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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꿈의 치유

데이빗 A. 씨맨즈 지음 | 두란노
좌절된 꿈의 치유

데이빗 A. 씨맨즈 지음/이갑만 옮김

두란노/1994년10월/216쪽/6,500원



1. 큰 꿈을 가져라

꿈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꿈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으며, 그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그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1963년 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내겐 꿈이 있습니다. … 내겐 꿈이 있습니다!”를 반복하던 이야기는 그의 꿈의 장관 전체를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동시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엄한 꿈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했다. 꿈이나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떤 핍박도 견뎌내며 어떠한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 나간다. 그리고 인내로 그 궁극의 목표를 추구해 나간다.

꿈을 가진 젊은이

요셉의 이야기에서보다 꿈의 중요성이 인상깊게 나타나는 이야기는 아무데도 없다. 이 책에서는 요셉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순서를 그대로 따를 생각이다. 시대와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최고의 예증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할 나위 없는 영감까지 주고 있다. 그것은 요셉 자신의 꿈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실한 헌신과 그 꿈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흔들림 없는 약속을 명쾌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요셉은 선하기만 한 사람이었는가

“요셉의 삶은 너무도 선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요셉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 들어가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비현실적인 꿈들을 정련하시고, 우리의 깨어진 꿈들을 복구하시며, 우리의 실현이 늦어지는 꿈들을 생생하게 보이시고, 우리의 산산조각이 난 꿈들을 재조립하시기 위해 은혜로이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게 된다.

오늘날 시각으로 본 고대의 가정

요셉 이야기의 진정한 배경이 되는 창세기 29장부터 읽기 시작해야만 우리는 요셉이 태어난 야곱의 복잡한 가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야곱의 가정이 이상적인 상황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놀랍게도 요셉의 이야기는 기원 후 2천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에도 타당한 의미가 있다. 나는 요셉 이야기의 이 부분이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이 처한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기를 기도한다.



2. 꿈이 있는가?

1910년 18살의 키가 크고 몸집이 호리호리한 아네트라는 소년이 아리조나 주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몇 년 전 어머니의 죽음으로 대학교육에 드는 비싼 경비를 지불할 여유는 없었으나 토목기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아네트를 어느 휴가철, 그리스도인인 죤 아저씨가 쉬갈 캠프에 초대했다. 연사는 중국에 도로와 교량 그리고 집들 - 아네트가 전공하고 있는 바로 그것들 - 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아네트는 거기까지 듣고서 자신이 기사와 건축가로서 중국에 가서 이름을 떨치고,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 누군가 그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연사 머리 너머에 ‘인도’라는 불타오르는 은빛 문자가 씌어지고 있었다. 그때 명쾌한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국이 아니다. 난 너를 인도의 선교사로 보내려고 한다.” 그 환상은 아네트를 신체적?정서적으로 혼란에 빠뜨렸다. “어떻게 감히 당신이 내 계획을 방해하는 거지? 인도에 선교사로 가야 한다고? 나는 그리스도인도 아니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장을 떠났다. 그 젊은이는, 바로 내 아버지였다. 그는 부르심을 받고, 그 후 마음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공학기사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향했고, 거기서 40여 년 이상을 선교사로서 수천여 명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고, 100여 채가 넘는 교회당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병원들과 학교들을 세웠다. 1956년 E. A. 씨맨즈는 인도 남부 지역의 ‘세기의 선교사’로 명명되었다.

당신에겐 꿈이 있는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언제나 그렇게 극적으로만 일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구속받은 그의 속량된 모든 자녀들에게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따라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붙들어줄 수 있는 꿈과 환상을 주시려 한다고 믿는다. 이같은 꿈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모든 것을 생생한 그림으로 전개시켜주는 거룩한 상상이다.

