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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필립 얀시 지음 | 요단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필립 얀시 지음/김동완 옮김

요단/2000년 12월/164쪽/6,000원



제1장 왜 교회를 붙들고 번민하는가?



빌, 여기 크고 오래된 배가 있다네, 이 배는 낡아서 삐걱거리며, 상하좌우로 심하게 요동친다네. 그래서 자네는 이따금씩 이 배를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하지. 그러나 이 배는 자기가 갈 길로 간다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러할 것이라네. 자네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일세. - 파워스(J.F.Powers)

나는 조지아주에서 성장했으며, 나는 교회에 열심이었고 교회의 채색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그 때의 내 삶은 교회가 규정했다. 교회의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그나마 단결해 모인 소수라고 보았다. 세상으로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맹렬한 불구덩이로 떨어질 일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흉악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성벽과 같았다. 그런 만큼 선민의식은 나의 크나큰 위안이요 만족이었다.

당시의 근본주의의 엄격성이 적어도 나를 (문제아가 될 수 있는) 더 큰 위험에서 지켜주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자 한다. 예컨대 가끔씩 아이들과 어울려 볼링장을 드나들긴 했지만 술이나 약물 같은 것에 손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의 장점은 그 정도뿐이었다.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어떤 규칙들은 대단히 전횡적이고 그릇된 것이었음을 나는 결국 깨닫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당원증을 소지한 공산주의자’로 믿었다. 남부의 경찰들이 곤봉으로 킹 목사를 구타하고 감옥에 가둘 때마다 우리는 내남없이 환호작약했다. 외적인 행위에 근거를 둔 종교는 얼마가지 못한다. 나는 유년시절의 경직된 율법주의적 환경과 결별했다. 남부의 근본주의 영토에서 나올 때, 불행히도 나는 위선의 껍질뿐 아니라 신앙이라는 몸통까지 내던졌다.

버팀벽을 배회하다

왜 교회를 붙들고 번민하는가? 기독교인에게 교회는 진정 필요한 것인가? 윈스턴 처칠은 언젠가, 자신은 일종의 버팀벽 같은 방식으로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직접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버팀벽처럼 외부에서 교회를 지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얘기다. 성소에 나가지 않아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 뭐가 문제인가?

젊은 시절 내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건대, 나로 하여금 교회를 등지게 한 몇 가지 장벽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첫째로 꼽을 것은 저들의 위선이었다. 누구든지 털끝만큼이라도 위선의 냄새를 피우면 나는 거의 기계처럼 거부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교인들 모두가 나처럼 행동한다면 교회는 어찌되는가?” 하나님만이 궁극적으로 교회의 위선을 판단하신다. 가족구성원들이 완벽하지 않다 해서 가족이라는 제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럴진대 왜 우리가 교회를 포기해야 하는가? 둘째, 본질적으로 문화적인 문제였다. 한 주일 어느 시간에도 내가 딱딱한 나무 의자에 3~40분씩 등을 대고 앉아 누군가의 설교를 듣는 일이란 없었다. 일곱날 가운데 백년이나 이백 년 전에 지어진 노래를 부르는 일이란 추호도 없었다. 천편일률의 순서와 반복, 법석이는 회중, 주보, 광고, 별 의미 없이 앉고 일어서는 이 모든 과정들을 나는 참아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문화적 장벽들을 극복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서 교회에 대한 태도를 바꿨는가? 첫째, 기독교란 철학이나 내향성만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전적으로 공동체라는 기반 위에 서는 것이 기독교다. 내가 교회를 끝내는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잠시 교회를 떠나 있을 때면 고통 받는 쪽은 언제나 나다. 나는 이 점을 마음으로 느낀다. 한동안 교회를 떠나 홀로 편력하던 시절 나는 언제나 안으로만 퇴행했다. 공동체라는 더 큰 바깥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둘째, 나는 교회에서 과연 무엇을 찾아야 할지 오랜 세월 배웠노라 대답할 것이다. 여기에는 보는 방식이 포함된다. 이 전망의 방식이 우리 모두에게 교회의 본령, 곧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보게 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위를 보고

예전의 나를 말하자면 꽤 똑똑한 체하는 소비자의 태도로 교회를 대했다.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일러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사람들이 교회를 극장의 일종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회는 결코 극장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이 예배를 구경하는 관람객이다. 그리고 목회자는 주연배우가 아니라,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무대 좌우편에서 배우들에게 은밀히 이것저것 일러주는 보조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중들의 마음에서 발생한다. “나의 예배로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가?”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내가 여러 교회에서 당면했던 재능부족이란 문제에 대처하도록 도와주었다.

성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예배의 핵심에 분명한 강조점을 둔다. 예배란 집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행위라고 월터 윙크는 말한다.

