미 어머니는 당신 키보다 큰 대나무 지팡이 두 개가 있어야만 거동을 하실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불편하셨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말을 타고 변두리 마을로 다니시며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썩은 이를 뽑아 주셨다.

나는 이번에는 기필코 은퇴하겠다는 확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진흙으로 벽돌을 이겨 만든 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차로도 하루는 족히 걸리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혼자 사시는 것부터 안전하지 못한 일이었다. 균형 감각도 상실하고 다리 한쪽도 오래 전에 마비된 어머니는 한눈에 봐도 의학적으로 아주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우리 어머니는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으셨다!”

나는 미소 지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어머니, 건강하신 분들도 일흔 살이 넘으면 선교 일선에서 은퇴해요. 섬길 만큼 섬기셨으니 이제 그만 벨로어에 오셔서 저희와 함께 살아요, 네?” 그러나 어머니는 내 말을 단칼에 자르시며 질책 섞인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 일은 누가 하니? 이 산골까지 들어와서 복음 전파할 사람이 어디 있다든? 여기는 나말고는 상처를 싸매 줄 사람도, 썩은 이를 뽑아줄 사람도 없어. 그런데 나마저 여기를 떠나면 이 사람들은 누가 돌보니?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쓰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늙은 몸뚱이를 아끼고 보호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이냐?”

나는 혼자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계속 그 산중에 머무셨다. 그로부터 18년 뒤, 아흔네 살이 되어서야 어머니는 조랑말 타고 다니시는 것을 그만두셨다. 어머니를 따르던 인도인들은 그물 침대를 만들어 거기에 어머니를 눕힌 후 침대를 어깨에 매고 어머니가 가자는 곳이면 어디든 다녔다.

그렇게 이 년을 더 선교에 헌신한 후, 어머니는 아흔여섯의 나이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결국 눈 감으시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신 셈이다. 시체는 평소 어머님 말씀대로 관에 넣지 않고 살아 생전에 쓰시던 천에 싸서 그대로 땅에 묻었다. 어머니는 귀한 나무를 왜 관 만드는 데 쓰냐며 당신은 죽더라도 절대 관에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분이셨다. 죽으면 영혼이 몸에서 떠나기 때문에 육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육신이 원래 지음받은 흙으로 돌아가는 건 마음에 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던 분이셨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어머님이 그토록 사랑하신 그 산중 마을이다. 어머니를 찾아뵌 날 저녁 그 마을에서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돌담 위에 앉아 계셨고 돌담 주변은 복음을 들으려는 주민들로 북적댔다. 그들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기울였다. 말씀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예리한 질문들을 던지기도 했다. 노안으로 인해 흐려진 어머니 눈이 그 순간만큼은 빛나고 있었는데, 어머니 옆에 서 있던 나는 어머니가 그 눈으로 무엇을 보시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어머니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얼굴을 보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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