꿈은 발전한다

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가계에서 요셉의 일생을 자세히 살펴봄에 있어, 할아버지 이삭은 요셉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요셉은 자신의 근원이 어디에 있으며, 자신이 누구이고, 하나님은 그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놀라운 감각을 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에 대한 심오한 내적 감각이 그의 내면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삶을 빚어낼 그의 고귀한 영감과 환상의 시작이었다. 나는 지혜롭고 거룩한 영향력들이 그를 그의 꿈에 대비해 준비시켰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경건치 못한 요소들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죄(generational sins)’도 있었다. 야곱에 대한 편애는 야곱 부모의 결혼생활을 망가뜨렸으며, 그의 어머니가 사기와 속임수를 쓰게끔 내몰았고, 야곱과 그의 형 사이에 불화를 빚었다. 그러나 오히려 야곱은 요셉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사랑과 편애를 드러내놓고 보여줌으로써 자기 집안 내력인 편애라는 죄악을 다시 반복했다. 창세기 48장에서 야곱은, 한 세대 전에 그와 그의 꾀 많고 지나치게 사랑 많은 어머니가 이삭을 속임수에 빠뜨리고 저질렀던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깨어진 꿈들

비극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죄악이 그토록 신속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꿈들을 상하게 하거나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정서적이거나 영적인 지름길은 전혀 없다.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선택하면, 깨어진 꿈으로 들어가는 길에 서게 된다. 바로 이것이 자기 집안의 죄악과의 관계를 끊는 데 실패한 야곱의 잘못으로 인해 요셉이 처하게 된 상황이었다.



미숙한 꿈

요셉의 꿈들은 침묵에 의해 시험되어야만 하고, 시간에 의해 단련되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요셉이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그 꿈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전에 마땅히 기다렸어야 했다. 꿈과 그 꿈의 일정들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나와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신 환상이 종종 어둠과 우회하는 지연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3. 상처받는 꿈, 좌절하는 꿈

타락하고 죄악에 물든 이 세상은 그 어떤 꿈이나 꿈꾸는 자도 미워하며, 파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바로 그와 같은 일이 요셉의 생애에서도 일어난다. 어느 날 요셉은 그를 미워하는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졌고, 요셉이 살려주기를 간청하고 애원하는 동안에도 그 형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꿈들을 세상이 실제로 얼마나 미워하는지 이보다 더 낫게 보여주는 실례가 또 있겠는가! 사탄과 악의 모든 세력들은 언제나 우리를 우리의 거룩한 영감과 함께 구덩이 속에 던져넣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때 요셉의 꿈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 꿈은 도단에서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 개개인의 도단(Dothan)

요셉이 구덩이 속에서 울부짖으면서도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험난한 경기에서 일찍부터 배워야할 한 가지는, 높고도 거룩한 목표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쉽게 도달되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를 배워야만 하며, 이런 일들은 오로지 역경과 고난의 길을 걸음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을 이끌어가신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자신의 뜻에 짜맞추기 위해 불러일으키시는 예기치 않은 변화는 그 얼마나 흥미로운가! 구덩이에 던져져 절망 가운데 울부짖던 17살의 소년, 그 구덩이의 불 속에서는 구원을 받았으나 결국 다시 노예라는 불 속에 던져지게 되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소년 - 그는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낙타를 타고 터벅터벅 갈 길을 가고 있는 거친 사막의 베도윈 족속들 -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요셉을 노예로 판 대가에 희희낙낙 자기 몫을 챙기고 있던, 그 증오에 찬 잔인한 형들 -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채색옷, 이제는 아들의 피로 생각되는 피에 의해 얼룩이 진 채색옷을 바라보며 더없이 슬퍼하고 끝없이 슬퍼하는 상심한 아버지 - 그는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4. 꿈을 가로막는 유혹들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유혹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필사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는 이야기이다. 요셉은 어떻게 그 유혹을 뿌리쳤는가? 요셉이 유혹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그 무엇이 막아주었는가? 그것은 꿈이었다. 그 꿈이 그가 겪은 고달픈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를 놓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요셉을 타락의 길로 빠져들도록 유혹했던 요소들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 봄으로써, 우리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걸 하고 있다

요셉이 살던 당시의 애굽 여인들의 생활은 상당히 자유분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누구나 그걸 하고 있다.”라는 말이 가능했을 것이다. 요셉은 자신의 건전한 성도덕의 꿈을 지키기 원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듯이, 당시의 도덕적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헤쳐가야만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간에 세상 거의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준뿐만이 아니라, 자칭 그리스도인들 중의 많은 수가 주장하는 타협적인 기준에 대해서도 싸워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용해라, 그렇지 않으면 잃는다

우리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이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쓰시고자 우리에게 맡겨주신, 신성한 그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어떤 신비하고 경이로운 방식으로 남자로서의 특성과 여자로서의 특성 모두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꼭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만 해요