주위를 보고

나는 러셀 스트리트 교회에서 위뿐 아니라 주위 또한 보는 법을 배웠다. 나는 나와 현격하게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예배했다. 주일 아침이면 자원봉사들이 무료로 배식한 밥을 먹고 노숙자들은 아침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의자에 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자기도 했다. 이 교회 회중에는 또한 시카고 대학이나 노스웨스턴 대학 같은 유명한 학교의 철학박사 과정 대학원생이나, 의사, 변호사, 기타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학력자들이 있었다. 몇 천만 원씩 버는 고학력의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든 일자무식의 노숙자들에게든 복음은 동일했다. 그 때부터 나는 교회를,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장소로 희구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이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었다. 기독교의 근본 토대, 곧 하나님의 화목케 하시는 사랑은 세상의 모든 민족, 인종, 계급, 나이, 성을 초월한다. 공동체가 먼저다. 우리를 갈라놓는 갈등과 문제는 나중이다. 하나님의 가족이란 일치를 추구하되 획일이 아니며, 다양성을 추구하되 분열이 아닌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남자와 여자를, 노예와 자유인을 예수의 발 앞에 동등하게 불러 모은 세계 역사상 최초의 기구였다는 사실을 얼마나 쉽게 망각하는가!

이제 나는 교회를 찾을 때면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본다. 위를 보고 주위를 본다. 나는 흑인들이나 오순절 교회의 분방한 예배에서, 노인들의 웅숭깊은 신앙에서, 날마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달래며 살아가는 젊은 어머니들의 노고에서 배운다. 나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회중을 애써 찾는다.

밖을 보고

시카고 러셀 교회에서 나는, 교회의 선교란 바로 내 이웃의 절박함에 손 내미는 것임을 배웠다.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별다른 분규가 없었던 이유 하나를 대보라면 나는, 날마다 우리와 같은 거리를 오가는 지역공동체 사람들에게 다가 서고자 교회 회중 전체가 한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갈등이란 아무래도 나를 먼저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타인을 섬기려는 마음이 분주하면 나 자신은 그만큼 덜 생각하게 된다.

러셀 교회의 공동체 운동은 글을 모르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시작하여, 무료 법률상담소, 미혼모사역, 노인복지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대부분 자책감이나 책임감으로 이와 같은 일들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은, 베풂이란 베푸는 자 자신에게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는 실로 주고 베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이 얻고 받아야 할 필요만큼이나 절박하다. 사랑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 않는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사랑, 그것이 믿음의 역설이다.

안을 보다

러셀 스트리트 교회의 빌 레슬리 목사는 끊임없이 은혜를 외쳤다. 매주 은혜를 주제로 설교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다 싶을 만치 구체적으로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고 보니 은혜란 내 유년시절의 교회에서는 도무지 구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옛 교회는 왜 그렇게 무섭기만 했을까? 우리의 교회가, 경쟁과 비난과 서열, 곧 은혜 아닌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 은혜를 알릴 수는 없을까? 이제 나는 교회를 찾으면, 안을 보며 하나님께 부탁한다. 내게서 싸늘한 비평과 경쟁의 독을 제거하시고, 대신 은혜를 채워달라고, 어느 모로 보나 은혜가 넘쳐나는 교회, 내가 찾는 교회는 그와 같다.

호숫가의 새로운 표상

우리는 세상에 세운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이다. 러셀 스트리트 교회에 몸담고 있던 시절의 한 광경은 늘 내 가슴에 이 새로운 공동체의 감동적인 전형으로 간직된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러셀 교회는 미시건 호수에서 침례식을 베풀었다. 시카고의 백사장에는 그들 나름의 사회적 서열이 있다. 남미 계통 사람들은 백사장 북쪽에, 전문직의 젊은 부자들은 구조대 망루 주변에, 동성연애자들은 바위지대에 각각 몰려든다. 끼리끼리 모이고, 가족끼리 붙어 앉는다. 그러나 그 날 침례를 받기 위해 모인 작은 공동체에는 주식 중개인과 쿠바인과 오페라 가수와 여든 다섯 먹은 흑인 노예의 손녀딸이 있었다.

교회의 정의라면 나는 칼 바르트의 것을 사랑한다. “교회는…. 세상의 방식과는 현격하게 다른 새로운 표상,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과 전혀 모순되는 표상을 세우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 미시건 호수 백사장에서 거행한 우리의 예식은 정녕 세상의 방식, 적어도 시카고의 방식과는 현격하게 달랐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나의 경험으로 보건대, 특별히 러셀 스트리트 교회는, 약속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교회가 세상과 모순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였다.

