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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그 위대성의 본질

제임스 돕슨 지음 | 프리셉트
남성, 그 위대성의 본질

제임스 돕슨 지음/임종원 옮김

프리셉트/2003년 6월/332쪽/9,800원



1부 서론

남자와 그의 성 정체감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심한 공박과 조소를 받아온 탓에 현재의 남녀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전통적인 행동 양식의 변화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거북스러움이 야기된 것이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존재이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성적 역할에 따라 좌우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우리가 그들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로 대함에 따라 처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 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인간 관계에 혼란을 겪으면 사회적 안정성이 약화되고 만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단순히 세월이 흐르면서 발달한 사회적 차이가 아니다. 각 문화권마다 풍습이 다르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인간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남자답다는 개념에도 혼란이 발생하였다.

오늘날 남자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남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이든 그리 달갑지 않은 것임은 알고 있지만, 남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기대를 받고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기성 세대의 유부남들은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책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아내와 자식을 보호하고 부양해야 한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가족 부양에 대한 의무감이 투철하였다. 그러한 남자다움은 그를 자기 아내와 자식들과 연계시켜 주며 스스로 남자로서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오늘날, 가족 제도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 중 하나는 가족의 보호자와 부양자로서의 남자의 역할이 손상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는 남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신체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건강을 유지하며 보람을 느끼게 된다. 만일 남자에게서 그러한 책임을 박탈하면 아내와 자식을 향한 그의 헌신은 약화될 것이다.

이처럼 남성의 위기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이것은 가족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조지 길더는 그의 명저 『자살 행위(Sexual Suicide)』에서 이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독신 남성들이 종종 우리 사회의 위협거리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맡기 전까지는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여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잠시 하나님의 멋진 계획을 살펴보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 그는 헌신적으로 그녀를 보호하고, 돌보며, 조력하고, 우리 사회의 대들보가 된다. 그는 자신의 정욕과 욕구를 추구하는 데 힘을 쏟아 붓는 대신 가정을 이끌며, 미래를 계획하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데 전력한다. 그의 이기적인 욕구는 억제되고 정욕은 이성적으로 제어된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므로 남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가족관계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유익을 마음껏 누린다.

인류 문명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결혼이다. 남자들이 가정을 유지하는 데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을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되면, 그때 우리 사회에는 약물 남용, 알코올 중독, 혼외 정사, 게으름, 온갖 호전적인 행동이 난무할 것이다. 남녀의 건강하지 못한 인간 관계에서부터 가족이 고통당하고 급기야는 가정이 해체되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역할이 다를 뿐 동등한 인격체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성적 특징을 이해하여 자기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2부 남자란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

일요일 저녁 식사가 준비되자 아버지 제임스 돕슨(James Dobson,Sr. :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돕슨 박사와 이름이 같음, 이름이 동일한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부친이나 연장자의 성명 뒤에는 Sr.을 붙임)은 마지막으로 머리를 숙이고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셨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 아버지의 영혼을 거두어 가셨다. 몸부림이나 고통, 마지막 작별 인사는 없으셨다. 아버지는 상체를 어머니 쪽으로 숙이시더니 곧바로 운명하셨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아내가 내게 전화 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그 날 나는 서쪽으로 약 2,300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역에서 크리스천 아버지들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연하고 있었다. 사실, 그 날 오전 내내 아버지가 내게 보여 준 모범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셜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사흘 후 장례식이 거행되던 날, 나는 아버지의 영전에 그분을 추모하는 글을 바쳤다.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만화경처럼 떠올랐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 해뜨기 전의 새벽에, 일어난 아버지와 저는 사냥복을 입고 부츠를 신은 다음 마을에서 3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울창한 숲’이라고 불렀던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냇물이 흐르는 개울가로 내려갔는데 숲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쓰러진 나무 밑에 나뭇가지와 잎들로 작은 방을 만든 다음 그곳에 저를 숨겨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게 있어 쉼터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숲에서 아버지와 제가 느낀 교감입니다. 그 날 아침, 서로에게 더욱 친근감을 느낀 우리 두 사람은 깊은 사랑과 애정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그분의 가치관을 제 가치관, 그분의 꿈을 제 꿈으로 삼으며, 그분의 하나님을 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친밀감과 일체감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남편들과 아버지들, 즉 이토록 중요한 책임을 계승할 남자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런 남자이셨으며 4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어머니에 대한 헌신과 애정은 날로 깊어만 갔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영혼에게 입맞추시는 하나님의 키스다!” - 익명의 저자