“목사님, 전 너무 외로워요. 그렇기 때문에 정말 저는 누구든 상관없이 그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만 해요.” 우리는 젊은이들 특히 미래의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이 외로움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정서적으로 외로울 때, 악한 자는 그들의 더없이 훌륭한 상상까지도 금지된 상상으로 채워버리고, 그들에게 강력한 유혹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어떻게 뿌리칠 수 있나

사람의 선한 판단은 한 두 번 정도의 성적 유혹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유혹이 자주 반복되고, 그 여인이 그토록 적극적이며, 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아무리 강한 남자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그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알고, 요셉은 결국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아니’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침실에서 출세까지

아마 이 유혹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승진의 가능성, 즉 출세의 기회였을 것이다. 높은 지위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아내라면 요셉에게 승진의 지름길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을 요셉은 충분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요셉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준 요인들

요셉은 어디서 어떻게 그처럼 단정적이며 확고하게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까? 그것은 첫째로, 요셉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 걸고 있었던 거룩한 꿈 때문이다. 둘째로, 요셉의 성실성과 책임감을 꼽을 수 있다. 셋째로, 요셉에게는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요셉의 죄에 대한 자각이 그의 자제의 바탕이 됐던 것이다.

순결의 대가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붙잡으면서까지 끈질기게 매달렸다. 요셉이 애써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쳤을 때, 요셉은 급기야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의 순결에 대한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투옥이었다. 그가 만일 유혹에 굴복했더라면, 그는 자존심과 자신의 위대한 꿈을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잃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예전에 가졌던 꿈의 손상을 치료해주시고 당신의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꿈을 회복시켜주기를 원하신다.



5. 깨어진 꿈의 치유

아주 미숙한 나이에 성문제에 휘말려 들어간 사람들

자신의 그릇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성적 죄악에 빠져버린 십대들이 누더기가 되어버린 꿈을 치료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몇 가지 처방을 소개한다. 먼저,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저 주시는 용서를 받아들여라.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라. 특히 성적 죄악의 경우, 우리의 상처받은 자존심에는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기도하게 하는 것 이상의 더 나은 치유책이 없다.

같이 성관계를 가진 짝의 구혼

이들에게는 특별히 충고할 것들이 있다. 첫째, 당신의 죄의식으로 당신을 불행한 결혼으로 몰아넣지는 말라. 둘째, 성적 금욕과 상담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실체를 확인하라. 셋째, 주기적으로 당신이 당신 자신에 관하여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카운슬러나 영적 지도자를 찾으라. 넷째, 당신의 꿈들과 자존심을 복구하라.

꿈이 깨져버린, 결혼한 부부

혼외 정사에 관련된 문제보다 결혼 생활의 꿈을 더 심각하게 깨뜨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 몇 가지 중요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깨어진 신뢰는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림을 알라. 둘째, 성적 접촉의 탐닉적인 경향, 그리고 부정을 저지른 배우자가 그로 하여금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끔 유혹하는 힘 사이에 가지게 될 마음속의 갈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셋째, 당사자들이 하나님, 그리고 서로에 대해 결코 다시는 그 ‘부정한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며, 어떤 여하한 방법으로든 서로에게 보복하는 구실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약을 맺는 것이 필요하다.

이혼해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말한 외로움과 성 사이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성적 접촉을 통해 정서적 공허감을 채우려는 강력한 유혹의 문제는 이혼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심각할 정도로 증대된다. 이제 거룩한 성에 대한 자신의 꿈들을 지키기 원하는 이혼자들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겠다. 첫째, 쓰라림과 원망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을 지키라. 둘째, 이혼한 처음 1년 동안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견뎌내는 데 노력을 집중하라. 셋째, 하나님이 그의 은총으로 당신의 꿈들을 다시 빚으시게 하라. 마지막으로, 순결의 기준을 든든히 붙잡아라.



6. 꿈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

그 숙명적인 날에 요셉은 그의 주인의 신뢰 저버리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약속 깨뜨리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신 자신의 순결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때, 그것은 가장 견디기 힘든 시련이 된다. 어둠의 감옥

성경은 죄의 결과로 야기되는 많은 유형의 어둠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요셉이 겪은 어둠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영혼의 흑암’, ‘그 길고 긴 밤’, ‘영혼의 황량한 사막’, ‘영혼의 황무지’등등 심각한 영적 메마름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베푸시는 어둠의 단련이다(고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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