제2장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교회

말 찾아 들어가기

하나님은 내 유년 시절의 교회처럼 일사불란하게 통제되는 곳에도 계시지만, 러셀 교회처럼 소동과 혼란을 떠 안으며 가까스로 유지되는 곳에도 계신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마다 나는 러셀 교회와 같은 도심지 교회들을 생각한다.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 장사꾼, 떠돌이 집시, 그리스인, 매춘부, 이교도 우상숭배자 등의 사람들이 있었다. 신약성서 어디에도 고린도 서신만큼 강렬한 어조로 말하지는 않는다. 바울은 교회분열을 엄중히 경고했고, 근친상간을 거세게 비난했으며, 주님의 만찬이 무법천지의 식탁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싸웠다.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생각하신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고린도라는 어수선한 정황에서야 대답이 분명치 않았으리라. 그리고 거의 스무 세기나 지난 오늘날의 내게도 대답은 여전히 모호해 보인다. 바울의 고린도 서신은, 특히 말을 찾아가는 방식에서 망설임을 보여준다. 그는 망설이고 유예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적합한 말을 찾아 들어간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다. 아, 한편으로 생각하니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다. 확실히 그 말이 더 옳겠다. 그러나 더 좋은 비유가 있다. 너희는 성전이다. 사도 바울은 아직도 망설이고 유예한다. 내내 같은 어조를 유지하며 나아가다 12장에 이르러, 마침내 최상의 비유 하나를 건져 올린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책 전체의 어조는 순식간에 바뀐다. 이것저것 꾸짖고 당부하는 개인서신의 문체에서 하나의 유려한 산문 문체로의 비상. 저 유명한 13장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나 역시 한 사람의 작가로서, 고린도전서에 드러난 바울의 방식에 공감한다. 바울의 비유들이 가리키는 진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확실히 낯설다. 비유의 대가 바울이 이 시대 사람이었다면 고린도전서를 어떻게 썼을까? 어떤 이미지의 말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애초부터 생각하신 교회의 모습을 전달하는 최상의 도구가 되었을까?

나의 그림을 소개하겠다. 다음의 내용들은 내가 다닌 모든 교회의 경험을 통해 그린 나의 최신작이다. 모든 교회는 이상적인 모형을 추구하지만, 어느 교회도 그 이상을 완벽하게 실현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상적인 모형이 필요하다. 적어도 그 모형이 우리의 지향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열두 단계 모임

이런 유형의 교회는 어떤가? 언젠가 가 본 이 교회는 사무처도, 급료를 받는 직원도 없이 매주 엄청난 수의 헌신적인 회원들을 불러들인다. 이 교회는 ’익명의 금주회‘(Alcoholic Anonymous)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이 모임의 설립자들은 애초부터 관료화 경향을 철저히 배격했다. 요컨대 그것은 회원들 상호간의 근본적인 관계, 곧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에 바탕할 때에야 이 모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아무개입니다. 나는 알콜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입니다.” 그들이 스스럼없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장소를 결단코 지역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은 최대한의 연민을 가지고 경청하며, 따뜻하게 응답해 주고, 여러 차례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려가며 서로를 격려했다. 내가 참석한 그 날 밤, 회원들은 한 음성으로 열두 단계를 거듭 외쳤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용서와 힘을 구하겠다는 수락이었다. 알콜중독자인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회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네. 하나님은커녕 자기들끼리도 의지하지 않고 있지. 또 그들의 삶은 당당하고 안정돼 보여서 알콜중독자들이 거기 가면 열등감밖에는 느낄 게 없다네.”

내 친구가 다니는 심야교회에서 나는 겸손과 정직의 마음을 보았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동병상련의 친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배웠다. 아마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처음 세울 때 생각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마음들 아니었겠는가!

하나님의 운전면허시험관리단

나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는 좀처럼 나다니지 않는다. 그런 내가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들 틈에 섞여야 하는 때가 있다. 3년마다 한 차례씩 운전면허시험관리단에 출두해서 면허증을 갱신해야 하는 때가 그렇다. 매번 줄을 서서 한 시간씩 기다려야했다. 그럴진대 내 앞뒤로 늘어선 다양한 사람들은 인간 군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뚱뚱한 사람, 노인들, 허름한 청바지에 막장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 성장기에 치열교정을 못 받아 제멋대로 생긴 이를 내보이는 사람들. 여기 운전면허시험관리단 현관이야말로 내가 모르는 진짜 세상이다.

웬 사람이 그렇게 고립적이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아무래도 자기와 닮은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운전면허시험관리단에서 날아오는 고지서대로 할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며, 우리는 대부분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소에는 잘 가지 않는다. 그저 교회에서나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뿐이다. 존 하워드 요더는 말했다. “세상 갑남을녀가 모여 전혀 새로운 사회적 완전체를 이루는 곳,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이며 역사에 의미를 세우는 일이다.”

하나님의 응급실

교회를 응급실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밤늦도록 열려 있고, 찾아가기도 쉬우며, 예기치 않은 응급상황으로 들른 사람들을 기꺼이 돌봐주는 곳. 솔직히 말하건대 복음은,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요하지 않는다.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애통하는 자가, 핍박받는 자가 복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도시의 큰 병원들을 보라. 병원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한정사가 붙는가. 침례교 병원이고, 장로교 병원이고, 감리교 병원이다. 침례 병원이고, 세브란스 병원이고, 성모 병원이고, 성 유다 병원이고, 성 누가 병원이다. 이 병원들이 물론 지금까지도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이름들은 적어도 그 병원들이 애초에 무엇을 근거로 설립되었는지 증명한다. 상처 입은 세상에 손 내미는 교회의 선교가 아니었다면 그 병원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

성찬식을 하며 손 내민 그들에게 떡을 떼어주며 나는 “너희를 위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이 새삼 깊고도 깊어서 속으로 많이 울었다. 실로 교회란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들고 오는 곳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몸을 쪼개신 그분이 세우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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