3부 남자와 자녀

남자와 자녀

쇼핑 센터의 주차장에 세워 둔 차로 걸어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다. 15미터쯤 떨어진 부근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였다. 갑자기 닫힌 차 문에 손가락이 끼인 모양이었다. 차 앞좌석에는 무심코 차 문을 쾅 닫은 장본인인 네 살 난 장난꾸러기가 앉아 있었다. 뜻밖의 사고를 당한 남자가 얼마나 아팠겠는지 이해하지만 그 광경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때 그가 당한 아픔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부모는 자녀가 종종 자기 손가락을 문틈에 끼이게 하는 것과 같은 아픔, 특히 사춘기 때에는 더욱 자주 그러한 아픔을 안겨 주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그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베푼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이런 신랄한 말을 하였다. “정신이상은 유전병입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그 병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 때문에 정신이상이라는 질병만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녀에게서 사랑, 삶의 의미, 목적, 베푸는 기회 등과 같은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 사회에서 정서적 안정에 필요한 유머 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있어서 가족은 그야말로 ‘온갖 추억의 원천’이다. 그러나 자녀와 마주하는 시간이 별로 없는 아버지들은 그토록 소중한 시기에 그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들은 자녀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삶에 바른 영향을 끼쳐야 할 자신의 책임을 져버리고 있다. 아버지들의 문제점을 다룬 내용을 소개하겠다.

유리 브론펜브레너 박사는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오늘날의 가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룬 ‘소외의 원인’이란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부모의 사랑을 손상시키며, 자녀들에게서 그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리더십과 사랑을 박탈하는 환경에 주목했다. 그러한 환경 중 하나가 소위 ‘경쟁 사회’다. 경쟁 사회와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책임은 상극 관계에 있는 셈이다. 중년층의 아버지가 어린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에 평균 37초밖에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접촉하는 횟수는 하루 평균 2.7회이며 한 번에 소요되는 시간은 10~15초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자신의 가치관을 배우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가치관은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동안 그들이 끝까지 얌전하게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자녀에게 자신의 태도, 가치관, 신앙을 어떤 식으로 전수해야 하는가? 매일의 삶에서 일상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지혜롭게 전수해야 한다. 기성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교훈들 중에는 우연한 기회에 전수되는 것들이 많다. 부모가 종종 자녀와 마주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열의와 그들에게 전해 줄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자녀에게 늘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 은연중에 전달되는 교훈은 아이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남자와 권위

국가, 군대, 학교, 직장, 집…. 그 어디서든 인간 조직을 결속시켜 주는 강력 접착제는 권위라는 사실이다. 인간 관계에 지도력이 부재하면, 곧 혼돈이 기승을 부리고 만다. 리더십과 관련된 다음 세 가지 원리는 가족과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 원리에 대해 간략히 논의하겠다.

1. 가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본 책임은 남자에게 주어졌다 :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이같이 말하였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딤전 3 : 4)." 이 말씀이 시대에 뒤떨어진 가르침으로 보이든 말든, 그리스도를 믿는 남자는 최선을 다해 자기 가족을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아내의 요구와 바램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2. 자녀들은 자연히 아버지에게 리더십을 기대한다 : 아이들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며, 음성이 묵직한 아버지에게서 한결같이 권위를 기대한다. 이런 까닭에 어머니들은 자녀를 훈육할 때 종종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론 아버지가 불순종하는 자녀들의 모든 행위를 제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아버지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견해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머니에게 대들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숙지시켜야 한다.

3. 리더십은 반드시 시험당하기 마련이다 : 인간의 천부적인 기질 중 하나는 외부의 권위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완고함이다. 이 반항적인 기질은 생후 1년 안에 처음으로 드러나고 생후 2년째에는 어린아이의 성격으로 굳어진다. 인간은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나 권위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기본 성향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거역으로 표출되었다. 인간의 완고한 본성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사람은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는 어린아이를 지켜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 남성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이기적인 것이자 허풍에 불과하다고 조소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첫째, 가정을 잘 다스리며 둘째, 자녀를 올바로 양육해야 하는 가장의 권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공적인 가정을 위해 마련하신 청사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4부 남자와 아내

남자와 아내

남자들이 주로 불평하는 여자의 특성과, 여자들이 주로 불평하는 남자의 특성에 대해 논하려 한다.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사람들이 다른 일보다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는 아내와 남편 사이의 감정적 골이 깊고 갈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워드 헨드릭스는 이같이 말하였다. “가정에서 당신의 기독교 신앙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내모는 상황들은 크리스천들의 가정에서도 똑같은 파국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간음, 도박 중독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파탄시키는 주된 요소는 아주 미묘하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남성 독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여성들이 물질 위주가 아닌 보다 느긋한 생활 방식 그리고 남편과 함께 하는 낭만적인 활동을 원한다면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실 여자들은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아내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남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남녀관계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남편과 아내의 대조적인 만족 유형’을 소개해 보면, 여자는 결혼 초기에는 가정 주부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나 첫 아이의 출생 이후 자녀를 키우는 동안 만족도가 계속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다. 여자의 만족도는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날 때, 즉 빈 둥지 증후군을 겪을 때 최저로 떨어졌다가 그 후 다시 서서히 고조되어 노년기동안 지속된다. 자기 일에 대한 남자의 만족도는 여자의 유형과 다르다. 직장에서 아직 아무런 직책이 없으며 봉급도 적은 결혼 초기에는 남자의 만족도는 최저치이다. 그러나 승진을 하고 보수도 더 많이 받게 됨에 따라 그의 만족도는 고조된다. 이러한 만족감 고조는 그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일에 몰두하는 향후 20년 내지 그 이상 동안 지속된다. 우리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낙심하고 실망한 아내들은 대개 여덟 가지 반응을 보인다.

1. 여자는 가정과 가족을 버려 두고 자신의 감성적 에너지를 다시 다른 일에 쏟아 부을 수 있다. 기혼 여성들이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불만을 극복하는 한 방편이다. 2. 여자는 자신을 무시하며 모욕하는 남자들과 사회에 대해 분노할 수 있다.

3. 여자는 집에서 심한 우울증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지낼 수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자는 툭하면 잔소리를 늘어놓기 쉽다. 4. 여자는 외간 남자와 바람 피울 수 있다.

5. 여자는 일시적 진정제인 술과 약물을 남용할 수 있다.

6. 여자는 자살을 기도할 수 있다.

7. 여자는 임신을 거부하거나 집에서 아이를 돌보지 않는 등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거부할 수 있다. 8. 여자는 보다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남자와의 새 출발을 기대하면서 남편과 이혼할 수 있다. 오늘날 이 마지막 대안은 배우자로 인한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차선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다.

통상적인 대안이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 효과가 없다면 진정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인내심이 필요하다. 당면한 결혼 생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위기 상황이 심각한 만큼 더욱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크리스천 가정 주부를 아내로 둔 남편에게 전하는 메시지 : 아내가 고맙다면 지금 당장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라. 대화를 통해 아내가 자신이 여자임을 느끼도록 해주고, 그녀의 자존심을 세워 주며, 주말에 아내와 나들이를 하거나 외식을 하거나 종종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등 아내의 힘을 북돋워 주어라. 이러한 조력이 없는 한 그녀는 무방비 상태에서 홀로 자기 가족이라는 적과 맞서야 한다. 크리스천 남성들을 위한 성경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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